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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란나 왕국 : 태국 북부의 주요국가

작성자울트라-노마드|작성시간10.03.02|조회수1,102 목록 댓글 0

 

 

본 정보는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해당 항목을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란나 왕국 : 태국 북부의 주요국가

 

 

 

 

อาณาจักรล้านนา
Kingdom of Lanna
 
 
1292–1774
 

수도

 

 

 

 

 

치앙라이 (1262-1275)
팡 (Fang, 1275-1281)
위앙 꿈깜 (Wiang Kum Kam: 1281-1296)
치앙마이 (1296-1768)
치앙센 (1768-1774)
언어 란나어
종교 상좌부불교
정체 군주제
주요국왕
 - 1292 - 1342 망라이 대왕
 - 1441 - 1487 띨로까랏
 - 1578 - 1607 노라따 민소시
역사시대 근세
 - 하리푼차이 병합 1292
 - 치앙마이 건설 1296
 - 아유타야-란나 전쟁 1456 - 1474
 - 버어마에의 복속 1558
 - 딱신의 시암 왕조로의 복속

1774

 

 

란나왕국(อาณาจักรล้านนา: 논 백만의 왕국)은 지금의 태국 북부지역에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존속했던 왕국이다. 타이유안(Thaiyuan, 혹은 따이유안) 족으로 구성된 이 국가는 란나왕국을 형성하기 전부터 일련의 타이유안 계통의 왕조들을 거치면서 이미 오랜 문화적 발전과정을 갖고 있었다.

 

란나는 은양 왕국(Ngoenyang dynasty, อาณาจักรหิรัญเงินยาง)이 그대로 계승된 왕국으로, 15세기에는 아유타야 왕국(Ayutthaya kingdom, อาณาจักรอยุธยา)과 큰 전쟁들을 치르면서 경쟁하는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란나는 국력이 기울면서 버어마의 조공국으로 전락했다. 16세기부터는 버어마의 꼭두각시 왕들이 즉위해 통치했고, 일부는 자치를 구가하기도 했다. 기존의 버어마 지배력은 서서히 쇄퇴했지만, 새로운 버어마 세력인 꽁바웅왕조(Konbaung dynasty)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다시금 그 영향권 하로 들어갔다.

 

종국에는 톤부리왕국(Thonburi Kingdom, อาณาจักรธนบุรี)의 딱신대왕(Taksin, ตากสินมหาราช, 鄭昭)이 1744년 란나를 침공해, 수많은 조공국 중 하나로 복속되었다.

 

 

 

 

 

1. 역 사

 

1.1. 개국초기

 

라워짜끄랏 왕조(Lavachakkaraj dynasty)의 25대 왕이자 은양왕국의 17대 왕인 망라이(Mangrai)는, 이웃의 파야오(Payao) 왕국과 동맹을 맺고 은양왕국 내의 도시국가들을 중앙집권적으로 통합했다. 그는 1262년에 도읍을 오늘날의 치앙센(เชียงแสน) 군인 "은양"(Ngoenyang)에서 자신이 직접 도시명을 명명한 치앙라이(Chiangrai, เมืองเชียงราย)로 천도했다.

 

이후 망라이 왕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1292년 오늘날 "람푼"(Lamphun) 읍(테사반 므앙)에 위치했던 몬족 국가 하리푼차이(Haripunchai) 왕국을 복속시켰다. 망라이 왕은 파야오 왕국의 응암 믕(Ngam Mueng) 왕 및 수코타이(Sukhothai, สุโขทัย) 왕국의 람캄행 대왕(รามคำแหงมหาราช)과 더불어 동맹을 서약했다.

 

망라이 왕은 여러 번 도읍을 옮겨다니다, 결국 1296년 치앙마이(Chiangmai, เชียงใหม่)를 건설해 천도한 후 정착했다. 망라이 왕이 주장했던 영토는 현재의 태국 북부지방 도들을 거의 다 포괄한다. 일부 제외되는 곳들은 수코타이 영토였던 페(Prae, แพร่)와, 파야오 왕국 영토였던 파야오(Payao) 및 (Nan), 그리고 미얀마의 차인토우(Kengtung)와 몽나이(Mong Nai), 오늘날 중국 운남성의 징홍(Jinghong 景洪)인 치앙훙(Chiang Hung, เชียงรุ่ง)은 제외됐다.

