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사서삼경] (제37강) ♣ [맹자 (2)-2]- 양혜왕 상 제2-3장 생민

작성자백파|작성시간16.10.21|조회수382 목록 댓글 1

[손기원 박사의 周·人·工 四書三經] *—<제37강> (2016.10.17)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맹자(孟子) (제2강)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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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공부> ; 1. [복습] 춘추·전국시대와 맹자 ‖ 2. 오늘의 <맹자> 읽기


 

오늘의 맹자 읽기 — 양혜왕장구·상(제2~3장)


* [양혜왕·상](제2장) — 여민해락(與民偕樂), 백성과 함께 즐기소서!


   01-02-01 孟子見梁惠王 王立於沼上 顧鴻鴈麋鹿曰 賢者亦樂此乎


             02 孟子對曰 賢者而後 樂此 不賢者 雖有此 不樂也

             03 詩云 經始靈臺 經之營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亟 庶民子來

                 王在靈囿 麀鹿攸伏 麀鹿濯濯 白鳥鶴鶴 王在靈沼 於牣魚躍

                 文王 以民力爲臺爲沼 而民歡樂之 謂其臺曰靈臺 謂其沼曰靈沼

                 樂其有麋鹿魚鼈 古之人 與民偕樂 故 能樂也


             04 湯誓曰 時日害喪 予及女 偕亡 民欲與之偕亡 雖有臺池鳥獸 豈能獨樂哉


맹자(孟子)께서 양혜왕(梁惠王)을 (만나)보니, 왕이 연못가에 서 있다가 크고 작은 기러기들과 크고 작은 사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현자(賢者)도 역시 이러한 것을 즐거워하십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현자가 된 후라야 이런 것을 즐거워할 수 있으니 현명하지 못한 자는 비록 이런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즐거워하지 못합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영대를 축성하기 시작하여 측량하고 재어보고 하자, 서민들이 와서 일을 하는지라 며칠 되지 않아서 완성되었도다, 측량하여 짓기 시작하자 서두르지 말게 하였으나 서민들이 아들처럼 와서 도왔도다. 왕이 영유에 계시니 사슴들이 그곳에 엎드려 있도다. 사슴들은 포동포동 하고 백조들은 깨끗하도다. 왕이 영소에 계시니 아, 가득한 물고기들이 뛰노는도다.’ 하였으니 문왕이 백성의 힘으로 대(臺)를 만들고 소(沼)를 만들었으나 백성들이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 대(臺)를 일컬어 영대라 하였고, 그 소를 영소라 하여, 그가 크고 작은 사슴들과 물고기와 자라를 가졌음을 즐거워하였으니, 옛 사람들은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였기 때문에 능히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탕서」에 이르기를, ‘이 태양은 언제 없어질고? 내 너와 더불어 함께 망하련다.’ 하였으니 백성들이 그와 더불어 망하고자 한다면 비록 대(臺), 연못, 새, 사슴 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찌 홀로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 [어구(語句)의 해석] —————

· ‘王立於沼上에서於~’ ‘~에서, ~에’ 뜻을 가진 전치사.沼上 ‘물가’로 해석한다.

· ‘顧鴻鴈麋鹿曰에서(홍)은 ‘큰 기러기’, ‘(미)는 ‘순록, 큰 사슴’

· ‘詩云에서『시경(詩經)』대아(大雅) ‘문왕지십 영대편’에 나오는 구절로, 주나라 문왕의 덕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經始靈臺에서(경)은 ‘일을 꾸미는 것’. ‘ 시작하다’. ‘經始성하기 시작하다.

· ‘經之營之에서(영)은 ‘재는 것’, 집 등을 짓는 기초 작업.

· ‘庶民攻之에서(공)은 ‘힘써서 일하는 것’.

