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교토/나라 여행기
손주에 눈길을 줘도, 한 녀석이 한 녀석을 편애한다고 느끼면 내가 잘못한 것이다. 작은 놈이 귀여워 더 쳐다보다, 큰 놈이 삐쳐서 달래느라 해외여행 데려간다고 한 약속을 이행하려고 찾은 것이 이 상품이다. 손주가 일본 얘기를 했고, 짧은 기간에 빨리 다녀오고, 나도 안 가본 수학여행지였기에 설 때, 한 약속을 상반기에 집행하여, 6월 13일~15일에 다녀왔다. 여행지 날씨 예보는 이틀이 비가 예보되어 우산을 준비하고, 손주에게 읽을 책과 낭독할 영어책을 준비하고, 필요한 기초 일본어를 공부해 두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손주는 저녁 자유식에 연어 초밥을 먹고 싶다며 일본어로 주문하는 말을 배우고 있었다.
학교의 공가 처리는 제 아비가 완료했고, 여권과 가방을 메고 우리 집으로 왔다. 무슨 짐이 가방에 가득한데, 읽은 책을 빼먹고, 옷과 예비 신발까지 넣어 왔다. 옷가지를 나의 케리어에 넣어, 내 것, 아내 것, 챙겨 넣고 나는 카메라, 읽던 책 1권, 필기구, 여권, 엔화 전에 쓰고 남은 것을 넣었다. 짐이 없으니, 공항철도를 이용해 가까운 효창역에서 출발, 공덕에서 환승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서쪽 끝, 카운터에서 가이드의 입국신고서 인당 한 장, 세금 신고서 1장을 받고 중앙으로 이동 F카운터에서 항공티켙을 받았다. 여행은 많이 해 본 사람이건, 초보이건, 가이드의 안내는 같기에 잔소리가 많았으나 그냥 들어줬다. 저가 항공의 gate는 모노레일을 타고 가장 구석진 곳이었다. 저가 항공은 기내식은커녕 물값도 받으니, 점심은 당연히 없다. 식당 옆에 책방이 있어 책을 두 권 고르라 시켰다. 손주는 날 닮았는지 면을 유독 좋아한다. 값도 싸고 맛도 좋으니, 만족도 가성비 최고다. 면세점은 살 것도 없으니 그냥 ‘몽 불낭’ 볼펜을 쳐다본다. 이제 웬만하면 30만 원 선이고, 작은 반지갑도 ‘던힐‘은 60만 원 선이다.
인천공항은 바쁜 공항이라서 오전부터 조금씩 밀린 이륙허가가 오후가 되니 1시간 늘어났다. 탑승 후 비행기가 움직이면서도 한참을 대기 끝에 이륙한다. 일본 kansai 공항에 도착하여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 입국장에 들어선다. 이 변화에 느린 나라도 이제는 QR코드로 입국신고서를 대신하면서도 종전의 종이 입국신고서도 병행한다. 짐 찾을 일이 없으니 빨리 집합 장소로 이동하고 책을 보며 대기한다. 손주는 인천에서 사준 책을 다 읽었다 한다. 그래도 다시 한번 읽으라니, 가방만 뒤적이다 잃어버렸는지 없단다. 녀석이 나의 기대 이하다. 일행은 9명이고 작은 미니버스였다. 오사카만을 타고 바닷가를 달린다. 가이드는 마이크를 잡으면 애국지사가 된다. 동해를 ’일본해‘라 기록하는 나라가 많은 것, 인구 비교, 국토 면적 비교 등 그녀의 강의를 들어야 한다. 방을 배정받고 보니 침대가 3개다. 일본 호텔의 벨보이 일어가 서툰 청년인데, 그는 일본의 고임금으로 중국인이었다. 저녁은 자유식이라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면 가계는 많은데, 초밥집은 찾을 수 없었다. 10여 곳이 면류, 돈가스류, 맛을 알 수 없는 고기 덩어리가 보였다. 