 

 

1.2. 불화와 번영

 

1317년 망라이 왕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파야 차이송깜(Paya Chaisongkram) 왕이 등극했다. 그는 대관식을 치룬 후 4개월만에 다시 도읍을 치앙라이로 천도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 타우 센 푸(Thau Saen Phu) 왕자를 치앙마이의 우파랏(Uparaja, 親王)(역주1)으로 봉했다.

 

이후 차이송깜 왕의 동생 쿤 크어(Khun Kruea)는 왕위를 노리고 치앙마이를 공격했다. 숙부의 공격을 받은 센푸는 도시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러자 차이송깜 왕의 또다른 아들인 남 뚜암(Nam Tuam)이 나서 이 공격을 격퇴했다. 1322년 차이송깜 왕은 센푸를 대체하여 남 뚜암을 치앙마이의 우파랏으로 봉했다. 하지만 남 뚜암이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이 있자, 차이송깜 왕은 1324년에 다시금 치앙마이 우파랏을 센푸로 교체했다.

 

센푸의 아들인 파야 깜푸(Paya Kam Fu) 왕은 1334년 다시금 치앙센으로 천도하면서, 그 아들인 파유(Pa Yu) 왕자를 치앙마이로 보냈다.

 

 

(사진) 더이수텝 산에 위치한 사찰 "왓 파탓"(Wat Phrathat, วัดพระธาตุ) 사찰의 탑. 이 지역을 상징하는 관광지이다. [사진출처: jingreed.typepad.com]

 

 

1386년 더이수텝(Doi Suthep, ดอยสุเทพ산에 탑 계단(dhatu)(역주2)을 창건한 끄나(Kue Na) 왕 치세에는 상좌부불교(Theravada Buddhism: 폄훼형-소승불교)가 번성했다. 끄나 왕은 란까웡(Lankawongse) 종단을 우대하고 수코타이 왕국에서 고승들을 초청해, 란나왕국이 하리푼차이 왕국에서 물려받은 몬족 전통의 기존 상좌부불교를 대체해나갔다.

 

센므앙마(Saenmuengma: "수만의 성들이 [복속해] 오다"의 의미) 왕 치세에는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오직 그의 숙부였던 마하 뽐마땃(Maha Prommatat) 왕자가 일으킨 실패한 반란만 1건 있었을뿐이다. 마하 뽐마땃은 아유타야 왕국(Ayutthaya Kingdom อาณาจักรอยุธยา)에 지원을 요청했다. 아유타야의 버러머라차 1세(Borommaracha I, สมเด็จพระบรมราชาที่1)는 란나 최초의 내전이었던 이 싸움에 군대를 출병시켰지만 격퇴당했다.

 

이후 란나는 삼팡켄(Sam Fang Kaen) 왕 치세에 새로 개국한 명나라(明朝, 1368-1644)의 침입에 직면했다.

 

(역주1) 산스끄리뜨어 "우빠"(upa)는 "가까운", "다가서다"를 의미하는 접두어이고, "라자"(raja)는 "왕"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빠라자"(uparaja, 태국어 발음-우파랏)를 "친왕"(親王)으로 번역한 것이다.

(역주2) 원래 산스끄리뜨어 "다투"(dhatu)는 "어떤 것의 배경" 혹은 "바탕", "영역"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탑"(stupa, 스뚜빠)들을 창건한 내용이므로, 크게보아 "탑군"(塔群)이나 불교사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1.3. 띨로까랏 왕 치세의 팽창

 

란나왕국은 띨로까랏(Tilokaraj: 1441-1487) 왕 치세에 가장 강력했다. 띨로까랏 왕은 부왕이었던 삼팡켄 왕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했다. 이에 대해 띨로까랏의 형제였던 타우 초이(Thau Choi)가 부왕의 왕위를 복위시킨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아유타야 왕국에 지원을 청했다. 아유타야의 버러머라차 2세가 1442년 란나에 군대를 파병했지만, 전투에서 패했고 반란군도 진압됐다. 1456년 띨로까랏 왕은 이웃한 파야오도 병합했다.

 

 

 (지도) 띨로라깟 왕 치세의 란나왕국 영토. 초록색 부분.

 

 

남쪽에서는 새롭게 부상하는 아유타야 왕국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아유타야가 타우 초이의 반란을 지원한 이래로 양국관계는 악화일로에 있었다.

