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사서삼경] (제20강) ♣ [논어(4)]-2. (2) 위정편b 지우학

작성자백파|작성시간16.05.27|조회수338 목록 댓글 1


[손기원 박사의 周·人·工 四書三經] *—<제20강> (2016.05.23)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논 어(論語) (제4강) — 2 


오늘의 논어(論語) 읽기(2) ; (爲政篇, 第4~9章)



*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제4장) — 공자의 학문 완성의 과정


— 이 장(章)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공자(孔子)의 말씀이다. 공자(孔子)가 스스로 일생을 돌아보고 자신의 학문이 심화·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술회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을 하는 사람이나 참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귀감(龜鑑)이 되고 표상이 되었다.


    02-04-01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강 설(講說)] ————

十有五’는 ‘15세’인데, 어린이의 단계를 막 벗어난 순수한 소년이 시작되는 나이이다. 비로소 자신의 삶에 대한 ‘길’을 자각(自覺)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배움[學文]의 길’에 들어섰다. 옛날에는 15세에 ‘대학(大學)’에 입문하였다. 마음이 가는 길을 ‘지(志)’라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학(學)은 <대학(大學)의 도(道)>이다.(古者 十五而入大學 心之所之 謂之志 此所謂學 卽大學之道也) 이제 본격적인 ‘수신(修身)’의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대학의 도(道)란 수기(修己, 明明德)과 치인(治人, 親民)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학문으로,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큰 포부와 경륜(經綸)을 담고 있다. '志于學'(지우학)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바른 도리, 즉 예(禮)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옛 성인(聖人)의 일거수일투족에서부터 관혼상제(冠婚喪祭)의 모든 의식과 절차, 전래의 사회 제도가 모두 예(禮)이므로 그 내용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공자가 이 예(禮)를 완전히 익히는 데 15년이 걸렸다. 노자(老子)에게 예(禮)를 물었던 것도 이때의 일이다.


        02-04-02 三十而立

          서른 살에 확립하였고


[강 설(講說)] ————

공자(孔子)가 ‘三十而立’이라고 하였을 때의 ‘’은 ‘확립하다, 세우다’는 뜻이다. 이기동 선생은 이를『논어(論語)』태백편(泰伯篇) 제8장에 나오는 ‘立於禮’라는 말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그래서 ‘예(禮)를 완전히 터득하여 확립했다’는 것이다. 예(禮)를 실천하는 삶이 참된 삶이며 올바른 삶의 행동양식이다. ‘입어례(立於禮)’란 예(禮)를 배워 온전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참된 사람으로 바로 섰다는 말이다. 따라서 『논어(論語)』요왈편(堯曰篇) 제3장에서 말한 것처럼, “예(禮)를 알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다.(不知禮 無以立也)”고 한 것이다.


손기원 선생은 모든 예(禮)의 근본인 ‘효(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확립했다’고 본다. 그 효제(孝悌)를 추광(推廣)하여 정진하게 되면 ‘하늘 마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실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효(孝)에서부터 모든 사회적인 예의범절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근원인 하늘마음, 즉 한마음[仁]에 이르기까지 포괄하는 예(禮)가 확립된 것이다. 예(禮)는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바탕이다.


주자(朱子)는 예(禮)를 천리(天理)의 절문(節文)이라고 했다. 예(禮)란 하늘의 뜻이 외형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예(禮)를 지키면 스스로 삶이 조화를 이루고 남과도 조화를 이룬다. 하늘은 쉬지 않고 만물에게 ‘잘 살아라’라고 명령한다. 이것을 천명(天命)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고 가장 행복한 것이다.


        02-04-03 四十而不惑

         마흔 살에 사리(事理)에 헷갈리지 않았고


[손기원 선생의 '구슬 꿰는' 강설(講說)] ————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욕심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하늘의 뜻을 알고 따르지만, 많은 부분 알아듣지 못하거나 망각하고 산다. … 공자(孔子)는 하늘의 뜻을 알고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학문과 생애의 목적이었다. 계속 예(禮)를 지키면서 욕심을 줄여갈수록 하늘의 소리가 점점 분명하게 들렸다. 학문을 계속하기만 하면 하늘의 소리를 온전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공자가 학문을 하는 일은 이제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일이었다. 공자는 이런 심정을 ‘헷갈리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불혹(不惑)’이라 했다. 그의 나이 40이 되어서 도달한 경지이다. 맹자(孟子)는 이를 ‘부동심(不動心)’이라 했다.


