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원 박사의 周·人·工 四書三經] *<제102강> (2018.04.16.)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코드주역(周易) (제30강)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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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코드주역> ; [58] 重澤兌 [59] 風水渙 [60] 水澤節
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② ☞ [59] 풍수환(風水渙)
* [59] 환괘 * [風水渙]
* [渙卦 第五十九] — 이 괘는 상괘는 ‘바람’을 상징하는 손괘(巽卦, ☴)이고 하괘는 ‘물’을 상징하는 감괘(坎卦, ☵)이다. 괘상으로 보면 물 위에 바람이 불어 물을 흩어지게 하는 상(象)이다. 해산(解散)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흩어진 작은 물방울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되어 서로 엉겨서 다시 비가 되어 내린다. 이 환괘(渙卦)에서 ‘흩어진다[解散,혹은 渙散]’는 것은 단순히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상황에서 다시 모이고 결집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헤쳐 모이는 상’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환(渙)’이고 했다.
[주역강설]▶ 감괘(坎卦, ☵)가 하괘(下卦)인 경우에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인다. 이 괘의 경우에는 상괘에서 하괘를 지휘하고 감독하는 육사(六四)가 있다. 상괘의 유일한 음(陰)인 육사(六四)는 유연하고 치밀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므로 하괘[☵]의 환난(患難)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육사(六四)는 음(陰)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보다는 부드럽고 치밀한 힘으로 해결한다. 마치 얼음이 녹고 눈이 녹는 것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해결된다. 그래서 괘의 이름을 ‘환(渙)’이라고 했다.
『역전』에서 말했다. “괘의 됨이 손(巽, ☴)이 위에 있고 감(坎, ☵)이 아래에 있으니, 바람이 물 위에 행하여 물이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니 이 때문에 ‘환(渙)’이라 한 것이다.(爲卦 巽上坎下하니 風行於水上하여 水遇風則渙散이니 所以爲渙也라)”
*—— [풍수환(風水渙)의 괘사(卦辭)] ——*
|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
[59渙] 흩어져서 모이는 상황이다.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왕이 종묘(宗廟)에 이르는 것처럼 한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해야 한다.
* ‘假’(격)은 ‘이르다[至]’. ‘王假有廟’는 ‘왕이 종묘에 이르는 것’처럼 경건하게 하는 것이다.
* [강 설(講說)] ————
헤쳐모이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밝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리더가 훌륭한 덕(德)과 위엄(威嚴)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역(易)에서는 ‘왕이 종묘(宗廟)에 이르는 것처럼 한다’고 한 것이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은 위험(危險)을 감수하고서라도 감행(敢行)해야 함을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르게 해야 한다.’ 어려움과 위험(危險)을 말한 것은 하괘가 감괘(坎卦)이기 때문이다.
[주역강설]▶ 전체적으로 이전투구하는 하층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육사(六四)가 있으므로, 그를 중심(中心)으로 해결책이 만들어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흩어지는 형국’이라 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데도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해야 한다. 고사나 제사 등 집단적인 잔치를 통하여 일체감(一體感)을 조성하는 것도 갈등 해소의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왕이 종묘(宗廟)에 이른다’고 했다. 왕이 종묘에 오는 것은 제사(祭祀)를 지내기 위해서이다. 대외적인 행사는 일체감을 조성하는 좋은 방법이다. 운동회나 야유회 등 단합대회를 통하여 마음이 화합(和合)되기 때문이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다고 한 것은 어렵더라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渙은 흩어짐[離散]이다. 사람의 흩어짐은 마음[中]으로 말미암으니 人心이 떠나면 흩어지고, 흩어짐을 다스리는 것 또한 마음[中]에 근본하나니, 人心을 수합하면 흩어진 것을 모을 수 있다. 그러므로 괘의 뜻이 모두 中을 주장하였다. ‘利貞’을 말한 것은 흩어진 것을 합하는 道가 ‘바르고 굳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傳] 渙離散也 人之離散 由乎中 人心離則散矣 治乎散 亦本於中 能收合人心則散可聚也 故卦之義皆主於中 利貞 合渙散之道 在乎正固也)
*—— [풍수환(風水渙)의 단전(彖傳)] ——*
[59渙] 彖曰,“渙, 亨” 剛來而不窮, 柔得位乎外而上同.
