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The Southeast Asia Globe 2016-2-11 (번역) 울노 / 크메르의 세계
[분석] 태국 불교의 국교화 운동 : 좌절한 양극화 사회의 새로운 불씨
Thai nationalism and the rise of Buddhist extremism
기사작성 : David Hutt
불교를 태국의 국교로 삼자는 운동이 전개되면서, 이 새로운 종교적 요인이 국론분열 양극화가 첨예한 태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이용될 것인지 하는 우려와 더불어, 정치적 급진주의 표면화에 대한 걱정도 늘어나고 있다.
미디 꼰(Meedee Korn)은 자신이 태국 불교를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종교의 이름을 말하길 원치 않았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이슬람교였지만, 몇 차례 질문을 던져봐도 이 종교의 이름을 언급하는 일은 사양했다. 그는 그저 "어떤 종교"라고만 말했다.
안경을 쓴 이 중년 사내는 "이 나라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종교가 있다"면서, 그저 짧고도 함축적인 문장을 속삭이듯 말할 뿐이었다. 무슬림들이 어떤 방식으로 태국에서 이익을 추구하는지 그 구체적인 사례 제공을 요청받자, 그는 말수 적은 인물이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음과 같이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다른 종교가 태국 불교를 파괴하길 바란다면, 그런 일을 방지하는 일은 신자의 의무인 것이다."
꼰은 '국교로서의 불교 진흥위원회'(Committee to Promote Buddhism as the State Religion: CPBSR) 사무총장을 맏고 있다. CPBSR은 작년(2015) 연말에 창립됐고, 그 명칭이 시사하는 바대로 불교를 태국의 국교로 채택하라는 것을 정부에 압박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1932년 태국 최초의 헌법이 제정된 이래 총 18차례나 개헌이 있었지만, 불교를 국교라고 명시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작년 5월의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 이전 헌법을 무력화시키고 집권했다. 이전 헌법은 정부가 "불교 및 여타 종교들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할 것"을 규정했는데, 태국은 현재 새로운 헌법 초안을 작성 중이다. CPBSR은 현재 헌법을 초안하고 있는 이들이 현재 헌법 초안을 맡은 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수용토록 설득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사진: Vittorio Valesquez) 미디 꼰 씨가 확고한 표정으로 자신이 지닌 '불교의 국교화' 신념을 설명하고 있다.
꼰 사무총장에 따르면, 태국 불교는 "내부로부터"도 공격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승려들의 부도덕한 행동이 증가하는 것을 염려하면서, 이러한 일이 불교의 위신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년간 태국 언론에서는 승려들의 음주, 마약 복용, 사창가 방문 등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꼰은 불교의 국교화가 그들이 주장하는 이슬람의 맹공격으로부터 불교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탈도첩(강제환속) 같은 전통적인 관행이 아니라 법률을 통해 "부도덕한" 승려들을 벌할 수 있는 새로운 권력도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작년 말 CPBSR이 출범한 후, 그 의미에 대한 평론가들의 의견은 양분됐다. 한편에서는 전체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불교를 태국의 국교로 인정하는 일은 별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서, 일부 독선적인 개인들의 변덕이라고 보고 있다. <방콕포스트>(The Bangkok Post)가 작년 10월의 사설에서 말한대로, 헌법 초안 책임을 맡은 이들은 "이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보다 중요한 문제들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불교의 국교화 운동이 보다 큰 현안을 반영한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즉, 이 현상이 반-무슬림 정서에서 촉발된 것으로서 불교의 급진화 현상이란 것이다. 이웃국가인 미얀마에서는 지난 2년 동안 불교 극단주의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위라투(Wirathu: 1968년생) 승려 및 강경 불교 민족주의 단체 '마바타'(Ma Ba Tha: 인종종교수호위원회)가 부상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타임>(Time) 지는 2013년 위라투 승려를 소개하면서 "불교도 테러리스트의 얼굴"(The Face of Buddhist Terror)이란 제목을 사용하기도 했다. '마바타'의 로비 활동은 성공하여 정부로 하여금 친-불교 반-무슬림 법안을 제정토록 만들기도 했다.
