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정보는 '크메르의 세계'가 기획한 <21세기 대중음악 사전>을 구성하는 항목으로서,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해당 항목을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후 동영상 등을 추가하여 편집한 것이다. 전편을 먼저 읽어보려면 여기(1편, 2편, 3편, 4편, 5편)를 클릭하라. |
[개론] 살사 음악 (6) - 역사 ㊦
(사진) 댄스 스포츠 '살사' 경연에 출전한 선수들.
6.6. 아프리카 살사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20세기 중엽부터 쿠바 음악이 인기를 얻었다. 아프리카인들에게 '클라베'(clave) 리듬에 토대를 둔 쿠바 대중음악은 친숙하면서도 이국적이었다.(주103) <아프리카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of Africa)의 제1권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1940년대부터 콩고 지역(Congo region)에선 '셉테토 아바네로'(Septeto Habanero: 아바나 7중주단, 현재는 6중주단인 '섹스떼또 아바네로'[Sexteto Habanero])나 '트리오 마타모로스'(Trio Matamoros) 같은 아프로 큐반(Afro-Cuban: 아프리카계 쿠바인) 그룹들이 광범위한 인기를 얻었다. 그것은 레오폴드빌(Léopoldville: 현재의 킨샤샤[Kinshasa])에 본사를 둔 강력한 라디오 방송국 '벨기에 콩고 라디오'(Radio Congo Belge)를 통해 방송된 결과였다. 이런 현상이 음악 클럽과 레코딩 스튜디오들로 전이되고, 쿠바 밴드들이 레오폴드빌에서 콘서트를 하면서, 1940년대와 1950년대 이 지역의 쿠바 음악 트렌드에 박차를 가했다."(주104)
콩고 밴드들은 쿠바 곡들을 커버하면서 스페인어 가사를 소리나는대로 따라불렀다(콩고지역 공용어는 프랑스어). 얼마 안 있어 그들은 쿠바적 느낌의 독자적인 음악들을 작곡했고, 노랫말은 프랑스어나 서-콩고 지역의 혼성 공용어(lingua franca: 특정 지역에서 상업적 공용어로 사용되는 다언어의 혼성어)인 링갈라어(Lingala)를 사용했다. 이 새로운 음악은 원래 [쿠바의] '손'(son) 음악에 기반을 한 것이었지만, 콩고인들은 이 음악을 [쿠바의 또 다른 음악장르인] "룸바"(rumba)라고 불렀다. 아프리카인들은 '와헤이요'(guajeo)에 일렉트릭 기타(electric guitar)를 사용하면서 지역적 취향에 맞는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음악은 지역적 감수성을 사로잡았고, 점차 콩고 지역에서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돼나갔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수쿠'(soukous: 수쿠스) 등 각기 구분되는 몇몇 지역적 장르들로 발전했다.(주105)
쿠바 대중음악은 현재의 여러 아프리카 대중음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영국의 민족음악학자] 존 스톰 로버츠(John Storm Roberts: 1936~2009)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쿠바와의 관련성이 깊었지만, 점차 뉴욕 '살사'도 영향력을 높여가면서 중요하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음악들은 이전의 모방이나 소멸된 유행과는 달리 보다 심층적인 영향을 주었다. 쿠바적 관련성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어 최소 20년간 지속됐지만, 점차 [토착 음악에] 흡수돼서 재-아프리카화됐다(re-Africanized)."(주106)
아프리카인들이 아프로-큐반 리듬 패턴을 재작업(re-working)하면서, 이제 이 리듬은 [아프리카를 떠나가서 발전한 후 고향으로 복귀함으로써] 완전한 한 주기를 돌게 됐다.
