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종교/관습/민족

[참고자료] 마하 고사난다 스님 인터뷰 (붓다뉴스)

작성자울트라-노마드|작성시간09.12.11|조회수115 목록 댓글 0

 

(보도) 붓다뉴스

  

 

 【큰 스님과의 대화】마하 고사난다<캄보디아 종정>

 

 

*해외고승편Ⅳ

 

*약력

·1929년 캄보디아 타케오 生
·1943년 타케오 인근 사원에서 출가
·53년 인도 나란다대 수학 이후 일본, 태국, 미얀마 등지에서 명상 공부

·80년 UN 산하 기구 ‘평화 계획’ 설립이후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의 날’ 제정

·88년 캄보디아 최고(最高) 종정에 추대이후 로마, 미국, 티베트, 영국, 호주 등에서 순회법회

·92년 세계 인권상 수상
·98년 나와노 평화상 수상

 

 

‘모든 생명 이롭게’ 사명으로 여기면 보리심 익어요

◇마하 고사난다스님이 주최해 1993년 4월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인근 지역에서 열린 평화 행진 모습. 이날 스님은 “우리가 시작한 평화 행진은 캄보디아에 ‘평화의 다리’를 만들 것”이라고 격려했다.

 

◇캄보디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행진’전에 대중법회를 봉행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불자들.

 

인류 역사는 ‘갈등과 전쟁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분쟁이 계속돼 왔다. 지난 세기에 수천 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2차 대전이 대표적인 예이지만, 지금도 세계 30여 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 평화를 희구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내전으로 170여 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간 캄보디아. 캄보디아 내전에 맞서 비폭력 평화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국민들에게 재건의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 캄보디아 종정 마하 고사난다 스님. 스님에게 왜 이 세상은 시끄럽고 갈등투성이며 전쟁이 끊이지 않는지, 그것을 뿌리 채 잘라내고 온전한 조화와 균형 그리고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는 없는지 가르침을 청했다. 스님의 저서 <한 걸음 한 걸음(Step by Step : Meditation on wisdom and compassion)>과 ‘과연 누구 적인가(Who is the Enemy)’ ‘평화는 우리 모두의 목표(Peace is our common goal)’ 등의 주제 법문 중에서 중요부분을 뽑아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스님은 캄보디아 전쟁중에도 계속해 비폭력 운동을 전개해 오셨고, 내전이 끝난 후에는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어 재건의 기틀을 다지는 일에 몰두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이같은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 보리심(Bodhicitta)이죠. 그 마음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윤회하는 생명 모두를 연민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을 괴로움으로부터 건져내고 모두가 바른 깨달음을 얻도록 해주려는 마음에서 보리심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보리심은 모든 생명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바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모든 생명들을 위해서 언제든지 자기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신념입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그럴 능력이 없지만,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으면 자신이 완전히 자유로워짐과 더불어 모든 생명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자비심과 능력이 생깁니다.

 

가끔씩 충동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이와 비슷한 감정들은 진정한 보리심이 아닙니다. 그런 정도의 동기를 갖고는 보살의 수행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참된 보리심은 서서히 익는 법입니다. 오랜 단련을 거친 다음에 비로소 현재의 마음이 참된 보리심으로 바뀝니다. 사흘을 꼬박 굶는다면 오로지 밥 생각만 일념으로 나겠지요. 그러한 일심으로 보리심이 굳고 한결같은 사람을 보살이라 부릅니다. 보살의 덕(德)은 마치 허공처럼 제한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보살의 사소한 덕행조차도 일반적인 커다란 선행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즉 어떤 행위의 동기가 자신, 혹은 어느 특정한 무리를 위한 게 아니고 뭇 생명 모두를 목적으로 할 때, 그 행위의 결실 역시 제한이 없다는 것이지요.

