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태국 정치와 제도

[(전문자료)][인물] 솜차이 쿤쁠름 : 청부살인 사주한 태국의 거물급 지방 정치인

작성자울트라-노마드|작성시간13.02.06|조회수524 목록 댓글 1

 

 

본 정보는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해당 항목을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인물] 솜차이 쿤쁠름 : 청부살인 사주한 태국의 거물급 지방 정치인 

 

Somchai Khunpluem

 

 

 

솜차이 쿤쁠름(Somchai Khunpluem[혹은 Kunplome], สมชาย คุณปลื้ม)은 태국의 정치인이자 사업가이고 범죄조직 두목으로서,(주1) 1937년 9월 30일 태국의 촌부리 도(Chonburi Province)에서 태어났다.(주2) 또한 그는 '깜난 빠오'(Kamnan Poh, กำนันเป๊าะ, '빠오 면장'이란 의미)란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솜차이는 자신의 고향인 촌부리 도 및 태국 동부지방 전역에서 매우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서, 태국 언론들이 '촌부리의 대부'(주2)나 '동쪽의 대부'라고 불렀던 인물이다.(주3) 솜차이는 오랜 기간 촌부리 시(Mueang Chonburi District), 샌숙(Saen Suk) 면의 면장을 지냈다.

 

(주1) McCargo, Duncan; Pathmanand, Ukrist (2005), The Thaksinization of ThailandNIAS Press, p.230.

(주2) Pinijparakarn, Sucheera, "Chon Buri Murder: Kamnan Poh gets 25 years", The Nation.

(주3) Backman, Michael (2004), The Asian Insider: Unconventional Wisdom for Asian BusinessPalgrave Macmillan, p.32.

 

 

 

 

1. 약력, 사업 및 정치적 경력

 

솜차이는 마을 이장의 아들로 태어났고, 8남매 중 둘째였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주4) 10대 때부터 일을 했다. 그는 버스의 소년 조수로 일을 했고, 이후 자신의 버스 사업을 시작했다.

 

솜차이는 잠시 동안 승려 생활과 군 복무를 한 후, 1963년에 어업을 하는 프랑스 사업가의 동업자가 되었다.(주4) 이후 생선 도매업자의 딸인 사띤 산쩌런(Satil Sancharoen)과 결혼했다. 그는 이후 자신의 기업인 '방샌 마하 나콘'(Bang Saen Maha Nakhon)을 설립하여, 건설업에 진출했다.

 

1968년, 그는 샌숙 면의 면장(깜난)이 되었다. 그리고 양조장을 설립했고, 몇몇 사업 부문들도 확장해나갔다. 1989년, 샌숙 면이 자치시로 승격됐고, 솜차이는 초대 시장이 되었다. 1995년, 그는 '태국 민족당'(Thai Nation Party, พรรคชาติไทย[팍 찻 타이])에 입당했고, '태국 민족당' 당수인 반한 실빠아차(Banharn Silpa-archa) 총리 집권기에 정부의 조달사업들을 자주 따냈다.

 

솜차이와 사띤 부부 및 그 가족들의 재산은 2004년에 총 40억 바트(약 1,460억원) 정도로 추정됐다.(주2)

 

솜차이는 1970년대에 '사회행동당'(Social Action Party, พรรคกิจสังคม[팍 낏 상콤])의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했고, 이후 '정의통일당'(Justice Unity Party, พรรคสามัคคีธรรม[팍 사막키 탐]), '국가 개발당 '(National Development Party, พรรคชาติพัฒนา[팍 찻 빠따나]), '태국 민족당'으로 순차적으로 당적을 옮겼다.(주4)(주5)

 

(주4) The Nation, "Kamnan Poh': The long-living godfather".

(주5) Chantornvong, Sombat (2000), "Local Godfathers in Thai Politics", Money & power in Provincial Thailand (NIAS Press): p.64.

 

 

 

 

2. 살인청부 사건

 

2003년, 솜차이는 지방의원인 파사꼰 험후원(Passakorn Homhuan, ภาสกร หอมหวล)과 함께 '계획적 살인' 혐의로 입건됐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하여 이웃 면의 면장인 쁘라윤 시티촛(Prayoon Sithichote)을 살해한 것 때문이었다.(주6)

 

2004년, '형사법원'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25년형 씩을 선고했다. 솜차이는 항소를 한 상태에서, 1천만 바트(약 3억6천만원)를 내고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를 유지했다.(주2) 2005년 10월, '항소법원'은 1심의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솜차이는 또한 쓰레기 매립장 건설과 관련된 부정부패 사건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시건으로 그는 징역 5년4개월형을 선고받았다.(주7)(주8)

 

이후 그는 도주하여 잠적했다가, 2013년 1월 30일 방콕의 파따나깐(Pattanakarn, พัฒนาการ) 지역에 위치한 병원을 방문했다가,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체포'됐다.

 

(주6) The Nation, "Sontaya: Dad's fine, preparing for bail".

(주7) "Court seizes Kamnan Poh's B15m bail bond", Bangkok Post, 2011-11-29.

(주8) "Fugitive politician's absence in court will cost daughter Bt15m", The Nation, 2011-11-30.

 

 

 

(사진) 2013년 1월 30일 방콕에서 체포된 솜차이 쿤쁠름(좌측)의 모습.

 

 

 

 

3. 가 족

 

솜차이 쿤쁠름은 슬하에 5형제를 두었는데, 장남은 정치인 손타야 쿤쁠름(Sontaya Kunplome, สนธยา คุณปลื้ม: 1963년 10월 10일생)이다.(주6) 손타야는 현재 군소 연립여당인 '팔랑촌 당'(Phalang Chon Party, '촌부리의 힘 당') 총재이자 문화부 장관을 맡고 있고, 프로축구 팀인 '파타야 유나이티드'(Pattaya United F.C.)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그는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총리 집권기에도 과학기술부 장관(2001~2002)과 관광스포츠부 장관(2002~2005)을 역임했다.

 

차남인 위타야 쿤쁠름(Wittaya Khunpluem, วิทยา คุณปลื้ม: 1965년 6월 27일생)은 프로축구팀 '촌부리 F.C.'(Chonburi F.C.)의 구단주이다. 그는 현재 촌부리 도 지방행정위원회 의장이며, 촌부리 도 지역구 출신의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4남인 잇티폰 쿤쁠름(Ittipol Khunplome, .อิทธิพล คุณปลื้ม)은 파타야(Pattaya) 특별행정시의 시장이다.

 

5남인 나롱차이 쿤쁠름(Narongchai Khunploem, ณรงค์ชัย คุณปลื้ม)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샌숙 시 시장을 맡고 있다.

 

 

 

 

  * 관련기사 :

 

      - "태국 경찰, 살인혐의로 7년간 도피한 지방 유력자를 체포"(방콕포스트 2013-1-30)

      - "살인혐의 수감된 태국의 지방 거물, 고향으로 이감 직후 병원에 입원"(방콕포스트 2013-2-4)

      - "태국 경찰, 지방 세도가 도피 조력 여부를 추가수사 예정"(방콕포스트 2013-2-5)

 

 

 * 바로가기 : "'위키피디아 태국어판'의 "솜차이 쿤쁠름" 항목"

 

* 상위화면 : "[색인] 태국 정치 및 제도 백과사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울트라-노마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2.06 아들들이 빵빵하군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