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원 박사의 周·人·工 四書三經] *—<제67강> (2017.06.19)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제8강)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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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공부> ; [14] 火天大有 [15] 地山謙 [16] 雷地豫 [17] 澤雷隨
[18] 山風蠱 [19] 地澤臨 [20] 風地觀 [21] 火雷噬嗑
오늘의 주역(周易) 읽기 ② ☞ [15] 地山 謙
[15] 겸괘 (地山 謙卦 第十五)
이 괘의 상괘는 곤괘(坤卦, ☷)이고 하괘는 간괘(艮卦, ☶)이다. 음(陰)으로만 구성된 이 집단에서 구삼(九三)만이 유일한 양(陽)이다. 그래서 이 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구삼(九三)이다. 하층부나 상층부가 빈약하니 오만해지기가 쉽다. 그러나 실제 구삼의 위치는 하층부에서 벗어나 있고 또 상층부에 진입한 상태도 아니다. 만일 이런 위치에서 자기의 직분이나 분수를 지키지 않고 오만(傲慢)하면 상·하의 구성원들에게 배척을 당하기 쉽다. 조선시대 걸출한 능력자인 남이(南怡) 장군이 일찍 사형을 당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謙遜)이다. 겸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괘의 이름을 ‘겸(謙)’이라 했다.(이기동)
『역전(易傳)』에서 말했다. ‘겸괘(謙卦)는 <서괘전>에 “큰 것을 소유한 자는 가득차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겸괘로 받았다.” 하였다. 소유(所有)함이 이미 성대하면 영만(盈滿)함이 있어는 안 되고, 반드시 겸손(謙損)한 데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유괘(大有卦)의 뒤에 겸괘(謙卦)로 받은 것이다. 괘의 됨이 곤(坤, ☷)이 위에 있고 간(艮, ☶)이 아래에 있으니, 땅 가운데 산(山)이 있는 것이다. 땅의 체(體)는 비하(卑下)하니, 산은 고대(高大)한 물건인데 땅의 아래에 있음을 겸(謙)의 상(象)이요, 숭고한 덕으로 낮은 곳에의 아래에 처함은 겸(謙)의 뜻이다.(謙 序卦 有大者 不可以盈 故受之以謙 旣有旗大 不可至於盈滿 必在謙損 故大有之後 受之以謙也 爲卦 坤上艮下 地中有山也 地體卑下 山高大之物而居地之也 謙之象冶 以崇高之德而處卑之下 謙之義也)’
* [15謙] [지산겸(地山謙)의 괘사(卦辭)] ————
| 謙, 亨, 君子有終. |
겸손(謙遜)해야 하는 상황이다.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군자라야 마칠 수 있다.
* [강 설(講說)] ————
이 괘의 상황에서는 겸손(謙遜)만이 살길이다. 구삼은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 실권이 없기 때문에 겸손하지 않으면 실권자에게 제거 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안 된다. 거만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다가가 밝은 마음으로 몸을 낮추어야 한다. ‘亨’은 밝은 마음으로 임하는 자세를 말한다. 단전에서 ‘겸손한 자는 높아지면 빛이 난다’고 하는 데서 그 의미를 근거를 찾는다.
☞ [주역의 삶] — 겸괘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① 매사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 [亨]
② 군자는 모든 일에 끝맺음이 있다. ← [君子有終]
☆… 참된 군자(君子)는 내공이 높고도 깊으면서 또한 겸손한 분이다. 예컨대 세종대왕이 노인을 공경하여 단(段) 아래에 까지 내려와 노인에게 술을 따른 것이라든가, 퇴계 선생이 아무리 어린 제자라도 공부를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문밖까지 나가서 예(禮)를 다한 일,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전쟁 후 공훈을 상신할 때 자기의 업적보다는 부하의 공적을 훨씬 강조하여 장계를 올린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참된 군자가 일을 끝맺는 겸덕(謙德)이다. 그 중 퇴계 선생은 경(敬)으로 윤집궐중하신 분으로 ‘노겸군자(勞謙君子)’라고 칭한다.
또『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꽉 차면 손실(損失)을 부르고 겸손하면 유익(有益)함을 받는다.(滿招損 謙受益)”고 했고,『주역(周易)』<건괘>의 효사 ‘용구(用九)’에서 ‘여러 용(龍)을 보되 머리가 없으면 길하리라.(見羣龍无首, 吉)’ 했다. 모두 겸손을 강조한 말이다.
* [지산겸(地山謙)의 단전(彖傳)] ——* 단전은 괘사에 대한 공자의 해설이다.
[15謙] 彖曰, 謙, 亨. 天道下濟而光明, 地道卑而上行.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謙尊而光, 卑而不可踰, 君子之終也.
