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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왕실과 왕족

[(번역)][르뽀] 태국 왕실의 자산운용 방식 (상)

작성자울트라-노마드|작성시간10.10.25|조회수1,277 목록 댓글 22

 

 

  * 본 르뽀를 읽기에 앞서서 다음의 게시물을 열람해두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바로가기) "[기구] 태국 왕실재산 관리국 (CPB)"

  

 

 

  (보도) Asia Sentinel 2007-3-1  (번역) 크메르의 세계

 

 

 

 

[르뽀] 태국 왕실의 자산운용 방식 (상)

 

Thailand's Royal Wealth : Part 1

 

 

기사작성 : 현지 특파원

 

 

 

 

방콕의 중심가에 거주하는 한 남성의 이름을 솜차이(Somchai)라 부르기로 하자.

 

현재 60세의 솜차이 씨는 현재 거주하는 집을 거의 30년 전에 스스로 설계해서 건축했다. 그는 해당 대지를 소유하지는 못했고, 토지 소유주에게 단돈 400바트(11달러)를 내고 임차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다른 곳에 살고싶어 한다. 그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본지에 답하기를, "기한이 끝나면 이 땅에다 다시 집을 짓고 싶지 않다. 불안하다. 언제든 쫒겨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자발적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다.

 

솜차이 씨가 사는 집의 땅주인은 바로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라마 9세) 태국 국왕이다. 실제로 방콕의 알짜배기 부동산 대부분은 태국 왕실소유로, 국왕의 개인적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왕실재산 관리국"(Crown Property Bureau: CBP)을 통해 관리된다.

 

솜차이 씨는 수십 년 전에 CPB 관리에게 뇌물을 먹이고 집을 지었다. 솜차이 씨가 만일 주택을 팔게 되면 판매대금의 75%는 CPB로 귀속되며, 저축도 별로 없이 은퇴한 그가 퇴거를 한다고 해도 마땅히 더 주어지는 돈도 없게 된다. 그는 "이 동네 사람들 모두가 쫒겨날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너무 은밀한 이야기라 말을 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태국의 CPB에 관한 정보들이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태국에서 군주제와 관련된 두려움에 대해 설명해야만 하는 먼길을 돌아가야만 한다. 푸미폰 국왕의 황금빛 장삼은 CPB에 대한 공개적 비판에 대한 보호막이 되고 있고, 이러한 현대적 형태의 봉건주의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조차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CPB는 그 어떤 기관보다도 방콕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했고, 최근 수년 간에는 그 속도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1997년의 "아시아금융위기"(Asian Economic Crisis) 때 발생한 막대한 손실로부터 회생한 CPB는, 방콕 중심지의 토지들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공격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그곳에서  몇 대를 이어 살아온 가난한 소상인들이나 임차인들이 밀려나기도 했다.

 

대형 쇼핑몰과 호텔들, 그리고 사무용 빌딩들이 끝없이 건설되는 와중에도 CPB의 활동에 관한 공개적 비판이나 토론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관료들은 입을 열 때마다 푸미폰 국왕이 주창했다는 "충족경제론"(sufficiency economy)을 찬양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푸미폰 국왕의 "충족경제론"은 겸허함과 분수에 만족함, 그리고 적응함을 주창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경제 불황에 최고도로 적응하는 법을 찾아낸 CPB는, 생득적 재산인 부동산을 이용하여 막대한 현금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토지 소유권의 행사

 

"충족경제론"에 관한 담론은 방콕의 유서깊은 "라차담는 거리"(Ratchadamnoen Road, ถนนราชดำเนิน)를 "아시아의 샹젤리제"(Champ Elysees of Asia)로 불리는 쇼핑가로 만든다는 계획으로 변모했다. "아시아의 샹젤리제"란 명칭은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당시 총리에게는 웃기는 일로 비쳐졌고, 결국 왕당파 군부 지도자들이 "2006년 쿠테타"를 일으켰을 때, 탁신이 국왕의 "충족경제론"을 확고히 파지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 CPB는 이 일대의 많은 부분을 소유하고 있었고, 2004년에 만료되는 임대차 계약 137건에 대해  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다.

