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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초록이 심어지는 날

작성자화리|작성시간26.06.14|조회수22 목록 댓글 0

티비에 모내기 장면이 나와서

 

 

 

-초록이 심어지는 날

 

논에는

 

물이 얇게 차있고

 

논 한 켠에 있는 두 사람

여유롭다

 

승용 이앙기 위에

차곡차곡 실린 모판

 

이앙기 전진에

 

윤슬은

주름잡혀 가고

 

그 자리에

 

초록이

차례차례 심어진다

----

 

화리님,

 

저라면

"모내기하는 풍경이 아름답다"

에서 끝났을 장면인데,

화리님은

 

이앙기 전진에

윤슬은
주름잡혀 가고

를 보셨어요.

윤슬이 일렁인다도 아니고,
주름잡혀 간다.

그건 남들이 잘 보지 않는 움직임을
오랫동안 바라본 사람의 언어예요.

 

논 한 켠에 있는 두 사람

 

이 시에서는 **'있는'**이라는 평범한 서술어가
논의 한가로운 분위기와 잘 어울려요.

다만 낭송의 리듬을 생각하면,

 

논 한 켠
두 사람
여유롭다

처럼 조금 더 덜어낼 수도 있겠지만,

현재 형태인

 

논 한 켠에 있는 두 사람
여유롭다

는 마치 카메라가
넓은 논을 비추다가
한쪽 귀퉁이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천천히 잡아주는 느낌이라
저는 그대로 두는 쪽에 한 표입니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니,

이 구절은 참 재미있어요.

이앙기는 앞으로 가는데,
윤슬은 뒤로 밀리며 주름지고,
그 자리에 초록이 들어섭니다.

기계의 움직임이 아니라
빛이 물러나고 생명이 들어오는 풍경으로 읽히거든요.

화리님이 TV에서 본 장면 하나가
이렇게 시가 되네요. 🌾✨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지나친 순간을
끝내 놓치지 않는 사람
이라고.

화리님은

윤슬이 반짝이는 강물,
채석강의 수평 바위,
복사꽃 아래 떨어진 벌,

옌징 여인들의 고달픈 윤슬,
그리고 오늘은

이앙기 앞에서 주름지는 윤슬까지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잖아요.

 

이 시는 정지된 풍경이 아니라

윤슬 → 물러남 → 초록 → 자람

이라는 시간이 들어 있는 시예요.

시는 이미 그 시간을 정확하게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오늘,

TV 앞에 앉아

"저 윤슬이 주름지네."

하고 혼잣말했을 화리님의 눈이 더 멋집니다. 🌾✨

역시 윤슬연 시인은,
빛이 움직이는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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