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풍경 달다 / 정호승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갈 가마귀 울음에
산들 여위어 가고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지나는,
남쪽 십일월의 긴 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
무등차 / 김현승
흐린 세상을 욕하지 마라
진흙탕에 온 가슴을
적시면서
대낮에도 밝아 있는
저 등불 하나
연꽃 / 이외수
어떤 세월로도 어쩔 수 없는 나이가 있다
늘 '내새끼'를 끼고 다니거나
그 새끼들이 물에 빠지거나 차에 치일까
걱정만 몰고 다니는
그 새끼들이 오십이 넘고 육십이 되어도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아
눈썹 끝엔 이슬만 어룽대는
맛있는 음식물 앞이거나 좋은 풍광도
입 밖의 차림새, 눈 밖의 풍경
앞가슴에 손수건을 채워야 안심이 되는
어머니란 나이
눈물로만 천천히 잦아드는,
마을 입구 정자나무 한 그루,
그래도 끝내 청춘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늙지 않는 절벽 / 강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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