· ‘不日成之에서不日 ‘며칠 되지 않아서’

· ‘經始勿亟에서 ‘급히 한다’는 뜻으로 음은 ‘극’, ‘자주’의 뜻일 때는 음이 ‘기’

· ‘麀鹿攸伏에서(우)는 ‘암사슴’. ‘(유)는 ‘所’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 ‘麀鹿濯濯에서濯濯(탁탁)은 ‘짐승들이 살찌고 윤택한 모습’

· ‘白鳥鶴鶴에서鶴鶴(학학)은 ‘하얗고 깨끗한 모양’

· ‘於牣魚躍에서(오)는 감탄사로 쓰일 때는 발음이 ‘오’이다. ‘(인)은 ‘가득함’이다.

· ‘樂其有麋鹿魚鼈에서 ‘그’,문왕을 지칭한다.『대학』에서 ‘樂其樂而利其利’

· ‘古之人 ‘문왕’을 뜻하는데, 문왕뿐 아니라 옛 성현을 다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湯誓(탕서)는『서경(書經)』<상서(商書)>의 편명.

· ‘時日害喪 予及女 偕亡 民欲與之偕亡 탕왕(湯王)이 하(夏)의 폭군 걸(桀)을 칠 때의 격문이다. ‘予及女 ‘나와 너’이다.여(與)’와 같은 뜻. ‘ ‘여(汝)’와 통용된다.

· ‘時日害喪에서’(갈)은『서경(書經)』원문에 ‘曷’(갈)로 되어 있으므로 ‘갈’로 발음한다.


* [강 설(講說)] —————

☆… 인의(仁義)를 실천하는 사람이 별장을 만들면 반드시 남들과 함께 즐기므로 그가 별장을 만드는 것을 남들이 다 좋아하게 된다. 현자인 문왕이 동산을 만들 때 백성들이 더 좋아하여 자기 일처럼 도왔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백성의 세금과 부역으로 동산을 지어놓고 백성들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만 즐기면, 백성들은 왕을 원망할 것이며 틈만 있으면 허물고자 할 것이다. 경비를 하면서 조마조마하기보다는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백성과 함께 즐기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며, 그것이 참된 즐거움이다.


* [‘靈臺’, ‘靈囿’, ‘靈沼’ 그리고 ‘樂其有麋鹿魚’]에 대하여 — 문왕의 경우


(주자가 말하였다) “孟子께서 文王이 비록 백성의 힘을 이용하였으나 백성들이 오히려 이것을 즐거워하여, 이미 아름다운 명칭을 가해 주고 또 그[文王]가 소유한 것을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文王이 백성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의 즐거워함을 좋아하여 文王 또한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孟子言 文王 雖用民力 而民反歡樂之 旣加以美名 而又樂其所有 蓋由文王能愛其民 故 民樂其樂 以文王亦得以享其樂也)”


* [‘時日害喪 予及女 偕亡’]에 대하여 —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경우


(주자가 말하였다) “(夏나라의) 걸왕(桀王)이 일찍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천하를 소유함은 하늘에 해가 있는 것과 같으니, 해가 없어져야 내 비로소 망할 것이다.’ 하였다. 백성들이 그의 학정(虐政)을 원망하였으므로, 그가 스스로 말한 것을 인해서 (해를 가리켜) 걸왕을 지목하기를 ‘이 해는 언제나 없어지려는가. 만일 없어진다면 내 차라리 그와 함께 없어지겠다.’ 하였으니, 이것은 그가 망하기를 바람이 심한 것이다. 맹자(孟子)가 이것을 인용하여, 군주가 홀로 즐기고 백성을 구휼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를 원망하여 그 즐거움을 보전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桀嘗自言 吾有天下 如天之有日 日亡 吾乃亡耳 民怨其虐 故 因其自言 而目之曰 此日 何時亡乎 若亡則我寧與之俱亡 蓋欲其亡之甚也 孟子引此 以明君獨樂而不恤其民 則民怨之 而不能保其樂也)”


* [양혜왕·상](제3장) — ①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백성을 위한 참다운 정치를 …


  01-03-01 梁惠王曰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

                河內凶 則移其民於河東 移其粟於河內 河東凶 亦然

                察隣國之政 無如寡人之用心者 隣國之民不加少 寡人之民不加多 何也

 