『논어(論語)』안연편(顔淵篇) 제10장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이 구체적이다. … 자장(子張)이 덕(德)을 높이고 미혹(迷惑)됨을 분별하는 것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忠)과 신(信)을 주로 하며 의(義)로 옮아가는 것이 덕(德)을 높이는 것이다. 사랑하면 그것이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그것이 죽기를 바라는 법인데, 이미 그것이 살기를 바라고서 또 그것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미혹(迷惑)된 것이다.(子張問 崇德辨惑 子曰 主忠信 徙義 崇德也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 내 마음이 ‘하늘마음’ 즉 대명지덕(大明之德)으로 충만하게 되면 어떤 상황에도 미혹되지 않는다. 모든 일에 내 욕심(慾心)을 내세우거나, 내 욕심으로 다른 사람의 단점(短點)을 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헷갈린다.


        02-04-04 五十而知天命

           쉰 살에 천명(天命)을 알았고

 

 [천명(天命)에 대한 주자(朱子)의 풀이] ————

이 장(章)의 대목을 두고 주자(朱子)가 다음과 같이 주석(註釋)을 했다. ‘천명(天命)’은 하늘의 도(道)가 유행하여 사물(사람)에 부여된 것[性]이니 바로 사물에 당연(當然)한 바의 소이연(所以然)이다. 이것을 안다면 앎[知性]이 그 정성스러움을 지극히 하여 의혹하지 않음을 또 굳이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天命 卽天道之流行而賦於物者 乃事物所以當然之故也 知此則知極其精 而不惑 又不足言矣)


여기에서, ‘사물의 당연한 바(所以當然之故)’란 자식이 되어서 당연히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충성해야 하는 도리로 삼강(三綱)·오륜(五倫)이 여기에 해당한다. ‘천도(天道)’는 태극(太極)이라고도 표기하는 바, 원형이정(元亨利貞)을 가리키며, ‘사물에 부여된 것’이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본성을 가리킨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을 사물이 받으면 사람이나 물건에 있어서는 본성(本性)이 되고 일에 있어서는 온갖 이치(理致)가 된다. 사람의 당연한 도리는 바로 이 본성(本性)에서 나온 것이고, 본성(本性)은 천도(天道)를 부여받은 것으로, 하늘에 있어서는 천도(天道)라 하고 사람에 있어서는 본성(本性)이라 한다.


[강 설(講說)] ————

공자는 분발했다. ‘밥 먹는 것도 잊고 늙어가는 줄도 모르고(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논어(論語)』자로편(子路篇))’ 정진했다. ‘하늘의 뜻’이 다 들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50세가 되어 하늘의 소리를 듣는 귀가 뚫렸다. 공자는 ‘사람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에서 ‘하늘의 뜻[天命]’으로 사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스스로 인(仁)을 터득하였고 불생불멸의 진리(眞理)를 얻은 것이다.(이기동)  퇴계(退溪)는 이 순간을 ‘일생일대의 환희사(歡喜事)’라고 표현했다.


그러면 천명은 무엇인가? 우리의 생명 속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하늘은 끊임없이 명(命)을 내린다. … ‘행복하게 살아라.’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어라.’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천명 즉 성(性)을 ‘깨달아야’ 한다. 손기원 선생은 이를 ‘깨어서 도달했다’고 푼다. 하늘의 뜻을 깨달아서 도달하는 경지가 ‘지성(知性)’이다.


        02-04-05 六十而耳順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 속뜻이 이해되었고


[강 설(講說)] ————

60이 된 공자(孔子)는 하늘의 뜻을 듣기 위해 귀를 곤두세울 일이 없어졌다. 긴장하지 않아도 술술 들리기 시작했다. 하늘의 뜻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하늘의 뜻을 모를 때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하늘의 뜻을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하늘의 뜻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하늘의 뜻을 듣듯이 순하게 들리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속마음’과 ‘속 뜻’이 그대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순(耳順)의 경지이다.


