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과 시민사회
정 인재[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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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는 이익공동체[Gesellschaft]들이 자기들의 권리를 내세우면서도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면서 조화롭게 사는 시민사회가 없었습니다. <대학>만 보더라도 8조목 중에서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외왕부분인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에서 제가[가정]과 치국[국가] 가운데 있어야 할 시민사회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유가는 따라서 가정과 국가 위주의 효(孝)와 충(忠)이 중시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가 리드하여 경제발전을 일으킨 것도 유학 그 중에서도 백성의 계몽[新民]을 강조하는 주자학과 연관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위주의 모델 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는 시민사회의 운동이 필요한데 양명학은 바로 이 시민사회에 적합한 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양명학은 간단히 말해 양지를 근거로 삼는 보편타당한 철학이요 유학입니다.. 보편타당하다는 말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또 누구에게나 합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시간 공간을 초월한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것이 바로 양지라는 것입니다. 철학은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역동적인 동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철학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양명학이 철학이라는 말은 치양지의 역동성 때문이요 유학이라는 말은 양명학이 유학적 전통 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양명학이 유학의 큰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학은 25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유학은 대체로 크게 세 번 변화 하였습니다 그것은 첫째. 선진시대의 공자 맹자 순자를 중심으로 하는 시원유학[Original Confucianism] 둘째 한 나라 시대의 오경[시, 서, 역, 예, 춘추]중심의 경학[Classical Confucianism] 셋째 송명시대의 유학을 부흥시키 신유학[Neo-Confucianism]입니다. 여기에 송원시대의 주희[朱熹;1130-1200]가 북송5자의 학설을 집대성한 주자학과 명대의 왕수인[王守仁:1472-1529; 호 陽明]이 양지를 주제로 하여 전개한 양명학이 있습니다.
유학에는 철학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경학(經學)적 면모도 가지고 있습니다. 시원유학과 양명학은 철학적이라 할 수 있으나 한 대의 유학은 경학이며 주자학도 사서(四書)를 새로운 경학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경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학문적 태도를 이어받은 맹자와 순자의 사상을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學而不思則罔]고 말하는가 하면 또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하다”[思而不學則殆]고 하여 배움[學]과 생각[思]을 다 같이 중시하였습니다.
맹자는 ‘배움’보다는 ‘생각’을 더 중시하여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心之官則思]이다. 생각하면 어떤 것을 얻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 하여 내면적인 ‘생각’을 그의 핵심사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오륜[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에 근거를 둔 인의(仁義)가 인간 본성에 내재한다는 성선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군자가 본성으로 삼는 인의예지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여 마음이 도덕적 행위의 근거임을 확실히 하였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요순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한 것도 우리가 모두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고 고려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양지양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마음을 간직하고 본성을 잘 길러내는 공부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순자는 첫 장부터 배움을 강조하고 스승[師法]의 예(禮)를 중시하여 고대의 예학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본성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성으로 보고 이 본능적 욕구에 따르다 보면 서로 다툼이 생겨 사회가 혼란해 진다고 하였습니다 순자는 이 자연성을 악하다고 하는 성악설에 따라 이 자연성을 변화시켜 인위적인 규범인 예를 일으켜야 한다[化性起僞]고 주장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허일정의 기능에 의하여 객관적인 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도는 예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데 이 도를 파악할 수 있는 마음을 인식심이라고 합니다.
맹자가 말한 마음은 인의예지가 내재된 도덕심인데 대하여 순자의 인식심에는 아무런 도덕적 속성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는 내재적인 심성보다는 외재적인 규범[禮]을 강조한 것입니다. 맹자가 내재적인 도덕심에 의하여 행하는 자율도덕을 중시한데 대하여 순자는 외적인 규범인 예를 학습하여 질서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였는데 이것을 타율도덕이라 합니다. 맹자가 옳고 그름을 선천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양지양능을 강조하였는데 반하여 순자는 그것을 부정하고 경험적인 학습을 통한 학지학능(學知學能)을 역설하였습니다.