           02 孟子對曰 王好戰 請以戰喩 塡然鼓之 兵刃旣接 棄甲曳兵而走

                或百步而後止 或五十步而後止 以五十步 笑百步 則何如

                曰 不可 直不百步耳 是亦走也

                曰 王如知此 則無望民之多於隣國也


양혜왕(梁惠王)이 말했다. “과인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거기에 마음을 다했을 뿐입니다. 하내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 백성을 하동지방으로 이주시키고, 그 곡식을 하내지방으로 옮겨주며, 하동지방에 흉년이 들어도 또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이 마음을 쓰는 것처럼 하는 것이 없는데도, 이웃나라의 백성이 더 적어지지 않으며, 과인의 백성이 더 많아지지 아니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왕이 전쟁을 좋아하시니 청컨대 전쟁하는 것을 가지고 비유하겠습니다. 둥둥 북을 치며 병기와 칼날이 맞부딪친 후에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며 달아나는데, 어떤 자는 백 걸음을 간 후에 멈추고, 어떤 자는 오십 걸음 간 후에 머물고서, 오십 걸음밖에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지고 백 걸음 간 것을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 / “안 됩니다. 다만 백 걸음을 도망가지 않았을 뿐 또한 도망간 것입니다.” / “왕이 만일 이것을 아신다면 백성이 이웃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소서.”


* [어구(語句)의 해석] —————

· ‘寡人之於國也에서寡人 임금자신을 말한다. ‘寡德之人 준말이다.’ 전치사 장소를 나타내는 말이므로 그 앞에 동사가 와야 한다. 원래의 동사는 뒤에 있는 盡心인데, 강조하여 뒤로 뺀 것이다.

· ‘盡心焉耳矣에서 ‘~ 어조사이지만 장소를 나타내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따라서 여기서도 ‘거기에’라고 번역하면 좋다.

· ‘隣國之民不加少에서‘어떠한 상태가 점점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加少 점점 적어지는 것이고加多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말한다.

· ‘塡然鼓之에서塡然(전연)은 ‘둥둥’ 북치는 소리, 앞의 타동사로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명사가 아니라 ‘북을 친다’는 동사가 된다.『순자(荀子)』의 병편에 의하면 전쟁에서 진격할 때는 북을치고 퇴각 명령을 내릴 때는 쇳소리를 낸다.

· ‘棄甲曳兵而走에서 ‘갑옷’, ‘(예)는 ‘끌다’, ‘병기’

· ‘直不百步耳에서 부사로 ‘다만’이라는 뜻이다.

· ‘則無望民之多於隣國也에서 주격조사 역할을 한다.


* [강 설(講說)] —————

(주자가 말했다) “이웃나라는 백성을 구휼하지 않고 혜왕은 작은 은혜를 행하였으나, 모두 왕도(王道)를 행하여 백성을 기르지 못하였으니,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비웃을 수 없음을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로 비유하신 것이다.(以譬隣國不恤其民 惠王能行小惠 然 皆不能行王道 以養其民 不可以此而笑彼也)” 양씨[楊時]가 말했다. “백성을 옮기고 곡식을 옮김은 흉년든 정사에 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왕(先王)의 도(道)를 행하지 못하고서 다만 이것을 가지고 마음을 다했다고 한다면 말단이다.(楊氏曰 移民 移粟 荒政之所不廢也 然 不能行先王之道 而徒以是爲盡心焉 則末矣)”


☆… 양혜왕의 정치방법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구하는 패권정치(覇權政治)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정치방법과 큰 차이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백성들을 감명시킬 수 없다. 이를 맹자(孟子)는 ‘전쟁 중 오십 걸음을 달아난 사람과 백 걸음을 달아난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고, 백성을 위한 참다운 정치방법을 제시한다.


* [양혜왕·상](제3장) — ② 우선,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라


   01-03-03 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 數罟 不入洿池 魚鼈 不可勝食也

                 斧斤 以時入山林 材木 不可勝用也 穀與魚鼈 不可勝食 材木不可勝用

                 是使民養生喪死 無憾也 養生喪死 無憾 王道之始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으면 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도끼와 자귀를 알맞은 때에 산림에 들여놓으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입니다. 곡식과 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면 이는 백성으로 하여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데 유감이 없도록 하는 것이 왕도(王道)의 시작입니다.”