주자(朱子)는, “소리가 들어오면 마음이 깨달아져서 어긋나거나 거슬림이 없는 것이니 앎이 지극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聲入心通 無所違逆 知之之至 不思而得也)”라고 했다. 맹자(孟子)는 이러한 경지를 ‘지언(知言)’이라고 표현했다.


        02-04-06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자구(字句)의 해석] ————

· ‘不踰矩’에서 ‘’는 목재를 재고 자를 때 쓰는 ‘곱자[方尺]’이다. 여기서는 ‘잣대’로 해석하여 ‘예(禮)나 법도(法道)’를 지칭한다.『대학(大學)』에서 말하는 ‘혈구지도(絜矩之道)’는 사물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 ‘자기의 주관적인 잣대’가 아닌, ‘순수하고 올바른 잣대’를 사용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강 설(講說)] ————

70이 된 공자(孔子)에게는 욕심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고 싶어도 참아야 되는 것은 모두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욕심이 없는 공자에게는 참아야 할 일이 없어졌다. 하늘의 뜻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었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하늘의 일이었다. 그는 예(禮)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었고, 법(法)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무심코 하는 일들이 모두 예(禮)가 되고 법(法)이 되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유(自由)다. 공자의 삶은 절대 자유을 누리는 경지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요, 성인(聖人)이 된 것이다. 퇴계(退溪) 선생의『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 말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셨다. “공자(孔子)는 나면서부터 아신 자이다. 그런데도 배움으로 말미암아 이르렀다고 말씀하신 것은 후인(後人)을 권면하여 나아가게 하신 것이다. ‘입(立)’은 이 도에 자립하는 것이요, ‘불혹(不惑)’은 의심하는 바가 없는 것이요, ‘지천명(知天命)’은 이(理)를 궁구하여 성(性)을 다하는 것이요, ‘이순(耳順)’은 들은 것을 모두 깨닫는 것이요,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고 한 것은 힘쓰지 않아도 도(道)에 맞는 것이다.” 또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덕(德)을 진전한 순서가 이와 같다고 스스로 말씀하신 것은, 성인(聖人)이 반드시 그러한 것이 아니요, 다만 배우는 자들을 위하여 법[標準]을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구덩이를 채운 뒤에 나아가고 문장(文章)을 이룬 뒤에 달(達)하게 하신 것일 뿐이다.(程子曰 孔子 生而知者也 言亦由學而至 所以勉進後人也 立 能自立於斯道也 不惑 則無所疑矣 知天命 窮理盡性也 耳順 所聞皆通也 從心所欲不踰矩 則不勉而中矣 又曰 孔子自言其進德之序如此者 聖人未必然 但爲學者立法 使之盈科而後進 成章而後達耳)”


*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제5장) — 예(禮)로써 효도하라


     02-05-01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02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 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03 樊遲曰 何謂也 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맹의자가 효(孝)를 묻자, 공자께서 “어김이 없어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손씨가 나에게 효(孝)를 묻기에 내가 ‘어김이 없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번지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살아계실 적에는 예(禮)로써 섬기고, 돌아가셨을 적에 예(禮)로써 장사지내고, 예(禮)로써 제사(祭祀)지내는 것이다.”


 [자구(字句)의 해석] ————

· ‘孟懿子’(맹의자)는 노(魯)의 대부(大夫) 중손씨(仲孫氏)로 이름은 하기(何忌)이다. 노나라 실권자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노(魯)는 계손씨, 중손씨, 숙손씨 등 세 대부(大夫)가 족벌권세로 군림하던 시기이다. 민공(閔公)을 시해한 사람의 이름이 공중(共仲)이므로, 그 중(仲)자를 피하기 위하여 중손(仲孫)을 맹손(孟孫)이라 부르게 되었다. ‘의(懿)’는 그의 자(字), ‘자(子)’는 미칭(美稱)으로 붙인 말. 맹의자의 아버지 맹희자(孟僖子)는 죽음에 임하여 ‘예(禮)’는 사람의 삶을 영위하는 근간이 되므로 예(禮)가 없으면 바로 설 수 없다‘고 하고, 두 아들 설(說)과 하기(何忌)로 하여금 공자에게 가서 예(禮)을 배우라고 했다. 그래서 중손하기(仲孫何忌)는 공자의 제자가 되었다.(이기동)


