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이유경 기자 블로그 2015-10-10 인종정치 선동하는 여권, 보스정치 구태 못벗는 야권 아래 기사는 <한겨레21> 제1081호 (2015.10.07)에 실린 “인종시위 배후는 총리”의 긴 버전입니다. 몇 가지 오자도 수정하여 게재합니다. – 필자 주 말레이시아 레드셔츠, 인종혐오 선동하며 나집총리 지원 (사진) 2013년 더 많은 득표를 하고도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말레이시아 야당과 시민사회는 연일 정치개혁을 외쳤다. 2년이 지난 현재 총리의 부패스캔달까지 터지면서 다시 개혁요구가 거세다. 그러나 ‘인종정치’라는 해묵은 변수가 발목을 잡는 가 하면 야당은 보스정치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 Lee Yu Kyung)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압둘 라만(70)은 최근 한 거리집회에 질색했다. “왜 인종 문제를 건드리는지 모르겠다. 의제도 목적도 없이 모여 중국계 탓만 하고 있다.” 압둘이 질색한 집회는 9월16일 말레이시아 연방기념일에 모였던 일명 ‘레드셔츠’(타이 레드셔츠와는 무관) 시위를 말한다. 압둘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말레이민족연합기구(UMNO·United Malay National Organisation)의 열성 당원이었다. 지구당 위원장까지 지냈으나 “투명치 않은” 당 운영을 이유로 UMNO를 떠났고 10년 전부터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Pan-Malaysia Islamic Party)을 지지하고 있다. 말레이 민족주의 정당과 이슬람 정당을 두루 거친 그는 ‘말레이 무슬림’의 한 전형이다. 압둘이 정당 활동을 하던 80년대나 25년이 흐른 지금이나, 말레이시아 연방이 출범한 63년도나 말레이시아 여당은 변함없이 UMNO다. 57년간 교체되지 않은 권력은 이제 부패의 대명사가 됐다. 이런 가운데 7월초 탐사보도 인터넷 언론 자라왁 리포트(Sarawak Report) 는 국영투자회사인1MDB (1 Malaysia Development Berhad)의 공금 7억달러가 나집총리 개인통장으로 들어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다국적으로 얽힌 ‘1MDB스캔달’ 에 미 미연방수사국(FBI)까지 수사에 나섰다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최근 보도다. 게다가 <알자지라> 가 2006년 발생한 몽골 출신 모델 샤리부긴 알딴투야 (Shaariibuugiin Altantuyaa) 의문사에 나집 총리가 무관하지 않다는 다큐를 방영하면서 나집을 둘러싼 스캔들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나집 정권과 UMNO는 당내분열까지 겪으며 건국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바로 이때 레드셔츠가 등장했다. 야당인 인민정의당(PKR) 의 티안추아 (Tian Chua)부대표는 레드셔츠의 배후를 “의심할 여지 없이 나집”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연루된 범죄 수위가 높아 자신이 사퇴하면 측근 다수가 감옥에 가야 한다. 그걸 막기 위해 버틸 것이고 버티는 동안 인종카드는 계속될 것이다” (사진) 9월 16일 쿠알라룸푸르 거리에 익명의 벽보가 나붙었다. “중국계”와 “피바다 2탄”을 담은 포스터는 인종혐오를 조장하고 있는 레드셔츠의 성격을 분명히 해주었다. (Source : Internet) ‘피바다 2탄’ 예고한 레드셔츠 레드셔츠는 8월 말레이시아 정치개혁운동인 ‘베르시(Bersih) 4’가 나집 하야 목소리를 낼때와 맞물려 모습을 드러냈다 (베르시 1,2,3차는각각 2007, 2011, 2012). 그리고 9월 6일, 섬찟한 문구를 담은 익명의 벽보가 쿠알라룸푸르 시내 나붙으며 레드셔츠의 본색은 드러났다. “베르시 중국놈들은 꺼져라 / 피바다 2탄” 암시하는 바가 뚜렷했다. 말레이시아의 어두운 역사로 남아 있는 1969년 5월 13일 인종폭동의 기억을 끄집어낸 게다. 그해 5월 10일 치뤄진 선거에서 UMNO 가 포함된 집권연정 ‘동맹’(Alliance) 이 총선에서 패하자 동시다발적 폭동이 일어났다. 공식사망자는137명이지만 외교가 정보는 6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희생자 절대 다수는 중국계였다. “레드셔츠는 UMNO내 극우정파다. 한 단체는 아니고 각기 다른 ‘보스’가 이끄는 그룹들이 모인거다. ‘말레이 무술단’을 이끌던 전 말라카 주정부 장관 루스탐 알리(Mohd Rustam Ali)도 있고, (쿠알라룸푸르외곽타운) 성아이 베사르(Sungai Besar)의 UMNO 지구당 위원장 자말 유누스처럼 악명높은 인물도 있다” 정치평론가 웡 칭 후앗(Wong Chit-Huat)의 설명이다. 웡은 UMNO가 필요에 따라 페르사카(Persaka)나 이스마(ISMA, 말레이시아무슬림연대)같은 극우단체에 ‘말레이민족주의’ 선동임무를 부여해왔다고 말했다. 그 임무가 지금 페르사카에서 다시 UMNO 극우정파로 이동했다는 것. 이유가 흥미롭다. 페르사카는 나집총리 하야에 목소리를 높이며 베르시 집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던 UMNO의 거물, 마하티르 전 총리를 추종하기 때문이다. 