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것, 자연과 인생의 그 모든 사건을 일관하는 부처님의 진리가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불신(佛身)을 본다. 그 세상의 모습을 보며 부처님을 보는 것이 바로 제8의 관상염불이다. 섬기는 마음, 아껴 쓰는 마음, 부지런히 간수해 보호하는 마음, 그것이 다 염불하는 마음이다.
사회 외면한 종교는 낭비
한결같은 진여 마음으로
모든 것을 부처로 대하라
아홉 번째 염불은 무심연불이라 했다. 염불하는 마음을 오래오래 그리고 깊이깊이 닦아가면 무심삼매까지 들게 된다. 무념, 잡념망상이 없는 마음, 사량분별이 없어진 마음,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무슨 일이든 다 해낼 만큼 견고한 마음, 확고부동한 마음, 그것이 바로 무념염불의 마음이다. 대승불교의 많은 경전에서 이러한 염불삼매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화엄경’의 ‘입법계품’에는 21가지의 염불삼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염불삼매에 들었을 때에 생기는 많은 공덕을 이렇게 표현했을 따름이다. 예를 들면 ‘원만보조(圓滿普照)’라는 것이 있다. 원만하게 두루 모든 것을 비친다는 말이다. 또 ‘일절력구경(一切力究竟)’이란 것이 있다. 모든 힘이 다 철저히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무심무념의 삼매는 진여한 마음을 들어내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마지막 열 번째는 진여염불이란 것을 들었다. 보조국사는 말하기를 “염불의 마음이 이미 그 극에 달하면 끝이랄 것도 없는 끝, 마음의 가장 깊은 경지가 들어난다. 원각(圓覺)이요, 대지(大智)이다. 언제나 한결같고 참된 마음, 모든 것을 다 평등하게 감싸며 모든 것을 다 명백하게 비추며 아무것도 그것을 흔들지 못하는 진여한 부처님 마음이 그대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선가의 말을 쓴다면 진짜 자기, 참된 나의 주인옹, 주인할아버지가 나타나며 줄 없는 거문고[沒絃琴]가 저절로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 아집도 법집도 이들의 상관관계도 다 사라진 마음이 그것이니다. “‘삼심(三心)이 돈공(頓空)’해 진다”고 지눌 스님은 말하였다. 이 마음이 누구냐? 이 마음은 바로 법신불이 아닌가? 그 법신불을 보는 염불, 이것을 중국의 다른 스님들은 법신관법(法身觀法)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염불이란 생신관법(生身觀法)에서 법신관법으로 옮아와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보조국사 지눌이 남긴 연불요문의 내용을 줄거리삼아 오늘 우리 불교도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몇 마디 중언부언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이 단순히 불교도에게만 관계있는 이야기라 생각치 않는다. 다른 종교에서도 기도(祈禱)를 말하는데 그 뜻을 나는 이 염불의 뜻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생각하건대 기도건 염불이건 그 참뜻을 잘못 이해하면 아무리 겉으로 내세운 종교의 효용이 화려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종교는 구실을 하지 못하고 만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전 동국대 교수 |
마음을 저버린 종교, 자각을 무시한 종교, 현실을 외면한 종교, 그러한 종교는 기도를 하건 염불을 하건 결국은 다 헛된 입장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가 사회에 대해 공헌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공연히 신기루를 쌓았다 헐었다 하는 낭비밖에는 할 것이 없다고 해도 마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