[강 설(講說)] ————

효(孝)는 부모와 자녀가 하나됨[친(親)]을 유지하기 위한 자녀의 마음이다. 부모와 자녀가 하나됨을 유지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모두 예(禮)에 나타남으로, 효(孝)는 예(禮)를 어기지 않고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예(禮)를 모르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이 공자에게 무엇을 물으면, 공자는 우선 예(禮)를 권한다. 사람이 된 후라야 무엇이든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맹의자를 포함한 삼가(三家)가 예(禮)를 참람(僭濫)하였으므로 공자께서 이것으로써 경계하신 것이다. 맹의자는 부모의 말을 어기고 온갖 나쁜 짓을 자행하였으므로, ‘無違’(어기지 않는 것)가 맹의자에게는 해당되지만 그 말이 효(孝)의 일반적인 정의가 되면 문제가 된다. 부모의 뜻에는 본마음에서 우러나온 것도 있지만, 순간적인 욕구나 충동에서 나온, 잘못된 것도 있기 때문에, 전자(前者)를 따른 것은 효(孝)이지만 후자(後者)를 따르는 것은 불효(不孝)가 된다. 예컨대 순(舜)의 아버지는 계모의 말을 듣고 두 차례에 걸쳐 순(舜)을 죽이려 하였다. 순(舜)이 만약 그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죽음을 택했더라면 그것은 큰 불효가 된다. 아버지가 본마음을 회복한 뒤에 얼마나 슬퍼하겠는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 참람(僭濫) ; 자기보다 높은 지위나 분수를 범하여 함부로 하는 것


*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제6장) — 건강하지 않으면 불효(不孝)다


  02-06-01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 唯其疾之憂

    맹무백이 효(孝)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하신다.”

·

 [자구(字句)의 해석] ————

 ‘孟武伯’은 맹의자의 아들이다. 시호가 ‘무(武)’이며 ‘백(伯)’은 그가 맏아들이어서 붙여진 것이다. 형제가 여럿 있을 때, 맏이가 백(伯), 둘째가 중(仲), 셋째가 숙(叔), 막내가 계(季)가 된다.

· ‘唯其疾之憂’에서 ‘’는 도치(倒置)를 나타낸다. 원래는 ‘唯憂其疾’이다.


[강 설(講說)] ————

맹무백은 노(魯)나라 애공(哀公) 11년 우사(右師)를 거느리고 제(齊)나라의 군대와 싸워서 패한 일이 있고,『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애공 14년조에는 성읍(成邑)의 사람들과 다툰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맹무백이 성(成) 땅에서 말을 기르려 하자 성(成)의 재상 공손숙이 맹무백이 성(成)을 해롭게 할 사람으로 여겨 말을 길러주지 않았다. 그러자 맹무백이 화가 나서 성(成)을 공격해 들어갔는데, 얼마나 빨랐는지 부하들이 미처 따라갈 틈도 없었다. 성(成)에 들어간 맹무백은 재상의 부하들을 회초리로 치고서 분을 풀었지만, 화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 그 아버지 맹의자의 장례식에 온 성(成)의 사람들의 문상을 기어이 받아주지 않았다.


위의 사실로 보면 맹무백은 무인이며 거칠고 성질이 급하여 화를 잘 내며 좀처럼 남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 아버지 맹의자는 늘 그 아들이 전쟁을 하거나 사람들과 다투다가 화(禍)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맹무백이 공자에게 효(孝)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효도를 하는 사람은 신중하게 처신하므로 그 부모는 자녀의 건강 외에는 다른 걱정은 안 하게 되는 법인데, 너의 부모는 온갖 걱정을 다하고 있으니 어떻게 된 것이냐?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해라.”고 한 것이다.


『효경(孝經)』에서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훼손하지 아니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의미이다. 일설에는 ‘질(疾)’을 ‘부모의 질(疾)’로 보아 ‘부모가 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효(孝)이다’라고 한 해석도 있다.


*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제7장) — 공경하지 않으면 불효(不孝)다


    02-07-01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子游)가 효(孝)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의 효(孝)라는 것은 봉양만 잘하는 것이라고 이를 수 있다. 개나 말에게도 모두 길러줌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부모를 봉양함과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무엇으로써 분별하겠느냐?”