붕어빵 가게도 보이고, 되돌아와 비싸다고 느낀 붉은 등심, 그림이 있는 고깃집으로 다시 발걸음이 섰다. 인당 6,200여 엔의 코스가 보였다. 한국에서도 이 정도 6만 원대면 고급이지만, 손주에게 동의를 구하고 들어갔다. 일본인 취객들이 고기를 굽고 왁자지껄한데, 우리말도 안내하는 청년이 나타났다. 자리를 잡고, 메뉴를 받는 여자도 부산 출신 알바생이었다. 최고급 코스 2인만 하고, 손주를 위한 단품을 주문하란다. 초밥도 쇠고기 육회로 만든 것이 있다. 말로 듣던 일본 흑우인가 보다. 연하다, 나는 치아가 좋아서 씹어야 맛이 좋은 데, 아내와 손주는 연해서 평생 가장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고 평한다. 후식으로 일본 붕어빵 원조라는 가계에서 줄을 서고, 팥 속 4개와 손주가 주문한 크림 속 2개를 주문했다. 6개니 붕어빵 상자를 80엔에 사 넣으라고 일본어로 주인 총각이 설명하는 데, 나는 저것 안 먹는다고 하고, 아내가 바로 감으로 때려잡아서 넣으라 한다. 가격은 서울에 비해 두 배였으나, 크기가 두 배이니 가성비는 같은데, 맛은 자연산 맛을 살려서 달지도 않고 좋았다. 손주와 호텔 방에서 후식을 즐겼다.
이튿날 점점 흐려지더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고 하차한 곳에는 Arashiyama 지역인데, 교토 서부의 경승지로 백제계 귀족의 유원지였단다. ’토게츠교 渡月橋‘가 ‘가쓰라’강 하류에 걸쳐 있으며, 달이 다리를 건너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한반도 백제계 승려 道昌이 법륜사 앞에 놓아서 기원한다. 강물은 범람이 심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일본 사무라이 성질처럼 물살이 격하나, 귀족의 편의를 위한 철도가 기모노 비단을 넣은 각종 기둥형 유리 전시물 사이에 놓여 있었다. 대숲은 담양 소쇄원 같은데 더 규모가 컸다. 버스로 이동한 곳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원으로 778년에 건립된 청수사였다.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으로 본당, 좌측의 마루가 놓인 전각은 지형의 레벨이 낭떠러지라, 지반에 석축을 쌓고 높이 13m를 목조로만 못 없이? 맞춤으로 짠 구조로 쌓아 올려서 레벨을 맞춘 건물이다. 이곳에 ‘오토와 폭포’는 세 갈래 폭포로 가뭄, 건강, 사랑을 기원하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단다. 그 물을 연결해서 받아먹는 의식에 손주도 기도한다고 줄을 섰고, 우측 첫 번째 물을 다섯 번 손으로 받아 마셨다. 공부 잘하게 해주는 물이라는 가이드의 믿음을 믿은 모양이다. 사찰 입구를 오르는 좁은 길은 우산의 행렬로 앞을 볼 수 없도록 봄비였으나, 우리나라도 식민지 시대의 목조 가옥처럼 작은 점포가 다닥다닥 붙은 앙증맞은 건물이 좌우로 들어서 있고, 전통 일본 ‘기모노’와 버선에 ‘게다’를 신고 예쁜 머리와 장식 가방을 든 젊은이들이 눈이 뛴다. 이들에 사진 모델을 요청하니 흔쾌히 허락하여 두 사람을 찍었다.