* [어구(語句)의 해석] —————

· ‘不違農時에서(위) ‘어긴다’는 뜻인데, 여기서 ‘농사철을 어긴다’는 말은 ‘농사철에 농민을 전쟁이나 부역에 동원하여 제 때에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 ‘穀不可勝食也에서 주어가 아니고 문장의 목적어이다. 강조하기 위해 앞으로 낸 것이다. 뒷 문장에 나오는數罟’, ‘魚鼈’, ‘斧斤’, ‘材木등도 모두 이와 같은 예이다.

· ‘穀不可勝食也에서 ‘이긴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다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不可勝食 ‘이루 다 먹을 수 없다’로 번역한다. 뒤의 같은 맥락이다.

· ‘數罟(촉고)에서(촉)은 촘촘하다’. 그 외 '헤아릴 수(數)', ‘자주 삭(數)’으로 쓰인다.

· ‘不入洿池에서洿(오) ‘웅덩이’

· ‘以時入山林에서 ‘알맞은 때’

· ‘養生喪死에서살아있는 사람’이고 ‘죽은 사람’을 말한다.

· ‘王道 힘이 아니라 인의(仁義)의 덕(德)을 통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방법을 말한다.


* [강 설(講說)] —————

☆… 이 문장의 내용은, 맹자가 참다운 정치적·사회적·제도적 경제 운용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짜여 있다. 이때 경제 운용의 주체는 정부이다.


부역 등으로 농민을 동원할 때는 농번기를 피하여 농사에 열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그물의 눈을 크게 하여 작은 고기는 잡히지 않도록 함으로써 물고기가 늘 자랄 수 있게 하며, 나무가 막 자라 올라오는 봄에는 나무를 베지 않고 가을에 낙엽이 질 때 가지치기 등을 하게 함으로써 재목이 늘 자라도록 하면 재용(財用)이 풍족해질 것이다.


왕도정치의 핵심은 도덕을 확립하여 백성들이 참되고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경제력을 향상시켜 백성의 의식주를 무난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 중에서 근본으로 삼고 중시해야 할 것은 ‘도덕의 확립’이지만, 먼저 해야 할 것은 ‘경제력의 향상’이다. 육체적인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 삶의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 [양혜왕·상](제3장) — ③ 의식(衣食)이 유족하면 효제(孝悌)를 가르쳐라


   01-03-04 五畝之宅 樹之以桑 五十者可以衣帛矣 鷄豚狗彘之畜 無失其時

                 七十者可以食肉矣 百畝之田 勿奪其時 數口之家可以無飢矣

                 謹庠序之敎 申之以孝悌之義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

                 七十者衣帛食肉 黎民 不飢不寒 然而不王者未之有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묘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 세가 된 자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과 개와 돼지와 큰 돼지를 기르는 데 시기를 놓침이 없으면 칠십 세가 된 자가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묘의 밭에 그 농사지을 때를 빼앗지 아니하면 몇 식구 되는 집안에 굶주림이 없을 수 있으며, 상서의 가르침을 신중히 하여 효제(孝悌)의 도리를 거듭 가르친다면 머리가 반백이 된 자가 도로에서 짐을 지거나 이지 않을 것입니다. 칠십 세가 된 자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여민이 굶주리지 않고 춥지 않게 되고서도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하지 못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 [어구(語句)의 해석] —————

· ‘五畝之宅에서(묘, 혹은 무) 면적의 단위. 사방이 6척을 일보(一步)라 하고 백보를 일묘라 한다. 오늘날 단위로는 사방 6척이 한 평이므로 일묘는 100평이다.

· ‘五十者可以衣帛矣에서 전치사 목적어는 앞에 나오는五畝之宅 樹之以桑인데 생략되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함으로써’이지만 해석할 때 생략하는 것이 부드럽다.

