(보도) 한겨레 2015-4-7
[단독] ‘베트남전 학살’ 피해자 참여 행사 참전단체 압력에 대관 취소 ‘파행’
|
(사진) 6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베트남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떤런(남 64), 응우옌티탄(55)씨와 호찌민시 전쟁증적박물관장 후인응옥번(53)씨가 회견을 갖고 당시 상황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고엽제전우회 “행사 원천봉쇄” 경고 조계종 ‘안전상 이유’ 리셉션 취소 ‘역사왜곡 이중잣대’ 비판 일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주둔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참전군인단체 등의 거센 반발로 장소 예약이 취소되는 등 파행을 겪고 있다. 참전군인단체들은 “역사를 왜곡하는 불순세력의 반민족적 행위”라고 주장하며 행사를 대규모 집회로 ‘원천 봉쇄’하겠다고 경고했다. 역사와 영토를 왜곡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두고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힌 6일, 한국 사회 일부의 이중적 역사 인식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화박물관은 7일 저녁 7시 서울 견지동 조계사 안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베트남전을 다룬 ‘하나의 전쟁, 두개의 기억’ 이재갑 사진전 리셉션 행사를 열기로 했다. 지난달 6일 대관 절차를 마쳤지만 조계종 재무부는 지난 3일 갑자기 대관을 취소한다고 평화박물관에 통보했다. 조계종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념 갈등과 안전상의 문제로 대관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리셉션에는 지난 4일 베트남전 종전 40년 만에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떤런(64), 응우옌티탄(55)이 참석할 예정이었다.(<한겨레> 3월30일치 2면:‘베트남전 학살’ 생존자 2명 첫 방한)
조계종이 갑자기 대관을 취소한 것은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자회’와 ‘대한민국 고엽제 전우회’ 등 베트남전 참전군인단체들의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월남전참전자회는 2일 조계종에 행사 대관을 취소하라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신호철 월남전참전자회 사무총장은 “조작된 (내용의) 행사이기 때문에 이를 개최해선 안 된다.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월남전참전자회는 회원들에게 “좌경화된 반국가적인 일부 세력들이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증언이라는 근거도, 증거도 없는 연극을 자행하려 한다. 인생 단축할 각오로 그들의 음모를 분쇄하겠다”고 공지했다.
“우리가 베트남전 문제 못풀면 일본과의 과거사도 못풀어”
전문가들 참전군인단체에 쓴소리 “감정적 대응은 문제해결 도움안돼” “합리적인 이들이 조직문화 바꿔야”
김성욱 고엽제전우회 사무총장은 “(우리의) 명예를 건드리는 행위다. 행사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7일 1000명이 조계사 앞에 모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과거에도 <한겨레>가 쓴 허위기사로 집회를 했다. 이번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고엽제전우회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최초 보도한 <한겨레21> 기사에 항의한다며 2000년 6월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본사에 난입해 방화를 시도하고 인쇄시설, 자동차, 컴퓨터 등을 부쉈다. 관련자들이 구속되자 고엽제전우회 임원들이 한겨레를 찾아 사과한 바 있다.
종로경찰서는 “충돌 우려가 있어 조계종 쪽에 고엽제전우회의 집회 사실을 알렸다. 그 뒤 조계종에서 판단해 대관을 취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황충기 조계종 재무팀장은 “베트남전 관련 단체들의 항의 등으로 시설 파손 및 정상적 업무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돼 부득이하게 대관 신청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평화박물관은 6일 경찰에 베트남 방문단 등에 대한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리셉션 행사 개최도 불투명해졌다. 석미화 평화박물관 사무처장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5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의 위안부역사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들의 방문 목적은 전쟁 피해자인 한국과 베트남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자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평화박물관 쪽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첫 한국 방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첫 일본 방문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초청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가 베트남전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도 풀지 못한다. 베트남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전군인들의 희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희생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한국 정부가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를 하는 순간, 참전군인들도 가해자가 아닌 국가동원 피해자가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감정적 대응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전을 명예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이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합리적인 이들이 참전군인단체의 조직문화를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고 본인들도 부상을 당한 응우옌떤런, 응우옌티탄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방한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잘못된 역사와 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 독립 70주년, 한국군 베트남 파병 50년이 되는 올해, 한국과 베트남이 상호 평화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길 기원한다. 그 길을 가는 데에는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성찰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우리의 방문이 한국 사회에 베트남전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김성환 김규남 기자 hwany@hani.co.kr
(보도) 오마이뉴스 2015-4-6
베트남전 종전 40년,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하다' 강연 전체보기
송규호 기자
"박물관은 또한 참전군인, 구 정치범, 고엽제 피해자 등과의 교류 행사를 통해 역사의 산증인들과 관람객을 잇는 다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박물관에서 많은 미국, 호주 등의 참전 군인들이 과거의 적이었던 베트남 참전 군인들을 부둥켜안고 울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며 친구를 청하기도 했습니다."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후인 응옥 번 베트남 호치민시 전쟁증적(증거와 흔적)박물관장 초청 강연이 열렸다. 번 관장은 <베트남전 종전 40년,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하다> 강연에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베트남인들이 '전쟁박물관' 건립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승전국가지만 다른 '민족의 원한을 불러일으키는 전쟁 기념관'‘ 대신 '전쟁박물관'을 짓고, 전쟁의 교훈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소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번 관장은 미국과 한국 등 베트남 참전국 군인들의 박물관 방문을 주선해, 가해자와 피해자 간 사과와 용서가 이뤄지는 평화의 장소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번 관장은 ‘베트남 전쟁 속의 고엽제’, ‘전쟁의 화염속의 베트남 여성?어린이’, ‘전쟁 기억’ 등의 주제로 전쟁증적박물관 상설전시회를 열고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유한다고 전했다.
이날 강연에는 번 관장 외에 베트남 전 당시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씨와 응우옌 티 탄씨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베트남전 종전 40주년을 맞아 열리는, 한국과 베트남 양 국의 전쟁 흔적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재갑 사진작가)> 전시회 개막식(7일)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 동영상은 이날 번 관장의 강연회 전체를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