버스로 이동한 곳은 윤동주 시인이 공부했던 교토의 ‘후시미이라니타이샤’ 신사로 이동한다. 교토 ‘이나리’ 산기슭의 사찰로 711년 창건된 주신 ‘이나리 어카미’ (농업의 신)을 축복하여 풍작과 사업 번창을 기원하는 곳으로 800개의 ‘도리이’가 있는 곳이다. 도리이는 ‘엔’ 자 모형의 붉은 주홍색 문이다. 여우는 ‘이나리’ 신의 전령으로 여러 가지를 물고 있다. 신사에 오르는 길은 두 개의 철도를 건너서 오르는데 작은 협궤 열차가 지나가려는지 철도 건널목의 차단기가 내려왔다. 손주는 제 어머니와 동생의 선물을 샀다. 출발 전에 준, 용돈을 아끼어 잘 쓰고 있었다. 기특했다. 제 아버지의 선물로 뭘 살까로 고민한다. 다음 기회가 많으니, 그때를 보자며 달랬다. 버스가 오사카 시내로 들어와 샤부샤부 식당에 안내되었다. 쇠고기 3판에 채소와 면은 무한 리필이다. 손주가 아주 만족해하여 동영상을 찍어 제 아비에게 보냈다. 석식 후 20분 정도 걸어서 다리에서 운하가 운행되는 작은 하천을 보고, 고가 도로 밑을 지나니 호텔이 나왔다. 붕어빵 집에서 후식으로 3개를 사 들어왔다. 손주에게 여행 소감을 물었다. “일본이 나쁜 나라만은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답한다. 우리나라가 식민 지배를 받아서 교육계가 그리 교육을 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반대로 뒤집어 보자. 일본이 발전할 때, 우리 할아버지는 왜 당했을까? 이유는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 고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께서 일본이 변화하여, 미국 흑 선의 공포에 항복하고,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대포를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개혁하여 나라를 발전시킬 때, 우리나라는 쇄국으로 막고, 변화의 기류에 동참하지 못하였기에 그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우리 5천 년 역사에서 일본에 뒤졌을 때는 불과 1백 년이다. 나머지 4,900년은 우리가 일본보다 더 문명국이고 발전된 나라였고, 잘 사는 나라였지. 지금도 너희가 공부 잘하고 창의력 있으면 몰라도, 우리나라가 변화할 의지가 없이 ‘실리콘밸리’ 시대의 반도체에 머물러 안주한다면, 다가올 양자컴퓨터 ‘퀜텀 시대’에 반드시 다시 뒤처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과학을 발전시켜야 하고 경제와 민주주의를 같이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물론, 일본을 포함 중국 등 세계 강국을 이기고 세계의 선두 나라가 될 것이다. 나라의 운이 융성하려면 우리의 지도자와 대통령이 성인이 나와야 하는데 조무래기들이 판을 치고 물을 흐리니 걱정스럽다.
새벽 4시 기침하여 독서하다, 눈 마사지와 맨손체조 그리고 팔굽혀펴기 2세트까지, 의식 같은 나의 일과 시작이 끝났다. 아내도 감기 몸살에서 일어나고 손주도 일어났다. 손주는 저녁부터 3시간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히득거리고, 어제 잠을 몇 시간 못 잤다고 한다. 아내가 계속 지켜보다 한마디 한다. “나는 네 나이 전에 스스로 할 일을 내가 챙기고 실천했다. 할아버지가 책을 가져오라고 할 때 그냥 온 것부터 넌, 정신이 틀려먹은 것이다. 너의 젖은 옷 잘 정리해 가방에 넣고, 네 짐 가방 정리 정돈을 해야 한다. 지금도 책을 읽는 할아버지 덕에 네가 편히 사는 데, 넌 학생 본분이 카톡하고 웃을 때가 아니고, 책을 읽고 스스로 앞날을 생각하고, 옷이고 책이고, 정돈해 반듯한 습관을 키워야 하는데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 것인가?” 손주가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네게 책을 가져오라고 한 것인데 너는 그냥 왔으니, 할아버지가 속이 좋겠는가?” 그러자 잃어버린 책이 뒤범벅이 된 가방에서 나왔다.