왕양명은 양능을 양지에 포함시켜 이것을 도덕적 원리이며 도덕적 이성인 천리로 간주하고 지행합일을 주장하였습니다. 주자는 양지가 천리라는 것을 부정하고 단지 훌륭한 지각으로 만 간주하고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하였습니다. 왕양명이 맹자를 계승하였다면 주자는 순자적인 면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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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學]을 중시하는 순자의 사상은 한 나라 시대의 경학을 여는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한 나라 초기에는 황노학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이는 노장적 자유를 지나치게 표방하여 국가를 혼란에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한나라 집권자는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제자백가를 모두 물리치고 유가만을 홀로 높이었습니다. 에에 따라 유학은 경전화 되어 오경(五經)으로 만들저 졌는데 이거을 경전유학[classical Confucianism]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경전을 풀이하는 훈고학(訓詁學)이 성행하여 금문경학과 고문경학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철학적[philosophical]이 아닌 문헌적[philological]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 사상은 동중서의 우주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는 하늘[天]을 최고 존재로 간주하고 원기(元氣)에서 음양오행 사시 그리고 만물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천지 사이에는 음양의 기가 가득하고 오행이 서로 살리고 서로 죽이는 상생상극(相生相剋)을 하면서 인간과 만물을 변화 육성하거나 쇠망시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은 하늘의 축소판이라고 하여 하늘에 음양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성고 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동중서는 사회윤리를 음양론으로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군신 부자 부부의 의는 모두 음양의 도에서 취하였는데 군주가 양이면 신하는 음이다 아버지가 양이면 아들은 음이고 남편이 양이면 아내는 음이라고 말 하였습니다.
동중서는 천도가 양의 편을 들고 음의 편을 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양은 존귀한데 음은 비천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군주 아버지 남편은 양이라면 신하 아들 아내는 음에다 소속시켜 상하 주종의 종속관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법가의 이념을 음양가의 사상과 결합시킨 것입니다. 법가는 군주를 절대화시키고 신하는 종속적 지위에 두었습니다. 한비자는 “무위하고 존귀한 것은 천도이고 유위하고 얽매는 것은 인도이다. 군주는 천도에 해당하고 신하는 인도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한비자는 또 “신하가 군주를 섬기고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며 아내가 남편을 섬긴다고 하는 이 세 가지가 순조로우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그렇지 않으면 천하가 어지럽다”고 하였습니다. 이 법가의 사상은 동중서의 양존음비(陽尊陰卑)의 이론을 거쳐 “군주는 신하의 벼리이며 아버지는 아들의 벼리이며 남편을 아내의 벼리이라는 삼강(三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군권 족권 부권을 하나의 질서 속에 매어 두는 것이며 이 삼강이 하늘에서 나왔다고 하여 동양사회에서 영원히 고정 불변하는 철칙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삼강오륜을 합하여 강상(綱常)이라고 하는데 오상이란 인의예지신[ 仁 義 禮 智 信]을 가리키며 오륜의 친의별서신(親義別序信)에서 나온 것입니다. 맹자는 인의예지만을 연용 하였는데 동중서는 여기에 신(信)을 더하여 오행과 연관시켜 오상을 만들었습니다. 