“王假有廟” 王乃在中也, “利涉大川” 乘木有功也.
단(彖)에서 말했다. “환(渙)이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것은 굳센 것이 와서 궁(窮)함이 없고,
부드러운 것이 자리를 얻어 위에서 함께 하기 때문이다.
왕(王)이 이르러 종묘(宗廟)에 있는 것은 왕이 중심(中心)에 있기 때문이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운 것은 나무를 타면 공(功)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 ‘剛來而不窮’에서 ‘剛來’는 풍수(風水) 환괘(渙卦)가 천지(天地) 비괘(否卦)에서 비롯됨을 말한 것이다. 비괘(否卦)의 굳센 사효[陽]가 하괘의 이효[陰]의 자리에 내려옴을 말한 것이다. ‘不窮’은 환괘(渙卦)에서 ‘흩어지고 나서도 끝남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 ‘柔得位乎外而上同’에서 ‘柔得位’는 천지(天地) 비괘(否卦)의 이효[陰]가 상층부의 사효(四爻)의 자리를 획득함을 가리킨다. 육사(六四)는 부드러운 자질로 구오를 보좌하는 것이다.
· ‘王假有廟’에서 환괘의 중심의 리더인 ‘王’은 구오(九五)를 말한다.
· ‘王乃在中也’ ; 천하가 이산(離散)하는 때에 왕자(王者)가 인심(人心)을 수습하여 사당(祠堂)을 세움에 이르면, 이는 바로 중(中)에 있는 것이다. ‘중(中)에 있다’는 것은 마음[中]을 구하여 얻음을 이르니, 그 마음을 잡는 것이다. 중(中)은 마음의 상이다
· ‘利涉大川’은 하괘인 감괘(坎卦)의 위험과 어려움을 두고 한 말이다.
· ‘乘木有功也’는 하괘인 물 위에 배를 타고 있는 상을 말한 것이다. 손괘는 나무를 상징하고 나무로 만든 배를 상징한다. 환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공을 말한 것이다.
* [강 설(講說)] ————
‘굳센 것이 와서 끝이 없다’는 것은 구이(九二)인 양(陽)이 전체를 돕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굳센 것이 왔다’는 것은 천지(天地) 비괘(否卦)의 굳센 양인 구사(九四)가 이효(二爻)의 자리에 내려온 것[變卦]을 말한 것이다. ‘부드러운 것이 밖에서 자리를 얻어 위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상층부의 육사(六四)가 알맞은 자리에 있으면서 상층부의 구오(九五)와 함께 노력함을 말한다. ‘왕이 이른다’는 것은 중심(中心)의 자리에 있는 구오(九五)가 와서 제사를 지내면 흩어진 마음을 모으는 효과가 있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운 것은 나무를 타면 공(功)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상괘인 손괘(巽卦)가 ‘나무’ 즉 ‘나무로 만든 배’를 상징하고 하괘인 감괘(坎卦)가 ‘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환(渙)이 渙이 된 까닭은 九[陽]가 와서 二爻에 거하고 六[陰]이 올라가 四爻에 거하기 때문이다. 剛陽이 와서 아래에 궁극하지 않아 처함이 中心을 얻고 柔[陰]가 가서 밖[上卦]에서 正位을 얻어 위로 九五의 中과 함께 하니, 九五에게 巽順한 것은 바로 위와 함께 하는 것이다. 六四와 九五는 君·臣의 자리이니, 渙散할 때를 당하여 가까이 있으면 그 뜻이 서로 통하니, 九五와 함께 하는 것은 中을 따르는 것이다. 渙散의 때를 당하여 中을 지키면 離散에 이르지 않으므로 밝게 통하는 것이다.”
