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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미국 샌프란시시코에 본사를 두고 세계 각국의 항구 및 항해에 관한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정보제공서비스 기업 "월드포트소스"(World Port Source: 세계항구자료) 제공 정보를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
프놈펜 항구
The Port of Phnom Penh
메콩 강과 바쌋 강(Bassac River), 그리고 떤레 삽 강의 합류점에 위치한 "프놈펜 항구"는, 캄보디아 수도이자 제1의 도시인 프놈펜(Phnom Penh)에 속해 있다. 원래 이 도시는 동남아시아의 정치, 문화, 산업, 상업, 관광 및 역사의 중심지였다. 1920년대에는 "아시아의 진주"로까지 불렸던 프놈펜은 프랑스식 건축물들과 전통 크메르식 건축물들로 유명하기도 하다. 캄보디아의 부가 집중되어 있는 프놈펜에는, 현재 경제 붐을 타고 새로운 레스토랑과 바, 호텔과 주거용 건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으며, 세계의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로 발전해가고 있다.

(사진: PPAP) 프놈펜 항구의 수상 터미널
프놈펜 항구는 비록 바다에서부터 290 km나 내륙에 위치하지만, 메콩 삼각주의 하우지앙(Hau Giang) 수로를 통해 동지나해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메콩강 계곡 지역의 주요항구 역할을 해왔다. 프놈펜 항구는 캄보디아의 다른 지방은 물론 태국, 라오스, 베트남 및 캄보디아의 유일한 해양항구인 시하눅빌 자치항구(PAS)와도 연결된다.
1990년대 이래의 경제성장으로 현재 새로운 상점과 쇼핑몰들이 새롭게 오픈했다. 또한 여러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체인점들도 속속 들어오고 있다. 2003년 기준으로 캄보디아 총인구 1,100만명 중 130만명이 프놈펜에 거주하고 있다. (역주: 2008년 인구조사에서 캄보디아 총인구는 1,300만명을 넘었다)
1. 항구의 역사
크메르제국의 도성이었던 앙코르 톰(Angkor Thom)이 시암(태국)에 의해 침략을 당한지 몇년 후, 뽄히어 얏(Ponhea Yat) 국왕은 1434년에 프놈펜의 옛 지명인 "짝또목"(Chaktomuk)으로 천도했다. 1600년대에는 일본인 이주자들이 항구의 교외에 정착하기도 했다. 이후 캄보디아의 수도는 여러 곳으로 옮겨다녔다.
1865년 노로돔(Norodom) 국왕은 다시금 프놈펜 항구를 재정비하고, 이곳을 영구적인 수도로 확정하였다. 19세기 중엽 이전의 프놈펜 항구는 상업항으로서 섬유제품, 기계류, 약재 및 쌀 등이 거래되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는 프랑스 식민당국이 이 항구의 체계를 많이 발전시켰다. 프랑스인들은 내륙의 슾지대를 통제하기 위해 운하체계를 보수했고, 호수와 도로도 건설했다. 1905년 프랑스 당국은 "프놈펜 항구"를 재정비했고, 40 m 길이의 부교도 가설했다.
프놈펜은 "왕궁"(Royal Palace) 및 "쁘레아 모로꼿 파고다"(Preah Morokot Pagoda: 사찰)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왕궁은 1919년에 건설된 궁전과 "왕립박물관"(Royal Museum), 연간 2차례 국회가 모이기도 하는 "왕궁정원"(위얼미엔, Veal Mien)으로 구성되어 있다.
1952년에는 "쯔로이 쩡와 대교"(Chroy Changva Bridge) 근처에 콘크리트 부두가 건설되어, 1960년까지 접안수심 12 m에 총길이 185 m까지 확장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베트남전쟁 기간 중에는 북-베트남 군대와 베트콩 반군이 캄보디아 영토 내에 군사기지를 건설하였고, 전쟁의 여파로 많은 피난민들이 프놈펜 항구로 몰려들었다. 1970년경에는 여러 부유층 및 지식인을 포함하여 약 200만명의 인구가 프놈펜에 살고 있었다. 폴 포트(Pol Pot)의 크메르루즈 정권이 집권했던 1975-1979년 사이에는 항구가 폐쇄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의 프놈펜은 풍요로운 항구도시로서 문화의 보고였다. "왕립박물관"에는 크메르의 역사적 문서들과 예술작품들을 보존하고 있다. 이 항구의 유럽인 거주지역은 "프놈펜 힐"(Phnom Penh Hill: 프놈펜 언덕)에 자라잡고 있다. 이곳에는 강물에 떠내려오는 청동불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전설의 여인의 유골을 안치한 불탑이 위치해 있다. "프놈펜"이란 명칭은 바로 "뻰 부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프놈펜은 또한 캄보디아 불교의 중심지로 불교학연구소(Buddhist Institute)와 쁘레아 시하누크 랏 불교대학(Preah Sihanouk Raja Buddhist University)을 비롯한 여러 시설들이 모여있기도 하다. 근대 초기까지만 해도 오직 왕궁에서만 공연되던 크메르 고전무용(Royal Ballet)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국립극장"에서는 고대 문화를 현대에 부활시키기도 했다.