전통사회에서는 강상의 문란은 바로 국가사회의 붕괴로 간주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원유학의 본질적인 오륜에다 군주 중심의 상하주종적인 삼강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로부터 유학은 국가중심의 국가유학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이 유학이 오늘날에도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조 500년간을 지배했던 이데올로기가 사로 주자학인데 삼강오륜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실은 오륜은 삼강에 종속되어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양명학은 삼강을 말하지 않고 오륜만을 거론하였다는 사실이 바로 그 현대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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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시대에 노장과 불교를 비판하고 창조적으로 유학을 다시 일으킨 신유학은 맹자의 성선설을 중시하였으며 북송 다섯 선생[五子]즉 주돈이 장횡거 소강절 정명도 정이천에 의하여 시작되어 주자가 이를 집대성 하였습니다. 주자는 한(漢)나라시대의 <오경;五經>보다는 <사서:四書>즉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새로운 경전으로 삼고 특히 <대학>에서 자기의 사상을 펼치었습니다. 신유학이 혁신적인 점은 과거의 기(氣)에 근거를 둔 우주론을 극복하고 천리(天理)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명도가 처음으로 스스로 체득하여 알아낸 것입니다. 천리는 칸트가 말한 순수한 이성이 아니라 도덕적 이성인 동시에 도덕적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론적(氣論的) 우주론은 천지 만물을 모두 음양오행에 종속시켜 인간을 타율적[혹은 운명적] 존재로 간주하였는데 반하여 천리는 바로 인간의 도덕 주체성을 강조하여 자율성을 획득하였습니다. 그것이 시원유학에도 없는 천리를 유학에 도입하여 새롭게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주자는 북송의 5자를 이어받아 하나의 체계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주자학이라고 합니다. 그의 사상은 사민(四民) 중에서 본말론적인 사고에 따라 선비[士]의 주지주의적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분석적이어서 모든 것을 둘로 나누어[二分化] 설명하는 것을 선호하였습니다. 주자는 “형체 이상의 것을 도라고 하며[形而上者謂之道] 형체 안에 내려와 있는 것을 기라고 한다.[形而下者謂之器]”는 주역의 명제를 해석하면서 정이천의 견해에 따라서 형상을 리(理)로, 형하를 기(氣)로 간주하는 이기론(理氣論)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태극을 리로, 음양오행을 기로 보았고 역동적인 음양오행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까닭을 도(道)라고 생각한 이천이 견해에 따라서 모든 사물의 존재이유를[所以然之故]를 이(理)[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법칙과도 유사합니다. 그런데 주자가 이(理)를 말한 목적은 자연과학의 근거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윤리도덕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물과 인간의 존재는 그 이유에 따라서 살아야 마땅하다고 하여 당연한 원칙을 리[所當然之則]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윤리적 규범[norm]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주자는 오히려 이 규범을 더 선호한 것 같습니다. 서양의 과학이 소이연만 묻고 소당연을 윤리적인 차원에다 돌린 것과 다릅니다. 그가 말하는 이는 존재와 당위가 항상 붙어 있기 때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여 참[眞]을 추구하는 과학적 태도와 다릅니다. 따라서 주자적인 리(理)는 오히려 당위적 태도가 우세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주자는 마음을 중심으로 안에 있는 것을 본성[性]이라하고 밖에 있는 것을 이(理)라고 하였습니다. 밖에 있는 리가 윤리적 규범을 가리킨다면 그것이 바로 예(禮)인 것입니다 주자는 인간이 살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의례인 <주문공가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관혼상제의 사례(四禮)입니다. 조선시대 중기에 심성적인 사칠논변 이후에 예학논쟁이 일어난 것은 주자학적 심성론의 외재화된 표현이기도 합니다.