渙之成渙은 由九來居二하고 六上居四也라 剛陽之來에 則不窮極於下而處得其中하고 柔之往에 則得正位於外而上同於五之中하니 巽順於五는 乃上同也라 四五는 君臣之位니 當渙而比면 其義相通이니 同五는 乃從中也라 當渙之時而守其中이면 則不至於離散이라 故能亨也라
*—— [풍수환(風水渙)의 상전(象傳)] ——*
[59渙] 象曰, 風行水上, “渙” 先王以享于帝立廟.
상(象)에서 말했다. “바람이 물 위를 가는 것이 환(渙)이니 선왕(先王)은
이 괘의 이치를 살펴, 하느님에게 제사(祭祀)를 지내고 종묘(宗廟)에 임한다.”
· ‘先王以享于帝立廟’에서 ‘享’(향)은 ‘제향(祭享)’을 말한다. 제사를 지낼 때, 환괘(渙卦)에서 상괘인 손괘(巽卦, ☴)는 ‘소’의 주역 코드이고 하괘인 ‘감괘(坎卦, ☵)’는 ‘돼지’의 주역 코드이다. 제사(祭祀)를 지낼 때는 희생(犧牲)으로 소를 잡고 돼지를 잡는다. ‘立廟’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① ‘종묘을 세우다’ ② ‘종묘에 임하다.’의 뜻이 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종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흩어진 민심[마음]을 모아서 재정비하는 지혜이다.
* [강 설(講說)] ————
상(象)으로 보면 바람이 물 위에 가는 것이 환괘(渙卦)이다. 힘이 있으면서도 순조로운 상괘가 하괘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바람이 물 위를 다닌 것으로 이해한 선왕(先王)은, 하늘과 종묘(宗廟)에 제사를 지내 구성원과 일체감(一體感)을 조성함으로써 하층부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군자(君子)라 하지 않고 선왕(先王)이라 한 것은, 환괘(渙卦)의 문제 해결 방법이 종묘(宗廟)에 제사 지내는 정치적인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 [풍수환(風水渙)의 효사(爻辭)] ——*
‘上九, 渙其血去逖出, 无咎.’‘九五, 渙汗其大號, 渙王居, 无咎.’ ‘六四, 渙其羣, 元吉, 渙有丘, 匪夷所思.’ ‘六三, 渙其躬, 无悔.’ ‘九二, 渙奔其机, 悔亡.’ ‘初六, 用拯馬壯吉.’ |
* [풍수환(風水渙) 초육(初六)의 효사] ——
[59渙] 初六, 用拯馬壯吉.
象曰, 初六之吉, 順也.
초육(初六)은 건지는 데 말이 건장(健壯)하니 길하다. 상에서 말했다.
“초육이 길한 것은 온순하기 때문이다.”
· ‘用拯馬壯吉’에서 ‘拯’(증)은 ‘건지다, 구조하다, 돕다, 들어올리다, 취하다’
· ‘말’의 주역 코드는 진괘(震卦, ☳)이다. 환괘에서 내호괘(2효-3효-4효)가 진괘[☳]이므로 ‘말’은 굳센 양(陽)의 구이(九二)를 가리킨다.
* [강 설(講說)] ————
초육(初六)은 헤쳐모이는 상황에서 아직 어린 존재이다. 양(陽)의 자리에 음(陰)이 왔으므로 부정(不正)하면서도 유약(柔弱)한 존재이다. 초육의 짝인 육사(六四)도 정응이 아니다. 그러므로 헤쳐모이는 상황에서 스스로 대처하기가 어렵다. 아직 역부족(力不足)이다. 그래서 건장한 말의 구조(救助)를 받아야 한다. ‘말’의 주역 코드는 진괘(震卦, ☳)이다. 환괘에서 내호괘(2효-3효-4효)가 진괘이므로 ‘말’은 굳센 양(陽)의 구이(九二)를 가리킨다. 초육(初六)은 먼저 나서지 말고 조용히 기다렸다가 구이(九二)가 움직일 때 그를 따라서 활동하면 된다.