· ‘鷄豚狗彘之畜에서(구)는 ‘식용의 개’. ‘(체)는 ‘큰 돼지’.(휵)은 기르다’.

· ‘謹庠序之敎에서庠序(상서)는 서민 교육기관. 은대는 서(序), 주대는 상(庠)이라 했다.

· ‘頒白者에서頒白(반백)은 머리털이 반쯤 흰 것이다. 반백(斑白)이라고도 씀.

· ‘黎民에서(여)는 ‘검다’ 黎民 ‘젊은 백성’, ‘일반 백성’을 통칭하는 말이다.

· ‘然而不王者未之有也에서不~ 동사나 형용사를 부정하는 말이다. 따라서不王者 왕을 동사로 해석하여 ‘왕 노릇하지 못한다’로 해석해야 한다. ‘非’는 명사를 부정하는 말.

· ‘未之有也에서 도치(倒置)되어 있다. 따라서 未有之也 놓고 해석한다.


* [강 설(講說)] —————

앞의 문장이 경제의 정치적·사회적·제도적 운용방법을 제시했다면, 이 문장은 가정을 단위로 한 경제 운용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 운용의 주체는 가정이 될 것이다.


‘오묘(五畝)의 집’은 한 가장이 받는 것이니 2묘 반은 농지에 있고, 2묘 반은 읍내에 있다. 농지 가운데는 나무가 있을 수 없으니, 오곡에 해로울까 두려워해서이다. 그래서 담장 아래에 뽕나무를 심어서 누에치는 일에 공급하는 것이다.(五畝之宅 一夫所受 二畝半 在田 二畝半 在邑 田中 不得有木 恐妨五穀 故 於墻下植桑 以供蠶事)


그리하면 나이가 들어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 따뜻한 비단옷을 입을 수 있고, 또 70세가 된 노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가축을 기르거나 농사를 지을 때 그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자가 말했다] “대저 백성들이 의식(衣食)이 부족하면 예의(禮儀)를 다스릴 겨를이 없고,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또 금수(禽獸)에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이미 부유(富裕)하게 해주고 나서 효제(孝悌)를 가르치면 사람들이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서, 그의 수고로움을 대신하여 노인으로 하여금 길거리에서 짐을 지거나 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夫民 衣食不足 則不暇治禮義 而飽煖無敎 則又近於禽獸 故 旣富而敎以孝悌 則人知愛親敬長而代其勞 不使之負戴於道路矣)” … “이는 법제(法制)와 품절의 상세함을 다하고 재성보상의 도를 지극히 해서 백성을 도와줌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왕도(王道)의 완성이다.(此 言盡法制品節之詳 極財成輔相之道 以左右民 是 王道之成也)”


부모에 대한 효(孝)와 형제간의 의(義)를 실현하고 그것이 확산되어 모든 사람을 부모 형체처럼 공경(恭敬)하게 되면 인(仁)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정에서의 효제(孝悌)는 인(仁)을 이루는 근본이요, 왕도(王道)정치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 [양혜왕·상](제3장) — ④ '모든 것은 내 탓이다.' 임금의 직분을 충실히 하라!


   01-03-05 狗彘食人食而不知檢 塗有餓莩而不知發

                 人死 則曰 非我也 歲也 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 非我也 兵也

                 王無罪歲 斯天下之民至焉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서 굶어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 모르고, 사람이 굶어죽으면, ‘내 탓이 아니다. 흉년 탓이다’라고 하니, 이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 탓이 아니다. 칼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흉년에 죄를 돌리는 것이 없으면 곧 천하의 백성들이 올 것입니다.”


* [어구(語句)의 해석] —————

· ‘狗彘食人食而不知檢에서(검)은 ‘단속하다’, 여기서 狗彘(구체)는 ‘탐관오리’를 비유.

· ‘塗有餓莩而不知發에서(도)는 ‘도(道)’와 통용. ‘(표)는 ‘시체’. ‘ ‘창고를 열다’.

· ‘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에서於~아래에서는 ‘~과 다르다’로 해석한다.