단(彖)에서 말했다. “겸손하고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은 천도(天道)가 아래에서 일을 이루어 광명(光明)하고 지도(地道)가 낮으면서 위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천도(天道)는 오만한 자를 일그러뜨리고 겸손한 자를 도와주며, 지도(地道)은 오만한 자를 변모시키고 겸손한 자에게 흘러가며, 귀신(鬼神)은 오만한 자에게 해를 주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며, 인도(人道)는 오만한 자를 싫어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 겸손한 자는 높아지면 빛이 나고 낮아지더라도 그를 넘어갈 수 없다.”
· ‘天道虧盈而益謙’에서 ‘虧’(휴)는 ‘일그러뜨리다’
· ‘地道變盈而流謙’에서 ‘變’(변)은 ‘변모시키다’. ‘流’는 ‘흘러가서 도와준다’는 의미이다.
· ‘鬼神害盈而福謙’에서 ‘盈’(영)은 ‘가득차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오만한 사람’을 뜻한다.
* [강 설(講說)] ————
군자(君子)만이 겸손(謙遜)할 수 있다. 군자가 아니면 자기의 실력만 믿고 큰소리치다가 결국 중도에서 제거되고 만다. 겸괘(謙卦)의 핵심은 구삼(九三)이다. 구삼(九三)이 다른 존재에게 겸손해야 하지만 또 다른 존재도 역으로 구삼(九三)에게 겸손해야 한다. 구삼(九三)을 제거하고 말면 전체가 침체에 빠지기 때문이다.
‘천도(天道)가 아래에서 일을 이룬다’고 하는 말은 천도를 실천하는 유일한 양인 구삼(九三)이 겸손하게 하층부에 있으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광명을 이룬다는 말이다. ‘지도(地道)가 낮으면서 위에서 행한다’는 말은 곤괘인 상층부가 위에서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말이다.
천도가 우주 전체의 흐름이라면, 지도는 땅의 흐름이고, 인도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움직임이며, 귀신은 천도와 지도 그리고 인도의 흐름을 관장하는 구체적인 기운(氣運)을 말한다. 겸손(謙遜)한 사람은 천도와 지도 그리고 인도와 귀신이 모두 도와주기 때문에, 높이 추앙을 받아 빛나게 된다.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지만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를 업신여기거나 넘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끝까지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
* [지산겸(地山謙)의 상전(象傳)] ————
[15謙] 象曰, 地中有山, 謙, 君子以裒多益寡, 稱物平施.
상(象)에서 말했다. “땅 속에 산이 있는 것이 겸(謙)이다.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많은 것에서 취하여 적은 것에 더하며 사물에 맞추어 화평하게 베푼다.”
· ‘君子以裒多益寡’에서 ‘裒’(부)는 ‘모으다, 취하다’의 뜻.
· ‘稱物平施’에서 ‘稱’(칭) ; 원래 ‘저울’이라는 뜻이다. 저울은 저울추와 저울에 다는 물건이대칭(균형)이 되기 때문에 ‘균형이 된다’는 뜻으로 쓰이고, 그러므로 ‘꼭 맞는다, 꼭 맞게 한다’의 뜻으로 쓰인다.
* [강 설(講說)] ————
주역의 겸괘(謙卦)의 이치를 파악한 군자는 겸허한 자세를 가지고 많은 것을 자랑하지 않고 적은 자를 도와줄 수 있다. 그리고 사심(私心)을 지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상황에 맞게 자유자재로 대처할 수 있다. 그래서 상(象)에서 ‘많은 것에서 취하여 적은 것에 더하며 사물에 맞추어 화평하게 베푼다’고 했다.
* <15>*[지산겸(地山謙)의 효사(爻辭)] ————
· 初六, 謙謙君子, 用涉大川, 吉. · 六五, 不富, 以其鄰利用侵伐, 无不利. · 六四, 无不利, 撝謙. · 九三, 勞謙, 君子有終, 吉. · 六二, 鳴謙, 貞吉. · 初六, 謙謙君子, 用涉大川, 吉. |
* [겸괘(謙卦) 초육(初六)의 효사(爻辭)] ————
[15謙] 初六, 謙謙君子, 用涉大川, 吉.
象曰,“謙謙君子”卑以自牧也.
초육(初六)은 겸손하고 겸손해야 한다. 군자라야 큰 강을 건너 길하다. 상에서 말했다.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는 낮춤으로써 자리를 기른다.”
* [강 설(講說)] ————
『역전(易傳)』에서 말했다. “초육(初六)은 유순함으로써 겸손함에 처하고 또한 괘의 아래에 있어서, 자처하기를 비하(卑下)하게 함[卑以自牧也]이 지극하니, 겸손하고 또 겸손하다. 그러므로 ‘겸겸(謙謙)’이라 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는 자는 군자(君子)이다. 자처하기를 지극히 겸손하게 하면 사람들이 함께 하는 바가 되니, 비록 험난함[☵]을 건너더라도[用涉大川] 환해가 없는데 하물며 평이함에 거함에랴. 어느 것인들 길(吉)하지 않겠는가.”