 

1451년 수코타이의 왕으로 아유타야의 따일로까낫(Trailokanat, ไตรโลกนาถบพิตร: 1431-1488) 왕과 분쟁중이던 윳띠티라(Yuttitthira)가 띨로까랏 왕에게 항복해왔다. 윳띠티라는 띨로까랏 왕에게 자신의 영지였던 피사눌록(Pitsanulok, พิษณุโลก, 피차눌록)에 파병해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상-짜오파야 계곡 지역, 즉 수코타이 왕국에서 "아유타야-란나 전쟁"을 촉발시켰다.

 

1460년 찰리앙(Chaliang)의 영주가 띨로까랏 왕에게 항복했다. 이후 아유타야의 따일로까낫 왕은 전략을 수정해서, 도읍을 피사눌록으로 천도하고 란나와의 전쟁에 집중했다. 이러한 반격에 란나는 고통을 받았고, 결국 띨로까랏 왕은 1475년에 화평을 청했다.

 

띨로까랏 왕은 상좌부불교의 강력한 신봉자였다. 그는 1477년 치앙마이에서 대장경(Tripitaka, 三藏) 결집대회(편찬위원회)를 열었다. 그는 또한 여러 주요한 사찰들을 건립하고 중창하기도 했다.

 

1480년 띨로까랏 왕은 현재의 라오스에 위치한 란상왕국(Lan Xang)에 파병을 해, 베트남 세력을 몰아내도록 도왔다. 그는 서쪽으로 샨족(Shan) 국가들인 라이카(Laikha), 시뽀(Hsipaw), 몽나이(Mong Nai)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1.4. 쇠 퇴

 

띨로까랏 왕 사후의 란나는 고전적인 왕자들 사이의 권력투쟁에 빠져들면서, 새롭게 성장하는 주변의 강대국들에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띨로까랏 왕이 복속시켰던 샨족 국가들은 자치를 획득했다.

 

띨로까랏 왕의 손자였던 파야 케우(Paya Kaew) 왕은 란나왕국의 마지막 강력한 군주였다. 케우 왕은 1507년 아유타야를 침공했지만 격퇴당했고, 도리어 1513년에는 아유타야의 라마티버티 2세(Ramathibodi II, รามาธิบดีที่ 2)의 반격을 받아 람빵(Lampang)이 약탈당하기도 했다.

 

1523년 서쪽의 짜이퉁(Kengtung)에 있던 왕조에서 내분이 발생했다. 이 내분에서 한 분파는 란나를 지지했고, 다른 분파는 시뽀를 지지했다. 케우 왕은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재발휘하고자 군대를 보냈지만, 시뽀 군대로 인해 악전고투 끝에 철군했다. 이 패배는 상당한 타격을 주어 이후로 란나는 두번 다시 이 지역을 탈환하지 못했다.

 

1538년 케우 왕의 아들인 껫끌라오(Ketklao) 왕이 자신의 아들 타우 사이깜(Thau Sai Kam)에게 왕위를 찬탈당했다. 1543년 그는 복위를 했지만 정신병에 시달렸고, 1545년 처형당하고 만다. 그의 뒤를 이어 딸이었던 치라빠빠(Chiraprapa) 공주가 여왕으로 등극했다.

 

란나가 권력투쟁에 돌입하자, 주변의 아유타야와 버어마 세력은 이 기회를 란나왕국 타도의 시기로 포착했다. 1545년 아유타야의 차이라차(Chairacha, ไชยราชาธิราช) 왕이 란나를 침공했지만, 란나의 치라빠빠 여왕은 협상을 통해 상황을 호전시켰다. 이듬해 차이라차 왕은 재차 란나를 침공해, 람빵과 람푼을 약탈하고 치앙마이까지도 위협했다. 그러자 치라빠빠 여왕은 어쩔 수 없이 아유타야의 조공국 지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침략자들의 압력에 직면해서 치라빠빠 여왕은 퇴위를 결심한 후, 1546년 란나의 왕위를 제부였던 란상 왕국의 차이야셋타(Chaiyasettha) 왕자에게 양위했다. 이에 차이야셋타 왕자는 란나로 이주해왔고, 이로써 란나는 라오스 왕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547년 차이야셋타 왕자는 왕위계승권을 주장하기 위해 란상왕국으로 되돌아갔고, 그곳에서 셋타티랏(Setthathirat)이란 칭호를 가지고 국왕으로 등극했다. 셋타티랏 왕은 유명한 에메랄드 불상을 치앙마이에서 란상의 루앙 프라방(Luang Prabang)으로 옮겨갔다. 이 불상은 훗날 라마 1세가 다시금 방콕으로 회수해온다.

