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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정치와 제도

[(번역)][분석] 태국 군사 쿠데타 1주년, 군사정권은 그대로 머물러 있다

작성자울트라-노마드|작성시간15.05.24|조회수430 목록 댓글 3

 

 

(보도) Asia Sentinel 2015-5-21  (번역) 크메르의 세계

 

 

 [분석] 태국 군사 쿠데타 1주년, 군사정권은 그대로 머물러 있다 

Thailand Coup Turns 1, Brass Stay Put

 

 

 

기고 : 본지 특파원

 

* 역주 : '아시아 센터늘'은 실명으로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태국의 왕실모독법과 같이 보복의 위험이 있는 극도로 민감한 기사의 경우엔 필자를 '본지 특파원'(Our Correspondent)이라고 익명으로 처리한다. 이런 관행은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지 등 일부 저명 국제언론들에서도 나타난다.

 

 

태국 군부는 민주주의에 관한 어떠한 희망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전례없이 파괴적인 권력장악을 체계적으로 구축했다.

 

 

태국은 금요일(5.22) 암울한 기념일을 맞이하게 된다. 일년 전 이날, [육군사령관이었던] 쁘라윳 짠오차(Prayuth Chan-ocha) 장군은 옳은 일을 한다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끌어내렸다. 이어진 일년 동안, 군사정권은 태국에 대한 장악력을 더욱 단단히 옭아맸고, 그것을 풀어줄 의사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태국은 앞으로도 얼마가 될지 모를 추가적인 몇년 동안은 군부의 손아귀에 붙잡힌 상태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위 70년으로 세계 최장기 재임 군주인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국왕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란 것은 상식이다.

 

푸미폰 국왕의 아들로서 올해 62세인 마하 와치라롱꼰(Maha Vajiralongkorn) 왕세자가 왕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은 거의 확실한 상태이다.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돌출행동을 하는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상상할 수도 없을만치 부유한 태국 왕실 주변 인물들 중에는, 그 누구도 왕세자의 행보를 통제해줄 이가 없는 한 그가 부왕의 자리를 물려받는 일을 원치 않고 있다. 특히 왕세자가 두바이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와의 이전 관계를 복원하지 않도록 하길 바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태국 군부와 쁘라윳 장군이 지켜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왕위계승의 문제 말고도, 더욱 큰 문제가 남아 있다. 탁신이 촉발시켜놓은 농촌지역(특히 북부 및 북동부 지방)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느끼는 좌절감에 대해, 방콕에 기반을 둔 은행가나 여타 태국 엘리트 계층이 그들을 달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2014년 5월 22일의 쿠테타는 바로 그들의 불만을 억눌러버린 일이다. 태국의 민주주의가 앞을 향해 나아갈 희망은 현재까지는 파괴된 상태이다.

 

 

 

갈수록 태

 

2014년 5월의 배경은 낙심할만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쁘라윳이 권력을 장악하기 전 6개월 동안 제 기능을 발휘하는 정부란 존재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탁신 전 총리 및 그의 여동생이자 사실상 그를 대리하던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총리가 상당한 전략적 실수를 저지른 탓도 크다. 잉락 정권은 탁신에 대한 사면령을 추진했는데, 이는 탁신에게 징역형을 선고해 그를 해외로 피신하게 만들었던 2008년의 부정부패 사건 유죄 판결을 해소시킬 수도 있는 것이었고, 그와 동시에 96명이 사망한 레드셔츠 운동(UDD)의 2010년 4~5월의 대규모 시위의 유혈 강제진압에 책임 있는 이들도 사면시켜 줄 수 있는 것이었다.