화성적 패턴의 재작업은 인식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주었다. 쿠바 음악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코드진행인 1도-4도-5도-4도(I IV V IV) 진행의 대중음악을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역시 쿠바 음악의 덕분이다. 이러한 코드 진행은 서양 음악 이론의 기본적 교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음악 민족학자] 게르하르트 쿠빅(Gerhard Kubik: 1934년생)이 지적한 바대로, 아프리카 대중음악의 공연자들은 이러한 코드 진행을 반드시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만은 아니다. 쿠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C-F-G-F(I-IV-V-IV) 형식의 코드 진행은 콩고/자이레(Zaire: 현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대중음악에서 두드러지는데, 이것을 단순히 으뜸화음(I)-버금딸림화음(IV)-딸림화음(V)을 거쳐 버금떨림화음(IV)(종결 화음)으로 되돌아가는 진행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지역] 공연자들의 감각으로는 그 모든 코드들이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고, 서양음악에서와 같이 [화음 간] 위계질서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주107)
쿠바적 토대를 지닌 음악이 아프리카를 강타한 사건 중 최대 사건은 '살사' 형식이었다. 1974년, '파니아 올스타즈'(Fania All-Stars)는 자이레의 수도 킨샤사에 위치한 8만석 규모의 경기장 '스타두 20 마이'(Stade du 20 Mai)에서 공연했다. 이 공연은 촬영돼 <라이브 인 아프리카>(Live In Africa)라는 제목의 영화로 개봉됐는데, 영국에선 <살사 매드니스>(Salsa Madness)란 제목이 사용됐다. 이 뮤직 페스티벌은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1942~2016)와 조지 포먼(George Foreman: 1949년생)의 복싱 헤비급 타이틀전인 <정글의 혈투>(The Rumble in the Jungle)라는 세기의 대결 이벤트와 동반해서 개최된 행사였다.
(동영상) 다큐멘터리 영화 <라이브 인 아프리카>.
이 무렵 자이레에는 자국의 토착 장르들이 잘 정착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사'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서 인기를 얻었는데, 세네감비아 연방(Senegambia Confederation: 현재의 세네갈+감비아)과 말리(Mali)에서 특히 그러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세네갈(Senegal)의 유흥가에서 쿠바 음악은 인기가 높았다.(주108) 세네갈 밴드 '오케스트라 바오밥'(Orchestra Baobab)은 콩가(congas)와 팀발레(timbales: 팀발레스)를 사용하는 표준적인 '살사' 스타일을 연주했지만, 월로프족(Wolof people)과 만딩카족(Mandinka)의 전통악기를 사용하고 노랫말에도 방언을 구사했다.
(동영상) '오케스트라 바오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후 1987년 해산했다. 하지만 2000년에 재결합한 후 현재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한다. 이들은 '살사' 외에도 다양한 아프로-큐반 음악을 연주한다.
라이즈 왁서(Lise Wax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프리카 살사는 아프리카 땅에 '살사'의 귀환을 지향한 것이 그다지 아니었다(Steward 1999: p.157). 오히려 소위 '제3세계'라 불리는 양 지역 사이에서 발생한 문화적 도용의 복잡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주109)
1990년대 중반부터 아프리카 아티스트들은 초대형 음악 프로젝트 '아프리칸도'(Africando)를 통해 매우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아프리카와 뉴욕의 뮤지션들이 함께 참가했는데, 여기에는 밤비노 디아바테(Bambino Diabate), 리카르도 렘보(Ricardo Lemvo: 1957년생), 이스마엘 로(Ismael Lo: 1956년생), 살리프 케이타(Salif Keita: 1949년생) 등 선도적인 흑인 가수들이 합류했다. 아프리카 가수들이 '살사'적 분위기의 곡을 레코딩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흔한 일인데, 지역적 특성을 가미하곤 한다.
주103: 나이지리아(Nigeria) 뮤지션 세군 버크너(Segun Bucknor: 1946~2017)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 음악과 우리(=아프리카)의 음악은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 / Collins 1992 p. 62에 인용된 내용.
주104: The Encyclopedia of Africa v. 1. 2010 p. 407.
주105: Roberts, John Storm. Afro-Cuban Comes Home: The Birth and Growth of Congo Music. Original Music cassette tape (1986).
주106: Roberts 1986. 20: 50. Afro-Cuban Comes Home: The Birth and Growth of Congo Music.
주107: Kubik 1999 p. 105.
주108: Stapleton 1990 116-117.
