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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빈 그릇을 채우소서

작성자데이비드길|작성시간22.05.02|조회수120 목록 댓글 0

22. 4. 3 나의 빈 그릇을 채우소서 열왕기하 4:1-7 I. 악한 시대⦁가난한 사람들 4-50년 전 제가 신학교 다닐 때도 신학생들은 대단히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 다. 그 당시에 흔히 하는 조크로 목회자의 밥상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고추장이라. 수 천년 전 오늘 본문의 시대에 신학생이 되어 살아간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은 날로 악해지고 교회는 여러모로 어려워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가는 사람들은 날로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영적침체기 에 소명을 받은 한 젊은이가 선지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선지학교 신대원에 다니 던 이 학생은 불의의 사고로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갑자기 별세합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 미망인은 유산을 정리해 보니 갚을 길이 없을 만큼 빚만 잔뜩 남 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신대원 재학생, 교회 교육전도사쯤 되었을테니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당시 사회법에 따라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가게 생겼습니다. 이 미 망인은 선지학교 교장격인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 부르짖습니다. 사정을 딱하게 생각한 엘리사는 이 미망인에게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 집에 남아 있는 게 뭐가 좀 있소? 기름 한 그릇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두 아들과 함께 마을을 다니면서 되 도록 많이 그릇을 빌려 오십시오.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빈 그릇에 기름을 부어 보시오. 그릇마다 부어도 부어도 기름이 줄줄 쏟아집니다. 신 이 난 어머니가 두 아들에게 그릇이 더 없냐? 어머니 그릇이 없습니다. 이 말이 떨어 지기가 무섭게 기름이 곧바로 그쳤습니다. 엘리사가 말합니다. 그 기름을 팔아 먼저 빚을 갚으시오. 그리고 남은 것으로 두 아들과 함께 힘을 내서 사십시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옛날 어르신들 영해를 한다. 영적인 해석을 한다고 여기 기름을 성 령으로 해석합니다. 신앙이 침체되어 영적인 기름이 떨어졌을 때에, 우리 영혼에 믿음 의 그릇이 비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신다. 이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이런 설교를 두고 설교학 교수 월터 카이저는 “성경과 상관없는 엉터리 방터리 해석, 그러나 은혜로운 설교”라고 꼬집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알레고리설교입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많은 왕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열왕기서의 주인공은 왕 이 아니라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입니다. 왕들이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시대를 이끌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열왕기상은 엘리야서, 열왕기하는 엘리사서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사실 성경의 많은 선지자들이 자기 이름을 두고 서신서를 그리고 역사서를 기록하지 않습니까? 사무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 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가랴, 말라기 ... 모두다 자기 이름으로 된 성경입 니다. 여기에 엘리야, 엘리사는 위에 누구 못지않은 탁월한 선지자 아니었습니까? 엘리야서, 엘리사서라는 책을 가진다고 나무랄 사람 아무도 없지요. 열왕기상,하 ⅓정도가 두 선지자 이야기입니다. 역사상 가장 타락한 시대에, 가장 능력이 많은 두 선지자가 활동을 합니다. 두 선지자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통치하신 다. 역사는 악이 이기는 것 같고 꽤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탈락하여 어려움에 빠져있다 할지라 도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돌보고 지키신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 습니다. 그 중에서도 엘리야는 부성적인 선지자로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 함을 선포합니다. 반면 엘리사는 모성적인 선지자로 지극히 작은 자, 나처럼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이 깊이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신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두 선지자의 어마무시한 기적들에도 불구하고 열왕기서의 핵심은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 자체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면 본문이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잃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하가 기록된 때는 바벨론 포로기입니다. 열왕기서의 수신자들은 포로로 끌려 가 고난과 가난에 빠져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바알 우상을 숭배하다가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는 백성들에게 두 선지자는 하나님께로 돌 아오라. 