 

탁신에 대한 사면령 추진은 태국 남부지방 정치세력의 지도자인 수텝 트억수반(Suthep Thaugsuban)으로 하여금 자금줄도 풍부한 수많은 지지자들을 동원해 방콕(Bangkok)의 거리에 풀어놓을 수 있도록 하는 배경을 제공했고, 민주주의 체제 종식을 목표로 하는 이 시위를 왕당파와 재계가 후원하면서 시위는 지속적으로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방콕의 일부 전문가들은 이 시위가 몇달 혹은 심지어 일년 동안 이어지면서 2010년처럼 유혈사태로 막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라 봤지만, 사실 쁘라윳이 쿠데타를 통해 상황을 마무리시키기 직전에는 일당을 받고 동원된 일군의 시위대만이 룸피니 공원(Lumpini Park)에만 모여 있을 정도로 쪼그라든 상태였다. (참조☞ [목록] 2014년 태국 수꼴 반정부 시위 및 쿠데타 진행 과정)

 

1992년 민주화 시위 당시 푸미폰 국왕이 결전을 벌이고 있던 시위대 지도자와 군부 지도자를 왕궁으로 불러 자신의 앞에 엎드리도록 한 후 상황 종식을 요구했던 일이 있지만, 현재는 푸미폰 구광이 그러한 정국의 해법을 제시할 상황도 분명히 아닌다.

 

태국 군부는 1932년 최초의 쿠데타(=절대왕정을 종식시킨 1932년 혁명)를 시작으로, 자신들이 태국 사외의 안보와 질서를 유지할 최후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쁘라윳은 말 그대로 종류가 다른 인물이다. 그는 과거 태국에서 발생한 19차례의 쿠데타에서 등장했던 그 어떤 군부 지도자들보다도 더욱 심각하고도 더욱 완벽하게 [반대파를] 진압했다.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듯이 그는 태국이 지독한 부정부패, 잔인함, 무능함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자신의 예찬자들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부패한 선출직 정치지도자들이 주저하거나 무능해서 이룩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쁘라윳은 지난주 관료 45명을 부패했다고 주장하면서 해임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그의 해임 조치는 [쿠데타 직전의 여당이자 친-탁신 정당인] '프어타이 당'(Pheu Thai party) 정부를 목표로 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주된 목표는 잉락 전 총리로서, 그녀에게 적용된 혐의는 총 150억 달러가 소요되는 재앙적 쌀 수매 정책(농업 보조금 정책)을 감독함에 있어서 태만에 따른 과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잉락은 5월19일 법원에 출석하여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녀에게 유죄 판결이 날 경우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그 경우 태국 정치에서 탁신 일가의 주도적 지위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지만, 그러한 판결이 농촌 지역 탁신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활성화시킬 위험도 동시에 갖고 있다.

 

법원은 또한 '프어타이 당', 당시의 상무부 부장관 및 통상국장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의 심리도 수용했다. 이와 유사하게 작년 11월에는 최소 20명 이상의 고위직 경찰들도 해임했다. 여기에는 태국의 FBI에 해당하는 '범죄수사국'(Criminal Investigation Division) 국장도 포함됐다. 하지만 실질적인 개혁은 아무 것도 없었고, 단지 와치라롱꼰 왕세자의 측근들과 친인척들만 제거됐을 뿐이다.

 

그렇지만 2013~2014년 사이 수개월 동안 불법적인 시위를 벌인 수텝 트억수반이나 그 동맹세력에 대한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너무도 많은 인명 피해를 안겨줬던 2010년의 유혈 강제진압 배후 인물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기소 조치를 하지 않았다.

 

 

 

불완전한 개혁

 

일부 개혁 조치도 이미 시행됐거나 시행 중이다. 그러나 군부가 주된 개혁이라 간주하는 것에 반하는 일에는 울타리를 쳐뒀다. 그것은 바로 헌법으로, 그 헌법은 모든 의도와 목적 면에서 방콕의 엘리트 계층과 군부가 미래에도 계속해서 태국을 통제해나갈 것임을 보장해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태국의 가장 기본적인 기구들 대분분에 관해서는 어떠한 개혁도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부패하고 무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 잉락 및 여타 '프어타이 당' 당료들에게만 선택적인 사건 처리를 하는 데서도 볼 수 있듯이 사법부는 썩었다. 태국에는 사실상 정직한 정치인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고, 법원은 법리보다는 정치적 동기에 따른 기소절차를 행하고 있다. 배부르고 부패한 관료체제는 분권화될 필요가 있다.

 

토지 등기부 제도는 터무니 없이 불합리한 상태이며 부정부패의 엄청난 원천이 되고 있다. 교육제도도 가망이 없는 상태로서, 아시아 국가들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고, 국민들의 영어 능력 역시 56개국 중 54위에 머물고 있다. 대신 쁘라윳은 자신이 제시한 "국민의 12가지 덕목", 즉 "태국다움"(Thainess)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는데, 12가지 덕목 대부분은 왕실, 기득권층, 군대에 대한 복종심과 관련 있는 내용이다.