이제 관심은 태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태국 불교계의 일부 인사들이 극단주의 쪽으로 그네를 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29일, 방콕의 한 사찰 소속 고위급 승려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려, [무슬림 반군 소요사태가 있는 태국 최남단에서] 불교 승려 한명이 살해될 때마다 모스크 1곳씩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태국 북쪽에서부터 시작하여 [무슬림 주류 지역인] 남쪽을 향해 '눈에는 눈'의 보복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로이터 통신>(Reuters)의 작년 11월 보도는 이러한 언급들과 함께 '불교청'(National Office of Buddhism) 대변인 솜차이 수라찻(Somchai Surachatri)의 발언도 인용했다. 솜차이 대변인은 태국에서 언젠가 불교가 "잡아먹힐" 수도 있다면서, 무슬림들이 전국에서 토지를 구입하여 모스크를 짓는 현상을 두려워했다.
태국 최남단 3개 도에서는 2004년 이후 긴장이 고조돼왔다. 이 지역 인구의 다수는 말레이어를 사용하는 무슬림들이다. 이 지역에선 지난 수십년간 자치권을 요구하는 호전적인 무슬림 무장반군 운동이 존재했다. 지난 10년간 이 지역의 소요사태로 살해된 사람은 6천명 이상이다. 그리고 때때로 무슬림 반군들이 불교 승려들을 살해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AP/David Longstreath) 태국 최남단 지방에서, 아침 탁발에 나선 승려를 무장 군인이 경호하고 있다.
영국 '리즈 대학'(University of Leeds) 소속 정치학 교수 던칸 맥카고(Duncan McCargo)는 2009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태국 남부에서 이슬람 무장운동의 재발로 인해 불교가 위협을 받는다는 느낌의 증가"에 관해 묘사했다. 그는 "불교 쇼비니즘"(Buddhist chauvinism: 불교에 기반을 둔 광신적 애국주의)의 발흥이 "불교는 포용적이고 자비롭다"는 기존의 주장들에 반례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본지와의 회견에서, 태국 불교의 국교화 노력은 일부 논평가들이 말하듯 단순히 반-무슬림 정서에만 기인한 것도 아니고, 이웃국가 미얀마에서 불교 극단주의가 성장한 것을 모방한 것에만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CPBSR이 태국 불교의 국교화 운동에서 최초의 단체가 아니란 점을 지적했다. 지난 2006년 9월의 쿠데타 이후 2007년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도 불교의 국교화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는 것이다. 맥카고 교수는 오히려 불교의 국교화 시도들이 태국인들 사이에서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다가가려는 "일련의 집단적인 민족적 불안"이 증가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Reuters/Damir Sagolj) 군사정권 지도자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왕족의 생일 기념 법회에 참석하여 스님에게 예를 표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태국은 기록적인 사회적 변화를 겪었다. '월드뱅크'(World Bank, 세계은행)는 태국의 도시화가 매년 1.4%씩이라고 집계했는데, 이는 역내 평균을 바로 밑도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이 지난 20년간 기록한 바대로, 도시화는 전통적인 삶의 방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족적 결속력은 종종 개인주의에 자리를 내줬고, 공동체적 유대감은 끊어졌으며, 사회 계층 역시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자기 정체성의 상징 역시 변화해야만 했다.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University of Adelaide)의 인류학 교수 제임스 태일러(James Taylor)는 자신의 저서 <태국 불교와 포스트모던 상상력>(Buddhism and Postmodern Imaginings in Thailand)(2008년)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태국에서 도시-농촌 관련 담론은 언론, 교육, 경제, 정치 분야에서 매일 다뤄지고 있고, 그로 인해 태국인들은 항상 이러한 공간적 차이점들을 인식하고 있다."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성장 역시 많은 태국인들의 삶과 생각을 불가역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는 태국인들에게 "진보"의 이익에 관해 끊임없는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태일러는 "그 결과 태국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태국 불교가 역사 및 전통의 모순에 빠져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태일러에 따르면, '근대성'과 서구의 영향력이 태국에 미친 충격은 종종 "세속화 및 [종교적] 미몽의 자각"을 불러일으켰다고 여겨지고 있다.