마하티르는 8월 말 베르시 집회현장에 나타나 베르시 주장을 지지하는 건 아니라고 못박았다. 나지브의 사퇴를 요구할 뿐. 마하티르가 ‘ 나집 타도’ 에 나선건 가볍지 않은 이유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자신의 아들과 그측근을 UMNO주도세력으로 키우기 위한 행보라는 지적이다. 마하티르 아들로 케다주(Kedah) 주 장관인 무크리즈 마하티르 (Mukhriz Mahatir)는 케다 주 공항 건설과 주정부 예산문제를 두고 나집 총리와 갈등관계에 있다. PKR 티안추안 부대표는 아들밀어주기 시나리오를 “배제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마하티르 행보를 설명하는 게 불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마하티르는 한국의 독재자 박정희같은 인물이다. 자신의 집권 기간 개발독재로 이루어놓은 경제 성장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나라를 부흥시킨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은데 나집이 자신의 공적을 파괴하고 있다고 보는 거다” (사진) 2013년 5월 총선이후 개최된 한 집회장에서 인도(타밀)계, 중국계, 말레이계 등 세 인종의 사회자들이 공동 사회를 맡고 있다. 다민족 국가 말레이시아는 인종 화합을 도모하려는 시민사회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인종정치가 잠재적 갈등 변수로 남아있다 (© Lee Yu Kyung) 마하티르가 나지브 사퇴를 외치는 이유 레드셔츠와 나집 총리의 관계는 916 집회 현장에서 확인됐다. 우선 이날 집회에 차관급 인물이자 나지브 충성파로 알려진 아흐마드 마슬란(Ahmad Maslan)이 참가했다. 또 <말레이시아인사이더>보도에 따르면 이날 또 다른 참석자 UMNO 국회의원 아누아르 무사(Aunar Musa)는 나집 총리와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Ahmad Zahid Hamidi) 부총리의 ‘감동의 연대사’까지 전했다. “나집 총리로부터 방금 전화를 받았다. 모두에게 안부를 전하라신다. 총리, 부총리 모두 거대한 인파의 평화로운 시위에 가슴이 뭉클하시다고” 그러나 시위는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경찰은 차이나 타운 바리게이트를 뜯어내려는 레드셔츠를 향해 물대포를 쐈다. “말레이 존엄”을 내건 레드셔츠 집회 한 참가자는 취재진을 향해 “미친 중국 돼지”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역사적 데자뷔가 하나 있다. 나집총리 부친이자 2대 총리를 지낸 압둘 라작 후세인(Abdul Razak Hussein)은 69년 5.13 폭동 당시 부총리였다. 폭동의 역사를 기록한 <May 13> 저자 쿠아키아 숭은 43쪽에서 이렇게 적었다. “외교가 기밀 문서와 외신기자들의 전송기사들은 부총리였던 (시니어) 라작이 폭동 시작부터 (15일) 비상사태선포시, 그리고 513이후 통제권을 전면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고 기술한다” 같은 책 61쪽은 또한 “폭동이 발발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권력이 부총리 라작에게 돌아간 건 쿠테타를 음모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적었다. 그리하여 1대 총리 툰쿠 압둘 라흐만은 사임했다. 그리고 통제권을 장악한 (시니어) 라작 정부는 의회를 해산하고 국가작전평의회(National Operational Council)이라는 비상국가체제를 운영했다. NOC는 영국식민시대 유산인 ‘선동죄’를 개정하여 소위 부미푸트라(‘본토민’이라는 뜻) 보호장치인 헌법 153조에 대한 의문도 원천봉쇄했다. 문제제기가 곧 선동죄가 되버린 개정안은 71년 재 소집된 의회를 통과하게 된다. 부미푸트라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구체적 정책안들이 ‘신경제 정책’(NEP)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도 폭동의 후속조치였다. 명목은 빈곤퇴치, 주류 말레이 빈곤층에게 혜택을 주어 중국계에 쏠린 부의 균형을 잡겠다는 취지다. ‘513 인종폭동’ vs. 916 레드셔츠
한편, 레드셔츠는 지난 9월 25일 차이나 타운 짝퉁상점을 단속하겠다며 또 다른 집회를 경고했다. 그러나 집회는 취소됐고 그 거리에 나타난 건 3일전 출범한 신야권연대인 ‘희망연대’(Pakatan Harapan, PH) 소속 정치인들이었다. ‘희망연대’의 등장은 기존의 야권연대인 ‘인민동맹’(Pakatan Rakyat, PR)의 실패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인민동맹은 안와르 이브라힘의 인민정의당 (PKR), 중국계 중심이지만 다민족정당과 ‘사민주의’를 표방하는 민주행동당 (DAP) 그리고 이슬람주의 정당 PAS 등 제법 이질적인 세 정당의 연대체였다. 그러나 PAS가 최근년간 이슬람 율법에 의한 형벌을 담은 ‘후두드(Hudud) 법안’을 추진하면서 DAP와 큰 갈등을 빚어왔다. 게다가 이질적 야당을 한 울타리 안에 묶을 수 있었던 유일한 정치인 안와르 이브라힘이 지난 2월 동성애 혐의로 재수감되면서 인민동맹은 사실상 깨진 거나 다름없었다. 