 

CPB의 새로운 전략에는 주요한 지역들을 쇼핑센터와 럭셔리한 주거단지로 재개발하는 것도 포함됐다. CPB는 "센탄 빠따나"(Central Pattana) 그룹과 30년간의 리스 계약을 체결하여, 칫롬(Chidlom) 역 인근에 위치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World Trade Centre)를 호텔, 쇼핑몰, 사무용 공간이 결합한 거대한 단지인 "센탄 월 타워"(Central World Tower)로 재개발했다. 또한 싱가포르의 부동산 회사인 "캐피털랜드"(CapitaLand, 嘉德置地)와도 손을 잡고 태국 내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CPB는 "센탄 월" 외에도 "MBK 쇼핑센터"(MBK Shopping Center), "시암센터"(Siam Center), "시암파라곤"(Siam Paragon) 등 방콕 최대의 쇼핑몰 집산단지의 토지도 소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유럽 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켐핀스키 호텔 리조트"(Kempinski Hotels and Resorts)의 대지도 CPB 소유로, "시암파라곤" 옆에 새로운 럭셔리 호텔로서 들어설 것이다.

 

최근 수년 동안 CPB는 여러 전통시장들의 오랜 주민들에게 갑작스런 퇴거통보를 내보내 충격을 주었다. 이들 주민들은 과거 "국왕 폐하의 땅"에서 항시 안락함을 누리고 있었다. "차이나타운"에서도, CPB 소유의 "서이 르언릿"(Soi Luenrit, ซอยเลื่อนฤทธิ์)에서 3대째 거주하던 중국계 태국인들(화교)이 주변지역의 역사적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쇼핑몰 건설로 인해 쫒겨났다. "짜른폰"(Charoen Phon, เจริญผล)에서는, 주민들에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텟꼬 로땃"(Tesco Lotus, เทสโก้ โลตัส, 卜蜂莲花) 건설을 위해 철거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또다른 차이나타운 시장인 "껑톰"(Klong Thom, คลองถม)에서는, 개발업자가 보다 고율의 임대료를 받는 시장 리모델링 사업을 할 수 있도록, CPB가 계약해지 통보를 보냈다. 또한 짜오파야(Chao Phraya: 차오프라야) 강가에 위치한 "짜른꿍"(Charoen Krung, เจริญกรุง)의 낡은 생선시장에서는, 거래인들이 수천명의 미숙련 노동자들을 조만간 해고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CPB가 이 재래시장을 70억 바트(약 2,500억원)를 들여서 고층 호텔 및 주상복합단지로 개발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에서 역사적 사적지로 여기는 89년이나 된 스포츠 클럽인 "실롬 클럽"(Silom Club) 역시 고층 건물로 재개발될 예정이다.

 

CPB가 수립한 새로운 전략의 결과는 막대했다. 2003년도에 CPB는 40억 바트(약 1,5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 중 17억 바트는 임대료 증가에 따른 것으로, 이는 찌라유 이사랑꾼 나 아유타야(Chirayu Isarangkun na Ayutthaya) CPB 국장이 그보다 4년 전에 최초 기획했을 때 기대했던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결과였다. 2004년도의 CPB 수입은 50억 바트가 되었다. 찌라유 국장은 CPB가 1997년 금융위기 이전보다 훨씬 건전성을 갖게 됐다고 발표했다.