 

이후 란나의 왕위는 몽나이의 샨족왕국 짜오파(Saopha 혹은 Chaofa, เจ้าฟ้า, 버마어-Sawbwa)였던 메구띠(Meguti)에게 전해졌다. 그의 가문은 란나의 개조인 망라이 왕과 혈연적 관계가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샨족 출신인 메구띠 왕은 수차에 걸쳐 란나의 규범들과 신조들을 훼손했다고 알려진다.

 

1558년 버어마 페구(Pegu)의 바인나웅(Bayinnaung, บุเรงนอง) 왕이 침략을 해왔다. 바인나웅 왕의 군대는 신속하게 란나왕국을 장악했고, 메구띠 왕은 바인나웅 왕의 지시를 받는 꼭두각시 왕으로 전락했다. 이후 2세기 동안 란나는 버어마의 종주권 하에 있었다.

 

 

1.5. 버어마의 지배

 

바인나웅 왕은 아유타야를 공격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동원 체계를 조직했다. 메구띠 왕은 버어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가 1564년에 처형됐다. 이후 바인나웅 왕은 메구띠 왕의 친족으로 자신의 후궁이었던 위숫띠데위(Visuttidevi)를 란나의 여왕으로 즉위시켰다.

 

1578년 위숫띠데위 여왕이 사망했다. 바인나웅 왕은 자신과 위숫띠데위 여왕 사이의 소생인 노라따 민소시(Noratra Minsosi) 왕자를 란나의 왕으로 즉위시켰다. 버어마 왕조는 란나에 일정 정도의 자치를 허락했지만, 부역과 세금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를 했다. 이는 아유타야와의 전쟁비용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인나웅 왕이 죽자 버어마 왕조는 쇠약해졌고, 아유타야의 나레수완(Naresuan, นเรศวรม) 왕이 세력을 팽창하면서 동요하기 시작했다. 란나는 버어마가 아유타야를 침공하기 위한 병참과 비용을 여러 차례 부담해야만 했다. 그 사이 란상왕국의 셋타티랏 왕 역시 이 지역을 회복하려 시도했다.

 

1595년 란상의 네오께우(Neokeow) 왕은 버어마를 침공하기 위해 란나가 그 행군로를 열라고 위협했다. 란나의 노라따 민소시 왕은 아유타야의 나레수완 왕에게 지원을 청하고 시암(태국)의 조공국 지위를 자청했다. 하지만 시암의 조공국 기간은 짧았고, 시암의 통제력도 일시적인 것으로 판명됐다.

 

노라따 민소시 왕을 계승한 것은 그의 동생이었던 파초이(Phra Choi) 왕이었지만, 1608년 노라따 민소시 왕의 아들인 파차이야팁(Phra Chaiyathip)에게 왕위를 뺐겼다. 하지만 파초이는 1613년 가까스로 왕위를 되찾았다.

 

버어마에서는 난다바인(Nanda Bayin) 왕이 죽자 국가가 3개로 분열했다. 노라따 민소시 왕의 양자이자 이전 난(Nan) 왕국의 왕이었던 란나의 왕 시성믕(Siseongmueng)은, 이 시기를 틈타 버어마로부터 독립하려 했지만 1631년 탈룬(Thalun) 왕에게 다시금 복속되었다.

 

이후 한 세기 동안 란나의 왕위는 버어마의 종주권 하에 있었다. 버어마는 란나의 왕들을 엄격하게 통제했으므로, 주로 평민들이 버어마에 대한 저항운동을 주도했다. 그들 중에는 존경받는 승려도 있었고, 나름대로 덕망이나 세속적 권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1662년 아유타야의 나라이(Narai, นาราย) 왕이 란나를 침공했다. 시암인들은 치앙마이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을 약탈했지만, 그 통치는 매우 짧았다. 1664년 버어마는 란나의 자치권 중지를 결정하고, 란나의 왕을 버어마에서 파견한 이로 대체했다. 1701년 치앙센을 버어마의 도시로 통합했다.

 

1727년 텝싱(Thepsingh)이란 이가 이끄는 란나 반군들이 들고 일어나, 란나를 버어마로부터 성공적으로 독립시켰다. 하지만 이 독립은 매우 짧아서 같은해 버어마가 다시금 장악했다.

 

 

1.6. 시암의 조공국

 

1732년 띱창(Tipchang)이란 이름의 한 코끼리 조련사가 스스로 띱착왕조(Tipchak dynasty) 및 람빵의 통치권을 갖고 태어났다고 주장하며, 람빵의 영주를 자처했다. 이후 띱창의 왕국은 곧 버어마의 인와왕국(Ava, Innwa)에 복속했다.