 

모든 생명들을 이롭게 하려는 자비심은 깨달음을 얻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며, 모든 수준 높은 수행의 뿌리입니다. 아무리 오래 경전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보리심을 지닌 보살의 단 일분간 명상한 성과에 미치지 못합니다. 모든 생명들을 구제함을 스스로의 사명으로 여기고 어떤 어려움도 겪어내겠다는 각오를 굳건히 하면, 마음은 더없이 고요해집니다. 자비와 사랑의 성스러운 물이 마음의 모든 굴곡을 덮고 잔잔하게 고이는 까닭이죠. 스스로의 이해 관계에 따라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증오하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 등으로 차별하는 것은 삐뚤어진 마음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는 마음의 평정은 끊임없는 명상을 통하여 계발되고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일상 생활에는 마음의 고요를 방해하는 세속적 요인들이 너무나 많아요. 보리심은 순식간에 얻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마치 빌딩을 짓는 일과 흡사합니다. 수십층의 건물이 단번에 지어질 수 없지요. 우선 땅을 편편하게 다듬어야 하고, 여러 가지 건축자재를 확보한 다음 1층부터 올라가야 비로소 공사를 설계대로 진행하게 됩니다.

 


─전쟁을 끝내고 지금 활발하게 재건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국민들에게 국난을 극복하고자 간절하게 해주신 스님의 말씀 하나 하나는 소중하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씀은 기아, 환경, 전쟁 등의 오늘날의 여러 문제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요.

 

▲ 어떤 마음으로 수행하고 어떻게 해야만 이 국난을 잘 극복할 것인가를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수밖에 다른 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몸과 말과 마음, 이 세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마음과 말과 몸이 한결 같으면 충돌과 대립이 없어져서 어느 정도 평온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잘 조절하는 사람을 가리켜 진정한 ‘수행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현세에 자신이 태어나는 가족을 선택하는 문제가 전생에 지은 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대입시켜 보세요.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현재의 환경과 행위가 보다 직접적인 관계를 갖습니다. 가족간의 관계, 국가간의 관계가 이어지고 확장돼 세계가 되는 것임을 명심하세요. 세상을 잘 돌아가게 하는데는 주변사람과의 관계도 빠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친절하고 주변으로부터 환영받으며 탐욕이 없고 이해심이 깊으며 조정자로서의 평등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는 사람은 훌륭한 평판을 얻게 되지요, 관대함, 자애로운 말, 모든 사람들에 대한 착한 행위, 모든 일에 있어 공정함 등, 이러한 것들은 마치 수레가 바퀴를 축으로 해서 바르게 나아가듯이 실제로 세상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지요.

 

 

─스님께서 항상 강조하고 있는 ‘몸과 마음 그리고 말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평안을 유지하는 상태’를 얻기 위해서, 우리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요.

 

▲ 인생이란 서로 상반되는 것들 사이를 끊임없이 왕래하는 변화무쌍한 것으로, 여기에는 ‘생기고’ ‘멸하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잃고’ ‘얻고’ 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일일이 행복과 슬픔, 환희와 절망, 실망과 만족, 희망과 공포 등으로 반응하는 마음의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의 파도는 우리를 위로 높이 올렸다가는 아래로 내동댕이쳐 버립니다. 어쩌다가 조금 안정이 되는가 하면 어느새 새로운 파도에 휘말려 들게 됩니다. 이 파도의 위에 우리는 과연 발판을 굳힐 수 있겠습니까? ‘평안의 섬’ 위에 세우는 길 말고 달리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필요로 하는 평안은 무관심한 둔감에 기인하는 게 아니라, 또렷한 정신에 입각한 평안이어야만 해요.

 

평안을 찾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가 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마음을 믿기 이전에 마음이 믿을 만한 대상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는 게 마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렇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만 신심이 확립되어 집니다. 수시로 변하는 마음속에서 불교라는 수행을 통해 올바르게 변화하도록 인도하고 기도하여서 마음이 순수해질 때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대한 신심이 우러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바른 마음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바른 마음을 일으키도록 계발시키는 것, 이미 일어나 있는 나쁜 마음을 버리는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쁜 마음을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과도 같은 뜻을 가지고 있어요.