 

 

 

 

방콕 최고층 마천루

   

하지만 CPB의 야심이 커지면서, 더 많은 대중적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철거는 결코 쉽지 않았고, 특히 주요한 2곳에서는 더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보베 시장"(Bo Bae market, ตลาดโบ๊เบ๊)에서, 방콕광역시청은 상인들더러 떠나라고 했지만, 상인들은 도로를 차단하고 또다른 건물을 점거하기도 했다. CPB 스스로는 아무도 퇴거시키지 않았다. CPB는 다만 새로운 시장을 만들 개발업자에게 양허권만 발급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보베의 상인들에게는 삶터였던 것이다. 상인들이 퇴거를 거부하자 경찰이 동원됐고, 일부는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한편 해당 개발업자는 새로운 건물로 옮기지 않으려는 많은 이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싸움은 계속됐다. 일부 상인들은 확고하게 저항하면서,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잠재적으로 보다 큰 싸움은 "수완룸 나이트 바자"(Suan Lum Night Bazaar)에서 발생했다. 이곳에서 이주를 망설이던 상인들에게, 방콕의 놀랄만한 관광명소로 빠르게 성장 중이던 이곳을 4월까지는 비우라는 통보가 나갔다. 방콕 중심 상업지구에서 가장 대규모 필지인 이곳에서 벌어진 분쟁을 보고, 일부에서는 CPB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인내하는 지를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라고 말하기도 한다.

 

"룸피니 공원"(Lumphini Park) 옆에 위치한 이 금싸라기 땅은 1950년대에는 "왕립 태국해군"(RTN)이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을 이끌던 살릿 타나랏(Sarit Dhanarajata) 원수는 해군 장교들이 이곳을 자신에 반대하는 쿠테타 근거지로 이용하려 한다고 의심하고는, 이 땅을 "왕립 태국육군"(RTA)에 주었다. 이후 1958년에 개교한 "군사예비사관학교"(Armed Forces Academies Preparatory School)가 이곳을 사용했다.

 

1993년 CPB는 "왕립 태국군 총사령부"(RTARF HQ: 합참)에 대해, 1999년에 양허권 기한이 완료되면 교통혼잡 해소를 위해 "군사예비사관학교"를 이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6만 2,000여평에 달하는 이 토지의 이용계획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곳의 49% 면적을 소유한 CPB는, 처음에는 이곳에다 350 m 높이의 이동통신용 타워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계획은 변경되어 CPB가 대주주로 있는 "시암 상업은행"(Siam Commercial Bank: SCB) 본사를 짓기로 변경했다.

 

하지만 군부에서는 계속해서 이곳을 녹지 부족으로 시달리는 방콕을 위해 공원으로 만들자고 압박했다. 결국 CPB는 2000년도에 이곳을 "수완룸 나이트 바자"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관광객들을 위한 조악한 야시장이었고, 많은 이들이 이 계획을 비판했다. "군사예비사관학교" 동문들이 이곳에 뿌린 전단지에는 "이 쇼핑가가 눈에 거슬리며 망신살스럽다. 이러한 일은 예비 생도들과 맺은 사회적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CPB는 2002년도에 이러한 비판에 응답하면서, 그 계획이 "군사예비사관학교" 이전에 따른 비용손실을 보존하기 위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보도된 성명서에 따르면, CPB가 장기적으로는 이 토지를 "교육, 문화, 레크리에이션 용도"로 사용할 것이라 했다.

 

(사진) 찌라유 이사랑꾼 나 아유타야 CPB 국장.

 

하지만 많은 이들이 CPB가 이곳을 교육용지에서 근린 상업지구로 변경시키기 위해 야시장에 임대하길 원한다고 의심했다. 그러한 일은 2002년도에 탁신 정부가 이 땅의 용도변경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실제로 발생했다. 그리고 2004년에 이르면 이곳이 실제로 CPB의 확장계획에 있어서 중심축이 되는 곳임이 분명해졌다.