"[태국] 불교는 점점 더 소외되거나 사적인 문제가 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태일러는 태국의 도시들에서 그가 "시골스런 것들"(country things)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향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특히 태국의 농촌 사회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불교의 전통적 위상에 관해서 더욱 더 그러하다는 것이다.
"도시의 중산층 태국인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시골 및 그로부터의 만족감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이러한 향수는 태국의 많은 도시인들로 하여금 시골스런 삶의 양식을 흉내내도록 만들었다. 시골스럽고 전통적인 의상의 착용이나 주말을 보내기 위한 교외의 주택 구입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는 이러한 현상이 대중문화에도 반영된다. 가령 '낭욘육'(nang yon yuk), 즉 '과거회귀형' 영화 장르 같은 것이 그것이다. 태일러는 이런 현상이 사회 변동이 있는 시기에 나타나는 영속성에 대한 추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자신감 없는" 태국인들이 불교에 매달리도록 하는 현상이라면서, 태국에서 불교는 오랜 동안 "태국다움(Thai-ness)의 징표" 역할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해외 망명 인사인] 빠윈 차차왈퐁판(Pavin Chachavalpongpun)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현재 일본 '교토대학'(Kyoto University)의 '동남아시아 연구센터' 부교수로 재직 중인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국 사회가 주요하면서도 취약한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불교 극단주의가 사회적 사고를 주도할 길을 찾아냈다."
빠윈 부교수는 불교의 국교화 선언이 태국인들에게 자기정체성에 관한 지속적인 참조점으로 작용하면서 비교적 많은 갈구를 보이고 있는 안정감의 일부를 제공할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불교에 기반한 국가성 정서를 고조시킬 것이다. 이후 그것은 민족주의 정서로도 나아갈 것이다."
한편, 맥카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교의 국교화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과거의 확실성과 단합으로 회귀하려는 시도에 부분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또한 이제는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어 보이는 '태국다움'의 존재를 구체화시키고 강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사회만은 아니다. 태국은 정치적 변화도 경험 중인데, 혹자는 그것을 '정치적 무정부 상태'라고도 말한다.
지난 50년 이상의 기간 동안, 태국은 하나의 정치 위기가 또 다른 정치 위기로 넘어가는 현상에 휘청거렸다. 하나의 정치 위기가 지닌 수명은 선거로 선출된 정부가 군부 쿠데타로 전복되는 방식이었을 뿐이다. 가장 최근의 갈등은 지난 2006년에 시작됐다. 선거로 선출된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1949년생) 총리가 쿠데타로 실각한 것이다. 이 사건은 소위 친-탁신파 '레드셔츠'(UDD)와 반-탁신파 '옐로셔츠'(PAD)라 불리는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했다. '옐로셔츠' 세력은 보수적인 도시 중산층과 현재의 군사정권에 힘을 싫어준 엘리트 계층이다. 맥카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국이 절망적인 양극화 정치로부터 탈출할 출구가 없다는 정서가 존재한다."
빠윈 부교수는 이러한 정치적 혼동에 약간의 안정감을 제공할 수도 있는 한 방법이 불교를 사회적 구심점으로서 증진시키는 것이 될 수도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국이 특히 현재는 군부에 의해 장악된 상태이다. 따라서 보다 복종적인 사회를 필요로 한다. 불교가 그러한 의제를 충족시키는 데 이용될 수도 있다."