주자는 마음 안에 있는 본성이 이(理)이기 때문에 성즉리(性卽理)의 성리학이라고 합니다. 주자의 체계에서 마음[心]은 결코 이(理)가 될 수 없고 단지 지각을 잘하는 기(氣)의 밝은 알맹이[精爽]일 뿐입니다. 따라서 도덕적 원리[天理]가 아니어서 도덕을 행할 수 있는 근거[소이연 소당연]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자는 마음 안에 있는 본성인 천리를 잘 보존하고 흠뻑 길러내기[涵養] 위하여[存天理] 경(敬)공부를 해야 하고 마음 밖에 있는 천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격물치지 즉 즉물궁리(卽物窮理)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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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은 격물치지를 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명나라 시대의 주자학자 누량의 말을 믿고 7일 동안 대나무 앞에서 격물을 시도하였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20년 뒤[38세] 유배지인 용장에서의 깨달음을 통하여 이루어 졌습니다. 그것은 도덕적 원리[天理]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로 이치[心卽理]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주자학의 성즉리에 대한 비판과 그것의 코페르닉스적인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 밖에 이치가 없다[心外無理]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心外無物]는 명제가 이끌어져 나왔습니다. 이것은 현상학적 통찰과 비슷한 것이기도 합니다. 현상학은 사실 그대로를 파악하는 철학입니다. 모든 것은 의식의 지향성 즉 ‘--에 관한 의식' 이므로 이 의식을 떠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의식 밖의 것은 우리가 알 수 없으므로 일단 판단중지하고 의식내의 것만 사실대로 기술하는 학문입니다. 이것은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는 왕양명의 철학과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왕양명은 주자가 외적인 도덕적 이론 탐구에 치우쳐 다만 알기[知]만하고 실행[行]하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고 생각하여 지행합일을 주장하였습니다. 왕양명이 말하는 지(知)는 주자학의 지각 혹은 지식이 아니라 양지를 가리킵니다. 지식은 결코 실천행위와 합일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자는 먼저 알고 난 뒤에 행한다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왕양명의 지행합일은 양지를 현실에 실현하는 치양지를 뜻하는데 양지는 내 마음의 도덕이성이요 원리[天理]입니다. 이 도덕원리는 주자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결코 밖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외적으로 정해진 매뉴얼[規則]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지에 따라서 실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의 주체적 양지에 따라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본체와 작용[體用]이 있습니다. 주자학은 양지를 지각을 잘하는 작용차원에 내려놓았는데 왕양명은 양지를 마음의 본체로 올려놓았습니다. 왕양명은 양지 두 글자는 성학의 명맥(命脈)이라고 하여 “천고 성현이 서로 전하는 한 점의 적골혈(滴骨血)이다”라고 하였으며 양지를 읊은 시 중에서 사람의 마음마다 중니[공자]를 가지고 있다 고 하였고 또 사람마다 스스로 나침반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곳에서 말하는 중니, 나침반은 바로 양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양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 왕양명은 ‘천명의 성인도 모두 지나가는 그림자이다. 양지가 바로 나의 스승이다’[良知乃吾師]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점에서 양지학은 육상산의 ‘육경이 모두 내 마음의 주각[footnote]이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따라서 육경을 부정하고 내 마음의 양지를 주장한 육왕학은 경학이 아니라 철학입니다. 이에 비하여 사서를 집주(集註)한 주자학은 신경학(新經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왕양명의 양지는 덕성의 앎[德性之知]이지 견문의 앎[聞見之知]이 아니라는 것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후자는 보거 듣는 등 경험을 한 뒤에 얻은 앎 즉 지각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자학은 양지를 좋은 지각으로 간주하여 그것이 덕성지임을 부정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견문지와 덕성지의 관계를 왕양명은 양지는 견문을 거치지 않고[不由] 견문과 분리되지 않고[不離] 견문에 방해받지 안는[不滯] 관계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양지가 견문을 거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 아무리 경험적 지식이 쌓여도 양지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요즘 인공지능 문제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양명학 입장에서 볼 때 아무리 지식을 풍부하게 가진 인공지능도 양지가 아닌 이상 양지처럼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칸트가 인식을 논하면서 인식이 경험에서 유래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유사합니다. 또 칸트는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생긴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양지가 견문 지각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양지는 견문 지각의 방해를 받지 않고 드러난다는 것은 바로 양지의 독자적 현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본체와 작용을 나누어 보지 않고 근원을 하나로[體用一源]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양지는 천리인 마음이 본체인 동시에 그 작용인 지각과 분리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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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과 주자학이 다 같이 신유학인 점에서 공통된 면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 성인이 되는 학문 즉 성학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성인이 성인에게 전한 도의 전통[道統]이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새로운 경전인 사서에서 자기의 사상을 펼친 것입니다. 넷째 신유학을 가르치는 고급 교육기관인 서원입니다 중국에는 양명학을 위한 서원이 지어졌으나 우리나라는 지금도 양명학을 전하는 서원이 없습니다. 앞으로 양명학 센터인 하곡서원이 세워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섯째 철학 상 가장 중요한 도덕적 이성 혹 원리인 천리(天理)입니다. 주자는 본성을 천리로 보았는데 양명학은 마음을 천리로 간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자학을 성리학 혹은 이학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이라고 폄하하는데 그것은 양명학의 양지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양명학도 심즉리의 심의 이학입니다. 이학과 심학으로 주자학과 양명학을 구분하는 태도는 바로 양지를 천리가 아닌 지각으로 폄하한 주자학적인 관점에서 나온 것임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을 논하면서 양명학의 현대적 의미를 살펴볼까 합니다.