*『역전』에서 말했다. “初六은 괘의 처음에 거하였으니 흩어짐의 初期이다. 처음 渙散할 때 救援하면 힘쓰기가 이미 쉽고 또 건장한 말[馬]이 있으니, 그 吉함을 알 수 있다. 여섯 爻 중에서 初爻에만 ‘渙’을 말하지 않은 것은, 離散하는 형세를 분변하기를 마땅히 일찍 하여야 하니, 막 始作할 때 救援하면 흩어짐에 이르지 않으니 가르침이 깊다. 말은 사람이 의탁하는 것이니, 健壯한 말에 의탁하기 때문에 渙散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은 九二를 말한다. 九二는 剛中의 재질이 있고 初陰은 유순하며 九二와 初六은 서로 應이 없으나 친하고 가까우므로[親比] 서로 구한다. 初六은 유순한데 剛中의 재질에 의탁하여 渙散을 구원하니, 이는 마치 ‘건장한 말을 얻어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아 반드시 구제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길(吉)한 것이다.”
[傳] 六居卦之初하니 渙之始也라 始渙而拯之하고 又得馬壯하니 所以吉也라 六爻에 獨初不云渙者는 離散之勢를 辨之宜早니 方始而拯之면 則不至於渙也니 爲敎深矣라 馬는 人之所託也니 託於壯馬라 故能拯渙이니 馬는 謂二也라 二有剛中之才하고 初陰柔順하며 兩皆无應하니 无應則親比相求라 初之柔順而託於剛中之才하여 以拯其渙하니 如得壯馬以致遠하여 必有濟矣라 故吉也라.
* [풍수환(風水渙) 구이(九二)의 효사] ——
[59渙] 九二, 渙 奔其机, 悔亡.
象曰, “渙奔其机” 得願也.
구이(九二)는 흩어지는 상황에서 그 안석(案席)으로 달려가면 후회할 것이 없다.
상에서 말했다. “흩어지는 상황에서 그 안석으로 달려가는 것은 원하는 것을 얻기 때문이다.”
[강 설(講說)] ————
구이(九二)는 굳센 양(陽)이기는 하지만 부정(不正)이고 또 짝인 구오(九五)도 같은 강양(剛陽))이어서 당장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구이(九二)는 그 바탕이 음(陰)의 자리에 있으므로 그 부드러운 자질을 발휘하여 중정(中正)의 덕(德)을 가지고 있는 구오(九五)에게 달려가서 의탁해야 한다. ‘궤(机)’는 편안한 안석(安席)을 뜻하는 바, 구오(九五)를 가리킨다. 구이(九二)가 원하는 것은 구오(九五)를 통해 안정(安定)을 찾는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여러 爻에서 다 ‘渙’이라고 말하였으니, ‘흩어짐[渙散]’의 때를 이른다. 渙散의 때는 險한 가운데 처하였으니 뉘우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편안한 데로 달려 나아가면 뉘우침이 없게 될 것이다. 九二와 初六이 비록 正應이 아니나 離散의 때를 당하여 陰陽이 서로 친하고 가까워 서로 구하니 서로 의뢰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九二는 初六을 지목하여 ‘机’(안석)라 하고 初六은 九二를 일러 ‘馬’(말)라고 한 것이다. … 先儒들은 모두 九五를 ‘机’라 하였는데, 잘못이다. 渙散의 때를 당하여 두 陽이 어찌 함께 할 수 있겠는가? 만약 함께 한다면 渙散을 구제하는 功을 이루는 것이 마땅히 클 것이니, 어찌 다만 뉘우침이 없어질 뿐이겠는가? ‘机’는 구부려 나아감을 말한 것이다.