초육(初六)은 유순하고 어리다. 괘의 유일한 양인 구삼(九三)은 능력자이다. 그러나 실권이 없다. 육이(六二)와 육사(六四)가 협공을 하면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내호괘(육이-구삼-육사)는 이전투구가 일어나는 감괘(坎卦, ☵)이다. 초육(初六)은 여기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오직 ‘겸손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 [겸괘(謙卦) 육이(六二)의 효사(爻辭)] ————
[15謙] 六二, 鳴謙, 貞吉.
象曰,“鳴謙貞吉”中心得也.
겸손(謙遜)함을 말로 드러내며, 바르게 하면 길하다. 상(象)에서 말했다. “겸손함을 말로 드러내어 바르게 하면 길한 것은 중심에서 마음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육이(六二)는 하층부의 실권자이다. “육이(六二)는 유순함으로 중에 처하였으니, 이는 겸덕이 가운데에 쌓이는 것이다. 겸덕이 가운데 충적하였으므로 밖에 발하여 성음과 안색에 나타나기 때문에 명겸(鳴謙)이라 하였고 중에 거하고 바름을 얻어 중정(中正)의 덕(德)이 있기 때문에 ‘바르게 하면 길하다’고 한 것이다. ‘貞吉’은 ① ‘바르고 또 길한 경우’가 있고, ② ‘바르게 하면 길한 경우’가 있으니, 육이의 ‘貞吉’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①는 양의 자리에 양(陽)이 오고, 음의 자리에 음(陰)이 온 경우에 대한 해석이다. 이미 바르게(貞, 正)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②은 양의 자리에 음(陰)이 오고 음의 자리에 양(陽)이 온 경우의 해석이다. 정(正)이 아니므로 ‘바르게 하면 길하다’고 한 것이다.
울림[鳴]은 진괘(진卦, ☳)에서 발하나니, 하괘를 뒤집어보면 진괘가 되는 것이다.
* [겸괘(謙卦) 구삼(九三)의 효사(爻辭)] ————
[15謙] 九三, 勞謙, 君子有終, 吉.
象曰, 勞謙君子, 萬民服也.
구삼(九三)을 겸손함을 애써 실천해야 한다. 군자라야 마침이 있어서 길할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겸손함을 애써 실천하여 군자에게는 만민이 감복한다.”
* [강 설(講說)] ————
유일한 양인 구삼(九三)은 대단한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실권이 없다. 그래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만약 불만을 드러낼 경우 상·하의 모두에게 배격을 당할 수 있다. 군자라야 겸손하게 대처하여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구삼은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래서 ‘겸손함을 애써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
맹자반은 용감했다. 그래서 그는 전쟁터에서 퇴각할 때 끝까지 싸우다가 가장 나중에 퇴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먼저 퇴각한 사람들을 비겁자로 만드는 행위가 된다. 그 때문에 먼저 퇴각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래서 맹자반은 성문을 들어올 때 말에 채찍을 치면서 “내가 늦게 오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이 말이 느리구나.” 하였다. 이것이 노겸의 한 방법이다.『맹자』<옹야편>에 나온다.(이기동)
☞ [퇴계 선생의 아름다운 유종(有終)] —
퇴계(退溪) 선생의 병환이 위중한 상태에 즈음하여,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주역(周易)의 점(占)을 쳐보았더니, <겸괘(謙卦)> ‘구삼(九三)’이 나왔다. 제자는 얼굴이 사색(死色)이 되었다. ‘君子有終’이 나왔으니, 이제 곧 운명(殞命)하실 거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퇴계 선생의 모습은 지극히 편안하고 따뜻했다. 살아서 겸덕(謙德)을 다한 참다운 군자의 모습은 죽음의 순간에도 그윽하고 자연스러웠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경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근심 가운데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가운데에 근심이 있었네. 조화를 타고 일생을 마치니 다시 또 무엇을 구하리오?[憂中有樂, 樂中有憂. 乘化歸盡, 復何求兮?]”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스스로 지은 묘갈명(墓碣銘)의 마지막 구절이다. 스스로를 잊고 음양의 조화에 따라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세계와 삶에 대한 철학이 읽힌다.
