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프랑수아 를로르’는 ‘나 역시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행복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 수첩 하나를 들고 여행길에 나선 꾸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역시 꾸뻬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의사인데 그는 자신의 환자들을 진료하며
얻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꾸뻬가 택한 첫 여행지는 중국의 섬 도시였다. 거대한 현대식 빌딩과 그곳의 사람들 모습은
그가 떠나온 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퇴근시간에 세련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빌딩에서 나오나 그들은 어두운 얼굴에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었다.
그 거리에서 웃고 있는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은 구름다리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는 외국서 온 가정부인 여성들인데 일요일에는 갈 곳이 없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꾸뻬는 다가가 왜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오늘은 우리가 쉬는 날이거든요, 또 우리가 행복한 건 친구와 함께 있기 때문이에요”
꾸뻬는 수첩에 이렇게 적는다.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꾸뻬는 우연히 올라간 산에서 노승을 만났는데, 온갖 풍파를 경험했을 그는
너무나 자주 웃으며 평온한 모습이다. 행복에 대한 지혜로운 한마디를 부탁했으나
“여행을 마치거든 나를 만나러 다시 오시오”란 말만 듣는다.
꾸뻬는 행복에 대한 목록을 하나씩 채워 나갔고, 이 목록이 이론적으로 설득력을 갖는지
여부를 알려고 행복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교수를 만나러 미국으로 갔다.
그는 행복측정의 세 가지 방법을 들려주었다.
첫째, 사람들이 하루에 몇 번이나 즐거운 감정을 느끼는지 묻는 것.
둘째,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운가를 묻는 것.
셋째, 몰래 카메라나 다른 방법을 통해 얼굴표정을 관찰 하는 것.
그러나 꾸뻬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빠져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것이 자신의 환자들이 부족함 없는 삶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행을 호소했던 이유였다.
그는 수첩에 ‘행복은 사물들을 보는 방식’에 있다고 적는다.
꾸뻬는 여행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작성한 목록은 아주 소박하고 단순한 지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행복이란 삶의 우연성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는 깨달음 그것이다.
꾸뻬는 긴 여행을 거쳐 약속대로 다시 중국의 노승을 찾아갔다.
꾸뻬가 작성한 목록을 읽고 특별한 말없이 함께 숲길을 걷기를 원했다.
노승은 침묵 속에서 꾸뻬에게 태곳적부터 있어 온 한 영원한 진리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행복에 대한 욕망이나 추구마저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과 하나가 되어
존재할 때 저절로 얻어지는 근원적인 행복감이었다.
이 근원적인 행복은 자주 찾아 오지 않지만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으며
세상에서 얻는 다른 모든 행복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었다.
꾸뻬는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노승의 웃음이 바로 그 근원적인 행복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느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꾸뻬는 정신과 의사 일을 다시 시작했다.
깊은 슬픔이나 큰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났다.
그의 치료방법에는 달라진 것이 하나 있는데, 그가 이 여행에서 발견한 배움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며 그는 자신의 일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줄거리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깨달으며,
그의 수첩에 메모되어 있는 ‘행복의 비결’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행복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
각자 자기 몫의 삶을 남과 비교하니 기가 죽고 불행해지고 질투가 생긴다.
둘째,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사람은 행복해진다.
셋째,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흙을 가까이하며 살아있는 생명을 가꾸는
일은 좋은 일이며, 이는 닳아져 가는 우리 마음을 소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넷째, 행복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한 몫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있다. 장미꽃을 왜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달려있나?
또는 가시에 아름다운 꽃이 달렸네 라고 서로 다르게 볼 수 있다.
여섯째,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고 있기에
서로 나눌 때 행복은 몇 배로 깊어지고 넓어진다.
일곱째,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가능성이다.
여덟째,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에 이룰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오늘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상황, 사회시스템, 국제정세 등 주위 환경을 바라본다.
또한 더 가지려고 더 높아지려고 더 명예 얻으려 앞뒤 바라보지 않고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과 내로남불의 얼굴과 이를 부추기는 사회분위기를 바라본다.
숨가쁘고 일그러진 얼굴, 뛰어 다기만 하는 발걸음, 스트레스 받아 찡그린 표정,
성공만을 향한 그 눈빛, 그 어디에도 행복은 보이지 않는다.
난, 십여 년 만에 다시 책장에서 먼지 묻은 이 소설을 끄집어내 읽으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 있고,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찾아야 하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삶에 충실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늘도 함께 교제하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욕심을 내려 놓음에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으며 7월이 열리는 푸른 저 하늘과 신록의 자연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