· ‘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에서 ‘찌르다’의 뜻인데, 바늘이나 송곳 같은 작은 것을 찌르면 음이 ‘자’이고 칼이나 창과 같이 큰 것으로 찌를 때는 음을 ‘척’이라고 한다.


* [강 설(講說)] —————

앞의 두 문장이 경제(經濟)의 일반적인 운용방법을 원칙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면, 이 문장은 당시의 상황에서 왕(王)의 실책(失策)을 직접적으로 열거하여 그 잘못을 깨우친 것이다. 맹자가 제시한 정치방법은 모두 인의(仁義)의 정치방법을 설파한 것이므로, 이를 따르기만 하면 인정(仁政)를 실천하는 것이 된다.


[주자가 말했다] “혜왕이 백성들의 재산을 제정해 주지 못하고, 또 개와 돼지[貪官汚吏]로 하여금 사람[百姓]의 먹을 것을 먹게 하였으니, 선왕(先王)이 제도하고 품절한 뜻과는 다른 것이다. 백성이 굶주려 죽어 가는데도 창고를 열 줄 몰랐으니, 그렇다면 그 옮겨간 것은 다만 민간의 곡식일 뿐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많아지지 않는 것을 가지고 연사[흉년]에 죄를 돌리니, 이는 칼날이 사람을 죽인 것만 알고, 칼날을 잡은 자가 사람을 죽인 것은 모르는 것이다. 흉년에 죄를 돌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스스로 돌이켜 더욱 정사(政事)를 닦아서 천하의 백성이 올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비단 이웃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질 뿐만이 아닐 것이다.(惠王 不能制民之産 又使狗彘得以食人之食 則與先王制度品節之意 異矣 至於民飢而死 猶不知發 則其所移 特民間之粟而已 乃以民不加多 歸罪於歲凶 是知刃之殺人 而不知操刃者之殺人也 不罪歲 則必能自反而益修其政 天下之民 至焉 則不但多於隣國而已)”


* [관련지어 공부하기]  '王無罪歲 斯天下之民至焉 '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제1장) — 덕(德)으로 정사를 이끌어라 

      02-01-01 子曰 爲政以如北辰 居其所 而衆星 共之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제16장) — 가까운 사람이 기뻐하면 먼 데 사람이 온다

      13-16-01 葉公問政  子曰 近者 遠者


* [양혜왕·상](제3장) * [障下註] * 

(정자가) 또 말씀하셨다. “공자(孔子)의 시대엔 주(周)나라 왕실이 비록 미약하였으나 천하(天下)가 아직 주나라를 높임이 대의(大義)가 됨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춘추(春秋)』에는 주나라를 높임을 근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맹자(孟子) 때에 이르러서는 칠국(七國)이 패권을 다투어 천하가 다시 주나라가 있음을 알지 못하였고 생민(生民)이 도탄에 빠진 것이 이미 지극하였으니, 이때를 당하여 제후(諸侯)들이 능히 왕도(王道)를 행한다면 왕 노릇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맹자께서 제나라와 양나라의 군주에게 권고하신 것이다. 왕자(王者)는 천하에 의로운 군주이니, 성현께서 무슨 마음이셨겠는가? 천명(天命)이 옮겨 갔는가 옮겨 가지 않았는가를 보셨을 것이다.


程子曰 … 又曰 孔子之時 周室雖微 天下猶知尊周之爲義 故 春秋 以尊周爲本 至孟子時 七國爭雄 天下不復知有周 而生民之塗炭 已極 當是時 諸侯能行王道 則可以王矣 此 孟子所以勸齊梁之君也 蓋王者 天下之義主也 聖賢亦何心哉 視天命之改興未改耳” …♣ <끝>


*『맹자(孟子)』<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상) (제1~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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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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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선비 | 작성시간 16.10.23 이 세상 사는 일이
    어려운 듯 보이지만

    맹자를 읽어보면
    간단하고 또 쉬워라

    질문도 간단하고
    대답 또한 분명하니

    한 호흡 크게 쉬고
    사람답게 살아보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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