1975년에 크메르루즈(Khmer Rouge)가 프놈펜을 함락시키고, 캄보디아의 정권을 차지했다. 이후 프놈펜 시민들은 모두 소개되어 농촌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1979년 1월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 군대가 크메르루즈 정권을 붕괴시킬 때까지, 프놈펜 항구는 거의 완벽히 황폐화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크메르루즈는 집권기 동안 이 나라를 농업경제에 기반을 둔 국가로 복귀시키려 했다. 부유한 엘리트들이 강제노동에 처해졌고, 지식인들은 투옥되어 살해되거나 탄압을 받았다. 크메르루즈 정권이 시도한 농업경제가 실패하고, 무기구입을 위해 쌀을 중국으로 수출하면서, 캄보디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였다. 고문도 일상적이었다. 오늘날 "뚜올 슬렝 학살박물관"(Tuol Sleng Genocide Museum)으로 변한 "S-21 보안감옥"은 원래 고등학교였다. 이곳에서는 당시 희생자들의 사진과 고문 장비 등을 전시하고 있다. 희생자들은 이 감옥으로부터 처형장인 유명한 "킬링필드"(Killing Fields: 쪼응 엑)까지 걸어갔는데, 이곳 역시 유적지로 변해있다.
1980년에 2곳의 수상(부유) 터미널과 콘크리트 부두가 복원됐다. 1995년에는 수상 터미널에 야간조명 장치와 급수시설이 추가되었다. 현재 이 수상 터미널들은 승객들과 관광객들을 위해 이용되고 있고, 300 m 길이의 콘크리트 부두는 동시에 4척의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버드(berth)로 사용되고 있다.
크메르루즈 정권이 몰락한 후 프놈펜 항구는 점진적으로 이용이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크메르루즈가 지식인 계층을 거의 몰살시켜, 프놈펜의 문화적 자산인 항구를 복구하는 데는 시일이 걸렸다. 프놈펜 항구가 재건기를 맞아 정치적 안정을 구가한 것은 1990년대 이후에야 가능했다. 이 시기에 호주, 일본, 프랑스로부터 투자와 원조가 몰려왔다. 또한 국제금융기구들의 원조로 배수처리시설과 도로의 개선, 그리고 여타 기반시설의 복구와 재건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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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 맵의 사진] 프놈펜 항구의 주요 부두시설들은 "쯔로우 쩡와 대교"(상단의 강을 가로지르는 노란색 도로) 아래쪽의 떤레 삽 강변에 위치해 있다(검은 박스 부분). 우측의 큰 강 본류가 메콩 강이고, 하단에서 좌측으로 갈라지는 작은 강이 메콩 삼각주를 향해 흘러나가는 바쌋 강의 시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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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두시설들을 조금 더 확대한 모습. 대교 바로 아래쪽이 콘크리트 부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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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부두와 야적장의 모습. |
2. 항구의 운영현황
현재 프놈펜 항구를 관리하는 주체는 "프놈펜 자치항구"(Phnom Penh Autonomous Port: PPAP)[프놈펜 항만관리국]이다. "프놈펜 항만관리국"(Port Authority of Phnom Penh)은 공공사업교통부 및 재정경제부의 2개 부처의 관리를 받고 있다. PPAP의 이사회는 상기 2개 부처의 대표 2인과 "프놈펜 광역시청" 대표 1인, 그리고 소속 노동자 대표 1인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상기 2개 부처의 감독하에 항구 및 부수 시설들을 관리 및 운용하고 있다.
