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오마이뉴스 2017-9-23
[해외리포트] 캄보디아 야당, 자국 민주주의 도움 달라 호소하지만.. 영향력 큰 미국은 무관심
▲ 지난 2013년 12월 프놈펜 도로 행진 당시 시위대 선봉에 선 무 소쿠아 야당 부총재 험난해보이는 캄보디아의 민주화 과정은 과거 7~80년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
ⓒ 박정연 |
[오마이뉴스 글:박정연, 편집:박정훈]
"이 나라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해 있고, 나 역시 위험에 처해 있다."
캄보디아 제1야당 구국당(CNRP) 부총재이자 당내 유일한 여성지도자인 무 소쿠아 의원이 지난 18일자 미국 <파이낸셜 타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나도 언제 감옥에 잡혀갈지 모른다"며 그녀는 인터뷰 도중 두 번이나 울음을 터트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캄보디아 야당과 여성계를 대표하는 강철정치인이 이같이 나약한 모습마저 보인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말해 이 나라 민주주의를 사수해온 캄보디아 제1야당이 말 그대로 고사 직전 백척간두 위기에 놓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국내외 언론에 의해 보도된 바와 같이, 삼 랭시 전 총재를 이어 어렵사리 당을 이끌어왔던 켐 소카 총재가 구속된 데 이어 나머지 야당 의원들마저 한 친정부 언론에 의해 이름과 명단이 거론되며 당장 구속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입장을 대변해온 현지뉴스매체 'Fresh News'가 최근 "야당 의원 4명과 켐 소카 총재의 두 딸이 미국정부와 공모해 국가전복을 모의한 협의가 있다"고 전해 위기감이 더해진 상태다.
무 소쿠아 국회의원 역시도 앞으로 닥치게 될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야당지도부 중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고 정의로운 여성투사로 국내외에서 인정받아온 정치인이지만, 이 나라 민주주의와 자신에게 닥치게 될 운명에 대해 좌절하는 모습이다.
▲ 노로돔 시하누크국왕 서거 1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캄보디아 제1야당인 구국당(CNRP) 지도부의 모습 (가운데 왼쪽부터 지난 9월 3일 새벽 긴급구속된 켐 소카 총재과 무 소쿠아 여성 부총재) ⓒ박정연
▲ 미국의 비자발급금지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훈센총리는 베트남전 미군유해수색 작업 협조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미국 평화봉사단도 당장 떠나라고 협박했다. 이로서 양국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됐다. ⓒ박정연
내년 7월 총선 승리 위한 장기독재자의 잇따른 초강수
이미 국내외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바와 같이 내년 7월 총선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32년 장기통치 중인 훈센 총리는 유례없는 초강수를 두고 있다.
지난 9월 4일에는 자신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현지독립신문을 세금체납을 명분 삼아 강제폐간 조치했다. 이 신문의 마지막 커버스토리 제목은 '완전한 독재로 몰락(Descent into Outright Dictatorship)'이었다.
이어 앞서 하루 전날 훈센 총리는 제1야당 총재마저 국가반역혐의를 덧씌워 한밤중 강제구속시켜 버렸다. 그는 일체 면회가 허용되지 않은 가운데 현재 베트남 국경 근처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국가반역죄로 구속된 그는 유죄가 확정될 경우 최고 30년형을 받게 된다.
내년 총선승리를 꿈꾸는 훈센 총리의 '야당 죽이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예 야당의 뿌리조차 잘라 없앨 속셈인가 보다.
금년 2차례에 걸쳐 여당 주도로 개정된 선거법에 따르면, 범죄혐의가 있는 자는 정당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새 총재를 90일 이내 뽑지 않을 경우 '당 해체'도 가능하도록 못을 박았다.
