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머리 속에 귀신 달라붙어 있는듯 어떤 인간이 달라붙어 있어 그걸 떨쳐버리려고
종일 장자를 읽었다.
장자의 逍遼遊((소요유) 1장에는 한번 날개를 펴면 구만리 꼭대기까지 오르고 그 날개의 크기가 하도 커서 하늘의 한쪽을 덮은 구름같고 바람을 타고 날면 6개월이나 나는 붕새 이야기가 나온다.
한마디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절대자유의 경지를 노래한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덕의 부족함과 학문의 미완성과 의를 실천하지 못함과 不善을 고치지 못함을 걱정 근심하며 살았다. 이것을 유교의 憂患(우환)의식이라 한다. 자신을 닦기위해 늘 조심하고 애쓰고 사는
정직한 선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정직하고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특히 이 세상과 거기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찌 근심이 없겠는가.
그러나 노자나 장자는 無爲自然(무위자연)이나 초탈을 말하면서 절대자유를 노래했다. 특히 장자는아무런 목적도 없이 유유자적하며 노니는 삶을 노래했다. 인생은 노니는 것이라고.
장자 소요유 2장에는 요 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넘겨주려하자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둥지를 틀고 살 때 필요한 것은 숲 전체가 아니라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실 때 필요한 것은 황하의 물 전체가 아니라 물 한 모금이면 족하다 면서 자신은 천하를 가지고 할 일이 없다며 거절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유는 분수를 알고 자족하는데서 온다는 말일 것이다.
유교의 좋은 점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어찌하든 세상 속에서 天命을 실현하려는 것이고 노자나 장자의 좋은 점은 초탈과 자유를 노래하는 것이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것을 크게 걱정하는 걸 보면 나는 공자의 제자이고 낙옆이 날리는 산을 돌아디니며 노니는 것을 보면 장자의 후예다. 사실 기질적으로 나는 유가류가 아니라 장자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다가도 문득 기독교가 골수에 사무쳐 어찌하든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으니 나는 어정쩡한양다리다.
무얼 한다는 의식도 없고 억지로 힘써서 하는 일도 없이 스스로 좋아서 놀이삼아 해도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인생 공짜로 사는 것이다. 누가 그럴 수 있을까?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다니는 나이가 되도 삶은 여전히 힘들고 부끄럽다.
15일
아내가 강화미협 회원으로 작품을 냈다해 함시인과 강화문화원에 잠시 들렸다. 중국과 교류전을 한다고 중국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어 볼만했다. 출품된 작품이 많아 강화에 화가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다. 강화에는 시인도 많고 음악인도 많고 춤꾼도 많고 화가도 많은데 나는 잘하는게 노는 것 뿐이니 참 한심하다. 그래도 화가와 시인 친구들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하다.
함시인과 심도학사에 가서 길선생님 모시고 봄봄에서 국수 먹고 덕산 휴양림 산책.
낙옆이 쌓인 호젓한 산길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들과 정담을 나누며 걸으니 인생의 낙 중에 이만한 것도 없다.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더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평생 존경할 수 있는 스승 한분, 허물없는 친구 서넛, 그리운 연인 하나, 따르는 제자 한둘 있으면 하느님도 그런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다.
산책후 함시인과 남문로 7번가에서 차 마시며 글쓰기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함 시인은 내가 놀기만 하는 것을 조금 걱정했다.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그저 그런 잡문이나 일기만 쓰는 것이 좀 안타까운가 보다. 나도 사실 조금은 답답하기도 한데 재주가 거기까지니 어쩌겠는가.
함시인은 나더러 경전을 우화로 써보는게 어떠냐고 했다. 우화 하나 만드는건 나로서는 천지창조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누구도 쓴 적이 없는 어떤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에 참여하는 일이다. 함시인이 그런 시를 쓰는 걸 보면 그저 감탄할뿐이다. 일기 쓰는 것이나 가볍게 경전 해설하는 일은 아무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 그냥 중언부언하고 있다. 벌써부터 이것을 지적하는 벗들이 있었지만 거기까지가 나니 부끄러워도 어쩔 수 없다.
산마을고 야학은 아이들이 실습갔다고 휴강. 선생도 휴강하면 아이들처럼 좋다.
건평리 바닷가에서 휘영청 밝은 보름달 보며 덩실덩실.
16일
산마을고 이사회
산마을고 영어 선생님을 새로 뽑는데 나더러 출제도 하고 면접도 하고 시강하는 것도 참관하고
채점도 하라해 그러기로 했다. 대안교육에 열정이 있는 선생 하나 산마을고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육과를 나와 5-6년 선생도 하고 20여년 학원 강사를 한 경험에 비추어보면 열정과 인격이 선생의 최고의 덕목이다. 대안적인 삶에 관심이 없는 이가 어찌 대안교육울 할 수 있겠는가?
끝나고 뒷풀이. 산마을고 이사님들과 한잔하는 시간은 언제나 유익하고 기쁘다. 배울 것이 많다.
조금 취해서 비틀거리며 노래부르며 집으로 오는 길에 달님도 좋은지 방실방실.
17일
누가 놀자고 해 종일 운동하고 당구치고 놀고 저녁에 딸과 사위 와서 손녀 하진이 앞에서 귀염둥이(?) 할배의 특별 재롱 공연. 아홉달 된 하진이가 깔깔대고 웃으면 나도 자지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