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들
최단
연말은 누구나 다 분주한 달이다. 더구나 국가적으로는 대선이 있는 달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연말의 잦은 모임들이 줄줄이 있는 달이고 보면 시간 내기가 무척 어렵다. 허나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칸딘스키와 러시아의 거장들의 전시회에 가는 것이 나에게는 나들이 중에 제 1순위이다.
12월15일 토요일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을 찾으려하는데 12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 라보엠을 공연 중에 무대에서 연기자의 실수로 불이나 관객이 대피하고 소방차가 30여대 동원하는 대소동이 일어났었다. 바로 화재는 진화 되었다는 보도에 다행이었다. 근처에는 한가람 미술관이 있어 큰불이 일어나 한가람 미술관에까지 번진다면……. 아찔한 생각이 들었으나 신속이 진화가 되어 다행이었고 공연한 기우에 나의 과민반응에 실소를 했었다.

전시장 앞에서
유럽의 미술은 자주 접하나 한국에서 러시아 미술 전시회를 갖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 아닌가. 러시아는 우리나라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나라였다. 1990년 9월 우리나라와 처음으로 수교하였고 러시아의 연방이 붕괴되고 공산주의가 무너져 러시아의 많은 변화가 있어 서방과 우리나라와도 개방으로 이어졌다. 12년 전 서유럽 미술사에 편입된 러시아 출생의 화가 칸딘스키와 말래비치가 소개 된 바 있었다.
오늘날 교역과 문화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고 12년 만에 다시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 전”을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2007년 12월 27일부터 2008년 2월 27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한다고 한다.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초상 (쿠즈네초프 1893)
19세기 리얼리즘에서 20세기에 이어지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품 41점과, 러시아 뮤지엄 작품 50점을 이번 전시회에 출품 한다고 하여 기대가 크다.
러시아는 광활한 영토 속에 대문호인 톨스토이와 토스토옙스키. 차이코프스키 같은 악성을 낳은 문화 대국이다.
19세기 러시아 회화는 사실주의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현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사실주의의 회화의 전성 시기였다고 한다. 허나 우리들은 러시아 화가들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얼마나 큰 장벽 속에 그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전시장에 들어가니 처음으로 걸려있는 러시아 사실주의의 거장들이 그린 초상화가 들어온다.

타티야나 마몬토바의 초상 (레핀 1882)
사진과도 같은 정확한 묘사, 그림 앞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특히 쿠주네초프가 그린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초상”이다. 이 초상화는 차이코프스키(1840-1893)가 임종하기 몇 달 전에 그렸던 작품이며 교향곡 6번을 완성한 시기였다 한다. 마치 초상화속에 비극적인 음조가 울려 퍼지고 있는 듯, 그런 그림이라고 하나 음악에 짧은 식견을 가진 나로서는 그 깊은 맛을 감상 할 수 없으나 그림 속에 있는 의미심장한 시선과 어두움 속에 선명하게 조명 받는 강한 인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절로 난다. 쿠즈네초프는 정규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던 화가이나 19세기 후반에 가장 재능 있는 화가로 알려지고 있으며 풍속화가로서도 자연의 섬세한 특징을 잘 포착 해내는 화가로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숲에서 쉬고있는 톨스토이 (레핀1891)
그리고 레핀이 그린 “작가 투르게네프 초상”이라 던지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의 초상화를 이번 전시회에서 실물에 가까운 모습을 접할 수 있는 행운도 있었다. 레핀이 그린 초상화 중에 “타티아나 마몬토바의 초상”과 “숲에서 쉬고 있는 톨스토이 초상”에 매료되어 한참 발길을 멈추었다. 그 중에서도 “타티아나 마몬토바의 초상”이 구성의 참신함과 놀라운 기법으로 레핀의 작품 중에 가장 매력적인 작품으로 평한다고 하여 더욱 관중들의 시선이 많이 갔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레핀의 섬세한 붓 터치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레핀과 톨스토이는 죽을 때 까지 30년 가까이 깊은 우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초상화를 70여점을 그렸다고 하며 이번 전시회에 “숲에서 쉬고 있는 톨스토이” 만을 선보였다.