첫째 주자학은 관학이요 경학인데 대하여 양명학은 민학이요 철학입니다. 박은식 선생은 주자학을 제왕학이요 양명학은 민간학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주자학은 원나라 시대부터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가 과거를 보는 필수과목으로 정해 졌습니다. 따라서 벼슬을 하려는 사람 즉 정치지망생은 반드시 주자학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이에 비하여 양명학은 주자학이 가지고 있는 병폐[지행분리]를 바로 잡기 위한 민학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위잉스[余英時]에 의하면 양명학은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양지를 깨우치는 방식을 통하여 천하를 질서 있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각민행도(覺民行道)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년을 기다려 성군을 얻어 도를 실행하려는 득군행도(得君行道)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입니다. 득군행도는 주자학의 국가주도의 관학적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며 각민행도는 양명학의 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특징을 반영한 것입니다. 왕양명의 치양지는 시민들이 자각적으로 도를 실천하는 길을 마연해 준 것입니다. 이것은 득군에서 각민으로, 상층에서 모든 계층으로 정치취향에서 사회취향에로의 전향입니다. 우리사회에서 성숙한 시민사회가 이루어지려면 양명학의 양지학이 제대로 전파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사민 즉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대한 태도가 주자학과 양명학은 차이가 있습니다. 주자학은 본말론의 입장에서 제왕에게 벼슬하는 선비[士]가 근본[本]이며 농은 그 다음이고 공상은 말업이라고 간주하여 사민을 수직적으로 보았습니다. 이에 반해 양명학은 각민행도의 입장에서 사농공상이 모두 평등하다고 보았습니다. 양명학은 사민이 수행하는 각각의 일을 중시하여 “각기 직업을 달리해도 성인이 되는 길은 같이한다.‘는 이업동도(異業同道)를 제시하여 사민평등을 주장하였습니다. 양명은 자신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간에 성인이 되는 길을 가면서 살아가는 것은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양명은 ”옛날에는 사민이 직업을 달리 했으나 도를 같이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마음을 극진히 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선비는 수양하고, 농부는 곡물을 생산하였고, 공인은 기물을 발전시켰으며 상인은 재화를 유통시켰습니다. 그 귀결은 사람을 살리는 길[道]에서 유익함이 같았다는 것입니다. 왕양명의 이러한 사상은 명청시대의 상인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직업관은 독일의 Beruf와 일맥상통하여 직업의 귀천이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일을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업인들이 정부의 간섭 없이 도덕적, 자율적으로 기업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셋째 주자학의 백성을 새롭게 만든다[新民]와 양명학의 백성을 부모처럼 가까이 모신다[親民]는 것도 사민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백성을 본말론으로 간주하는 것은 신민에서 나온 것이요 백성을 이업동도로 본 것은 친민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민은 덕을 밝힌 지도자[士]가 일반백성[農工商]을 계몽하여 낡은 생활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은 교화의 대상이 되는 타율적 존재일 뿐입니다 왕양명은 신민을 스스로 새로워지는 자율적인 백성으로 해석하고 이러한 백성을 가까이 하며 한 몸[一體]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왕양명은 백성을 친애[親民]하여서 밝은 덕을 밝힌다[明德]면 명덕과 친민이 어찌 갈라져 둘이 될 수 있는가? 주자의 학설은 명덕과 친민이 하나인줄 모르고 두 가지로 인식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양명학자 계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명덕의 내실은 친민일 뿐이다. 덕이 친민이 아니면 무엇으로도 밝아질 수 없다 따라서 명덕은 이것으로 친민을 밝히는 것이요 친민이란 덕을 밝히여 백성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정인보는 “이 밝음이 아니면 애틋함이 없고 이 애틋함이 없으면 그것은 밝음이 아니다 학문의 골자는 바로 이 한곳에 있으니 한 순간이라고 백성과 내가 일체라는 감통이 없으면 내 마음의 본체 역시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여 명덕과 친민의 관계를 절실하게 설명하였습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백성을 위에서 아래로 계몽하겠다는 신민은 시대에 뒤 떨어진 사고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친민이야 말로 시민사회가 지향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주자학은 정태적인 입장에서 고정불변한 원리인 정리(定理)를 역설하였는데 양명학은 역동적인 마음의 자율성에 의하여 시대에 맞게 드러나는 합리적인 이치인 조리(條理)를 중시하였습니다. 