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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詩] - <육법전서와 혁명> (1960)

작성자울트라-노마드|작성시간16.11.16|조회수115 목록 댓글 0


육법전서와 혁명


(김수영 : 1921~1968)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 뿐이다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 뿐이다


최소한도로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혁명정부가 구 육법전서를 떠나서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한

혁명을⎯⎯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 뿐이다

그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그대들인데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보라 금값이 갑자기 팔천구백환이다

달걀값은 여전히 영하 28환인데

 

이래도

그대들은 유구한 공서양속(公序良俗) 정신으로

위정자가 다 잘해줄 줄 알고만 있다


* 주: 공서양속(公序良俗) - [법률] 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


순진한 학생들

점잖은 학자님들

체면을 세우는 문인들

너무나 투쟁적인 신문들의 보좌를 받고


아아 새까맣게 손때묻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

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

4.26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차라리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


허기야

혁명이란 단자는 학생들의 선언문하고

신문하고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

쓰는 말밖에는 아니되지만

그보다도 창자가 더 메마른 저들은

더이상 속이지 말아라

혁명의 육법전서는「혁명」밖에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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