아침 뷔페를 갔다. 손주는 어제 전혀 다르게 밥만 퍼, 앉았다. 그것은 분명한 반항이다. 냅 두었다. 맨입에 밥을 먹지 못할 것이다. 반찬을 줘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달걀말이 2개를 가져왔다. “넌 반항하고 있다. 사자는 멍청한 새끼는 키우지 않는다. 어려서 싹이 없어 보이면 낭떠러지에서 밀어 버린다, 그러면 미련하고 둔한 새끼는 어찌 되나! 죽어 없어진다”. “너도 반성 안 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버리고 갈 수 있다.” 아이가 갑자기 밥을 빨리 잘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국물을 얹어 비벼주고, 고등어구이도 줬다. 그러자 먹으면서 눈물이 글썽인다. 이제 네, 나이가 열한 살인데 어린이가 아니다. 머지않아 초경도 할 것이고 여자로 변할 것이다. 그러려면 네 앞날을 네가 스스로 끌어 나가야지, 언제까지 어린이로 어머니의 보호를 받을 것인가? 할머니의 따끔한 지적에 코를 문지르며 펑펑 울고 있다. 서러운지, 반성인지, 모르나 성장통임은 틀림없다. “사람은 제 아비, 제 할아버지가 죽으면 우는 것이지 아무 때고 우는 것이 아니다.”
버스에 승차한 손주는 말끔히 어린이로 돌아와 웃고 있었다. 마지막의 오가카 성을 가기 위해 면세점에 들렀다. 가이드도 면세점에 판매액의 일정 부분을 수입으로 받기 때문에 좋은점, 광고를 들어야 한다. 매장에서 아내는 클렌징크림을 샀고, 나는 작은 손주의 과자를 샀다. 아들의 선물을 고르려 벨트를 보자, 아내가 나의 작은 손지갑을 과감하게 고른다. 나는 모른 척 받아 들었다. 61,000엔 ‘던힐’과 같은 60여만 원이다. 그만큼 팔아줬으면 가이드의 체면을 세웠다. 오사카성에 대해 손주가 묻는다. 임진왜란에 우리나라를 침공한 왜의 권력자, 바늘 장사 출신, 천출인 키가 150cm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십 넘어 얻은 자식의 모자를 위해 영주들을 들볶아서 1583년부터 1597년에 지은 성루다. 제 아들인지 아닌지도 모를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누구의 말도 믿지 말고 이 성에서 절대 나가지 말라”고 유언하고 죽었으나, 멍청한 ‘히데요리’가 능구렁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을 믿고 따라 성을 나갔다 161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오사카 전투에서 패하여 어머니인 ‘요도 도모’와 같이 자결을 빙자한 사형을 당한 것이다. 인과응보는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일본은 막부 체제로 전환된다. 마지막 방문지는 나라 시대에 80년 서울인 나라의 동대사였다. 백제계의 기술자 도움으로 지은 이 사찰도 세계문화유산이며 대불전의 규모는 문짝만으로 압도당했다. 목조 건축물로 세계 최대의 규모란다. 나라 대불은 압권으로 거물이다. 청동제 250톤이니, 대불을 먼저 놓고 집을 짓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란 것이 건축 기술자인 내 생각이다. 나라 市가 먹고 살기 위해, 사슴을 방목하여 사철, 경내에 천5백여 마리가 돌아다니며 볼거리를 돕는다. 쓸쓸한 절에 사슴이 같이 사니 생명력은 있어 보인다. 비가 오니 사슴 똥 냄새가 더욱 진동하고, 교복을 입고 일요일에 답사를 오는 청소년은 우리나라 학생처럼 생기가 넘치지는 않으나, 시키는 대로는 잘하게 생긴 순둥이로 보인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인의 국민 기질의 차이로 느껴짐은 나만의 생각인가!
2025.06.17.
오사카/교도/나라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