 

띱창의 손자인 까윌라(Kawila)는 란나와 람빵의 독립을 계획했다. 그와 더불어 란나의 왕족이었던 파야 차반(Phraya Chabaan)이 주도적 인물이 되었다. 까윌라는 톤부리 왕국(Thonburi, ธนบุรี)의 딱신(Taksin, ตากสิน) 대왕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딱신은 파야 짜끄리(Phraya Chakri: 훗날의 라마 1세)와 그 아우인 파야 수라시(Phraya Surasi: 분마 장군) 2명의 장수들을 란나에 파견했다.

 

1774년 람빵과 톤부리의 연합군은 치앙마이를 탈환하고 200년에 걸친 버어마 통치를 종식시켰다. 까윌라는 람빵의 왕으로 봉해졌고, 파야 짜끄리는 치앙마이의 왕으로 봉해지면서, 양자 모두 시암의 봉신이 되었다.

 

 (지도) 과거 란나왕국의 세력권이었던 태국북부의 지형 및 현 국경표시 지도. ☞ 확대사진 바로가기

  

 

 

 

2. 란나를 기록한 연대기들

 

  • 치앙마이 연대기 (The Chiang Mai chronicles) : - 아마도 15세기부터 저술이 시작되어 야자수이파리 사본들에서 내용이 증보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1828년 무렵의 판본으로 영역본도 존재한다. 
  • 지나까라말리니 (Jinakaramalini) : 16세기경 라따나빵냐(Ratanapañña)가 저술. 태국에서 불교가 최초로 흥기한 과정을 설명.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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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란나의 역대왕

     

       란나왕국 : 망라이왕조 (1296-1558)

  • Mangrai the Great, 1261-1311
  • Chaiyasongkhram or Jayasangrama, 1311-1325
  • Saenphu, 1325-1334
  • Khamfu, 1334-1336
  • Phayu, 1336-1355
  • Kuena, 1355-1385
  • Saenmueangma, 1385-1401
  • Samfangkaen, 1402-1441
  • Tilokkarat or Tilokaraja, 1441-1487
  • Yotchiangrai, 1487-1495
  • Kaeo or Mueangkaeo, 1495-1525
  • Ket or Muangketklao, 1525-1538 (1st reign)
  • Saikham, 1538-1543
  • Ket or Mueangketklao, 1543-1545 (2nd reign)
  • Chiraprapha or Jiraprabha, 1545-1546 (queen's reign)
  • Chaiyachettha or Jayajestha, 1546-1547
  • interregnum, 1547-1551
  • Mekuti, 1551-1564 (Burmese conquest and control of Lanna 1558)
  • Wisutthathewi or Visuddhadevi, 1564-1578 (queen's 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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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나왕국 : 버어마 통치기 (1578-1774)

  • Sawathi Noratra Mangsosi, 1578-1607 (Burmese ruled Lanna directly)
  • Phra Choi, 1607-1608 (1st time)
  • Phra Chaiyathip, 1608-1613
  • Phra Choi, 1613-1615 (2nd time)
  • Duke Sisongmueang of Nan, 1615-1631
  • Phraya Luangthipphanet, 1631-1655
  • Phra Saenmueang, 1655-1659
  • Duke of Phrae, 1659-1672
  • Viceroy Uengsae of Ava, 1672-1675
  • Cheputarai, 1675-1707
  • Mang Raenara, 1707-1727
  • Thepsing or Debasingha, 1727 (independent ruler)
  • Ong Kham, 1727-1759
  • Ong Chan, 1759-1761
  • Chao Khihut, 1761-1763
  • Po Aphaikhamini, 1763-1768
  • Po Mayu'nguan, 1768-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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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암 조공국 시대의 란나 국가들 (1774-1899)

      치앙마이 왕들

    • Phraya Chaban (Bunma) 1774-1782

     

      Chaochetton 혹은 Thipchang 가문

     
      치앙마이 왕 : 1782-1939
    • Kawila, 1782-1813 (Ex-Duke of Lampang)
    • Thammalangka or Dharmalanka, 1813-1822
    • Khamfan, 1823-1825 (Ex-Duke of Lamphun)
    • Phutthawong or Buddhavansa, 1826-1846
    • Mahotaraprathet, 1847-1854
    • Kawirolot Suriyawong, 1856-1870
    • Inthawichayanon, 1873-1896
    • Inthawarorot Suriyawong, 1901-1909 (Thai annexed Lanna)
    • Kaeo Navarat, 1911-1939 (title dissolved)

