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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구름의 남쪽, 운남여행 - 호도협 2 ( 차마객잔에서 티나객잔까지)

작성자미감|작성시간16.03.30|조회수528 목록 댓글 5



2016111일 월요일 - 운남여행 8일째 




강화도의 산은 해발고도가 낮다. 가장 높은 산인 마니산도 460여 미터밖에 되지 않고 그 외 진강산, 고려산, 혈구산 등등도 400미터 급에 불과하다. 강화도는 섬이다 보니 그렇게 해발고도가 낮은 것이다.

 

우리가 갔다 온 중국 운남성의 쿤밍, 따리, 리쟝 등은 해발고도 2000미터 급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리쟝의 옥룡설산은 히말라야 산군의 하나로 5천 미터도 넘는 높은 산이다. 또 호도협도 3천 미터 내외의 산자락을 걷는 것이라서 고산증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고산증이란 높은 산에 올라갈 때 나타나는 병적인 증세를 말한다. 높은 산에서는 기압도 낮을 뿐만 아니라 공기 속의 산소도 희박할 것이다. 그래서 피로해질 뿐 아니라 두통 등이 오고 더 심하면 현기증 등이 오기도 한다. 고산증을 막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게 좋다. 즉 갑자기 고도가 높은 산에 오르지 말고 미리 2~ 3천 미터 쯤에서 고산에 대한 적응을 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리 쿤밍과 따리를 거쳐 리쟝으로 왔다. 그곳이 리쟝보다 해발고도가 낮은 곳이니 서서히 고도를 높여온 셈이다.

 

히말라야 산군이 펼쳐져 있는 네팔 트레킹도 하는데 그까짓 걸 가지고 대책을 세울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지만 우리보다 두어 달 전에 그곳을 다녀온 분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대비를 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그 분은 옥룡설산 트레킹을 갔다 온 후 얼굴이 퉁퉁 부었다고 한다현지에서 고산병을 예방하는 약을 사서 먹었는데도 한국으로 돌아온 뒤 증상이 나타나서 여러 날 병원에 다니며 고생을 했다고 그랬다. 또 일행 중의 한 명은 머리가 어지럽고 메스꺼운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서 산을 오르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그 분의 말을 듣고 예방약을 챙겼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몸에 탈이 생기면 큰일이니 미리 준비를 한 것이다.


산에 오르기 하루 전부터 미리 약을 복용하라고 약사는 말했다. 우리는 옥룡설산의 4600미터 쯤까지 올라가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약을 챙겨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설마 호도협 트레킹 중에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 정도 높이에서는 고산증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약을 챙겨먹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만 김쌤이 탈이 나고 말았다.


김쌤의 말에 의하면 머리가 무겁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 한 발자국도 떼어놓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김쌤은 애써 고산증이라고 강변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처음 출발할 때부터 김쌤은 욕심을 냈다. 산으로 들어가기 전 약 한 시간 정도 시멘트 포장길을 걸었는데, 빨리 산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속도를 냈던 게 고산증이 온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는 집들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그곳은 엄연히 해발 고도가 3000 미터에 달하는 고지대다. 또 그는 걷기를 즐겨하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무리를 했으니 당연히 고산증이 올 수밖에 있었겠는가.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해가 들어오지 않아 어둠이 머물러 있다.

여기는 중도객잔. 전날 밤에 잤던 차마객잔으로 부터 두 시간 가까이 떨어져 있는 곳이다.)




(산협의 아침은 추웠다.

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한기를 쫓고 있는 중국 사람들.)
















호도협은 중국 운남성에 있는 깊은 협곡으로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서구인들에 의해 알려졌지만 지금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길이다. 차마고도 옛 길이기도 한 이 길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은 걷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래서 하룻밤 묵어가는 객잔에는 한국인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길을 걷는 도중에는 한국 사람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큰 배낭을 등에 지고 걷는 서양 젊은이들을 더 많이 보았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호도협 전 코스를 걷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우선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모처럼 마음을 내어 해외여행을 왔는데 오로지 걷기에만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다. 그것 말고도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며칠씩 길 걷기만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일박이일 일정으로 호도협 걷기를 마무리한다. 그것도 걷기에 편한 곳까지 차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시작하니 어찌 보면 걷는 것을 즐기기보다는 호도협을 갔다 왔다에 더 방점을 찍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갔다 온 사람들이 올려놓은 정보들을 보니 호도협 초입부인 차우터우에서 길 걷기를 시작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모두 대절한 차를 타고 어느 정도 가서 그곳에서 길을 걷기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또 반대 방향에서 차우터우를 향해 걸은 사람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도협 하면 당연히 나시객잔이나 중도객잔에서 시작해서 리쟝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탈 수 있는 티나객잔에서 끝내는 것으로 통용이 되고 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은지 티나객잔에서 출발해 차우터우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으니 도중에서 만날 확률이 많지 않지만 서양 사람들은 반대 방향에서 오는 경우도 있으므로 도중에서 만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호도협을 걸으면서 한국 사람보다 서양 사람들을 더 많이 보았다. 물론 그래봤자 하루에 대여섯 명에 불과했지만 같은 길을 걷는다는 동질감에 호의를 담은 인사를 나누고는 했다.

