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나?
많은 사람이 산을 찾는 가을로 접어들었다.
일 년 중에 산을 가장 많이 찾는 계절이다.
산에 가다보면 어디서나 절을 만난다.
절은 삼국과 고려의 국교로 지정될 정도로 한반도를 지배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렇게 많은 절을 지나치다보면 절의 모습과 불상의 모습,
그 앞에 있는 탑들이 조금씩 다른 것에 눈길이 간다.
구조나 형상이 조금씩 다른 것은 다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절과 불상의 형상에 대해 미리 알고 가면 산과 절은 찾는 재미가 더할 것 같다.
청량산 청량사 일주문이다. 절에서 왜 일주문이라고 할까?
산에 있는 절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이 있다.
바로 일주문(一柱門)이다.
왜 일주문이라고 했을까?
글자 그대로 보면 기둥이 하나인 문이다.
그러나 기둥이 하나인 문은 없다.
기둥이 두 개인 문이 대부분이다.
부삼 범어사 일주문처럼 4개인 경우도 있다.
일주문은 옆에서 볼 때 한 줄로 보인다고 해서 일주문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문은 도둑을 막기 위한 문이 아니라,
오욕칠정으로 물든 차안(此岸)의 번잡한 세상과 무욕의 세계를 나타내는
피안(彼岸)의 불법세계를 나누는 상징적 문에 해당한다.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당 같은 건물에 무서운 형상을 띤 그림이 나온다.
이른바 사천왕(四天王)이다.
동서남북 천지사방의 수호신장으로 악한 것을 막고 불법을 보호하는
신장들을 말한다.
동쪽에 칼을 든 형상은 지국천왕이라 하고,
남쪽의 용과 여의주를 든 형상은 증장천왕이다.
서쪽엔 탑과 삼지창을 든 광목천왕,
북쪽은 비파를 든 다문천왕이 지키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 금강문이 있는 절도 있다.
절을 지키는 금강역사 2명이,
오른쪽은 입을 벌리고,
왼쪽은 입을 다물고 있다.
대웅전에는 항상 불상이 있다.
모셔진 불상에 따라 전각의 이름도 달리 표현된다.
법당 벽이나 대웅전 벽에 그려진 벽화가 있다.
보통 소와 동자가 나오는 ‘심우도(尋牛圖)’나
부처의 성도과정을 그린 ‘팔상도(八象圖)’ 그림이다.
심우도는 평범한 중생(동자의 형상)이 본성(소의 형상이며 불성을 의미)을
찾아가는 과정을 10장으로 나눠 그렸다.
소의 몸이 검은 색에서 흰색으로 변하는 것은 소 길들이기,
즉 마음을 닦는 단계를 나타낸다.
법주사 팔상전처럼 ‘팔상전’ ‘영상전’이란 이름의 법당에는
부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가 있다.
이는 부처의 탄생부터 열반까지를 8장으로 나눠 그린 그림이다.
그러면 불상의 머리는 왜 꼬불꼬불할까?
실제 부처,
즉 석가모니는 출가한 승려였으니,
머리를 삭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일부에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 삭발을 하지 않은 것도 볼 수 있다.
원래 고타마 싯달타는 인도 아리안 계통이었고,
이들은 모두 뾰쪽한 코에 깊은 눈과 곱슬머리를 하고 있다.
이같은 연유로 불상의 머리가 곱슬머리형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불상을 만들 때 ‘부처의 모습은 이러하다’고 72가지 특징을 규정한
‘72길상(72호 종상)’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상을 만든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절에는 어떤 불상들이 있나?
법당의 이름은 그 안에 모셔져 있는 주존불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엔 석가모니불이 있는 대웅전이 가장 많다.
‘대웅(大雄)’은 유혹을 뿌리치고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를 가리킨다.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약사여래불의 세 불상이 나란히 있으면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고 한다.
서방극락세계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이 있는 전각일 경우엔 미타전 혹은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 무량수각, 극락전 등으로 불린다.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처럼 극락전․무량수전․아미타전이란
이름이 붙으면
아미타불이 주존불로 모셔진다.
사회혼란기에 반드시 나타나는
미륵신앙을 대상으로 미륵불이 주존불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힘없는 대중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심어주는 부처,
즉 미륵불을 모신 전각을 미륵전이라고 한다.
