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주, 좋은 일 많았지만 답답하고 기막혀 탄식하며 한 숨 쉬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살게 하셨으니 또 한번 기회 주신 것으로 믿고 감사드립니다. 희망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죄와 허물 많지만 천국 향해 가는 하늘 백성으로 부끄럽지 않게 하옵소서.
이 시간 은혜의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군대, 객지, 외국, 병상의 환자들 …
모두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길 걷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부족한 종, 말씀 들고 섰습니다. 성령으로 붙드시고 힘 주셔서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 전하게 하셔서. 치료와 회복의 시간 되게 하실 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약3:13~18
위로부터 난 지혜
할렐루야!
지난 수요일은 어버이날이었고 돌아오는 수요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오늘은 그 중간에 있는 주일입니다.
5월 5일 ‘어린이날’하면 ‘소파 방정환’ 선생이나 ‘색동회’를 떠올리지만 ~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 5월 8일 어버이날은 1956년부터 ‘어머니 날’로 지정하여 지키다가 …
‘아버지의 날’도 거론이 되면서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변경했습니다.
- 스승의 날은 1963년,‘청소년 적십자 학생 협의회’에서 5월 26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었지만, 1965년부터 백성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던 세종대왕 생일 5월 15일로 변경해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선생님께 배우며 자랐습니다.
간혹 부모님께 아픔이 있는 자녀가 있고, 선생님께 상처를 받은 제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전히 헌신적인 부모와 교사가 대부분입니다.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된 우리는 부모와 교사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일에 …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오늘 나를 있게 한 부모님과 선생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한번 선생님이면 죽을 때까지 선생님입니다. 은퇴했다고 <김씨>라고 부릅니까.
존경하는, 받들던 분의 호칭은 계속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을 귀히 여기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는 일에 앞장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지혜>
사전적으로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을 말합니다. 달리 표현하면‘감각기관으로 접하게 된 정보를 올바로 분석하고 판단해서 상황에 맞고 바르게 행동하는 능력’을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 하나님을 향한 경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일반적인 지식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공부 많이 하고 경험 많이 하면 지식이 쌓이고 지혜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공부 많이 했다고 … 학위를 받았다고 … 모두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지혜롭게 사는 사람 많습니다.
세상에는
- 지식도 지혜도 없는 이가 있고,
- 지식만 있고 지혜 없는 이도 있고,
- 지식은 없으나 지혜로운 이,
- 지식도 있고 지혜로운 이가 있습니다.
본문 13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 (약 3:13)
‘총명’이라는 말은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으며 재주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3)
쉬운성경으로 보면
“… 올바른 삶을 통해 겸손함으로 자신의 지혜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지혜는 학력이나 학위에 따라 측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로 측정됩니다. ‘많이 안다는’지식은 때로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고 그러다 슬그머니 남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겸손과 온유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하는 우리는
“겸손함”과 “온유함”으로(온화하고 부드러움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부모이십니까? 자녀가 지식 많고 지혜롭게 살기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겸손을 가르쳐야 합니다.
온유한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부모도 온유한 마음으로 자녀를,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부모를 두신 자녀입니까?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고 싶습니까?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아는 지식을 온유하게 행동으로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사입니까?
교회학교 교사든지, 가르치는 것이 단지 ‘지식’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가르침 받는 이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 받는 ‘지혜로운 사람’되도록(잠 3:4) 겸손과 온유함을 갖추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
오늘 본문은 ‘지혜’를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약 3:14~15)
진정한 지혜 … 하나님이 주신, 위로부터 난 지혜는 시기하지 않습니다.
다툼을 만들지 않습니다. 시기와 다툼은 진리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사람은 부드럽지 못합니다.
일 많이 하는 것 같아도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일 많이 하는데 자기 입으로 수고한 것을 다 까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련해서 그렇습니다. 참 지혜는 있으면 있을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많은 것을 경험했으면 경험했을수록 … 일했어도, 땀 흘렸어도, 박수 받을 일을 했어도 겸손하게 조용히 자신을 감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유하며 온화하고 부드럽습니다.
입으로/성질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성품을 중요하게 보는 것입니다.
은근히, 끈기 있게, 말없이 … 행함으로 지혜를 드러내야 합니다.
간혹 부모들 중에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여러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머리는 좋을 수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아이보다 기억력이 좋은 아이가 있고, 계산을 빨리 잘하는 아이, 만들기를 잘하는 아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습득력이 빠른 아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각기 다르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열매 맺기 위해 끈기 있게 애쓰지 않는 것은 지혜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부족함을 알아 더 ~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는 무엇일까요?
17절을 다 같이 읽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약 3:17)
▶ 지혜로운 사람은 ‘성결(pure)’합니다.
‘성결’이란 말은 “거룩하고 깨끗함”을 뜻입니다.
