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39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가장 큰 계명(막 12:28-34; 눅 10:25-28)
| (마 22:34) |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
| (마 22:35) |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눅10:25 |
| (마 22:36) |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
| (마 22:37)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 (마 22:38)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
| (마 22:39)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 (마 22:40)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Master, which is the great commandment in the law? ㅣ 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 "라고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하여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은 "네가 율법이 뭔지 알기나 해? Do you know anything about the Law"라는 멸시와 교만이 담겨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율법의 가장 핵심적인 명령이 무엇입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면 조목조목 따지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시면 무시할 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신명기 6:5절의 말씀(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을 인용하여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율법학자들과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관점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규제와 징계의 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율법이해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것이었습니다. 온통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율법이해는 적극적인 것이었습니다. 긍정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율법이 사람을 규제하고 징계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말하셨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하지 말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라'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야할 그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율법의 핵심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율법의 정신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누구보다도 율법을 정확하고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율법을 내세운 감시자요, 판단꾼이요, 정죄자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들의 율법에 대한 열심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율법에 대한 열심은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와 특권을 탐욕스럽게 지킨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점을 정확히 꿰뚫어 보셨습니다.
율법에 대한 주님의 해석은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지침입니다. 다른 어느 것도 하나님과 우리를 이을 수 없습니다. 오직 구체적인 사랑의 삶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이어줍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랑 없이 행하는 것은 그 어떠한 것이라도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만나게 하고 사랑하는 삶만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내세웠으나 율법의 정신을 따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신 주님, 하나님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율법으로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구원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의 사건이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그 사랑의 본질로 오신 예수님은 율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죄 속에 있던 우리를 사랑의 세계로 불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사랑의 눈부신 빛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주어지고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처한 삶과 형편과 일어나는 일을 해석할 때 하나님의 사랑의 빛 아래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런 일들과 상황을 잘못이해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레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 계명입니다. 위로는, 신명기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요한1서 4:11의 말씀을 따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이 율법의 정신이고 핵심이며, 사랑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기 때문에, 사랑은 우리에게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계획과 행동과 언어와 마음과 모든 삶의 목표가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맞춰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삶이야말로 참된 믿음의 삶이며 진정한 성결의 삶입니다. 사랑은 믿음의 구체적 표현이고, 사랑은 성결한 삶의 구체적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들과 되어지는 일들 속에서 자신을 보여주시지만 눈으로 보면서도 하나님이신 줄 깨닫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사랑이 없었기에 하나님이 자기를 드러내신 예수님을 보고도 하나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가장 거룩하다고 자랑했지만 정작 거룩하신 주님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예수님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빛 아래 사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는 두려움만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밝은 빛 안에서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빛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율법의 참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되고 궁극적인 계명입니다. 그런 삶에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된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힘써야합니다. 이 둘은 새의 양 날개와 같습니다.
한쪽 날개만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새는 없습니다. 두 날개가 온전하여 동시에
날개 짓을 할 때 새는 높이 날아 오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사랑이라는 날개와 이웃사랑이라는 두 날개를 가져야 합니다. 이 두 날개를
열심히, 부지런히 움직일 때 하나님 나라로 날아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 사랑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아래 자유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사랑의
종으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율법의 종이 아니라 사랑의 종이 되었습니다. 율법적 삶은 바리새인의 삶이지만, 사랑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율법이 드리워 놓은 정죄의 그늘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사랑의 세계로
옮겨진 것을 기뻐합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사랑이신 주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얽어매고 정죄하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버리고 자유롭게 하며 살리며 북돋아주는 사랑의 삶을 사시기 축원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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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KiC 작성시간 12.01.1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과 선지자'는 결국 구약 전체, 구약의 사역 전체를 의미합니다 (마 11:13)
따라서 구약과 신약, 모든 사역의 중심이 결국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베푸는 것 .........
우리는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난 존재입니다.
(마 5:17, 개정)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7:12, 개정)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