전자는 이데올로기로 변할 수 있는데 반해 후자는 철학하는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주자는 현실적인 인간관계는 존비, 상하, 장유, 친소 등의 정해진 신분 역할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정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현실적 인간관계는 모두 이 정리에 의하여 보장되어야 하고 이에 어긋날 때에는 가차 없이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주자학의 정리의 사고에서 온 것입니다. 청대의 대진은 이치로써 사람을 죽인다[以理殺人]고 하였습니다. 이에 반하여 양명학은 이기론의 틀을 해체하여 고정된 이(理)를 부정하고 상황에 따라서 알맞게 변화하는 현실에 맞는 이치[理]인 조리를 중시하였습니다. 조리란 엄격한 틀에 에 묶인 고정된 법칙[定理]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맞게 생명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전개된 합리성 즉 조리를 말합니다. 주자학에서의 마음은 자율적 판단능력이 없고 본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 본성인 천리가 외재화된 것이 예(禮)입니다. 이에 따라 예를 잘 지키고 따라야 인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는 바로 외적으로 정해진 천리[定理]입니다. 예법은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알려주는 일종의 지침서입니다. 모든 제도는 인간을 위한 것이며 시대가 변하면 예법도 때에 알맞게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의 자율성에 의하여 시대에 맞게 드러나는 합리적인 천리가 바로 조리입니다. 우리가 어떤 고정된 원리에 사로잡히면 원칙주의자가 되고, 이데올로기 신봉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이 만들어 놓은 이념[主義 主張]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며 상대방을 비난합니다. 우리고 겪고 있는 내편 네 편의 갈림은 바로 정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양지[나침판]에 의하여 옳고 그름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민사회에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다섯째 주자학은 한 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경학과 삼강을 그대로 그 체계 속에 받아들이고 있는데 반해 양명학은 오히려 반경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강을 언급하지 않고 오륜만을 유학의 본질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명학이 경학을 경시하고 마음의 자득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철학적 태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철학은 종교가 아니므로 경전을 따로 세우지 않습니다. 물론 경전이 없는 종교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자학은 사서오경을 경전으로 삼아 이를 과거 시험에 출제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한문을 배울 때 주자가 풀이한 <사서집주>를 대본으로 사용합니다. 이렇게 되면 오늘날에도 한문을 배우는 순간 주자학적 사고에 빠지고 말아 버립니다. 그래서 양명학에 대하여 더욱 이해가 멀어지게 됩니다. 또한 삼강과 오륜은 구분되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한데 붙어서 유교 가르침의 전부인 것처럼 오해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교과서에서 가르쳐서 민주화 시대의 철학적 사고를 못하게 막아 버립니다. 그래서 유학을 제대로 잘 모르는 이들은 사회병폐의 모든 죄악을 유교에 씌어버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양명학이 오륜을 중심으로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한 양지를 알면 오해가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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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철학은 서양의 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동양에 아무리 훌륭한 보석이 있어도 원석 그 자체로는 가치를 십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서양철학의 여러 이론들을 받아들여 동양사상과 비교 종합함으로써 현대 우리의 철학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곡학이 있읍니다만 단지 원석에 불과 합니다. 이것을 갈고 닦아서 빛나게 해야 비로소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원석을 현대적으로 연마하여 빛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대 유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른바 당대 신유학을 알아야 합니다. 