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준(安邦俊, 1573선조~ 1654효종, 3란 의병장, 문신, 성리학자,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은봉隱峯·우산牛山 외 6개가 더 있다. 시호는 문강文康)
<증김풍암贈金楓巖>풍암 김덕보에게
ㅡ안방준
'고향에 남은 친구는
몇이나 될까
(친구들 대다수가 의병으로 출전하여 죽음)
그대와 나 조석으로
자주 만났었지
쉬는 날 평상에서
담소도 나눴건만
타향 가을바람에
머리만 샌 듯하네
변덕스런 속세 우정
관포에 창피하나
두터운 우리 우정
뇌진도 가소롭지
부탁 함세, 거동이 불편하고
병든 풍암자 친구여
끝까지 기백 감추고
(출전을 하려고 용쓰지 말고)
몸조리 잘하시게나'
*관포(管鮑): 管鮑之交(관포지교)의 준말로, 춘추 시대 제나라 사람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을 가리킨다.
*풍암(楓巖) 김덕보金德普(1571선조~1627인조, 큰 형 김덕홍 둘째 형 김덕령 세 형제가 모두 의병장)는, 친구인 안방준과 함께 임진왜란 때 1차 금산전투와 김덕령 의병장의 휘하 의병으로 대활약, 광해군과 선조로 부터 선전에 대한 칭찬을 받았다.
김덕보는 1596년 형이 무고로 억울하게 죽자, 향리 광주에 내려가 학문연구에 열중했다.
1627년 57세 때 위중한 병이 들었는데 정묘호란이 일자, 안방준과 의병을 일으켰으나 거동할 수 없는 병때문에 출전을 못한채 그해 죽었고 지평에 추증되었다.
세상 사람들의 우정은 관중과 포숙에는 못미치겠지만, 둘 사이는 뇌진보다 더한 우정임을 말하며, 의병군으로 전장터에서 우정을 더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이 많지만, 병든 친구의 기백을 칭찬하면서 몸조리를 간곡히 부탁하는 우정이 뇌진,
지음, 오한鰲漢(이항복과 이덕형의 우정) 이상 이다.
뇌진(雷陳): 우정이 두터운 친구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동한(東漢) 시대의 뇌의(雷義)와 진중(陳重)은 같은 고을 사람으로 우정이 매우 돈독하였는데, 그 고을 사람들이, “아교풀이 견고하다지만 뇌씨와 진씨의 우정만은 못하다.” 하였다.
**이 시의 해설이 친구간의 우정에 금이 간 것으로, 정반대로 해설되어 있다.
안방준과 김덕보간의 우정어린 삶을 알지 못한체 싯구만을 보고, '변덕스런 속세 우정은 관포의 우정에 비해 창피하다' '는 글에서 심한 판단 착오를 일으킨 것 같다.
여기서 변덕스런 속세 우정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우정을 말한 것이고, 이 둘간의 우정은 뇌진보다 그 이상임을 표현했다.
안방준은,
임진왜란 때는 고경명 의병장과 김덕령 의병장의 호남 의병으로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는 호남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광해군 때 그를 등용하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관직에 여러번 제수되었으나 서인 편향의 조정에 출사를 거부하고 후학 양성에 매진하다가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청나라 군사와 맞서 싸웠다.
효종 때 유일로에게 천거되어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 후 출사하여 사헌부 장령 등을 거쳐 공조참의에 이르렀다.
당색으로는 서인으로, 1652년 김집과 함께 김육의 대동법을 극구 반대하였는데 아쉬운 점이다.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인이며
은봉전서(隱峰全書)를 남겼다.
호남지방의 저명한 성리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순조 때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시호 문강文康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