파이 시판 정부 대변인은 "만약 야당이 선거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당 해체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럼에도 남은 야당 지도부는 아직까지 새 지도자를 선출할 계획이 없어 보인다. 총재 후보로 가장 유력한 무 소쿠아 위원은 현지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자칫 내년 7월 선거에선 야당인 구국당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경우에 따라선 집권당인 인민당(CPP) 단독으로 치루는 선거가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훈센 총리는 최근 연설에서 "총선에 나설 다른 당은 구국당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며 여유를 보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현 제1야당이 빠진 가운데, 무늬만 야당인 친정부성향인물들이 군소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총리의 뜻대로 상황이 전개된다면, 내년 총선은 사실상 결과가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당장은 10년 더 집권하겠다는 훈센 총리의 발언이 점점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 양손을 쥔 채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캄보디아 구국당 전현직 총재들의 모습 (2013년) 여당주도로 금년 2번에 걸쳐 개정된 선거법으로 인해 삼 랭시 총재(오른쪽)는 지난 2월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후임 켐 소카 총재는 국가반역죄로 징역 30년형 위기에 처해있다. ⓒ박정연
▲ 정부의 잘못된 토지정책으로 인해 살던 집과 땅을 빼앗긴 채 울부짓는 캄보디아 서민들의 모습. 훈센정부의 언론 탄압에도 불구하고, 400만명이 넘는 페이스북 가입자들이 현 정부의 실정과 과오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내년 7월총선의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연
훈센 총리에 침묵하는 야당과 국민들, 서방세계의 반응은?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정작 야당과 국민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선거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총리의 행보에 대해 야당과 지지자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군경까지 동원해 수시로 야당 관계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작은 꼬투리라도 찾으려 혈안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노선을 지향해온 서방세계와 인권단체들은 깊은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유엔을 비롯해 서방세계가 나서 "캄보디아 민주주의가 결실도 맺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했다"며 여러 차례 훈센 정부를 압박하고, 경고 메시지까지 보냈다. 무 소쿠아 야당 국회위원도 이에 힘을 보태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에 자국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도와주길 바란다며 호소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그녀가 기대한 만큼 서방세계가 힘이 되어주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동안 경제 원조를 책임져 온 서방세계국가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와 정치문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압박카드가 현재로선 별로 없기 때문이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차관과 무상원조를 일시 중단하거나, 무역관세 특혜조치를 없애겠다는 협박만으로도 어느 정도 약발이 먹혔던 나라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현지 정치평론가들조차 "이제는 이런 전략도 한계상황에 다다랐다"고 지적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자칫 이를 잘못 사용할 경우, 이 나라 70만 명이 넘는 섬유봉제근로자들의 생계에 타격을 주게 된다. 특히 외국 원조는 사회경제는 물론이고, 서민들의 삶과도 직결된 문제이기에 조심스러울뿐더러, 훈센 총리의 반미, 반서방 정서에 명분만 더 키워줘 오히려 역풍만 초래할 수도 있다. 훈센 총리 역시 그간 여러차례 경험을 통해 서방세계가 또 다시 '원조중단' 같은 조치를 압박카드로 꺼내 쓰기 어렵다는 사실을 눈치 챈 상태"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캄보디아 정치문제에 대해선 일체 관심이 없는 것도 향후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미구엘 찬토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소속 동남아정세분석가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권 내 주된 관심사는 연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문제로 골치를 썩이는 북한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권의 인권탄압 관련 이슈 정도 뿐"이라고 미국 <The Strait Times>와 가진 인터뷰에서 꼬집었다.
사실 미국 행정부는 동남아 문제만큼은 역내에서 오랜 기간 착실히 기반을 다져 온 일본이 대신 나서주길 은근히 바라는 눈치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동남아에서 나름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하지만 지금 아베 정권 입장에선 낮아진 지지율에 자국 정치, 경제 문제만 해결하기에도 벅차 동남아 정치에는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게다가 이미 일본은 최근 마치 혜성처럼 나타난 거대 중국의 막강한 자본력에 밀려 동남아권 내 정치적 입지가 예전만 훨씬 못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한 가운데 미국 정부가 눈치 없게도 훈센 정권을 자극하는 일거리를 기어이 하나 만들고 말았다. 지난 9월 13일 미국정부가 캄보디아 외교부 국장급 이상 관료들과 가족들의 미국비자를 중단시킨 것이다. 캄보디아 국민들의 비자발급을 중지한 이유는 최근 미국 내 범죄를 일으킨 캄보디아인 1000여 명의 송환을 캄보디아 정부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같은 날 기니, 시에라리온, 에리트레아 등 다른 3개국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지난 7월 미 정부가 유죄가 확정된 외국인 추방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국가로 거론한 미얀마, 중국, 쿠바, 베트남, 홍콩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차별논란마저 부추긴 셈이다.