[傳] 諸爻에 皆云渙하니 謂渙之時也라 在渙離之時하여 而處險中하니 其有悔를 可知니 若能奔就所安이면 則得悔亡也라 机者는 俯憑以爲安者也니 俯는 就下也요 奔은 急往也라 二與初雖非正應이나 而當渙離之時하여 兩皆无與하여 以陰陽親比相求하니 則相賴者也라 故二目初爲机하고 初謂二爲馬라 … 先儒皆以五爲机하니 非也라 方渙離之時하여 二陽이 豈能同也리오 若能同이면 則成濟渙之功이 當大[一有吉字]하리니 豈止悔亡而已리오 机는 謂俯就也라
* [풍수환(風水渙) 육삼(六三)의 효사] ——
[59渙] 六三, 渙其躬, 无悔.
象曰, “渙其躬” 志在外也.
육삼(六三)을 그 몸을 헤치면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그 몸을 헤치는 것은 뜻이 밖에 있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육삼(六三)은 부정(不正)하고 부중(不中)이다. 그리고 짝인 상구(上九)와는 음양(陰陽)의 조화를 이루어 정응(正應)이 되나 상구(上九) 역시 그 자리가 마땅치 않은 부정(不正)이다. 그래서 육삼(六三)은 자신의 몸에 초점을 두고 흩어지는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그 몸을 해체(解體)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바른 도리(道理)를 익히고 환산의 상황을 헤쳐 나갈 덕(德)을 쌓는 일이다. 육삼(六三)은 그 자리가 양(陽)이므로 굳센 양(陽)의 기질을 발휘하여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六三은 渙散[흩어짐]의 때에 있어, 홀로 正應이 있으니 渙散하는 뉘우침이 없을 것이나 柔弱한 陰의 자질과 中正하지 못한 재질로서 위로 지위가 없는 자리에 거하였으니, 어찌 세상의 渙散을 구원하여 남에게 미치겠는가. 그 몸이 뉘우침이 없는 것에 그칠 뿐이다.
[傳] 三在渙時하여 獨有應與하니 无渙散之悔也나 然以陰柔之質, 不中正之才로 上居无位之地하니 豈能拯時之渙而及人也리오 止於其身이 可以无悔而已라 上加渙字는 在渙之時에 躬无渙之悔也
* [풍수환(風水渙) 육사(六四)의 효사] ——
[59渙] 六四, 渙其羣, 元吉, 渙有丘, 匪夷所思.
象曰, “渙其羣元吉” 光大也.
육사(六四)는 그 무리를 흩어내야 크게 길하다.
흩어내는 데에 언덕이 있는 것은 이인(夷人)이 생각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상에서 말했다. “그 무리를 풀면 크게 길한 것은 (공이) 빛나고 크기 때문이다.”
· ‘渙有丘’에서 ‘丘’는 ‘언덕’인데 구오(九五)를 말한다. ‘언덕’의 주역 코드는 간괘(艮卦, ☶)이다. 환괘에서 외호괘(3효-4효-5효)가 간괘이므로 육사(六四)에서 ‘언덕’을 말한 것이다.
· ‘匪夷所思’에서 ‘ 匪’(비)는 ‘非’와 통용. ‘夷’는 ‘夷人’이니 ‘평범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匪夷所思’는 ‘보통사람의 소견으로는 생각하여 미칠 바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 [강 설(講說)] ————
육사(六四)는 상층부의 리더[九五]를 보좌하고 하층부의 무리를 통솔하고 이끌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선 이전투구하는 하괘의 무리들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헤쳐모이도록 해야 한다. 특유의 부드러운 음(陰)의 자질을 발휘하면 아주 좋다 그래서 ‘그 무리를 흩어내야 크게 길하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육사(六四)가 흩어지는 상황에서 언덕에 있는 것은 굳센 리더인 구오(九五)와 힘을 합쳐야 한다. 언덕은 구오(九五)를 중심으로 한 많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역전』에서 말했다. “渙卦의 六四와 九五 두 爻는 뜻이 서로 필요로 하기 때문에 통틀어 말하였으니, <彖傳>에서 이 때문에 ‘위와 함께 한다’고 말한 것이다. 六四는 巽順하고 바르면서 大臣의 지위에 있고, 九五는 剛中으로 바르면서 君位에 있으니 君臣이 서로 힘을 합치고 剛柔가 서로 救濟하여 천하의 渙散을 구제하는 자이다. … 渙散의 때에 六四는 유순한 正道로 剛·中·正의 군주를 보필하여 君臣의 공을 함께 하니, 이 때문에 渙散을 救濟하는 것이다. 천하가 渙散하는 때에 떼 지어 모이게 한다면 크게 길하다고 이를 만하다. ‘언덕’은 모임이 큰 것이니 환산의 때를 당하여 큰 모임을 이룬다면 그 공이 매우 크고 그 일이 매우 어렵고 그 쓰임이 지극히 신묘하다.”