 

태국 군부는 자국이 봉착한 심층적 문제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쁘라윳이 제시한 비전은 정태적이며 과거지향적이다. 이러한 특성은 경제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고, 2014년 태국 경제는 지난 3년 동안 최저치를 기록했다. 민간 투자와 민간 소비는 모두 감소했고, 소비자들과 기업체들은 미래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수출도 감소하여 해외 수요 역시 비틀거리고 있다. 또한 불법 어업 문제로 유럽연합(EU)의 금수조치에도 직면해 있다.

 

한 태국인 정치학자는 본지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몇년 전만 해도 농촌지역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의 성장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존재했다. 또한 구시대 권력층 역시 태국 사회의 현실적 변화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그들 스스로를 민주적 통치에 적합하도록 조정해나갈 것이란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우리를 현재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옐로셔츠 폭력배들

 

그러나 수텝 및 그의 옐로셔츠 운동(PAD) 시위 폭력단에 대해 방콕의 전문직 중산층들이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지지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2014년 5월의 쿠데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앞서 인용했던 태국인 정치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방콕의 중산층들)은 탁신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었고,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탁신 일가만 제거하면 기쁘게 생각한다. 그들이 시골지역 동포들(=농민들)에 대해 갖고 있는 편협한 시각은 변화가 없는 상태이다. 나는 이러한 일이 대중들을 오도하거나 맹목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보수 수꼴 정당인] '민주당'과 주류언론들 탓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탁신] 친나왓 세력이 다시금 세력을 키운다면, 중산층들도 다시금 구시대 권력층에 의해 착취(=이용)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탁신 및 그 동맹세력은 뿌리 깊은 부정부패와 전횡적인 행태를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보호하는 데 우선권을 부여했고, 사실상 거의 모든 정부 행정과 관급 계약건들에서 뒷돈을 받으려 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을 공격대상으로 만들어줬다.

 

탁신 정권이 처음으로 출발하던 2001년에 했던 약속들에는 사회복지 프로그램들, 저금리 대출 및 농촌 개발에 관한 광범위한 내용들이 포함됐다. 그로 인해 이동통신 억만장자 재벌 출신의 이 정치인은 농촌지역 대중들을 깊이 매료시켰지만, 그러한 공약들은 이제 모두 소진되고 말았다. 그들은 레드셔츠 운동 지지자들을 자신들의 사적인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해 착취했다고 여겨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태국 민주주의의 부채이기도 하다.

 

 

 

 * 관련 게시물 :

 

      - "[분석] 태국 군사정권, 신 헌법안 국민투표 실시 결정 - 무엇이 문제인가? (AC 2015-5-20)

      - "방한 중인 탁신 전 태국 총리 인터뷰 : "태국에 멋진 민주주의 만들고 싶다""(조선일보 2015-5-21)

      - "[포토 브리핑] 태국 군사 쿠데타 1주년 : 아직도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크세 2015-5-22)


 

* 상위화면 "[기사목록] 2015년 태국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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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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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울트라-노마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5.24 이 기사에서 유일하게 오해를 초래할 수 있는 부분은..
    탁신과 잉락 정권에서의 부정부패 이야기만 강조된 것인데요..

    사실 2006년 쿠데타 후에 2013년 초까지 집권했던
    아피싯 웻차치와 및 수텝 트억수반의 민주당 정권이
    더 최악으로 부패했던 정권이기도 하죠..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태국의 부정부패 중 가장 큰 집단 중 하나가 바로 군부죠..
  • 작성자니콜라스 | 작성시간 15.05.25 어디서나 집권층의 부패는 민중을 파탄에 빠뜨리는 것 같습니다. 이를 타퍼하는데는 봉기 같은 것이 필요한데... 현실은.... 안타깝네요.
  • 답댓글 작성자울트라-노마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5.25 자신의 당대에 피를 흘릴 것인가..
    아니면 피흘림을 후대로 미룰 것인가의 차이일 뿐이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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