금산사 미륵전이 대표적인 전각이다.
미륵은 석가모니 사후 2500년이 지난 말세에 나타나 인간을 구원할 부처다.
때문에 나라가 혼란하거나 망국이 되면 한(恨)을 달래기 위해 미륵신앙이 출현한다.
백제말기의 진표에 의해서 개창된 점찰신앙이나
신라말기 및 고려 말기에 나타난 미륵신앙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의 정감록도 이에 해당한다.
신라 말기의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이라고 칭했다.
송광사 대웅전 모습.
조계산 송광사는 한국선종의 본산이며, 15국사를 배출한 절이기도 하다.
또 관세음보살과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은
관음전(圓通殿, 원통각)과 약사전이다.
대다수의 절집에는 모두 있는 이들 전각들은
인간의 질병과 고통을 없애주는 주불을 모시고
심약한 인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자 했다.
관세음보살은 한 손에 감로수병을 들고 있고,
약사여래는 한 손에 약병을 들고 있다.
지옥 중생들이 모두 구제까지 성불을 미루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 지장전 혹은 시왕전이다.
이 전각 안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염라대왕과 염라대왕을 보좌하는 지옥 시왕(十王)들이 모셔져 있고,
인간의 행적에 따라서
벌을 주는 재판장인 최판관이 명부를 들고서 재판을 주관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이 지장전의 기도가 가장 신효하고 신속하다고 한다.
기도의 효험은 허공기도가 으뜸이고,
그 다음이 독성기도,
그 다음이 지장기도라고 한다.
허공기도는 불교와는 전혀 무관하기에 불교 종단에서 금지하고 있다.
이 외의 기도는 모두 효험이 없다고 한다.
이는 불교의 근본 목적이 자기안의 불성을 찾아서 성불하는 것이지,
기도를 통해 기복을 추구하는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연유로 아주 공교롭게도 거의 대부분의 사찰은
풍수적으로 그 사찰의 핵심인 결혈처(結穴處)에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신각이나 혹은 삼성각 및 지장전 등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이들 전각에서 기도나 수련을 하면
그 산에 응기(凝氣)된 기를 받기 때문에 속효가 나타난다고 한다.
다음으로 부처와 보살의 차이를 보자.
부처는 무상경계의 해탈을 얻은 아라한,
즉 나한(羅漢)들이 가고 오는 것에 대한 거침이 없는 곳에 까지 이르는
경지를 말한다.
이들 중 부처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고 아라한의 경지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 바로 보살이다.
흔히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
보살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이를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나라 절에서는 절에 오는 모든 여자들을 보살이라고 한다.
아마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보살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때문에 절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까지 보살이라고 한다.
탑의 층수는 대개 음과 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홀수로 쌓는다.
불상이 없는 법당도 있다.
이를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거대사찰인 양산 통도사와 함백산 정암사 대웅전에 불상이 없다.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는 사리탑이 있기 때문에
별도로 불상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는 법당을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함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등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고,
이들 보궁에는 불상이 없는 인법당(人法堂)이다.
마지막으로 절에 있는 탑의 층수를 어떻게 셀까?
탑(스투파)은 부처나 스님들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세워졌다.
보통 받침돌과 기단 및 본체, 두륜부(寶蓋)로 나눠진다.
일반인들이 층수를 헤아리기 힘든 구조로 된 조형물이기도 한다.
탑의 층수를 세려면 아주 간단하게는 처마 모양의 지붕돌만 보면 된다.
부처나 스님들의 사리를 보관했기 때문에 음기인 사리에 조화를 맞추기 위해
양기를 나타내는 홀수로 되어 있다.
따라서 지붕돌이 3개면 3층탑, 5개면 5층탑이다.
탑은 부처나 스님들의 사리를 넣기 위한 사리보관함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불법의 상징물로 변했다.
탑 안에는 사리함과 의발, 필사본 불경 등과 같은 보물을 넣었다.
때문에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됐다.
이 같은 탑은 처음엔 목탑으로 만들었으나 점차 석탑, 전탑, 모전석탑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정도만 알고 산에 가서 절을 보면 훨씬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박정원 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