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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주년 기념 "크메르의 세계" 다문화 기행
ROCK 그리고 엔카 : 恨의 東과 西
보통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한"(恨)이라는 정서입니다. 단순히 "애절하다"거나 "슬프다"라는 표현만으론 무언가 부족한, 그런 정서 깊숙히 자리한 것입니다. 심지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이 감정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일부를 한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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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국 문화) [恨]
억울함·원통함·원망·뉘우침 등의 감정과 관련해 맺힌 마음.
한은 가장 한국적인 슬픔의 정서이다. 다른 민족에는 원(怨)의 정서는 있어도 한과 부합하는 정서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한국의 한과 다른 민족의 원의 차이는 그것을 어떻게 푸느냐는 방법에 있다. 즉 원은 그 가해자에게 같거나 비슷한 복수를 함으로써 풀어지는 데 반해, 한은 여러 가지 이유로 복수를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으며, 다른 방법으로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를 푼다. 한의 피해자가 복수를 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정치적·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며,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은 그가 속한 문화가 잔인한 복수의 정서를 비교적 적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하 생략) |
이렇게 "한"이라는 정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적 정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보여드리고자 하는 것은, "한"이란 정서도 많은 민족들에게서 나타나는 인류의 보편적 감정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먼저 보여드릴 동영상은 일본 엔카계의 중견가수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 1958년 1월 30일생)의 노래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할머니를 따라, 이미 우리 카페에서도 소개해드린 바 있는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 1937년생)의 공연을 보러다니다,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이시카와 사유리는 특히 애절하고도 한스런 곡을 많이 히트시킨 가수입니다.
1977년 발표하여 최초로 그녀에게 명성을 안겨줬던 "츠가루해협의 겨울풍경"(津軽 海峡 ・冬景色: 스가루 가이쿄 후유 게시키)도 애절한 곡이었습니다. 그녀는 기모노가 잘 어울리는 일본적 미인 중 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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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이시카와 사유리의 "츠가루해협의 겨울풍경". |
1986년도에 발표한 "아마기 코에"(天城越え: 아마기 고개)는 그녀를 상징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이 곡은 "[당신을] 다른 이에게 뻿길 것이라면, 차라리 당신을 [제가] 죽여도 좋겠습니까"라는 유명한 가사를 등장시키며 일본적 애절함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그에 걸맞는 열창을 해줍니다.
"아마기"(天城)는 일본 이즈(伊豆)에 있는 험준하고 아름다운 산림으로, 1973에는 당시 일왕이었던 쇼와천황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쇼와산림"으로 명명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대한 여러 감상들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 康成)나, 소설가 마츠모토 세이쪼(松本淸張)의 작품들에도 등장합니다. 이시카와 사유리의 "아마기코에"도 그러한 정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일본어 "코에"(越え)는 "넘어가다"의 명사형인데(넘기), 여기서는 "아마기재" 혹은 "아마기 고개"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아마도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아리랑고개"와 유사한 관념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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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아마기 코에"는 "일본 엔카의 입문곡"이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곡으로, 엔카에 관심없는 젊은이들조차 이 곡만큼은 아는 사람들이 많다고 할 정도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 |
이렇게 애절한 일본 엔카를 들으면서, 아마도 이 글의 제목에 "ROCK"이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는 데서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20세기 세계대중음악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락뮤직은 매우 특이한 속성 하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걸출한 기타리스트들이 연속으로 등장하면서, 개인의 역량이 장르 전체의 발전을 이끌어오는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러한 기타의 영웅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솔로 연주에 어떤 열정과 한을 담아 표현했습니다. 그리하여 락뮤직은 동세대의 힙합이나 댄스음악과는 다른 차원에서 애절한 슬픈 정열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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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게리 무어(Gary Moore)는 힘차면서도 애절한 선율을 동시에 가진 대표적 락 기타리스트이다. 1980년대에 발표한 그의 연주곡 "고독한 사람"(The Loner)은 락뮤직이 가진 비극적 정서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잉위 맘스틴(Yngwie Malmsteen)이 바이얼린을 능가하는 속주와 기교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 후에도, 걸출한 기타리스트들은 모두 그러한 비장함과 애절한 감성을 여전히 갖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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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제이슨 벡커(Jason Becker: 1969년생)는 1987년 Cacophony라는 기타 듀엣을 통해 데뷔한 네오-클래시칼 락의 대표적 천재 기타리스트 중 한명이다. 그는 몇년간 파킨스씨병을 앓다가 1996년 최종적으로 전신마비에 이른 불운의 천재이다. 현재는 자신의 부친이 고안한 컴퓨터시스템을 통해, 눈동자를 이용해 작곡활동을 하고 있다. 이 곡 "altitude"(高度)는 자신의 솔로앨범이자 전체로는 4번째 앨범에 수록된 것으로,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듯, 처절하고도 애절한 선율로 시작한다. 필자는 이 곡을 20세기 락 뮤직의 역사에서 가장 슬픈 연주곡 중 하나로 생각한다. |

20세기 최고의 파워풀한 밴드로는 역시 메탈리카(Metallica)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만, 그와 동급의 하드한 밴드 하나를 더 꼽으라면 메가데스(Megadeth)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메가데스"의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만(Marty Friedman: 1962년생)은 원래 위에서 감상했던 제이슨 벡커와 함께 기타듀엣 "캐코포니"(Cacophony)로 데뷔했다가, 이후 메가데스로 합류했습니다.
