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닐씨가 너무 추어선지 동검도채플은 적막강산이다. 커피 한잔 들고 햇빛 잘드는 창가에 앉아 작은 책 한권을 읽었다. 제목은 사막의 지혜. 조신부님이 책 페이지마다 멋진 그림을 그려 넣어 그 그림들을 감상하며 사막 교부님들의 지혜의 말씀을 듣는다.
아가톤 수도사는 침묵하는 법을 배우려고 삼년 동안 입에다 자갈을 물고 다녔다.
출렁이는 물에 얼굴을 비추어 블 수 없듯 마음 속에 잡념이 출렁이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수 없다.
자기비판이라는 가벼운 짐을 버리고 자기합리화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젊은 수도자가 자신의 의지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이거든 그 발을 당겨 땅으로 끌어내려라
기도 중에 조는 형제를 보면 야단을 쳐서 깨워야 할까요?
나는 그를 내 무릎을 베고 쉬게 하겠다.
가진 것이라고는 성경 밖에 없는 수도자가 굶주린 사람을 보자그 성경을 팔아 먹을 것을 사주었다.
아무도 집을 꼭대기에서 아래로 지어 내려올 수는 없다. 먼저 기초를 놓아야 한다. 영적 생활의 기초는 이웃을 얻는 것이다.
단단한 돌이라도 그 위에 계속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구멍이 나듯 단단한 우리 마음도 하느님의 말씀을 자주 들으면 하늘을 향해 열린다.
마음이 몸과 함께 노래하지 않으면 우리의 노동과 수고는 헛 것이다.
내 책은 삼라만상의 자연이다.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싶을 때마다 숲속으로 들어간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합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내게 무엇이 제일 좋은지 가장 잘 아시는 하느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죄를 짓지 않고 자기를 의롭게 여기는 사람 보다 죄를 짓고 회개하는 죄인을 나는 더 좋아한다.
귀하게 여기던 것을 잃어버리면 기뻐하고 감사하라. 이제 걱정거리에서 해방되었으니까.
나의 소감
기독교 초기에는 예수를 믿으려면 순교를 각오해야 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공인되자 예수 믿는 것이 너무 싑고 편해져 기독교는 점점 생명력을 상실하고 제도화 형식화 되었다. 이에 진실로 예수를 따르려고 했던 이들이 사막으로 들어가 침묵과 노동과 기도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려고 했다. 그틀이 사막의 교부들이다. 오늘날 기독교도 자본주의와 결탁해 세상에서 고난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기는커녕 세상 사람들 보다 더 부자되고 잘사는 것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여기게 되었다. 살찐 돼지는 일찍 잡혀 죽는다. 지나치게 배가 부르면 영성이 고갈되기 쉽다. 여기가 좋은데 어찌 하늘을 갈망하겠는가?
찬란한 빛보다는 깊은 어둠이 풍요로움 보다는 가난이
말 보다는 침묵이
편안함 보다는 노동이
과식 보다는 금식이
명예 보다는 평범함이
문명 보다는 소박함이
영적 살림에 더 좋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