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도 정당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수단과 방법이 나쁘면 죄업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사리풋타는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여름 안거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죽림정사에서 부처님과 함께 안거를 마친 비구가 찾아왔다.
사리풋타는 그에게 부처님과 제자들,
신심 깊은 재가신자들의 안부를 차례로 물었다.
그런 다음 옛친구인 다난자니(陀然)의 근황을 물었다.
“내 친구 다난자니도 건강하고 편안한가.
자주 부처님을 찾아 뵙고 설법을 듣는가.”
“그는 건강하고 편안하지만,
부처님을 찾아 뵙고 설법 듣는 일은 잘 하지 않습니다.
계를 어기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옳지 않은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사리풋타는 이 말을 듣고 다난자니를 찾아갔다.
“벗이여.
그대는 어찌해서 바른 법을 닦지 않고 금계를 지키지 않으며,
남을 속이고 옳지 않은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는가?”
“나는 세속에 사는 사람이네. 부모와 처자를 보살펴야 하네.
국가에 세금도 내고.
조상을 위해 제사도 지내고,
사문과 바라문에게 보시도 해야 하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재물이 필요하네.
이 점을 이해해주게.”
“그럼 내가 한가지 물어보겠네.
어떤 사람이 부모를 위하느라고 악행을 했다고 하세.
처자를 위해 또는 조상을 위해 악행을 하고,
세금을 내기 위해 악행을 하고,
보시를 하기 위해 악행을 했다고 하세.
그렇다고 그가 지은 죄가 감해질 수 있겠는가?”
친구는 고개를 떨구면서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사리풋타는 친구를 위해 진심을 다해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벗이여.
정당한 행위와 정당한 방법과 정당한 공덕의 결과로 재물을 얻어
부모와 처자를 보살피고,
조상을 위하고 사문에게 보시를 행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래야 처자와 친족과 이웃과 사문들로부터 존경받지 않겠는가.”
- 중아함 제6권 27경 〈범지타연경(梵志陀然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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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도모할 때
목적만 좋으면 수단이 조금 나쁘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려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심리다.
그러나 이 경은 아무리 목적이 훌륭하다고 해도
수단이 나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목적이 훌륭하다면 수단도 훌륭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보인다.
이런 태도는 세속적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불편한 요구다.
어떻게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재산을 축적하며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리풋타는 이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충고를 한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옳은 것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재산을 모으기 위해
사람을 죽이거나 훔치거나 속이는 것을 정당하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죄가 될 일이란 하나도 없다.
이를 인정하면 그 순간부터 말썽이 생기고 시비가 일어난다.
모든 것은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인간의 법칙이 아니다.
힘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것은 동물의 법칙이다.
동물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수단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정당한 수단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경은 그것을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