『역전』에서 말했다. 구삼(九三)은 양강(陽剛)의 덕(德)으로 하층부에 있어서 여러 음(陰)에게 높임을 받고 이행함에 그 바름을 얻어 하층부의 상(上)이 되었으니, 이는 위로는 군주에게 신임을 받고 아래로는 여러 사람에게 추종을 받아 ‘공로(功勞)가 있으면서 겸덕(謙德)을 갖춘’ 자이다. 그러므로 ‘노겸(勞謙)’이라 한 것이다. 옛사람 중에 이에 해당하는 자가 있으니 주공(周公)이 이분이다. 몸소 천하의 큰 임무를 담당하여 위로는 유약한 군주(君主, 六五)를 받들고 겸손과 공손함으로 자처하여 조심하고 조심하여 두려운 듯이 하였으니,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하였다고 이를 만하다. 이미 공로가 있으면서 겸손하고 또 모름지기 군자가 행함에 끝마침을 두면 길한 것이다.
* [겸괘(謙卦) 육사(六四)의 효사(爻辭)] ————
[15謙] 六四, 无不利, 撝謙.
象曰,“无不利撝謙”不違則也.
육사(六四)는 겸손하도록 지휘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 상에서 말했다. “겸손하도록 지휘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육사(六四)는 하층부를 지휘하고 윗사람을 보좌하는 자리다. 육사(六四)는 초육(初六)과 육이(六二)에게는 구삼(九三)에게 겸손하도록 설득해야 하고 구삼(九三)에게는 스스로 겸손하도록 설득해야 하며, 육사(六四) 자신도 구삼(九三)에게 부드럽게 겸손해야 한다. 그래서 ‘겸손하도록 지휘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육사(六四)는 상층부에 거하여 군주의 자리와 매우 가깝고 육오(六五)의 군주가 겸유를 자처하며, 구삼(九三)이 또 큰 공덕이 있어 윗사람에게 신임을 받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데 자신이 그 우에 처하였으니, 마땅히 공손하고 두려워하여 겸덕의 군주를 받들며, 낮추고 겸손하여 노겸의 신하에게 양보하여서, 동작과 행위가 겸손함을 베풂에 이롭지 않음이 없다.
* [겸괘(謙卦) 육오(六五)의 효사(爻辭)] ————
[15謙] 六五, 不富, 以其鄰利用侵伐, 无不利.
象曰,“利用征伐”征不服也.
육오(六五)는 이웃끼리 부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쳐들어가 처벌하는 것도 이롭다. 그러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 상에서 말했다. “쳐들어가 처벌하는 것을 이롭게 여겨도 되는 것은 복종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육오(六五)는 전체의 실권자이다. 그러나 지금 육오(六五)는 자기보다 돋보이는 구삼(九三)의 능력이 싫다. 그래서 그를 제쳐두고 육사(六四), 상육(上六)과 의논하여 윗사람들끼리 도모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구삼(九三)의 실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전체가 침체되고 만다. 그래서 ‘이웃끼리 부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웃’은 육사(六四)와 상육(上六)이다.
만약 육사(六四)나 상육(上六)이, 또는 육이(六二)가 구삼(九三)을 제거하려 하면 그들을 응징해야 한다. 그래서 ‘들어가 처벌하는 것도 이롭다’고 했다.
* [겸괘(謙卦) 상육(上六)의 효사(爻辭)] ————
[15謙] 上六, 鳴謙, 利用行師, 征邑國.
象曰,“鳴謙”, 志未得也,“可用行師”征邑國也.
상육(上六)은 겸손함을 말로 드러내야 한다.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이롭다. 읍국을 정벌해야 한다. 상에서 말했다. 상에서 말했다. “겸손함을 말로 드러내야 하는 것은 뜻이 아직 얻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은 읍국을 정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상육(上六)은 구삼(九三)과 상응하여 짝이 된다. 강력한 구삼(九三)의 반발로 인하여 물의가 일어날 경우, 이 구삼(九三)을 설득하고 달랠 사람은 오직 상육(上六)이다. 상육(上六)은 부드러움으로 음(陰)의 자리에 처하였으므로 순함이 지극하고 겸손이 지극한 자이다. 자기만 겸손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겸손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군주인 육오(六五)가 구삼(九三)을 호통 치는 역할을 한다면 상육(上六)은 달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겸손함을 말로 드러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설득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무력 응징이 불가피하다. 읍국은 자기의 통치영역을 말하므로 여기서는 상육(上六)과 짝이 되는 구삼(九三)을 가리킨다.
손기원 선생은 상육(上六)을 자반이축(自反而縮)의 상황으로 본다. 울림[鳴]의 코드가 진괘(震卦, ☳)에 근거를 두고 있는바, 괘상을 보니 외호괘(구삼-육사-육오)가 진괘(震卦)이다. 그런데 상육(上六)은 진괘(震卦)의 바깥에 있으므로 스스로 울리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울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달래거나 응징할 때 소극적이다. 그래서 이럴 때 자기 자신을 더욱 치고 반성해야 한다. 이 때 ‘邑國’은 소극적이고 부족한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