 

그러다가 한국의 젊은이를 보았다. 모두들 힘들어하는 ‘28밴드를 오르는데 한참 떨어진 뒤에서 한국말이 들려오지 뭔가. 그들은 얼마 안 가 우리를 따라잡았다. 우리가 등산화에 아웃도어 차림인 것에 비해 그들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아웃도어 일색인 중장년층 한국 여행객만 보다가 일상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보니 신선했다. 그들도 우리를 보니 반가운 지 아는 체를 하며 인사를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함께 걸었다.

 

두 젊은이는 호도협으로 오는 버스에서 만나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왔다는 그들은 방학을 이용해 여행 중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여학생은 하얼빈대학에서 일 년 동안 공부를 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한국에 가기 전에 중국을 여행 중이라는 그녀의 말이 참 신선하게 들렸다. 남학생은 인천이 집인데 알고 보니 아버지의 근무지가 강화도였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 수 있는 곳이 강화도인데, 그 학생의 아버지 역시 알려면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학생이 마치 내 아들이기라도 한 양 가깝게 여겨졌다. 그 학생은 지난 9월에 중국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왔는데, 역시 방학을 이용해 한 달 동안 중국과 동남아를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 젊은이들을 보니 참 대견했다. 청년들은 멋있고 세련된 맛을 풍기는 곳, 일테면 유럽이나 오세아니아 같은 곳을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먼지가 풀풀 이는 길을 하루 종일 걸을 젊은이들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배낭을 둘러맨 채 묵묵히 길을 걷는 젊은이가 있었으니 얼마나 예쁘게 보였겠는가.

 

힘든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시험하고 단련할 그들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밥을 한 끼 샀다. 한국에 있는 그 젊은이들의 부모님을 대신해서 맛있는 음식을 한 끼 먹였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명단을 일러 '버킷 리스트'라고 한다. 딸은 아프리카를 꼭 가보는 게 자기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버킷 리스트는 뭐예요?” 하고 물었다.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라 대답할 말이 별로 없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는 게 내 버킷 리스트일까? 아니다. 그 정도를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소망 축에 끼울 것까지는 없다. 그보다는 더 중요한 것, 아니 꼭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에는 뭐가 있을까? 딱히 떠오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저께 문득 이루고 싶은 게 떠올랐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내 버킷 리스트가 생겼다.

 

남편의 가까운 친구 중 한 분은 노환으로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부모님을 이태 째 모시고 있다. 대개의 경우 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수순인데 그이는 그렇게 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돌보고 있다. 보기에는 그닥 어려울 것 같지 않지만 왜 어려움이 없겠는가. 그중에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도 큰 어려움 중의 하나일 것 같다.

 

그이는 전부터 한 번 놀러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곳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거리상으로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계신 곳이 파주시 장단면의 민통선 안 동네이니, 그곳은 육지 속의 섬이나 마찬가지여서 아무나 또 아무 때나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서울에서 60여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그곳은 너무나 먼 곳으로 사람들 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다.

 

삼월 초순에 임진강 너머 민통선 안에 있다는 그곳을 찾아 나섰다. 내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도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들이 있는데, 왜 파주시 장단면의 그 마을은 더 멀고 어렵게만 생각했을까. 전쟁과 분단의 기억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곳이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멀고 먼 곳으로만 생각했던 파주시 장단면의 통일촌 해오름마을(?)을 찾아갔다.   

 

일산대교를 건너 자유로를 달린다. 개성과 평양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도료 표지판을 보니 신기했다. 이대로 계속 달리면 개성도 가고 평양도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단 한 번도 그곳을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곳은 지도상에는 있지만 우리 의식 속에는 없는 그런 곳이다.


오두산 전망대를 지나니 넓게 펼쳐져 있는 임진강 하구 너머로 북녘의 산이 보였다. 그곳을 바라보다 문득 김쌤에게 말했다. ", 버킷 리스트가 생겼어. 북한 땅을 걷고 싶어. 앞으로 이십 년은 잘 걸을 자신이 있으니, 그때까지는 통일이 되지 않을까? 아니, 지금처럼 이렇지 않고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면 북한 오갈 수 있을 거야. 북한을 걸을 거야."  