달밤(크람스코이 1880)
레핀의 작품 중에 1898년에 완성한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의 작품은 러시아 혁명기간 한 여대생이 유형지에서 얘기치 않게 돌아온 순간을 묘사한 작품으로 그 시대의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는 사회적 불안과 그녀의 귀환을 가족들은 경계와 불안과 망설임의 다양한 심리상태의 표정을 잘 묘사한 작품으로 레핀의 거장다운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페로프의 “익사한 여인”은 한 젊은 여인이 모스크바 강가에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몸을 던져 익사한 여인과 그 옆에 경찰관이 입에 담배를 물고 연민의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죽은 여인은 머리를 뒤로 젖이고 창백한 얼굴이 그토록 염원했던 평온을 얻은 것처럼 보인 그림이다. 강가는 누르스름한 안개 속에 멀리 모스크바의 성벽과 건물이 보인다.
페로프는 1860-1879년대의 러시아 회화의 거장 이였다 한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레핀 1883)
이 그림은 러시아인들의 삶의 질곡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사람들의 고통과 번민을 화폭에 담았으며 동 시대에 러시아 미술계의 사실주의회화의 성격을 규정짓는데 큰 영향을 끼친 작가였다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크람스코이가 그린 “달밤”에 눈길이 갔다. 1880년 대 에는 러시아의 서정시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노래하였던 시기며 당시 크람스코이도 낭만적인 경향을 수용하여 “달밤“을 그렸다 한다.
크람스코이는 “달밤”을 그리면서 달빛 테마가 가진 시적인 힘에 감흥 하여 낭만적인 분위기를 리얼하게 잘 묘사 하였다. 이 “달밤”이 러시아 미술사적인 걸작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유형수들의 휴식 (야코비1861)
야코비(1861)가 그린 “유형수들의 휴식”은 러시아의 광활한 들판에 시베리아로 이송되는 죄수 행렬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회색빛 구름이 하늘을 덮고 수레 위에 죽은 죄수를 호위병이 확인하고 처참한 가족들이 절망에 찬 울음을 손으로 가리고 어린아이들은 추위에 어머니의 품에 기대어있고 한편으로는 태평히 누워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사람, 수레 앞에는 아픈 다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수형자, 이 그림은 화폭에 담긴 첨예한 주제의식과 힘에 넘치는 필력이 돋보이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유형수란 주제의식이 다른 화가들에 의하여 지속 전개되는 기회가 되였다고 한다.
그 이외 19세기 사실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이 많았다. 마소예도프의 “지방 자치회의 점심식사” 라든지 레베데프의 “노부모의 상경”또는 이바노프의 “가족” 배레샤킨의 “부하라 전사” 등이 인상 깊게 남았다

익사한 여인 (페로프 1867)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추상주의 화가들이 등장 한다. 러시아의 다양한 작가들이 소개되며 칸딘스키(1866-1944) 카지미르, 말레비치(1875-1935) 레비탄(1860-1900) 등 러시아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근대 미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보인다.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며 아버지이다.
그는 1866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는 법학과 경제학을 배웠으나 러시아의 민족예술과 프랑스 인상파 전에서 받은 모네의 영향으로 회화에 전념하였다. 태생은 러시아이나 그의 활동무대는 독일이나 프랑스에서였고 서양 미술사에 중요한 일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1910년에 발표한 최초로 순수한 서정적 추상화를 내어 놓았다. 1912년에 뮌헨에서 결성된 ‘청기사 파’의 중심 멤버로 활동하고 자연주의적인 회화에 전념한다.
구성 223 ( 칸딘스키 1919 )
초기의 칸딘스키의 작품은 표현주의 안에서 색채의 독창성과 서정적 기하학적 양식이 보인다. 20세기에 그의 미술은 독보적인 정신 모험을 이끌어온 천재중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칸딘스키는 미술도 음악처럼 점, 선, 면과 같은 순수한 조형들의 결합으로 하나의 예술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를 두고 음악파라는 별칭 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작품 중에 “구성 223” 이 있다.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언어로서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감성의 직관, 작품을 대하는 관객은 화가의 영혼, 그의 감성의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본다. 화폭에 채색된 삼각형, 사각형, 십자가 등의 기하학적 도형들이 역동적으로 연합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도형은 보편어의 “알파벳”이다. 이 보편어가 획득한 것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절대주의 (말레비치1928)
수년전 러시아 여행 중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서 깊은 러시아박물관(여름궁전)에 들린 일이 있었다. 바쁜 일정으로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미술 소장품을 보긴 보았으나 소장품만 40만점이라니 몇 년을 두고 보아야 볼 수 있는 방대한 양이여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귀국한 일이 있었다. 오늘 이러한 좋은 기회로 다시 러시아 미술품을 접하니 감회가 새롭다. 이번 기회로 전시회가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한.러 교류 활성화의 계기가 되어 러시아의 미술을 보다 많이 볼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어주기 바라며 이 전시회를 주최하여 주신 관계 당국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며 전시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