 

찌라유 국장은 마구잡이 식으로 조성된 이 시장에 1,000억 바트(약 4조원)를 투입하여 사무실과 맨션 아파트, 쇼핑가, 호텔 및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결합된 대규모 단지로 개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작년(2006) 6월, CPB는 이 사업의 개발업자로서 "센탄 빠따나"(Central Pattana Plc), "산시리"(Sansiri Plc), "TCC 랜드"(TCC Land) 사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수완룸 나이트 바자"를 운영 중이던 기업은, 한창 인기를 얻은 야시장을 유지하고 기존 상인들의 영업권을 보장하는 가운데 계약을 연장해줄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한편 "센탄 월 타워"를 운영 중이기도 한 "센탄 빠따나" 그룹은 이곳에 방콕 최고층 빌딩을 세워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꿀 것이라 발표했다. CPB는 다음달(2007년 4월) 최종 사업권자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CPB의 면책성

 

어떠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CPB를 강력하게 떠받치고 있는 버팀목은 대중적 여론이나 언론의 보도가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일부 비판적 내용이 특정한 웹사이트에 실리기도 한다. 그러나 방콕의 경제신문 편집자들은 군주제에 대한 불경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내용을 쓰는 일에 대해 그 두려움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CPB 역시 이러한 방식이 유지되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면책성은 탁신 전 총리 일가가 2006년 1월에 소유하고 있던 "친 코포레이션"(Shin Corp)을 싱가포르 국영 투자회사인 "테마섹 홀딩스"(Temasek Holdings)에 매각한 이후 가장 두드러졌다. 이 일은 탁신 총리가 조기총선 실시를 요청하여 대규모 시위에 응답하도록 만든 전환점이 되었다. 수개월에 걸친 대치국면은 결국 왕실의 지지를 받은 군부로 하여금 탁신 축출 쿠테타가 가능토록 만들어주었다.

 

대부분의 비판은 외국 기업인 "테마섹 홀딩스"가 소유권 제한을 피하면서 "친 코포레이션"을 사들일 수 있도록 한 복잡한 지배구조에 맞춰졌다. 이러한 일은 비록 상도에서 벗어난 일이긴 했지만, 탁신의 정적들이 이 문제에 매달리기 전까지 태국에서는 표준적인 경영방식에 속했다.

 

테마섹 홀딩스가 주도한 기업 콘소시움 측 협상 지명자로 나선 것은 "꿀랍 깨우"(Kularb Kaew)라는 회사였다. "꿀랍 깨우" 사의 주주 중에는 푸미폰 국왕을 보좌하는 아사 사라신(Arsa Sarasin) 궁내청 대신의 동생인 뽕 사라신(Pong Sarasin)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꿀랍 깨우" 사는 "쩨다르 홀딩스"(Cedar Holdings) 주식 일부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쩨다르 홀딩스"의 또다른 주주에는 "테마섹 홀딩스"와 CPB가 대주주인 "시암 상업은행"(SCB)도 있었다. 게다가 SCB는 탁신 일가의 "친 코퍼레이션" 매각 거래에서 자문 및 금융지원까지도 했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맞물린 이해관계들이 존재했지만, 대중적 분노는 오로지 탁신이 태국의 가치있는 자산을 외국인에게 "팔아넘겼다"는 점에만 맞춰졌다. SCB와 CPB가 이 거래에서 심지어는 명백하게 법률을 위반하면서까지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태국의 언론들은 SCB와 CPB를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이후 이 문제는 더욱 기괴한 양상으로 변했다. 쿠테타 군부가 임명한 현재의 과도정부는 태국 기업을 사들이는 데 협상 지명자를 내세우는 오랜 외국인들의 관행을 금지시킬 법안을 제출하겠다고까지 말했다. 끼릭까이 찌라팻(Krirkkrai Jirapaet) 신임 상무부장관은, 협상 지명자를 내세운 매각이 "정부의 실각에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그러한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군대가 쿠테타를 일으켜 방콕으로 탱크를 몰고와 헌정을 중단시킨 것이 전적으로 탁신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려 한 것이다.

 

CPB도 싱가포르와 오랜 유대관계를 갖고 있었다. "테마섹 홀딩스"는 탁신 일가로부터 "친 코포레이션"을 사들이기 오래 전부터 SCB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고, 찌라유 국장 역시 싱가포르의 국영 투자기관인 이 회사가 "수년 간 좋은 동반자"였다고 밝힌 바 있었다.