PAPP는 캄보디아 전역으로의 물류를 위해 메콩 강 연안의 여러 도청들과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프놈펜 항구는 주요 강들을 연결하는 국내 항해의 중심적인 터미널이다. 연중 항해가 가능토록 하기 위해, 프놈펜 항구는 접근항로들을 유지한다. 메인 터미널은 수입품을 배급하고 수출용 상품들(주로 농산물)의 수집장이 되고 있다.
PPAP에는 화물을 조작할 경험많은 인력들이 배치되어 있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여 운영할 관리팀도 배치하고 있다. 부두에는 100톤 무게의 화물을 선적할 수 있는 2대의 부유 크레인과 2대의 이동식 크레인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이 항구에는 충분한 야적장과 창고가 설비되어 있고, 이러한 시설을 관리할 전문인력들이 배치되어 있다. 현재 터미널 주변에 화물처리 용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2동의 창고가 새롭게 건설되고 있다.
2007년에 프놈펜 항구가 처리한 화물 컨테이너는 45,000 TEUs(컨테이너물동량단위)였다. 이러한 양은 2003년 10,000 TEUs를 처리한 것에 비해 현저히 증가한 것이다. 프놈펜 항구의 화물처리양은 매년 증가일로에 있다.
3. 항해와 여행
다소 럭셔리한 여행에 익숙한 사람이 프놈펜을 방문한다면 놀라게 될 것이다. 기후는 매우 덥고, 건기에는 먼지도 많다. 크메르루즈 정권 이후로 기반시설도 낙후되어 있다. 캄보디아의 가장 부유한 도시지만, 베트남의 호치민 시에 비해 엄청나게 빈곤한 모습을 보여준다. 프놈펜 항구는 최근 수년간에 이르러서야 보다 편안하고 즐길만한 분위기로 변했다. 이 도시는 역사적 문화를 보존하려 투쟁하는 동시에, 보다 현대적인 도시로도 변해가고 있다. 프놈펜 항구의 기반시설도 나아졌다. 도로는 포장되었고, 쓰레기도 보다 규정된 형태로 수집되고 있다. 몇년 전에 비하면 정전도 잘 안되는 편이다.
프놈펜의 매력은 넓은 가로수길과 아름다운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들, 그리고 여러 아름다운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자리한 공원같은 강변에 있다. 거리의 생활과 지역적 분위기도 관광객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지만 독특하고 매력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21세기 들어와 프놈펜은 아시아의 도시들 중 가장 인기있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시소왓 키"(Sisowath Quay: 시소왓 제방)란 명칭의 강변은 메콩 강과 떤레 삽 강의 제방을 따라 이어져 있다. 훌륭한 도시공원과도 같은 이곳의 풍광은 여러 상점들과 카페, 그리고 고급 바들이 모여들게 만들어주었다(소수의 매춘여성들과 약물중독자들도 있음). 밤이면 이곳의 산책나온 내국인들도 많아, 마치 축제 분위기를 연상케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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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왓 제방"에서 황혼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 REUTERS/Adrees Latif 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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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은 왕궁과 2곳의 아름다운 사찰들인 "실버파고다"(Silver Pagoda)와 "에메랄드 불상 사원"이 위치한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사원들은 19세기에 건축되어 20세기를 잘 버텨내었다. "실버파고다"의 바닥에는 5,000개의 은 타일이 놓여있고, 왕실에 들어온 여러 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90kg 중량의 금불상은 거의 10,000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다. 17세기에 제작된 에메랄드와 "바카라 수정"(Baccarat crystal)으로 제작된 불상도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입장하려면 관람객들은 어깨와 다리가 드러나지 않는 복장을 착용해야만 하고, 카메라도 소지할 수 없다. 입장료를 내야만 하며, 만일 적절한 복장을 입지 않았을 경우엔 입구에서 사롱이나 커다란 티셔츠를 대여할 수 있다. "왕궁정원"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문을 열지 않는다.
왕궁 근처에는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도 있다. 이곳은 앙코르 시대 전성기의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중앙 정원에 들어서면 자야와르만 7세(Jayavarman VII: 1181~1218 재위)의 유명한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왕실이 후원하는 사찰인 "왓 보텀 와더이"(Wat Botum Vaddey)는 약 3 km 떨어진 곳에 있다.
관광객들은 저녘 무렵에 "메콩 크루즈"(Mekong Cruises: 유람선)를 즐길 수도 있고, 시골생활의 정취를 느끼려고 한다면 전통 테마공원인 "메콩 아일랜드"(Mekong Island)를 방문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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