당대[contemporary]는 바로 현대를 가리키는데 중국의 신문화[5.4]운동 당시 전반 서화론(全般西化論)을 비판하고 신유학을 현대서양철학과 융합하여 새로운 현대유학을 만들어 낸 운동을 말합니다. 그 선구적 인물로는 리앙수밍[梁漱溟] 슝스리(熊十力)를 거론하는데 그들은 신심학 즉 새로운 양명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모우종산[牟宗三), 탕쥔이(唐君毅) 등이 나타나 양명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들은 칸트 헤겔의 철학을 양명학과 연계시켜 자신의 철학을 창조하였던 것입니다. 현재 홍콩 타이완의 후세대 철학자들은 그들의 업적을 토대로 학문을 하고 있습니다. 당대 신유가 중에서 주자학을 현대화시킨 인물이 바로 평유란(馮友蘭)입니다 그는 신리학, 신원도등의 정원육서(貞元六書)를 쓰면서 자기철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철학은 자기의 땅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신념 하에서 자유세계에 망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모택동치하에서 갖은 곤고(困苦)를 겪으면서도 <신편중국철학사>를 완성하기도 하였습니다. 대륙에서는 개혁개방이 되면서 유학을 새로이 해석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당대 신유가의 저술을 간행하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르크시즘을 유가와 연계시키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시진평의 사상을 미화시키려는 유학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유교헌정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유학은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자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장지연 현상윤 이상은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라면 양명학을 현대적으로 풀이한 박은식 정인보가 그 독보적 존재입니다. 그들은 일제가 만든 황도유학에 대항하여 한국 현대유학을 만들어 낸 분들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잔혹한 노예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만 아직 조국의 분단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간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주도하여 산업을 일으켰고 국민의 저항으로 민주화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한 단계 올리기 위하여 성숙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국가주도의 산업화하는데 주자학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주자학의 엘리트[士]주의와 정리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화하는데 필요한 것은 선진국의 모델이 필요하였고 이 모델[定理]을 열심히 학습한 결과 산업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선진 기술을 복사하고 익히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산업화를 주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창조하는 단계로 비약해야 하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양명학의 합리적 조리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조리는 정해진 틀이 없습니다. 상황에 알맞게 창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화도 저항적 성격이 강하여 외부의 힘 00로부터의 자유가 주된 관심사였는데 이제는 자기의 마음에 있는 사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비로소 자율적 도덕적 인격을 형성하게 됩니다. 왕양명은 산중의 도적은 깨트리기 쉬우나 자기 마음속의 도적[私慾]은 깨트리기 어렵다[破山中賊易 破心中賊難]고 말하였습니다. 자기 마음의 도적을 물리친 이런 인격을 가진 사람을 양명학에서 성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인이란 다름이 아니라 성숙한 인격을 가지고 자기 내면에 양지의 빛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왕양명은 세상을 떠날 때 ‘내 마음이 빛이다.’[吾心光明]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시민사회입니다. 우리는 국가 주도하에서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국민윤리를 배웠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들은 자신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자율적으로 시민윤리를 지키고 시민교육헌장을 만들 때가 된 것입니다. 이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한 단계 올리기 위하여 성숙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양지학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