 

세 번째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몸이 이 자리에 있어도 마음이 방황하고 있으면 깨어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확실히 알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 있을 때만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깨어 있다면 부처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네 번째는 안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 갖추어지면 사물의 실상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지혜가 열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혜라는 게 있죠. 원인과 결과를 잘 알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가 이들 다섯 가지를 계속 실천한다면 주변에 암초와 같이 존재하고 있는 갖가지 위기들을 잘 넘길 수 있고, 또한 벅찬 시련을 이기고, 소진된 힘을 스스로 다시 채우는 ‘참다운 평안’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종교 때문에, 이념 때문에, 민족 문제로 인해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류는 누구나 평화를 희구하지만 살육과 폭력의 전쟁을 완전히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보다 완전한 갈등 해소, 평화 정착은 이루어질 수 없는지요?

 

▲ 부처님이 가르친 중생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석가족과 꼴리야족 간의 물싸움 일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두 종족의 농민들이 서로 자기네들 쪽으로 물을 끌어가겠다고 충돌한 것이, 급기야 두 종족의 지도자들이 전쟁을 해서라도 농민을 보호해야겠다고 결심한 탓에 전쟁 일보직전까지 가게된다는, 자타카(부처님 전생담)에 나옵니다. 이 때 부처님은 “그대들이여, 강물이 더 소중한가, 그대들의 몸이 더 소중한가! 사소한 강물 때문에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왜 이같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려는 것이냐? 만약 여래가 이 자리에 오지 않았으면 그대의 피가 이 강물을 가득 채우는, 실로 회복하기 어려운 불행을 부르게 되지 않았겠느냐? 다시 손에 칼과 활을 잡지 말아라. 그대들이 시작하려는 싸움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원인이니, 그런 것들을 버려버리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살아가야 하느니라”고 타일렀습니다. 당연히 두 종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들의 이기적인 생각을 부끄럽게 여기고, 강물을 사이좋게 서로 나눠쓰고 농작물을 잘 관리해 큰 가뭄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국지전이 빈번한 오늘의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전이나 전쟁을 겪었고, 또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았던 경험이 있다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캄보디아인들이 겪었던 고통은 어느나라를 막론하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들의 고통은, 위정자들이 나라를 보살피는 일을 등한시하고 논쟁과 싸움만을 일삼은 데서 비롯된 내전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 때에 맞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해야겠습니다. 즉, 이익 얻고 선행을 베풀고 선업을 쌓는 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를 추구하고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지속하며 가족간에, 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안정되고 평화로울 때 세계 평화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생활에서 항상 유념해야 할 부처님 가르침은 무엇인지요.

 

▲ 정신이 얼마만큼 평온하고, 혼란스러운가 하는 정도는 자신이 마음에 스스로 일으켜 놓은 생각에 따라 좌우됩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생각의 변덕’을 팔정도로 다스릴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팔정도란 올바른 이해·생각·말·행위·생계·노력·마음챙김·집중 등을 가리키는 것인데, 여기에는 부처님의 중도 사상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불자라면 적어도 산만해지려는 생각을 거두고, 마음이 변덕을 떨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먹은 음식으로 자신의 배고픔을 달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남의 마음을 수련시켜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수련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의 작용은 인과현상의 한 측면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프면 맛있는 음식의 냄새에 민감해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 때에는, 모든 일에 의욕을 잃게 됩니다. 자아라는 굴레를 벗어나 실재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보게 하여 주는 성스러운 팔정도야말로 괴로움을 여의고 해탈로 이끄는 길입니다. 자아라는 굴레를 벗어나 실재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해탈지혜로써 보게 하여 주는 종교, 곧 성스러운 팔정도의 불교이기 때문에 팔정도에 따라 수행할 수 있도록 늘 마음과 몸을 청정히 하십시오.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기에 오로지 부처님법을 믿고 따라 자기자신이 직접 수행하고, 보살행을 실천하며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정리=오종욱 기자
(gobaoou@buddhapia.com)

 

 

  카페 내 관련게시물 바로가기

 

   ☞ "[인물] 캄보디아의 간디 : 마하 고사난다 스님"

   ☞ "[참고자료] 해외고승 : 마하 고사난다 (붓다뉴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