[傳] 渙四五二爻義相須라 故通言之하니 彖에 故曰上同也라하니라 四는 巽順而正하여 居大臣之位하고 五는 剛中而正하여 居君位하니 君臣合力하고 剛柔相濟하여 以拯天下之渙者也라 … 四以巽順之正道로 輔剛中正之君하여 君臣同功하니 所以能濟渙也라 天下渙散而能]使之群聚면 可謂大善之吉也라 … 丘는 聚之大也니 方渙散而能致其大聚면 其功甚大요 其事甚難이요 其用至妙라
* [풍수환(風水渙) 구오(九五)의 효사] ——
[59渙] 九五, 渙汗其大號, 渙王居, 无咎.
象曰, “王居无咎”正位也.
구오(九五)는 헤쳐모이는 상황에서, 큰 호령(號令)을 땀나도록 내야 한다.
헤쳐모이는 상황에서 왕(王)이 있으면 허물이 없다. 상에서 말했다.
“왕이 있으면 허물이 없는 것은 바른 자리이기 때문이다.”
· ‘渙汗其大號, 渙王居’에서 ‘渙汗其大號’는 흩어지고 모이는 때에 백성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 땀을 흘리며 크게 민심(民心)에 호소하는 것이고, 渙王居’는 환산의 때에 구오(九五)가 백성에게 임하는 리더로서의 자세를 말한 것이다. 리더의 도리와 위엄을 갖추는 것이다. ‘땀’의 주역 코드는 ‘진괘(震卦, ☳)’이다. 환괘에서 외호괘(3효-4효-5효)는 오효[九五]를 기준으로 하면 진괘이다.
* [강 설(講說)] ————
구오(九五)는 중정(中正)의 덕(德)을 지니고 있는 굳센 리더이다. 헤쳐모이는 상황에서 민심(民心)을 모으는 중심(中心) 역할을 하는 자이다. 측근 신하인 육사(六四)의 보필을 받아 ‘땀이 나도록 크게 외치고, 그 헤쳐모이는 상황에 대처함이 왕답게 하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 ’
*『역전』에서 말했다. “九五와 六四는 君臣이 德을 합하여 剛·中·正과 巽順의 道로 환산을 다스리니, 그 道를 얻은 것이다. 오직 人心에 젖어들게 함에 있으니, 인심에 젖어들면 백성은 順從한다. 마땅히 호령이, 몸에 땀이 젖어들듯이 민심에 젖어들게 하면 백성들이 믿고 따를 것이다. 이와 같이 천하의 환산을 구제하여 왕위에 거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大號는 큰 政令이니, 백성을 새롭게 하는 큰 명령과 환산을 구제하는 큰 政事를 이른다. ‘渙’을 두 번 말했는데, 전자는 환산의 때를 이르고 후자는 환산에 대처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六四에서 이미 크게 길함[元吉]을 말했으니 九五에서는 오직 그 지위에 걸맞음을 말하였다.
[傳] 五與四君臣合德하여 以剛中正巽順之道로 治渙하니 得其道矣라 唯在浹洽於人心이니 則順從也라 當使號令洽[一作浹]於民心하여 如人身之汗이 浹於四體면 則信服而從矣니 如是면 則可以濟天下之渙하여 居王位 爲稱而无咎라 大號는 大政令也니 謂新民之大命과 救渙之大政이라 再云渙者는 上은 謂渙之時요 下는 謂處渙이 如是則无咎也라 在四에 已言元吉하니 五엔 唯言稱其位也라.