주109: Waxer, Lise 2002. Situating Salsa: Global Markets and Local Meanings in Latin Popular Music. Routledge. p. 12.
6.7. 최근의 상황 (1990년대~현재)
프로듀서 겸 피아니스트 세르지오 조르제(Sergio George: 1961년생)는 1990년대에 '살사'의 상업적 성공을 부활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는 티토 니에베스(Tito Nieves: 1958년생), 라 인디아(La India: 1969년생),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1968년생) 같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계통 가수들과 작업하면서, 동시대의 '팝'(pop) 스타일을 '살사'와 접목시켰다. 또한 조르제는 일본의 중견 '살사' 밴드 '오르퀘스타 데 라 루스'(Orquesta de la Luz)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브렌다 K. 스타(Brenda K. Starr: 1966년생), [4인조 그룹] '손 바이 포'(Son By Four), 빅터 마누엘(Víctor Manuelle, 빅또 마누에예: 1968년생), 그리고 쿠바계 미국인 여가수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 1957년생) 등은 라틴 문화의 영향이 강하지만 영어 가사로만 된 히트곡들을 불러 앵글로 아메리카(Anglo-America: 영어권 아메리카)의 팝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주110)
(동영상) 브렌다 K 스타, 티토 니에베스, 빅터 마누엘이 함께 부른 <뽀 에세 옴브레>(Por Ese Hombre: 그 남자를 위해)(2002년). 이 곡은 원래 아르헨티나(Argentina)의 남매 듀오 '핌피넬라'(Pimpinela)가 1993년에 발표한 히트곡인데, 동영상은 북미권 살사 스타 3인이 2002년 리메이크한 것이다. <뽀 에세 옴브레>는 라틴 문화권에서 광범위한 사랑을 받는 곡으로서, 2017년에도 쿠바의 신세대 '레게톤'(reggaeton) 그룹 '로스 꽛'(Los 4)이 페루(Peru)의 연주 그룹 '로스 바라사'(Los Barraza)와 함께 새로운 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게시물 하단 동영상 참조).
(동영상) 글로리아 에스테판과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Miami Sound Machine)의 1985년 히트곡 <콩가>(Conga).
이러한 국제적 히트곡들에서는 작곡이나 편곡에서 '클라베' 리듬 형식이 주요한 고려 대상이 아닌 경우가 자주 있었다. 세르지오 조르제는 '클라베'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관해 솔직하게 밝히면서 별다른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았다.
"'클라베'를 고려하긴 하지만, 그것이 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내 머릿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장성이다. 그 곡이 히트한다면, 그게 바로 중요하다. 내가 뮤지션들을 감동시키길 멈추고 음악을 듣는 거리의 사람들과 교감하는 지점, 바로 그곳에서부터 나는 히트곡을 작곡하지 시작했다. 일부 곡들, 특히 미국에서 탄생한 영어 곡들은 가끔씩 '클라베' 형식 내에 꿰맞추기가 불가능하다."(주111)
그러나 크리스토퍼 워시본(Christopher Washburne)이 지적한 바대로, '클라베' 인식의 결여가 언제나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마크 앤소니는 조르제의 혁신주의적 접근방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앤소니는 '라틴 음악'에 관해선 초심자이기 때문에, 그 음악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형성되는 지에 관한 지식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밴드의 러드 싱어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1994년쯤 그런 점이 노출된 적이 있는데, 당시는 그가 '살사' 장르에서의 경력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피아노 솔로가 연주될 때, 그가 팀발레 쪽으로 다가가더니 스틱을 집어들고 밴드에 맞춰 '클라베 막대기'(악기)를 연주하려 했다. 그러자 그가 '클라베' 리듬의 어느 곳에 맞춰 그 악기를 연주해야 되는지를 모른다는 게 분명히 드러났다. 그 얼마 후,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후안(San Juan)에서 라디오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의 상업적 성공이야말로 '라틴 음악'에서 '클라베' 형식에 관해 반드시 알 필요는 없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 발언은 푸에르토리코 및 뉴욕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의 반응이 나쁘게 나오자, 안소니는 이후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하는 일을 삼가했다. 그리고 개인 레슨을 받아서 익숙해지기 전까지 무대에서 클라베(악기) 연주를 시도하지 않았다."(주112)
(동영상) 마크 앤소니는 '살사' 및 '라틴 발라드' 장르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가수 중 한명이다. 1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그래미상'도 두 번이나 수상했다. 2009년 백악관 공연.