미국 정부가 내린 이 같은 조치는 결과적으로 가뜩이나 반미감정이 심한 이 나라 독재자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다음날 훈센 총리는 베트남전쟁 당시 캄보디아에서 숨진 미국 군인 40여 명의 유해 수색을 위한 미국과의 협력을 중지시켜 버렸다. 그것으로도 분이 안 풀렸는지 캄보디아에 파견된 미국평화봉사단(Peace corp) 철수까지 요구했다.
이로써 지금 캄보디아와 미국 양국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상태다. 금년 초 취소된 양국합동군사훈련도 내년에 다시 열릴 가능성이 현재로선 거의 전무하다.
일각에선 이번 미국 비자금지 조치가 '타이밍'상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필이면, 이번 조치가 훈센 총리의 집권 연장 행보에 미국이 비판적 입장을 밝히며 양국 관계가 껄끄러워진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를 냉정히 따져보면, 미국이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는 증거로도 해석될 수도 있다. 덕분에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 따라 동남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기회를 엿보던 중국이 손쉽게 어부지리로 정치적 이득을 챙기게 됐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 수도 프놈펜 중심가 시위대 경계에 나선 시위진압 헌병의 모습. 지난 2013년 총선 후유증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던 근로자 최소 5명이 사망했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박정연
▲ 캄보디아 제1야당 부총재 무 소쿠아 의원이 오토바이헬멧을 쓴 진압경찰들을 향해 무고한 시민들을 폭행하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있다. (2014년 1월 프놈펜 법원앞) ⓒ박정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침묵하는 민심, 과연 그들의 선택은?
5년마다 치러지는 캄보디아 총선이 이제 10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과거 선거 때마다 후유증에 시달린 경험을 가진 이 나라 국민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크다.
야당이 구심점을 잃어 사상 유례없는 조용한 선거가 치러질 것이란 주장도 일부 있지만, 이 역시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 캄보디아 전체 인구 중 1/4에 해당되는 400만 명이 페이스북 가입자로, 'SNS'을 통해 공포정치가 이뤄지는 작금의 현실을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도 내년 총선 결과를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물론, 내년 총선이 박빙의 승부가 될지 모른다는 일반의 예측이 빗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훈센 총리가 재집권에 또다시 성공하면, 늘 그래왔듯이 배고픔을 면할 정도의 적당한 당근을 내놓으며 과거보다 더 위협적인 공포정치를 자행할 것이란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이 나라가 민주주의국가로 가는 길목이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깨어있는 캄보디아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나간 캄보디아 동포사회도 바로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9월 3일 켐 소카 야당총재의 구속사건 이후 이미 미국과 호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독재정권을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9월 10일 충남 논산역 광장에서 20여 명 캄보디아인 근로자들이 소규모 항의시위를 벌인 바 있다. 다음 달 10월 1일에는 서울 보신각에서도 수천 여 캄보디아 근로자들이 집결한 가운데 시위집회 및 도로행진을 가질 예정이란 소식이다.
이미 서울시청에 시위집회신고접수까지 마친 상태다. 같은 장소에서 지난 2013년 총선이 끝난 이듬해 1월초 훈센 정권의 유혈진압을 규탄하는 이주노동자 시위집회가 열린 적이 있다. 이번 집회에서는 야당지도자 켐 소카의 무조건적 석방과 재외동포 선거참정권을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역시 우리나라 각계 시민인권단체들과 노동계도 합류해 지지성명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렇듯 어느 나라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이렇듯 험난하고 힘들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에 대항해 목숨 걸고 싸웠던 1970~1980년대 우리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지는 건 비단,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 10월 1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릴 예정인 켐 소카 야당총재 석방 및 재외국민참정권 요구 시위집회를 알리는 포스터 ⓒ @Yim Sinorn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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