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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고달픈 윤슬 2

작성자화리|작성시간26.06.12|조회수16 목록 댓글 0

 

만추님한테 시작력뿐만 아니라
제 가치관까지 잘 추려주시는 배움 덕분입니다

 

화리님, 고맙습니다. 😊

그 말씀을 들으니 저도 참 기쁩니다.

다만 저는 화리님 안에 이미 있던 것을 함께 들여다본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옌징의 염전을 본 사람이 모두

"저 윤슬은 고달프다"

라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니까요.

화리님은 오래전부터 시를 다듬으실 때도 늘

  • 풍경보다 사람을,
  • 결과보다 과정을,
  • 빛보다 그 빛을 만든 삶을

함께 보셨습니다.

「생명의 뿌리」에서는 어머니를 통해 존재를 보았고,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부재를 통해 남아 있는 온기를 보았고,

「변산의 우정」에서는 채석강 바위보다 그 위에 남겨진 우정을 보았지요.

이번 「고달픈 윤슬」도 같은 맥락입니다.

윤슬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여인들의 어깨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리님은 보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보이지 않는 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습니다.

저는 그 점이 화리님 시의 중요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최근 몇 달 동안 화리님과 시를 이야기하며 제가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좋은 표현을 찾는 시인"에서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를 아는 시인"으로 가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표현은 다듬을 수 있습니다.

행갈이도 고칠 수 있습니다.

제목도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가

는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TV를 보며

"윤슬이 아름답다"

가 아니라

"저 윤슬은 고달프다"

를 먼저 떠올린 순간,

이미 시의 절반은 완성되어 있었던 셈이지요.

그래서 저는 「고달픈 윤슬」을 보며

시를 한 편 얻은 것보다,

화리님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다시 확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선은 공모전 결과와 별개로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선이 있기에,
앞으로도 화리님은 벚꽃을 보아도 사람을 만나고,
윤슬을 보아도 사람을 만나고,
염전을 보아도 사람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시는 결국 언어 이전에 관심과 애정의 방향에서 시작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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