 

12년 동안이나 CPB가 대주주인 "시암시멘트 그룹"(Siam Cement Group: SCG) 대표를 역임한 춤폰 나 람리양(Chumpol NaLamlieng, ชุมพล ณ ลำเลียง)은 현재 "테마섹 홀딩스"가 소유하고 있는 "싱텔"(SingTel)의 회장을 맡고 있다. "싱텔" 사는 "어드밴스트 인포 서비스"(Advanced Info Service: AIS)의 주식 21%를 보유하고 있다. AIS는 원래 탁신과 "친 코포레이션"이 설립했던 회사로, 시장을 주도하는 이동통신사이다.

 

사실 이러한 일은 태국 상류층 엘리트 사회의 동료집단들 사이에서는 모두가 아는 일이기 때문에, 마하 와치라롱꼰(Maha Vajiralongkorn) 왕세자의 개인비서였던 텅너이 텅야이(Tongnoi Tongyai)가 "친 코포레이션"의 이사가 될 것으로 보이자 왕실이 재빨리 그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이 일은 분명히 어색한 것이었다. 아직 그러한 일의 결과가 어떠할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일부에서는 왕세자가 텅너이를 이사회로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고, 공개적인 발표까지도 됐지만 푸미폰 국왕이 이러한 조치를 막았다. 이후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기괴하고도 충격적인 성명서를 발표하여 텅너이를 맹렬히 공격했다. 이 성명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왕세자 저하 사무실에서는 텅너이 텅야이 씨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괴이하게 남용한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의 행위는 대중들을 오해하게 만들고 왕세자 저하 사무실에도 해를 끼쳤다. 그러므로 스스로 진상을 밝혀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텅너이는 군주에게 불충한 행동을 한 셈이 되었으므로, 당연히 스스로를 변론하는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은 쉽게 끝나지를 않았다. 태국의 영자지 <방콕포스트>(Bangkok Post)에서 발행하는 태국어 판 자매지인 <폿투데>(Post Today, โพสต์ทูเดย์)는, 한 좌파 학자의 말을 인용한 기사에서 텅너이가 그런 요상한 방식으로 면직처분 당한 이유에 대해 <풋투데>가 조사를 해야만 한다는 내용이 실리자, 단 하룻밤만에 수많은 신문을 윤전기에서 다시 빼내야만 했다. 결국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일군의 기자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서 왕세자는 기자들에게 "당신들은 과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윤리적인 돈벌기

 

2006년 9월 19일에 발생한 쿠테타와 관련해서도 CPB의 움직임은 중요한 것이다. 이 쿠테타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명분에는 탁신이 자신의 여러 기업들을 위해 권력을 남용했다는 것, 우호적인 보도를 위해 언론을 협박했다는 것, 자신의 일가가 소유한 "친 코포레이션" 매각을 위해 <외국인 소유제한법>을 위반하고 <세법>의 맹점을 이용했다는 것 등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주장들은 분명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왕실이 지원한 쿠테타를 기묘한 방식으로 정당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탁신이 공격받은 문제들에 대해 CPB 역시 동일한 잘못을 저질렀다. CPB는 지난 수십년간 대규모 주식 획득과 우호적인 계약 성사, 세금 탈루에 관해 그 강력한 지위를 이용해왔다. CPB는 스스로를 거의 신적인 존재에 이른 푸미폰 국왕과 연관시키는 가운데 언론을 위협했고, 언론들이 <왕실모독 처벌법>(lese-majeste laws)을 두려워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사진) 수완룸 나이트 바자.