돌아오면 하나님은 너희들을 용서할 것이고 어떤 어려움 속에도 너희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열왕기하 1:1 문이 열리자마자 이 시대가 얼마나 악한 시대인가를 보여줍니 다. “아합이 죽은 후”입니다. 아합이 죽은 후에 나라가 평안할 줄 알았는데 두 아들 은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비의 뒤를 이어서 악을 행합니다. 그래서 포로로 끌 려가고 이스라엘은 무서운 쇠퇴기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2장 23절에 보면 얼마나 악한 시대였는지 이 당시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 사건 하나가 등장합니다. 마을의 아이들, 원문에 보면 청소년들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마을을 지나가는데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합니다. 이때 숲속에서 곰 이 나와 아이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는 이해가 안 되는 난해구절이 등장합니다. 백성들은 바알숭배에 빠져 번영과 물질주의에 성공의 쾌락에 젖어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 청소년들은 바알 제사장의 자녀들이라고도 하고 바알 제사장이 보낸 사람이라 고 합니다. 교회를 조롱합니다.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일컬어서 대머리야 올라가라. 무슨 얘기일까요? 너희 스승 엘리야는 이 땅에서 꺼지지 않았느 냐. 하늘로 올라갔듯이 너도 하늘로 꺼져 버려! 이 시대가 이처럼 영적으로 대단히 악한 시대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II. 약자의 무기 : 부르짖음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섬겨야 될 백성들이 바알신을 섬겼습니다. 번영신학, 성공신학, 물질주의에 빠졌습니다. 모든 가치관이 쾌락이었습 니다.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살았습니다. 사회적인 약자를 돌보는 대신 가진 자, 힘있 는 자들은 더 가지기 위해 약자들을 짓밟고 빼앗았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니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포도원이 있습니다. 나봇이라는 가난 한 서민이 농사하는 포도원이었습니다. 왕은 그 서민을 죽이고 강제로 포도원을 빼앗 던 시대가 이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신명기에는 약자보호법이 가득합니다. 추수때 밭에 떨어진 곡식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줍지 말아라. 과일을 딸 때도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들을 위 해서 모두 다 따지말고 남겨 두어라. 3년에 한 번씩은 십일조를 한번 더 해라. 그리 고 사회적인 약자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하라고 하는 것이 이 당시에 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이 법을 어겨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갔다고 하는 겁니다. 요즘 모정당 대표가 지하철역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요구하는 일을 두고 폄하함으로 사회적인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처음 이동권을 요구할 때에 제가 한교 총 대표회장으로 지하철역을 방문해서 용기를 주고 또 그들이 요구하는 예산을 위해 서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방법이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은 약자들을 편애합니다. 우리 시대의 약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부르짖음밖에 없는데 이를 폄하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이런 배경 가운데 오늘 본문 열왕기하 4장 1절 문이 열립니다. 4장 본문은 한 여인의 부르짖음으로 시작됩니다. 여기 부르짖는다 “차아크”라는 히 브리 말은 목마른 사슴 한 마리가 물을 찾아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다는 의미를 가 지고 있습니다. 소낙비가 쏟아지는 날 천둥 번개 우레가 치는 그 소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힘없는 백성이 임금을 찾아가 신원하는 살려달라 울부짖는 이 장면을 기 록하고 있습니다. 예나 제나 울부짖음, 부르짖음은 약자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입니다. 힘없는 우리 성도 들의 무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선지자의 생도가 죽었습니다. 두 아들이 빚더 미에 깔려 종으로 팔려가게 생겼습니다. 살려주세요.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왜 오늘 신앙을 가졌다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총을 받지 못하고 형식 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부르짖어야 할 만한 갈망이 사라졌기 때문 입니다.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열심히 나오는 성도들도 거룩한 갈증, 거룩한 갈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요 한계시록 3:17에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갈망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인들 그게 너 아니었느냐. 이 시대 형 식적인 크리스챤의 모습 아니냐. 그 얘기입니다. 그릇이 텅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경륜이면, 형식적이지만 교회생활하면, 이 위기 시대에도 꼬박꼬박 예배하노라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셔야지, 하나님이 나를 잘살게 만들어 주셔야지,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갈망을 잃어버렸 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아는 것 이게 갈망입니다. 하나님이 부 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빈털털이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갈망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부르짖습니다.