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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말씀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믿음

작성자푸른꿈|작성시간05.08.03|조회수583 목록 댓글 1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믿음

(Mt. 15,21-28)-(2002.08.07)

김충수 신부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선교 무대가 이스라엘 선민사상에서 탈피해서 이방인 지역으로 확대되어 나가고 있음을 보아야한다. 그 당시 띠로 지방과 시돈 지방은 이방인 지역이었다. 그리고 시로페니키아라는 지역은 시리아지방의 일부로서 더 멀리 있는 이방인 지역이었다.

오늘의 복음은 이방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당하고, 이스라엘 백성이라 해서 무조건 다 구원받는다는 사상이 무너지는 현장이다. 누구든지 하느님을 진실한 희망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구원의 보편사상이 드러난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깨끗하고, 이방인이라 해서 무조건 다 불결하다는 사고방식도 깨 버리신 사건이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마귀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에게 아주 모욕적인 말씀을 하신 대목을 들으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아무런 해석 없이 들을 때 우리는 너무나 혹독하고 모욕적인 표현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강아지”라는 단어는 그 당시 보통 사람들이 쓰던 욕설로서의 표현인 쿠온(kuon) 개새끼가 아니라, 귀염 받는 작은 개 즉 강아지라는 뜻을 가진 쿠나리온(kunarion)을 쓰심으로서 모욕적인 말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어조는 자애로움과 유머 감각이 섞인 단순한 통과의례에 불과하다고 보면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의 이방인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을 그대로 표출하시면서 그녀의 반응을 살피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그 여인은 예수님의 가혹한 시험에 무사히 통과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그 여인의 대답을 들어보자. “주님, 그렇긴 합니다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주어먹지 않습니까?”

정말 참을성 있고 유머 감각까지 있는 그 여인의 재치 있고 믿음 돈독한 대답은 아주 제짝을 찾은 한 쌍의 유머러스한 대화가 된 것이다. 만일 여기서 그 여인이 자존심이 상한다고 불쾌한 표정을 짓고 돌아갔다면 여인의 딸은 영영 구제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의 참을성 있고 확고부동한 믿음은 결과적으로는 위대한 구마 이적을 낳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인의 확고부동한 믿음과 모욕적인 언사까지도 참아낼 수 있는 도량 있는 인내심은 매우 좋은 결과를 유발해 냈다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유대인들의 편견과 아집이 여지없이 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철저하게도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방인들에 대한 배척 정신은 살인적일 만큼 철저했다. 유대인들은 구원이란 자기네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이방인들은 무조건 다 저주받아야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대 이방인 구마 이적은 아주 놀라운 사건으로서 확실하게 구원의 개방성과 보편성을 자리매김하는 사건이었다.

오늘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항구한 믿음과 인내심이 낳은 위대한 구원의 보편성은 단순히 모든 이에게 구원의 기회가 균등하게 이루어진다는 신학적인 해석으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들 사회에는 학연이나 지연 등을 따지면서 집단 이기주의와 더불어 철저한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을 너나없이 개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의지와 하느님의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은 우리 인간들의 편협하고 옹색한 선민주의를 여지없이 깨고 들어오신다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시는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폭넓은 사랑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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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art | 작성시간 05.08.08 사랑의 아빠,남편,친구.... 그리고 인간으로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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