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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스님 성당에서 강론

작성자청해[김광열]|작성시간14.01.08|조회수62 목록 댓글 1

성탄절, 성당에서 스님 강론





성탄절, 성당에서 듣는 법륜 스님의 강론
법륜스님의 희망이야기
법륜 스님은 12월 25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기 위해 성당에서 열린 성탄절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성가대의 합창과 바이올린 연주가 절묘한 화음을 이루며 성당 안을 가득 메운 가운데 성서 봉독과 찬송가를 함께 부르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신부님은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다”며 법륜 스님을 소개하면서 즉석에서 스님에게 성탄절 특별 강론을 요청했습니다.

법륜 스님은 예수님이 어떻게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셨는지를 말해주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에 대해 이렇게 들려주었습니다.
법륜 스님 :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셨는데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가장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시다가 권세 있는 자들을 내리치셔서 낮게 하시고, 이방인이나 새리 등 가장 낮은 자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높이셔서 이 세상을 평등하게 만드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오신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 날리듯이 날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 하는 게시를 받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불교와 견주어 본다면 결국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내가 부처다’ 하는 것을 깨달으신 것이나 예수님께서 ‘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게시를 받은 것이나, 저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지 결국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 의미는 결국 우리 자신들 하나하나가 가장 소중한 존재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각하셨지만, 그것이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반대 여론도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굶주리셨을 때 사탄이 나타나서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덩어리로 빵을 만들어라”, 즉 배고픈 자를 배불리 먹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사람이 빵으로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한번 보십시오. 사람들이 무엇으로 삽니까? 물질로 살지 않습니까? 경제만 성장한다면 뭐든지 다 용납이 되는 그런 사회입니다.

그것이 불법적으로 행해지든 그것이 어떻게 되든 결국 경제만 성장하면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불법으로 행해지든,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 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느냐 이것만 지금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들은 우리가 빵만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굳이 신자가 된 것은 그 말씀을 따르려고 신자가 된 것인데, 오늘 우리들은 말씀으로 사는 게 아니라 빵으로 산다는 데에만 너무나 많이 경도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어쩌면 사탄의 자손이 아니냐. 이걸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

즉 우리는 첫 번째 사탄의 시험에 지금 말려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 강정마을 주민들의 고통, 밀양 주민들의 고통, 지금 철도 파업을 하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고통 등 모든 고통들이 다 국가를 위하여 경제를 위하여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외면되어져 왔습니다. 거기에는 말씀이 짓밟혀도, 즉 정의가 훼손되고 불의가 횡행해도 빵만 얻어진다면 상관없다 하는 이런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탄은 그를 성전의 높은 곳에 데리고 가서 “너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곳에서 한번 뛰어내려 봐라” 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났다면 이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의 하나님을 시험케 하지 마라”라고 하며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종교에는 이런 기적과 신비주의가 지금 횡행하고 있습니다. 애가 시험에 붙었다, 승진했다 등 이런 기적이나 영험이 없으면 종교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없어지고 오히려 물질이 더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천하를 내려다보면서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이 천하를 다 너가 다스리는 영광을 주리라.” 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한마디로 단호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도 이런 물질의 유혹, 사회적 지위의 유혹, 명예의 유혹, 이런 것들이 주어졌을 때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행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어느 종교 할 것 없이 국가 예산 지원받으려고 정부에 비굴하게 구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런 데서 오늘 우리가 정말로 신자라고 한다면 가르침에 좀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 이 땅에서는 오히려 순수하지 못한 신앙자처럼 평가되고,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 세상의 불의를 외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마치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이런 인상을 주는 것은, 우리가 다시 성령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본다면 온당치 않은 일입니다. 그런 데서 이런 어려운 시기일수록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의 순수한 신앙의 열정이 돋보이는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에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카인에게 “너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었을 때 카인이 “저는 모릅니다. 제가 왜 그 아이를 살펴야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렇지 않으냐 싶어요.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같은 인류로서 우리는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는 점점 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갖지 못한 자들에게 도무지 관심도 없고 알지 못하고 왜 내가 그들을 보살펴야 하는가 말하는 식에 이르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위의 형제들에 대해서 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북한 동포들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과 애민의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북한이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그 속에 사는 백성들은 얼마나 아픔이 크겠느냐. 이 추운 겨울날 식량 부족으로 의약품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권 침해받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이 없다면 도대체 그들은 누구를 믿고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조금만 이런 얘기를 해도 종북주의라고 몰아붙이는 이런 편견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그런 데에 너무 겁먹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좀 더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옳은 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필요하지 않으냐 이렇게 생각합니다.예수님께서 오신 이 좋은 날, 우리가 기쁜 얘기하기보다도 약간 슬픈 얘기가 진행이 되었는데요. 어쩌면 그분께서 오실 때의 모습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겠느냐 싶어요.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모두가 환영하고 영광스럽게 했어야 됐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백성 그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결국 그 추운 날 말구유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알아본 사람은 유대인도 아니고 저 이방인 페르시아 사람들이 와서 그분께 경배를 했다 합니다. 오늘날 비유로 들어본다면, 예수님의 진실한 가르침이 교회 안에 있지 않고 오히려 교회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교회 밖에서 지금 그분께 경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대인들이 그분을 사회를 혼란시킨 사람으로 처벌하듯이 어쩌면 교회가 그분을 교회로부터 추방할지도 모르지는 않을까. 이런 우리들의 신앙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기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천주교는 민주화 시기에 정말 국민들의 희망이 되어 주었습니다. 명동 성당 김수환 추기경님은 종교가 다른 저에게도 항상 존경스럽고, 저희들이 고통에 있을 때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또 북한 동포들이 굶주려 죽을 때도 그분을 모시고 동포 돕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추기경님은 천주교의 지도자를 넘어서서 우리 모든 국민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천주교는 한명 한명에게 선교를 하지 않더라도 이 민주화 과정 속에서 이뤄낸 도덕성 덕분에 신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교인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결국은 국민과 국가가 원하는 그런 긍정적인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북한 동포 한명 한명에게 선교를 하는 것보다도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이런 일이 통일 이후에 오히려 그들에게 신앙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아서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반갑고요. 신부님과 또 여러분들과 함께 뜻을 모아서 우리 사회가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그런 일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절, 성당에서 듣는 스님의 강론은 참 평화로웠습니다. 스님의 성탄 축하 메시지가 끝나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이웃 종교인들이 이렇게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가 아니겠나 싶으면서 마음이 참 훈훈해 졌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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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명(김종국) | 작성시간 14.01.09 법률도 정치스님이군요 연설 마무리에 아무도 경제를 위해 불법을 해도 된다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듯이 매도하며 종북좌파 신부들에 아부하다니 한심 할 뿐입니다 법률이 그런 말을 하려면 법복을 벗고 머리 기르고 해야지 왜 불교도 망신을 시키는 지....... 평화재단이사장도 한다니 종교인을 위장한 운동권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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