새로 출범한 희망연대는 PAS내 ‘진보정파’로 분류되다 최근 분당한 Parti Amanah Negara(PAN), 일명 “아마나 파”와 기존의 PKR, DAP가 모인 연정이 됐다. 그러나 희망연대는 출발부터 미숙한 정치력과 보스정치의 잔해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사진) 2013년 총선 직후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말레이시아 야당정치인 안와르 이브라힘 (가운데). 90년대 말 부총리였던 안와르는 당시 총리였던 마하티르와 관계가 틀어지면서 동성애 혐의로 거듭 기소됐고 정치개혁운동의 상징이 됐다. 2006년 안와르 패밀리와 그의 측근이 창당한 인민정의당 (PKR)의 당수는 그의 아내(오른쪽)인 완 아지자이고 그의 딸 누룰 이자가 당의 부대표로 있다. 말레이시아 신 야권연대 ‘희망연대’는 지난 달 22일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아무런 정책적 노선이나 설명도 없이 안와르 차기 총리만을 못박았다. 보스정치의 폐해가 야권에서도 반복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 Lee Yu Kyung) 22일 8분 남짓했던 출범기자회견에서 이들이 발표한 건 딱 한가지다. 정권이 교체되면 현재 동성애 혐의로 수감중인 안와르 이브라힘이 차기 총리라는 것.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 마이크를 독점한 건 안와르의 부인이자 PKR대표인 완 아지자 (Dr.Wan Azizah) 였다. “사람들이 희망연대가 국민을 위한 연정이 아니라 ‘안와르 차기 총리만 위해 모인 그룹’이라고 비아냥 거리고 있다. 발표할 것도 없으면서 기자회견부터 해버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PKR 당원의 쓴 소리다. 희망연대는 또한 정치개혁 운동의 파트너였던 시민사회 대표들을 기자회견 직전 토론에 초대해놓고 토론없이 기자회견만 서둘렀다. 베르시의 상징적 인물 마리아(Chin Maria Abduallah)와 암비가(Ambiga Srenevasan)는 이에 대한 항의로 현장에서 퇴장했다는 후문이다. 개혁운동의 또 다른 파트너였던 말레이시아 사회당 (PSM)은 초대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 헌법 153조가 다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PSM이 이 조항을 반대해서 초대받지 못했다는 발언이 야권연대 주요 인물의 발언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PSM 전 사무총장 아룰셀반은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153조가 대단히 민감한 이슈라 운을 뗐다. 그는 “153조를 거부하는 건 인종갈등을 조장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우리 당은 이 조항을 반대한적이 없다. 153조는 비본토민도 동등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해석의 문제다. 우리당은 ‘차별철폐’를 내건 정책이 ‘인종’에 기반한 게 아니라 ‘계층’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계층에 혜택을 부여하면 어차피 말레이 중간층이 진정한 수혜자가 된다” 국회에 1석을 확보한 PSM 은 지난 해 2월 사회포용법안(Social Inclusion Act)을 발의한 바 있다. 국가의 ‘빈곤퇴치정책’을 모니터 하자는 취지의 법안으로 사실상 부미푸트라 정책의 모니터를 의도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포용법안은 여당의 거부로 묻혔다. “수십년 부미푸트라 정책을 시행해도 다수 말레이는 여전히 가난한다. 40년을 넘게 이어온 정책이 실패했다면 재검할때가 된 거 아닌가?” 익명의 PKR 당원은 이 정책이 보호하는 건 부미푸트라가 아니라 정치엘리트와 그측근들이라 꼬집었다. 웡 박사는 이 정책을 민주주의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말레이계는 UMNO가 정권을 잃게 되면 말레이 커뮤니티의 이익이 훼손받을 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아이러니다. 민주주의는 숫자게임이고 보통은 소수자들이 민주주의가 다수의 횡포로 전환될까 두려워하는데” 그는 베르시 운동이 이러한 말레이 민족주의자들을 설득시켜 민주주의가 그들에게 바람직한 시스템이라는 걸 각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민주권력은 다수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으니 그 ‘숫자’를 믿어야 한다고. 그런면에서 ‘말레이 무슬림’의 전형을 보인 압둘은 민주주의의 상식을 굳건히 믿고 있는 일인이다. “절대권력을 믿지 않는다. 바꿔서 잘못하면 또 바꾸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 기사원문 보러 가기 클릭 이유경 기자 Lee@Penseur21.com
* 카페 내 관련기사 - 분석 : 부패 혐의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의 여권 내 고립 가능성 (The Guardian 2015-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