 [자구(字句)의 해석] ————

· ‘子游’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언(言), 이름은 언(偃)이다 자유(子游)는 그의 자(字)이다.

· ‘至於犬馬 皆能有養’는 ‘개나 말도 먹이를 주어 기름이 있다’로 해석하면 좋다.

 

[강 설(講說)] ————

효(孝)는 부모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한 자녀의 노력인데, 부모의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우선 부모가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하므로, 부모를 봉양(奉養)하는 것이 효(孝)의 첫 번째 내용이 된다. 그러나 궁극적인 것은 공경(恭敬)하는 마음으로 부모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공경하는 지극한 마음이 없이 봉양만 하는 것은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맹자(孟子)』의「盡心章句·上」제37장에서 말한 “먹이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돼지로 사귀는 것이요, 사랑하기만 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孟子曰 食而弗愛 豕交之也 愛而不敬 獸畜之也)”라는 말씀은 참고할 만하다.


*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제8장) — 우선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려라


     02-08-01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子夏)가 효(孝)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의) 얼굴빛을 보고도 뜻을 헤아리는 것이 어려우니, (부모에게) 일이 있으면 제자[子弟]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선생[父兄]을 잡숫게 하는 것을 일찍이 孝”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구(字句)의 해석] ————

· ‘色難’(색난)에서, 주자(朱子)는  ‘’을 ‘자식이 부모님 앞에서 얼굴빛을 온화하게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기동 선생은 앞·뒤의 문장과 관련하여 ‘’은 ‘부모의 얼굴빛을 보고 뜻을 헤아려 받드는 것’으로 보았다. 그것이 ‘부모와 한마음이 되어 부모를 따르는’ 참다운 효(孝)의 모습이다.

· ‘弟子’는 선생과 제자의 제자가 아니라 ‘자제’, 아들과 자녀이고, ‘先生’은 ‘부형(父兄)’이다.

· ‘有酒食’에서 ‘’(사)는 '먹다'라는 동사일 때는 발음이 '식'이고, ‘밥’이라는 뜻의 명사일 때나 '먹이다'라는 사동사로 쓰일 때는 음(音)이 ‘사’이다. ‘’(찬)은 ‘마시게 하고 먹이게 한다’는 뜻이다.


[강 설(講說)] ————

일이 있을 때, 부모의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음식을 봉양하는 것만으로 효(孝)가 될 수 없으므로 ‘부모와 한마음이 되어 공경하는 것’이 효(孝)의 완성이다. 옛말에 ‘부모의 얼굴빛을 받들어 순종(順從)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였으니, 이 역시 통하는 말이다.(舊說 承順父母之色 爲難 亦通)


*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제9장) — 배운 것을 실천하라


        02-09-01 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 不愚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안회(顔回)와 더불어 온종일 이야기를 함에 내 말을 어기지 아니함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더니, 물러간 뒤에 사생활을 살펴보건대 또한 충분히 발명[배운 것은 분명하게 실천]하니, 안회(顔回)는 어리석지 않구나.”


 [자구(字句)의 해석] ————

· ‘’는 성이 안(顔)이고, 자(字)는 자연(子淵), 회(回)는 이름이다. 노(魯)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30세 연하이다. 안회(顔回)는 공자의 문하에서 가장 우수한 제자로 공자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과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단명하여 32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이에 상심한 공자가 통곡하였다는 말이『논어』에 나온다.

· ‘亦足以發’에서 ‘’는 ‘以(之)發’의 ‘’가 생략된 것이므로 ‘배운 내용을 가지고’로 푼다.


[강 설(講說)] ————

제자와 일대 일로 앉아서 가르치는 공자 학당에서, 안회(顔回)는 공자가 가르친 내용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질문하거나 반박함이 없으니, 어리석어서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서 생활하는 것을 보니 가르친 내용을 모두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회가 수업 시간에 가만히 있었던 것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모두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


<논어(論語) 제4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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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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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선비 | 작성시간 16.05.27 백파선생님!

    공자님께서 선생님 강의록을 보시면
    고개 끄덕이시며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틀림없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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