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0-12-3
음모론 연구사전 편찬을 시작하면서
21세기의 세계는 전세계적 관점에서 문제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특정하게 제한된 소규모 지역조차 이해하기 곤란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금의 제도권 사회과학과 학문공동체가 세계적 현상들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거대담론'(grand theory)의 전통적 권위를 빠르게 상실해가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권위의 몰락은, 그 공백의 자리에 각종 음모론(conspiracy theory)이 들어설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동남아시아 지역학을 연구하는 학술공동체 '크메르의 세계'는 이러한 음모론에 관해 일정 수준의 이해를 확보하고자, 음모론에 관한 기초적 학술연구를 진행키로 하였다. 또한 그 방법은 기존의 한국 학계에서 이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학문적 담론이 거의 부재한 상태임을 감안하여, <음모론 연구사전>의 여러 항목을 순차적인 번역 출간을 통해 진행하게 될 것이다.
'음모론'에 관한 논의는 그 특성 상 고도의 정보분석 및 가공 활동'에 대한'(on, about, of) 반성과 평가라는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이에 대한 논의는 물론이고, 그에 관한 '언어적 번역활동'(translation 혹은 translating) 역시 가능한 한 오해와 왜곡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장 기본적 의사소통 수단인 언어사용 단계에서부터, 매우 정교한 용어선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동시에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독자들 역시 매우 꼼꼼한 분석적 읽기를 행할 각오를 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러한 태도가 결여된 채 이러한 주제를 이해해보려 한다면, 기존에 갖고 있던 상식적 수준의 이해나 혹은 기존의 오해보다도 더욱 심각한 차원에서 그릇된 이해가 발생할 우려조차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본 카페의 '음모론' 연구활동의 첫번째 과제가 될 번역 단계에서, 역자는 '철학적 분석'(philosophical analysis) 혹은 '분석철학'(analytical philosophy)으로 불리는 분야에서 '언어적 반성'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학문적 방법론을 고려하여, 용어의 취사선택 단계에서 보다 확장된 분석적 해석의 방법을 채택했다. 물론 그러한 경우라 할지라도, 해당 원어를 모두 괄호로 처리하여 독자들 역시 영문 원서에 표기된 원래의 표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본 연구에 있어서 사용된 연구방법론의 이 기초적 단계는,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단계에서 발생가능한 어떠한 신비주의적 요소도 배제해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본 역자는 21세기 문명이 초래한 불확실성이 그 강도 면에서 너무도 강력하여,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과학적 혹은 경험적 차원에 다소간이라도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신비주의적(mysticism) 경향이 --- 나름의 논리적 과정을 거치거나, 아니면 다소간 논리적 도약을 하면서, 부분적으로는 합리성 및 구체성과 결합하는 형태로 --- 급속도로 세를 얻어간다는 징후를 느끼게 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한 '메타차원의 성찰'(meta-level reflection)은 제도권이나 비제도권을 막론하고 거의 전무한 상태이며, 다만 직접적인 '대화차원'(dialogue-level)에서 음모론 주창자와 그에 대한 비판자로 나뉘어 직접 대론하는 이론적 전투양상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지극히도 불행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 본 카페에서 진행할 음모론에 관한 연구활동은 --- 특히 세계체제론과 관련된 --- 여러 음모론적 의제들을 담담하게 이성주의적(논리주의적) 관점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즉 어떤 특정한 음모론에 관해 그 주장의 사실여부를 검토하는 일이 아니라, 진위(참, 거짓)의 문제에 대해서는 판단을 중지한 상태에서, 그러한 주장들이 사용하는 설명과정의 논리적 검토와 그 출현과정의 사회학적 함의들에 더욱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가장 우선 채택할 방법론적 명제는 단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어떠한 주장을 해도 좋다. 그러나 그 주장을 하는 이는, 자신의 주장을 ---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귀결과 과정을 통해 --- 스스로 근거지우라!"라는 언명이다. 아마도 그러한 논리적 근거확보 과정은 단순한 '설득'(persuasion)이나 '공감의 형성'(sympathy)과는 분명하게 배치되는 과정이 돼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연구방법은 '설교성 동어반복'이나 '선동적 반복주입'이 아니라(즉, 세뇌), 이성에 토대를 둔 '근거의 제시'나 '모순의 암시'라는 순차적 방식으로 전개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데카르트(Rene Descartes)가 이성에 대해 원초적으로 제기했던 의문인, --- 단순한 집단적 합의나 집단적 공감이 아니라 --- 이성을 가진 한 인간 존재 내부에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추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바로 그러한 "이성에 근거한 필연적 근거확보 활동이나 노력"을 지칭할 때만, --- 그리고 오직 그러한 경우에 한해서만 --- '학문활동'(scholarly activity 혹은 academism, , 學問)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단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이성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세상이 가진 또 하나의 신비로운 측면일 것이다. 인간사에 대한 참된 이해는 이성적 진리판별을 넘어서는 보다 따뜻한 사랑과 이해의 차원을 필요로 한다. 인생사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며,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러한 계기를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 사람이 한 세상을 왔다가, 살고, 떠나가는 길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도 없을듯하다. 또한 인생의 당사자로서 한 생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 자신은 참으로 가혹한 실존적 현실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만 되는 것이 아니며, 따뜻한 가슴이 동시에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타인의 과오나 무능에 대해 약간이라도 관용적 시각을 갖지 못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빈번히 발생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교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사랑과 자비라 할지라도, 그것은 반드시 이성적으로 고찰된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기반으로 한 상태에서만, 궁극적으로 올바른 행위규준 역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은 그러한 점에서 상호보완적이다. 이러한 요소가 망각될 경우, 과도한 분석과 지적 유희의 강박관념이나 오도가 발생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음모론'이란 주제는 사회와 인간집단에 관한 사회과학적 의제의 한 종류이다. 따라서 음모론에 대한 우리의 연구 역시 최종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음모론의 총체적 연구는 단순히 역사나 혹은 과학적 사실 정보들의 검토에만 있지 않고, 사회학과 심리학을 필두로 문학, 종교학, 철학 등 모든 분야가 중첩적으로 개입되는 거대한 학문분과로 도약한다.
우리는"음모론 연구"(음모론학[學]: The studies of the conspiracy theories)가 그 자체로 하나의 종합성을 지닌 복합학문 분과임을 인식한다. '음모론 연구'(음모론학, 음모론에 대한 학문)라는 메타 학문은 21세기에 새롭게 출현할 실제의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21세기 학문체계에서 점점 더 모든 학문의 구심점으로 변해가는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란 복합학문과도 대비될 수 있는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인간과 동일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의 단일한 '인공지능'(AI)의 개발을 궁극적 과제로 하는 인지과학이 미시적으로 개별자의 차원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음모론학은 지능의 집단적 양상을 다루는 것으로 보다 거시적인 영역으로 대조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가 최초로 사용할 방법은 '참다운 이해'를 위해, 먼저 이성을 통해 '참다운 진실'을 알아가는 단계부터 시작하자는 지극히 단순한 전제에 기반한 것이다.
2010년 12월 3일
'크메르의 세계' 운영자 울트라-노마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