그는 이 헤비한 밴드의 활동과 병행하며, 자신의 솔로음반들도 많이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밴드에서와는 전혀 다른 감성을 표현하여, 서정적이고 동양적이며 동시에 비애감을 가진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래 전 NHK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의 배경음악을 담당했던 기타로(喜多郎: 1953년생) 선생이 프로듀서로 참가한 앨범 "신스"(Scenes)는 티벳과 아시아를 주제로 한 여러 작품들을 수록했고, 그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정녕 이 기타리스트가 메트로놈 200 스피드를 넘나드는 스래시메탈 밴드의 기타리스트와 동일인인가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사진) 마티 프리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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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마티 프리드만의 동양을 동경하는 정서가 잘 나타난 곡 "영원의 계곡"(Valley of Eternity: 첫번째 곡). 어코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넘나들며 동양의 서정성을 묘사했다. 만족할만한 음향의 동영상이 별로 없어서, 스튜디오 버전으로 준비했다. |
이러한 마티 프리드만은 동양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2000년대 중반부터는 아예 일본의 신주쿠를 거주지로 삼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창한 일본어까지 구사하며, 일본 음악신에서도 맹렬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가 얼마나 일본 생활을 즐겁게 하는지, 그의 친구이자 또 한명의 슈퍼 기타리스트인 <미스터 빅>(Mr. Big)의 폴 길버트까지 도쿄로 데리고 와서 같이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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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과거 영웅주의적이고 근엄한 표정의 락커들이 버라이어티 쇼에 등장해서 망가진 모습을 보여준다. 락 뮤직의 버라이어티화 치고는 상당히 재미있다. 3명의 기타리스트가 등장하는 두번째 코너의 게임은 한명이 밴드 이름을 말하면서 2번째 사람을 지명하면, 2번째 사람이 그 밴드의 기타리스트 이름을 답하면서 3번째 사람을 지목한다. 그러면 3번째 사람은 해당 기타리스트의 곡을 연주해야만 하는 게임이다. 3번째 코너에서는 두 기타리스트가 속했던 밴드들인 <미스터 빅>과 <메가데스>의 곡을 함께 연주한다. |
마티 프리드만 역시 일본 엔카가 가진 애절성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던듯 합니다. 2008년에 마티는 이시카와 사유리와 공동으로 바로 "아마기코에"를 연주했습니다. 특히 이 버전은 메이저리그의 스타 스즈키 이치로 선수가 안타를 치거나 하면 흘러나오는 "AT-BAT MUSIC of 2008" 중 1곡으로도 사용됐고, 스즈키 선수를 위해 연주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월드 톱 클래스 락커와 일본엔카의 중견가수, 즉 마티 프리드만과 이시카와 사유리의 무대를 보내드리면서 오늘 순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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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마티 프리드먼이 헤비메탈 연주곡으로 편곡한 "아마기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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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城越え
作曲 弦 哲也
作詞 吉岡 治
隠しきれない 移り香が いつしかあなたに 浸みついた 誰かに盗(ト)られる くらいなら あなたを殺していいですか
寝乱れて 隠れ宿 九十九(ツヅラ)折り 浄蓮(ジョウレン)の滝 舞い上がり 揺れ堕ちる肩のむこうに あなた・・・山が燃える
何があっても もういいの くらくら燃える 火をくぐり あなたと越えたい 天城越え
口を開けば 別れると 刺さったまんまの 割れ硝子 ふたりで居たって 寒いけど 嘘でも抱かれりゃ あたたかい
わさび沢 隠れ径(ミチ) 小夜時雨(サヨシグレ) 寒天橋 恨んでも 恨んでも 躯(カラダ)うらはら あなた・・・山が燃える
戻れなくても もういいの くらくら燃える 地を這って あなたと越えたい 天城越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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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크메르의 세계
아마기코에
作曲 弦 哲也
作詞 吉岡 治
숨기려 해도 묻어온 향취, 어느새 당신에게 젖어들었어요. 누군가에게 빼앗길 바라면 차라리 당신을 죽여도 좋은지요.
어렴풋이 숨어있는 거처 츠즈리오리(아흔아홉번 굽이치는) 조랜 폭포
춤추듯 날아올라 요동쳐 떨어지는 저편으로
당신... 산이 타올라요.
무엇이라도 이젠 그만이예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뚫고서 당신과 함께 넘고싶은 아마기코에.
입만 열면 헤어진다고
찔린 채로 깨어진 유리. 함께 있다고는 하지만 이 몸은 추운 것을.. 거짓으로라도 안길 수만 있다면 따뜻할 것을.
와사비자케(와사비 연못)의 숨겨진 길.
小夜時雨 寒天橋 원망하고 원망해봐도 이 몸은 반대로
당신... 산이 타올라요
돌아오지 않아도 이젠 괜찮아요
활활 타오르는 땅을 기어서
당신과 함께 넘고싶은 아마기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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