 

어떤 이들은 CPB의 자산이 행정적으로는 국가의 자산이므로 문제가 안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준-사유재산인 동시에 준-공공재산"인 CPB의 자산은 모호한 부분들을 명백히 하면서, 돈의 흐름을 공개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지켜본 이들이 들은 말은 이사회의 발표 뿐이고, 이 재산이 왕실과 밀접하게 운영되므로 도덕적으로 우월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란 일반적 믿음만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도덕적 이미지야말로 국왕과 국왕의 재정적 도구인 CPB를 성공적으로 있게끔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탁신은 태국 내 많은 지방들에서 분명하게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방콕에서는 왕당파 상류층들에게 매도를 당했다. 이들 엘리트들은 탁신이 전능한 푸미폰 국왕의 라이벌로 부상했다고 보았다. 바로 이러한 관점이 탁신이 자신의 일가가 소유했던 "친 코포레이션"을 "테마섹 홀딩스"에 매각한 일에 도덕적 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것이다.

 

탁신은 자신에게 쏟아진 공격에 대응하기보다는 비판자들이 자신을 "질투하고 있다"면서 공개적인 자부심을 표했다. 이에 격분한 반대파는 탁신을 탐식가라고 부르면서, 탁신은 국가를 운영할만한 왕재(王才)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푸미폰 국왕은 국익을 위해 항상 진심으로 노력하는 친애로운 아버지 상이란 어려운 목표에 비교적 쉽사리 부합하여 창조되어졌다. 푸미폰 국왕은 왕실을 사치로운 이미지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노력으로 "충족경제론"을 주창했다. 그리고 이 이념이 방콕의 금싸라기 땅들에 지어진 럭셔리한 쇼핑몰들의 개장으로 나타났다. CPB가 자연이 주는 평온함을 향수할 수 있도록 녹지를 조성하는 데 많은 토지를 사용했다는 것은 보지 못한다.

 

푸미폰 국왕이 지닌 이미지가 그다지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 즉, 그가 불교에서 말하는 법왕(法王: 탐마랏[dhamma-raja])이 아니라면 --- 통상적인 태국인들이 어떻게 단 한 가족이 그 많은 땅을 소유할 수 있었는지를 묻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공정한 가치"로 대접받기를 요구할 수도 있으니, 다시 말해 빵조각을 분배받을 기회를 달라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어른이신 푸미폰 국왕이 살아있는 동안 이러한 일이 발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왕위는 부드럽게 계승되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들은 CPB의 탁한 금융활동에 최종적인 해볕을 들이대라고 요구하는 날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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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울트라-노마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10.27 오, 또 그런 측면이 있군요..
    공부해도 끝이 없군요,...

    하여간 오랫만에 박공 님이 복귀하셔
    반갑습니다 ~~ ^^

    동 티모르에서는 좋은 성과가 있으셨길 바라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단군박공 | 작성시간 10.10.27 동 티모르, 개판입니다...유엔군 하고 미군 아새끼들이 들어가 앉아서 다 헤쳐 먹으려고 두 눈을 벌것게 부리리고 있습니다...이 나라가 전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할 근거가 없는 나라 이였거든요...그런데, 두에서 유태 자본의 유엔과 미국발 유태 놈들 영국발 유태 세력 그리고 호주발 유태 세력이 한 통속이 되면서 꼼짝 마라라고 하는 거지요...물가가 말입니다, 미국의 뉴욕 수준 이예요...물론, 자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들은 제외 입니다만 전반적으로 물가가 우리나라 못지 않다는 것이지요...어제 제 블로그에도 기록을 했는데요, 이 유태 자본의 생명력이 다음해 12월 31일 까지 입니다...
  • 작성자보아즈 | 작성시간 10.10.28 동티모르에 그런 일이 있군요... 새롭게 배우게 됩니다...

    태국은 왕이 있고 추앙받는 나라이니 좀 다른 방면에서의 이해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크세의 귀염둥이 보아즈 올림
  • 작성자빔빔 | 작성시간 14.09.02 여기에 또 이런 보물이..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울트라-노마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9.02 ㅎㅎ
    오래된 자료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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