거룩함을 의미하는 「성(聖)」자는 ‘구별하다/나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을 때는 사사로운 욕심을 따라 살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구별되고 나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거룩해진다고 해서 하나님처럼 완전해지고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실수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저도 목회하면서도, 인간적으로 살아가면서 삶의 현장에서도 실수 많이 합니다.
말하지 않을 뿐 실수투성이입니다.
우리 모두 허물 많고 부끄러운 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는 악하고 험한 세상에서 홍수로 멸망했던 그 때에
구원 받은 의인‘노아’처럼 의롭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시키려 하실 때
그 안에 살고 있는 ‘롯’은 건져 내고 싶어 하셨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고 싶어하실 만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위로부터 난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 지혜로운 사람은 화평(peace-loving)해야 합니다.
화평은 ‘올바른 관계와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지혜’입니다.
거짓 지혜는 평안을 깹니다.
하나님과의 평안, 가족 간의 평안, 성도들 간의 평안을 깨고 갈라놓는 것은 사탄에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사탄에게 쓰임 받는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 지혜는 하나 되게 합니다. 화평하게 합니다. 화해하게 합니다. 가깝게 하고, 손잡게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라야 복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마 5:9)
반대로 화평을 깨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마귀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민하는 일이 있습니까? 어떻게 결정을 해야 할지 고민하십니까?
일의 결말을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결정이 더 화평을 이루는지 … 화목하게 하는지 … 생각하고 정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켜야할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화평을 깨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는 원칙과 화평 모두를 잃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 지혜로운 사람은 관용(considerate)을 베풉니다.
관용은 “동정심이 많다. 인정이 있다. 잘 생각해 준다”는 뜻입니다.
참 지혜는
- 거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해 줍니다.
-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무례하거나 오만하지 않고,
- 누군가 실수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하는 / ‘도리를 잘 분별하는’마음씨가 참 지혜입니다.
▶ 지혜로운 사람은 양순(submissive)합니다.
양순은 “유순한, 온순한”이라는 뜻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불의, 나쁜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대적하지만
하나님의 일, 진리의 일, 선한 일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순종하며 따릅니다.
말씀 읽는 중에, 듣는 중에 … 깨달아지면 “아멘”하며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 지혜로운 사람은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편견과 거짓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비롯된 참 지혜는 결코 편파적이지 않습니다.
속이거나 감추려고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욕심에 쫓겨 살아갑니다.
시기와 다툼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고 거짓말하여 속이며, 질서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용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어느 고을에 욕심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부자가 은 천 냥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부자는 돈을 돌려주는 사람에게 절반을 주겠다고 벽보를 붙였습니다.
이후에 어느 농부가 부자에게 보따리를 돌려주었습니다.
부자는 약속대로 농부에게 오백 냥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돈을 주려니 아까웠던 부자가 말했습니다.
“사실은 이 보따리에 이천 냥이 들어있었네. 그런데 이미 자네가 절반을 가졌나보군?”
그러면서 부자는 농부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고을의 원님에게 사정을 말했습니다.
원님은 이렇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부자가 잃어버린 것은 이천 냥이 든 보따리이고 농부가 주은 것은 천 냥이 든 보따리이니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틀림없다.
농부가 주은 보따리는 진짜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농부가 다 가져라.”
< 김장환의 큐티365 중, 2013년 10월 16일 “꾀와 지혜” 묵상 자료 참조.
(나침반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인용) >
부자는 ‘꾀’를 부리기는 했지만,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선한 열매를 맺고,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계십니까?
세상이 점점 험해지고 점점 더러워집니다.
자연환경도, 정치와 경제도, 인터넷 속 온라인 세상도 … 점점 거칠고 험악해집니다.
심지어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에서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험해지고 많이 더러워졌습니다.
교회들도 …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한다는 사람들도 시기와 다툼으로 싸우는 교회가 많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장로와 장로가, 교인들끼리 싸우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의 다툼이 방송에 신문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평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접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경우 지는 것 같지만 진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화평을 깨는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가정에서, 학교와 일터에서, 교회에서 …
하나님 마음에 합한 성품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 지혜를 가진 사람의 삶입니다.
본문 마지막 18절에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8) 했습니다.
화평을 심어야 의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내가 평안을 심지 않는데 어떻게 의의 열매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범사에 평안하고
화평케 하는 나무를 심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살면 다툴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의의 열매”를 거두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거룩한 주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립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홍수 시대의 노아처럼, 소돔과 고모라성의 롯처럼
하나님께서 건져내고 싶은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 살면서 땀 흘려 일했습니다. 일하여 얻은 소득을 구별합니다.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일천번제예물 여러 가지 제목으로 예물을 구별하여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땀 흘린 정성으로 드린 예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쓰이게 하옵소서.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를 지켜주실 줄로 믿고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