     

      람빵 왕 : 1732-1925
    • Thipchang, 1732-1759 (Burmese Era)
    • Chaikaeo, 1759-1774 (Burmese Era)
    • Kawila, 1774-1782 (The first ruler under Siamese, became Duke of Chiang Mai in 1782)
    • Khamsom, 1782-1794
    • Duangthip, 1794-1825
    • Chaiwong or Jayavansa, 1825-1838
    • Khattiya, 1838
    • Noi In, 1838-1848 (Ex-Duke of Lamphun)
    • Worayannarangsi or Varayanaransi, 1848-1873
    • Phrommaphiwong or Brahmabhivansa, 1873-1887
    • Suriya Changwang or Surya Changwang, 1887
    • Noranan Chaichawalit or Narananda Jayajavalit, 1887-1897
    • Bunyawat Wongmanit or Bunyavadya Vansamanit, 1897-1922 (Thai annexed Lanna)
    • Chao Ratchabut (Noi Mueangphruan), 1922-1925 (title dissolved)

     

      람푼 왕 : 1805-1943
    • Khamfan, 1805-1815 (Duke of Chiang Mai in 1823)
    • Bunmamueang, 1815-1827
    • Noi In, 1827-1837 (Duke of Lampang in 1838)
    • Khamtan, 1838-1841
    • Thammalangka or Dharmalanka, 1841-1843
    • Chailangkaphisan Sophakkhun, 1848-1871
    • Daradirekratphairot, 1871-1888
    • Hemphinphaichit, 1888-1895
    • Inthayongyotchot, 1895-1911 (Thai annexed Lanna)
    • Chakkham Khachonsak, 1911-1943 (title dissolved)

     

     

     

     

     참고문헌

     

  • Hans Penth - A brief history of Lan Na, ISBN 974-7551-32-2
  • Michael Freeman - Lanna, Thailand's Northern Kingdom, ISBN 974-8225-27-5
  • David K. Wyatt, Aroonrut Wichienkeeo - The Chiang Mai Chronicle, ISBN 974-7100-62-2
  • คณะทายาทสายสกุล เจ้าหลวงเมืองพะเยา, สถาบันศิลปวัฒนธรรมโยนก. ครบรอบ 100 ปี แม่เจ้าทรายมูล (มหาวงศ์) ไชยเมือง และประวัติสายสกุลเจ้าหลวงเมืองพะเยา พุทธศักราช 2387 - 2456. พะเยา : บ.ฮาซัน พริ้นติ้ง จก., 2546
  • คัมภีร์ คัมภีรญาณนนท์, นาวาอากาศเอก. เจ้านายฝ่ายเหนือ
  • นงเยาว์ กาญจนจารี, ดารารัศมี : พระประวัติพระราชชายา เจ้าดารารัศมี. เชียงใหม่ : สุริวงศ์บุ๊คเซนเตอร์, 2539
  • ปราณี ศิริธร ณ พัทลุง, เพ็ชร์ล้านนา. เชียงใหม่ : ผู้จัดการ ศูนย์ภาคเหนือ (ครั้งที่ 2), 2538
  • เจ้าวงศ์สัก ณ เชียงใหม่, คณะทายาทสายสกุล ณ เชียงใหม่. เจ้าหลวงเชียงใหม่. กรุงเทพฯ : อมรินทร์พริ้นติ้ง แอนด์ พับลิชชิ่ง จำกัด (มหาชน), 2539
  • สมหมาย เปรมจิตต์, สถาบันวิจัยสังคม มหาวิทยาลัยเชียงใหม่. ตำนานสิบห้าราชวงศ์ (ฉบับสอบชำระ). เชียงใหม่ : มิ่งเมือง, 2540
  • สรัสวดี อ๋องสกุล, 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 กรุงเทพฯ : อมรินทร์พริ้นติ้ง (พิมพ์ครั้งที่ 2), 2539
  • ศักดิ์ รัตนชัย, พงศาวดารสุวรรณหอคำนครลำปาง (ตำนานเจ้าเจ็ดพระองค์กับหอคำมงคล ฉบับสอบทานกับเอกสารสืบค้น สรสว.ลำปาง)
  • http://www.globalgroup.in.th/encyclopedia_lanna.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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