 

내 말을 듣던 김쌤이 픽 웃었다. 남과 북이 일촉즉발로 대치하고 있는 20162월 지금의 상태로 봤을 때 가당키나 한 소리냐는 뜻이리라.   

통일은 손님처럼 올 수도 있다는데, 설마 20년 뒤까지도 지금처럼 이럴까.


아프지도 말고, 죽지도 말고, 그래서 개성에도 가보고 평양도 가봐야지.

나들길을 걷고 차마고도 호도협을 걷고 그리고 히말라야 트레킹도 가봐야지.

북녘 땅도 물론 걸을 거야.

그날 나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한 가지를 만들었다.

 

   






전에 어떤 분이 쓴 글에서 '산협'이라는 단어를 보고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높고 험한 산의 깊은 골짜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도 산골짜기를 나타낼 수 있지만 굳이 한자어를 쓴 것은 필자가 한자어에 익숙한 나이대의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 단어만이 나타낼 수 있는 느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험하고 깊은 산의 골짜기를 나타내기에는 산협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호도협을 보면서 과연 이것을 어떻게 말로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놓은 산도, 또 그렇게 깊고 험한 골짜기도 우리나라에는 없다. ‘산이 높고 골짜기는 깊고 험하더라.’라는 말로 호도협을 다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것이 언어가 가진 한계이다. 그나마 산협이란 말로 표현을 하니 뭔가 그럴듯하다. ‘언어 사대주의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호도협은 산골짜기가 아니라 산협이 적합한 표현일 것 같다. 그만큼 깊고 험하다는 뜻이다.





산협의 아침은 묵직하고 깊었다. 날은 밝았지만 해는 아직도 이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해가 들어오자면 두세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신행을 떠나는 새색시처럼 순결한 아침이다. 깊고 묵직한 아침과 대면한 우리는 말없이 길을 나섰다. 지금 시각은 오전 730분이다.

      

전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산증으로 초죽음이 되어 있던 김쌤이 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싱그럽다. 앞서 걷는 그의 등이 말을 한다. '다 좋다,  다 좋다'고 내게 말을 한다. 

 

깊고 푸른 호도협에서 그는 별과 만났다.

앞산 등성이에 촘촘하게 별이 박혀 있었다.

와사삭 부서지며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그는 별을 만나러 갔다.


별은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어떤 사람에게 별은 꿈 꾸는 이상이며 지향점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먼 시원을 향한 노스탤지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일상과는 떨어져 있다. 별은 어두워져야만 볼 수 있고 우리의 꿈과 이상향 역시 일상 속에서 늘 함께 하지는 않는다. 잠깐씩 멈춰 바라볼 때 그때 문득 문득 생각나는 게 꿈이고 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별이 없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가 품고 있는 소망 또한 그러하다  

 

김쌤에게 별은 무엇일까. 아니, 김쌤은 왜 별을 보고 싶었던 걸까. 호도협을 걸으러 가는 사람들 중에 그 누가 별을 보러 갈 생각을 할까. 모르긴 몰라도 백의 한 명도 그런 소망을 품고 호도협 트레킹을 하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쌤은 그랬다.

별을 볼 생각으로 호도협을 가슴에 품었다고 했다.


(좀 쉬었다가 나중에 마저... 쓰겠습니다.

여기는 김포시 풍무동 스타벅스 커피점입니다.

글쓰기에 참 좋은 곳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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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남취당의 한옥이야기 | 작성시간 16.03.30 제가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제가 하고픈 여행도 길 위에서 걷고 느끼고 하는 거.
    차창밖의 화려한 풍경에 감동하기 보다 작은 일상을 보고 느끼는 여행.ㅎ
  • 답댓글 작성자미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02 남취당님이 걸어가는 길은 늘 새롭고 싱싱하고 생기발랄해 보여요.
    보는 이로 하여금 여행을 하는 듯하게 해줍니다.
    이 봄에는 또 어떤 새로움이 찾아올까 기대가 됩니다.
  • 작성자가망불망 | 작성시간 16.04.04 정말 멋집니다. 탐욕과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가보고 싶네요.
  • 답댓글 작성자미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05 만년설을 이고 있는 설산이 참 멋지지요?
    이 산을 보니 또 다른 꿈이 생기더군요.
    히말라야 산군들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꿈...
  • 작성자미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5.01 여기까지 써놓고 여태껏 들여다 보지도 않았네요.
    마무리를 지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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