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런 사 람이 하나님의 부어주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III.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내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어리고 철없는 두 아 들, 그리고 남편이 남기고 간 빚더미뿐이었습니다. 이때 내 어머니 나이 32살이었습 니다. 기가 막히지요. 그런데 내 어머니는 항상 너희들만 있으면 된다. 너희들만 잘 자라면 된다고 하십니다. 농사를 지어 추수해도 그 곡식들은 우리 것이 아니고 채주의 것이었습니다. 밭을 팔고 논을 팔아도 그 판 값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채주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내 어머니는 엄마 우리는 뭘 먹고 살아? 왜 농사지어서 다른 사람 다 갖 다 줘? 빚은 갚아야 하는 거야.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는 먹이실 거야. 걱정하지마. 이런 여인은 세상에 내 어머니밖에 없는 줄로 알고 저는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집과 엇비슷한 가정이 나옵니다. 남편이었던 선지자의 생도는 죽 었고 두 아들과 빚더미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세상을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들아 왜 태어났니? 죽자 죽자 같이 죽어버리자 할 수도 있었습니다. 두 아들을 종으로 끌고 가겠다고 찾아온 채주 앞에 드러누워 배째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 다. 그러나 여인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 부르짖었습니다. “환 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시편50:15 말씀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여 러분이 어떤 환란에 빠져있어도 하나님께 찾아와 부르짖으라. 능히 내가 건지리라. 할렐루야! 찾아와 부르짖는 이 여인에게 엘리사는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하4:2)고 합니다. 이 말은 얼핏 잘못 들으면 “날 보고 어쩌라고”이렇게 들립니다. 전혀 그런 말이 아닙니다. 대단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응답입니다. 내가 네게 무 엇이든지 해주고 싶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을 뿐만 아니 고 무엇이든지 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문제를 안고온 당신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련? 믿으십시오. 하 나님은 무엇이든지 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기적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이 기 적을 믿는 순수한 믿음이 내게 없기 때문에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 다. 그리고“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말 속 에 기적의 원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무에서 온 세상 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천지창조 이후 하나님은 내게 있는 작은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때에 역사를 베푸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 칫집에서 수리수리 마수리 연기 속에서 포도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을 길어 오 너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낙심하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 람들은 지금 가진 것이 없으니 부자 된 다음에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지금 섬길 수 없는 사람은 부자가 되어도 섬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건강하고 바빠서 내가 내 일을 하고 세상 섬기다가 시간 많이 남으면 그때 하나님 섬기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No. 지금 섬길 수 없는 사람은 그때 도 섬기지 못합니다. 여러분 그때가 되면 얼마나 바쁜지 아십니까? T.V 보기 바빠 죽어요. 밥 먹고 나면 한숨 자야 되고, 저녁 먹고 나면 금방 또 자야되고 잠자기 바빠 죽습니다. 그래서 백수가 과로사하는 겁니다. 마가복음 6장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그날따라 예수님의 말씀이 길어졌습니 다. 점심도 못 먹었는데 해가 서산에 넘어갑니다. 사람들이 허기에 쓰러지게 생겼 어요. 제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이 사람들을 빨리 마을로 돌려보내 각자 뭔 가 사 먹게 합시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가진게 뭐냐? 두루 살펴보니 어린아 이가 도시락 하나를 가지고 있어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어린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더니 도시락 하나로 오천 명 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40년동안 종살이하던 내가, 뭘 가졌다고 아무것 도 없는데, 내 몸은 늙었는데, 내가 어떻게 이 백성을 인도합니까? 네 손에 있는 게 뭐냐? 양치던 지팡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 내려놓아라.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 니 그 지팡이로 홍해를 가릅니다. 반석을 쳐 샘물을 쏟았습니다. 40년동안 60만 장정, 200만 백성들의 광야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없는 것을 탄식합니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살아갑니 다. 하나님은 묻습니다. 