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윤슬
윤슬 보기를
바라고 바라며
이른 나이
이른 새벽부터
어깨에 걸친
두 양동이
좁은 사다리 계단
층층이 쌓인 염전
저물녘까지,
수십 번
퍼 나른 염수
바람에
햇살에
말라가다가
드디어
반짝,
반짝인다
옌징 여인들의 어깨가
------
화리님,
수정본을 읽으니 시의 중심이 훨씬 또렷해졌습니다.
특히 마지막이
반짝,
반짝인다옌징 여인들의 어깨가
로 바뀌면서, 윤슬과 어깨가 하나로 겹쳐집니다.
독자는 처음에는
"윤슬이 반짝이는구나"
라고 읽다가,
마지막 행에서
"아니, 반짝이는 것은 윤슬만이 아니구나"
하고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효과가 좋습니다.
또한 "여인들의 어깨"보다
옌징 여인들의 어깨가
가 된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시가 추상적인 노동이 아니라,
차마고도 옌징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은
이른 나이
이른 새벽부터
입니다.
두 개의 "이른"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노동
- 새벽부터 시작되는 하루
를 함께 품고 있습니다.
짧지만 깊은 행입니다.
그리고
말라가다가
드디어
도 좋아졌습니다.
"말라가던 염수"보다 과정이 더 살아 있습니다.
염수가 소금이 되어 가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딘 사람들의 시간이 함께 느껴집니다.
다만 낭송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반짝이는 것은 염전의 수면이 아니라
그 무게를 견뎌 온 사람들이다.
그 뜻을 직접 말하지 않고
옌징 여인들의 어깨가
로 남겨 둔 것이 참 좋습니다.
그 어깨에는 소금도 있고,
세월도 있고,
생존도 있고,
화리님의 존경도 함께 얹혀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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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화리님. 😊
이건 꽤 좋은 수정입니다.
원래
저물녘까지 수십 번
은 하나의 정보처럼 읽히는데,
저물녘까지,
수십 번
이 되면 두 개의 무게가 생깁니다.
첫 번째는 시간의 무게.
저물녘까지,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가 여기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반복의 무게.
수십 번
몇 번이 아니라 수십 번.
한 번 한 번의 오르내림이 압축되어 있지요.
그래서 낭송하면
저물녘까지,
수십 번
퍼 나른 염수
가 훨씬 살아납니다.
쉼표 하나가
하루의 길이와 노동의 횟수를 분리해 보여 주는 효과를 내는 셈입니다.
저는 또 하나 좋은 점을 봤습니다.
시의 앞부분에는
이른 나이
이른 새벽부터
가 있고,
중간에는
저물녘까지,
수십 번
이 있습니다.
즉,
- 이른 나이 → 평생
- 이른 새벽 → 하루
- 저물녘까지 → 하루의 끝
- 수십 번 → 하루 속 반복
으로 시간의 규모가 점점 구체화됩니다.
화리님은 윤슬을 썼지만 사실은 여인들의 시간을 쓰고 계셨던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의
옌징 여인들의 어깨가
가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지금 형태를 소리 내어 읽어 보면,
윤슬 보기를
바라고 바라며...
저물녘까지,
수십 번
퍼 나른 염수
...
반짝,
반짝인다옌징 여인들의 어깨가
호흡도 안정적이고,
의미도 선명합니다.
이 시는 처음에 화리님이 말씀하셨던
"저 윤슬은 고달프다."
라는 한 문장에서 출발했는데,
이제는
"그 고달픔이 왜 반짝이는가."
까지 도달한 것 같습니다. 🌾✨
특히 마지막 "어깨"는 단순히 힘든 어깨가 아니라,
삶을 떠받친 어깨로 읽히는 점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