빠윈 부교수가 꼰 사무총장과 CPBSR이 성공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학자 위짝 빠닛(Vichak Panich)도 작년 10월 <방콕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 정부는 왕실모독죄(lese majeste)를 사용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불교의 국교화)을 자신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군사정권이 질서유지와 반대자 탄압에 불교를 이용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개혁될 수 없을 것이다. 던칸 맥카고는 지난 2004년에 발표한 논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태국의 불교 승가(sangha)는 논평이나 논증 없이 국가 권력을 합법화시키는 가운데 국가와 협력하면서 오랜 기간 비판을 받지 않았다."
만일 불교가 태국의 국교로 지정된다면, 안정이 결여된 이 나라에 약간의 안정은 만들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국사정권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국교화 조치가 통제 가능할 정도의 안정감이 되진 못할 것이라 주장할 것이다.
또한 이미 위험한 단계에 이른 최남단 3개 도의 소요사태가 더욱 고조될 것이란 매우 현실적인 우려도 존재한다. 이 지방들에선 많은 무슬림들이 정부로부터 소외당하고 탄압받는다는 정서를 갖고 있다. 맥카고 교수는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았다.
"불교의 국교화에 대해 엄청난 주류 인구가 떠들어대는 현상이 불길한 징조라고 느껴진다."
탐마까이 종단과 승왕 추대
'탐마까이(담마까야) 운동'(Dhammakaya movement)은 방콕 근교인 빠툼타니(Pathum Thani) 도에 위치한 화려한 외관의 '왓 프라 탐마까이'(Wat Phra Dhammakaya) 사원을 본부로 하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교세를 성장시킨 종단이다. 이 종교운동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아주사(Azusa)에 '담마까야 개방 대학'(Dhammakaya Open University: DOU)을 설립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40곳의 지부를 두고 있다.
1990년대 '탐마까이 운동'의 명성이 부상하던 시기부터, 태국인들 사이에서는 [이 사원의] 물질주의 조장에 관한 논쟁이 촉발됐다. 많은 비판자들은 이 종단을 비밀스럽고 상업적인 컬트(광신)로 명명하면서, 이 운동이 왜곡된 해석의 불교를 가르치면서 신자들을 어리석게 만들어 더 나은 다음 생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방콕포스트>의 한 칼럼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탐마까이 종단은 개인이 얻게 될 공덕(범어-puṇya, 빨리어-puñña, 功德)의 양이 탐마까이 종단에 기부(보시)하는 재물의 양에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탐마까이 종단'이 실각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권력 기반이라는 주장들도 제기돼왔다. 이러한 주장은 대단히 논란이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사실일 경우 친-탁신 '레드셔츠 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지만 이 종단에 대한 비판론자들을 포함하여, '탐마까이 종단'이 태국 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관해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이제 이 종단은 불교 승단의 모든 직제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3년 10월, 태국 승려들의 수장 니야나상와라 수와다나(Nyanasamvara Suvaddhana, 솜뎃 프라 냐냐상완[สมเด็จพระญาณสังวร]: 1913~2013) 승왕이 세수 100세로 입적했다. [그는 24년 동안 승왕의 지위에 있었는데] 그의 다비식은 작년 12월에 거행됐다. 2014년 1월 14일, 태국 불교 최고의 의사결정 기구인 '승가 최고회의'(Supreme Sangha Council: SSC)는 솜뎃 프라 마하라차몽칼라찬(Somdet Phra Maharatchamongkhalachan, 솜뎃 추웡[Somdet Chuang]: 1925년생) 스님을 승왕 후보자로 추대했다. 솜뎃 추웡 승왕 대행은 올해 90세로서 '왓 빡남 파시짜른'(Wat Pak Nam Phasi Charoen)의 주지이다.