1990년대 콜롬비아(Colombia)의 음악 씬에서 '살사'는 주요한 한 부분이었다. '소노라 까루셀레스'(Sonora Carruseles) 같은 인기 있는 밴드들이 출현했고, 가수 까를로스 비베스(Carlos Vives: 1961년생)는 자국의 '바예나또'(vallenato) 장르 및 '락'(rock) 음악을 '살사'와 접목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비베스가 '바예나또-살사'(vallenato-salsa)를 대중화시키자, 글로리아 에스테판 같은 주류 팝스타들도 아코디언(accordion)을 중심으로 하는 '바예나또' 스타일에 관심을 가졌다. 콜롬비아의 도시 칼리(Cali, 깔리)는 '살사의 수도'로 불리는데, '오르퀘스타 와야깐'(Orquesta Guayacán)과 '그루뽀 니체'(Grupo Niche) 같은 그룹들과 키케 산딴데르(Kike Santander: 1960년생), '마르꼬 바리엔또스 밴드'(Marco Barrientos Band)의 프로듀서 훌리앙 꼬야소스(Julian Collazos) 같은 작곡가들이 칼리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다.(주113) 베네수엘라(Venezuela) 출신의 밴드 '카비재즈'(Cabijazz)는 강력한 '재즈'적 토대 위에 '팀바'(timba: 띰바)와 유사한 '살사'를 독특하게 접목시켰다. '살사' 장르에서 가장 최근에서 이뤄진 혁신들로는 '살사 고르다'(salsa gorda: =살사 두라)와 더불어 '라틴 하우스'(Latin house), '살사-메렝게'(salsa-merengue), '살사톤'(salsaton: 살사+레게톤) 같은 혼성 장르들이 있다.
(동영상) 4인조 혼성 그룹 '로스 꽛'(Los 4)은 '쿠바 레게톤'(일명: 큐바톤[Cubaton]) 장르 아티스트로서, 2017년 연주 그룹 '로스 바라사'(Los Barraza)와 함께 아르헨티나 듀엣 '핌피넬라'의 1993년작 <뽀 에세 옴브레>를 리메이크했다.
주110: Steward 2000, pp. 488–499.
주111: Washburne 2008 p. 191에 인용된 Sergio George의 말.
주112: Washburne 2008 p. 192.
주113: Steward 2000, p. 504.
참조용 항목 링크
- [목록 링크] '살사' 및 '손' 장르 보컬리스트(가수) 명단 (List of salsa and son vocalists)
- [개요] '라틴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살사 앨범 상 (Latin Grammy Award for Best Salsa Album)
- 투바도우 (Twoubadou) -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아이티(Haiti)의 음악 장르.
* 시리즈물 바로가기 :
- "[개론] 살사 음악 (1) - 뉴욕에서 탄생한 범-라틴 문화권의 음악"
- "[개론] 살사 음악 (4) - 역사 ㊤ (1940~1970년대)"
- "[개론] 살사 음악 (5) - 역사 ㊥ (1980년대: 쿠바음악과의 이별과 재회)"
- "[개론] 살사 음악 (6) - 역사 ㊦ (아프리카 살사, 최근의 동향)"
- "[개론] '클라베' 패턴 : 아프로-큐반 음악의 핵심 리듬 개념 (1)"
- "[개론] '클라베' 패턴 : 아프로-큐반 음악의 핵심 리듬 개념 (2)"
- "[개론] '클라베' 패턴 : 아프로-큐반 음악의 핵심 리듬 개념 (3)"
- "[개론] '클라베' 패턴 : 아프로-큐반 음악의 핵심 리듬 개념 (4)"
* 상위화면 바로가기 : "[목록] 21세기 대중음악 사전 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