* [풍수환(風水渙) 상구(上九)의 효사] ——
[59渙] 上九, 渙 其血 去 逖出, 无咎.
象曰, “渙其血” 遠害也.
상구(上九)는 흩어지고 모이는 상황에서 그 피붙이를 벗어나게 하여, 멀리 가게 하면 허물이 없다.
상에서 말했다. “그 피붙이를 흩어내는 것은 해(害)를 멀리하는 것이다.”
· ‘逖出’(적출)에서 ‘逖’은 ‘멀리’의 뜻이다. 그런데 정자와 주자는 ‘逖’이 마땅히 ‘두려워한다’는 의미의 ‘惕’(척)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앞의 ‘血’을 ‘傷害’라고 풀었다. 그래서 상구(上九)의 효사 ‘渙 其血 去 逖(惕)出, 无咎’에 대해 풀이하기를 ‘환산의 상황에서 그 상해(傷害)가 제거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면 허물이 없으리라’고 했다.
[강 설(講說)] ————
상구(上九)는 헤쳐 모이는 상황의 극(極)에 있는 자이다. 그 자리가 부중(不中)하고 부정(不正)하므로 스스로 환산(渙散)의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없다. 상구(上九)의 짝은 육삼(六三)이다. 음양(陰陽)의 조화로 맺어지는 관계이다. 환산의 상황에서 상·하 짝이 되는 각각의 효(爻)가 모두 불응(不應)인데 상구(上九)와 육삼(六三)만이 정응(正應)을 이룬다. 그런데 육삼(六三)은 하층부의 이전투구 상황에서 극에 달해 있다. 상구(上九)가 하층부 전체를 구할 능력은 없으므로, 자기의 짝인 육삼(六三)만이라도 그 싸움의 와중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여기에서 ‘피붙이’는 육삼(六三)을 말한다. 그래서 ‘그 피붙이를 가게 하여 멀리 벗어나게 하면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渙卦의 여러 爻가 相應함이 없으니, 또한 渙卦의 象이다. 오직 上九는 六三과 正應하는데 六三이 險處의 극에 있는데, 上九가 만약 아래로 初六을 따르면 渙散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險은 傷害와 畏懼의 상이 있으므로 血惕(혈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上九가 剛陽으로 渙卦의 밖에 처하여 渙을 벗어날 상이 있고, 또한 巽卦의 극에 있어 事理의 巽順함이 있다. 그러므로 만약 그 피[傷害]가 제거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면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니 ‘其’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환산의 때에는 合하는 것을 功으로 삼으나 오직 上九는 환산의 극에 거하여 계응[六三]이 있고 險處에 임했기 때문에 환산에서 벗어나고 害를 멀리함을 善으로 삼은 것이다.”
[傳] 渙之諸爻가 皆无係應하니 亦渙離之象이라 唯上應於三이나 三居險陷之極하니 上若下從於彼면 則不能出於渙也라 險有傷害畏懼之象이라 故云血惕이라 然九以陽剛으로 處渙之外하여 有出渙之象하고 又居巽之極하여 爲能巽順於事理라 故云若能使其血去하며 其惕出하면 則无咎也라하니 其者는 所有也라 渙之時엔 以能合爲功이로되 獨九居渙之極하여 有係而臨險이라 故以能出渙遠害로 爲善也라
¶ 주역 ☞ [59] 환괘(風水渙)의 괘사와 효사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上九, 渙其血去逖出, 无咎.’‘九五, 渙汗其大號, 渙王居, 无咎.’
‘九五, 渙汗其大號, 渙王居, 无咎’
‘六四, 渙其羣, 元吉, 渙有丘, 匪夷所思.’
‘六三, 渙其躬, 无悔.’
‘九二, 渙奔其机, 悔亡.’
‘初六, 用拯馬壯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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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주역 ☞ [59] 환괘(風水渙)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