솜뎃 추웡 스님이 승왕 후보자가 된 이후 몇 달 동안, 그의 지명을 강력히 반대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났다. 이유는 그가 '탐마까이 종단'과 고의적으로 관련을 맺었다는 것과 [그의 명의로 된 클래식 빈티지 벤츠를 둘러싼] 탈세 논란이다. 사회 비평가 술락 시와락(Sulak Sivaraksa, 술락 시바락사: 1933년생)은 <방콕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만일 솜뎃 추웡 스님이 승왕이 될 경우 "태국 불교의 암흑기가 도래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제 솜뎃 추웡 후보의 승왕 임명은 정부측의 공식적인 수용 여부를 기다려야만 한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그의 추대를 수용하리란 보장은 없는 상태이다. 특히 솜뎃 추웡 승왕 대행이 반-군부 '레드셔츠 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 때문에도 더욱 더 그러한다.
지난 달 쁘라윳 짠오차(Prayuth Chan-ocha) 총리 앞으로 170만명이 서명한 탄원서가 제출됐다. 이 탄원서는 솜뎃 추웡 승왕 후보의 지명을 인정하지 말고, '승가 최고위원회' 대신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1927년생) 국왕에게 다른 승왕을 선임할 수 있는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사진: Dario Pignatelli/Polaris) '왓 프라 탐마까이' 사원에서 진행된 종교행사에 참석한 승려들. 이 신흥종단의 신자들 중에는 신흥 부유층 및 최고위급 정치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헌 법
2014년 5월 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은 기존의 헌법을 폐지시켰다(역주: 폐지된 헌법도 원래 2006년 쿠데타 후 군사정권이 만든 헌법이었음. 따라서 향후 등장할 신헌법은 그보다도 더욱 독소조항이 많은 것임은 쉽사리 예견되는 일임). 그리고 장황한 국가 입법회의(National Legislative Assembly: NLA)와 '헌법초안위원회'(Constitution Drafting Committee: CDC)로 하여금 새로운 헌법을 초안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역시 군사정권이 구성한 '국가개혁회의'(National Reform Council: NRC)는 작년 9월 CDC가 작성한 개헌안을 부결시켰다.
이때 부결된 헌법안에는 "전문가들"과 더불어 군부의 고위 장성들로 구성되는 위원회 설치 조항이 들어 있었는데, 이 위원회는 "국가적 위기"의 때에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또한 상원을 부분적으로만 선출직 기구로 만드는 조항도 들어 있었는데, 총 200명 중 123명만 선거로 뽑자는 내용이어서, 많은 이들로부터 비민주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작년 9월 개헌안 부결 이후, 다시금 헌법 초안을 작성하기 위한 새로운 CDC가 설치됐고, 이 기구는 4월 중으로 새로운 헌법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민주적인 총선은 최소 2017년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 참조용 게시물
- [칼럼] 태국 불교의 '국교화' 요구 : 경쟁력 상실한 불교의 마지막 탈출구 (New Mandala 2016-1-15)
- [칼럼] 태국 승왕 후보자의 벤츠, 그리고 태국 불교의 물신화 (GlobalPost 2016-3-1)
* 상위화면 : "[기사목록] 2016년 태국 뉴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울트라-노마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3.14 이 사안이 대단히 복잡한 것이..
솜뎃 추웡 승왕 및 탐마까이 사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불교의 국교화를 부르짖고 있다는 것인데..
불교의 국교화가
기존의 친-탁신, 반-탁신 진영을 아우르며
제3의 동력으로 출현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죠..
아주 복잡합니다..
전체적인 지형을 정확히 파악해보기 위해
앞으로도 더 살펴볼 예정입니다. -
작성자Maipenrai 작성시간 16.03.15 태국의 현상황과 불교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보아즈 작성시간 16.03.18 그렇군요. 정치적 의도를 가진 자들이 왕족 이나 불교를 등에 엎고 또 어떤 일을 벌일지 ,,, 참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