네게 있는 게 무엇이냐? 이 미망인이 대답합니다.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가련한 미망인에게 엘리사 선지자는 3절 4절에서 3가지를 말합니다. ① 마을에 두루 다니면서 그릇을 빌려 오너라. 많이 빌려 오너라. ② 두 아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라. ③ 빈 그릇마다 기름을 부어 가득가득 채우라는 겁니다. 빌려온 그릇은 믿음의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은 믿음의 그릇만큼 채 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지만 우리에겐 믿음의 그릇만큼 채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에 나오는 것은 이 여인이 엘리사를 찾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 리 하나님 앞에 찬송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부르짖음입니다. 이 시 간 여러분은 어떤 은혜를 얼마만큼이나 받을까요? 믿음의 그릇만큼 받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은 그릇을 준비하고 오셨습니까? 아들아 그릇이 더 없냐? 이제는 그릇이 없어요. 뚝 기름이 그쳤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여러분 몸이 아파도,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 을 얻었나니... 믿으면 채워집니다. 세상에서 낙심하고 실망하고 희망을 잃어버려도 주님 앞에 빈 마음을 보여드리면 주 님이 치료하시고 회복하고 고쳐주십니다. 삶의 환경이 어려워도 지난 이천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역사를 기적을 경험했습니까? 이 시간에 죄 에 시달리고 영원히 빈 그릇으로 허덕인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달려 나와 그 그릇 을 내어놓으면 주님께서 이 시간 은혜를 채워주십니다. 말씀을 채워주십니다.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IV. 문을 닫아라! 오늘 보면 4절, 5절, 6절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자세가 나옵니다. 들어가 문을 닫고 빌려온 그릇마다 기름을 부으라. 모든 그릇에 기름이 다 찰 때까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4절 들어가서 문을 닫고, 5절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문을 닫으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과 역사를 경험할 때에 문을 닫으라고 할 때가 참 많 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렙다 여인의 아들을 살리실 때 문을 닫았습니다. 엘리 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리실 때도 문을 닫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 문을 닫으십니다. 이 귀한 사역을 행하시며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적 으로 행하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충분히 영광이 되었을 법도 한데 왜 문을 닫으라 말씀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적을 보면 ‘야 진짜 하나님 살 아계시는구나!’ 전도가 되었을 터인데 왜 문을 닫으라고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은 이 신령한 일을 은밀하게 믿음있는 사람들에게만 행하기를 원하셨던 것입 니다. 이 여인의 이 신비한 경험은 자랑거리도 광고 거리도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 을 기적 사역자로 등극시키는 관문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동리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 이 광경을 다 보았다면 너도 나도 자기 집으로 달려가 그릇들을 들고와 여기에 도 부으라고 난리법석을 떨었을 것입니다.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필시 이때 부터 이 여인은 신비주의자가 되어서 믿음을 퇴색시키고 말았을 것입니다. 기름병 에 신령한 능력이 있는 줄 알고 이 여인을 죽이고 기름병을 뺏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조그만 기름 그릇에서 계속 기름이 쏟아져 준비된 그릇마다 기름이 채워질 때에 손 이 떨리고 심장이 멎는 듯한 감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꿈을 꾸는 듯 흐르는 기름만 큼이나 눈물이 저절로 흐릅니다. 두 자식 밥 굶기지 않겠다고 몸부림하던 지난 날들 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빚쟁이들이 와서 두 자식 끌고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 떨리고 요동치던 심장이 지금 기쁨으로 다시 뛰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날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 아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어쩌나 우리 아들, 어쩌나 우리 아들, 못난 아비 못난 어미 만나서 굶고 살아야 되는구나. 못난 어미 밑에서 태어나 종으로 끌려가는구나. 쩔쩔매며 함께 울던 지난날이 지나갑니다. 지금 이 시 간 상처를 싸매고 서러움을 바꾸시고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을 지금 경험하고 있습니다. 흐르는 기름은 성령의 기름이 되어 이 가족을 치유하고 있었던 것입니 다. 얘들아, 이제 너희들 종으로 팔려가지 않고 엄마랑 살게 되었구나. 엄마! 이제 우 리 남의 집에 가서 종으로 안 살아도 되는 거야? 그럼 온 가족이 찬송합니다. ♪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이 역사적인 전환점이, 오늘 이 예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 가 되고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던 어느 날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이처럼 신령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 될까요? 내 자녀들 평생 잊지 못할 하 나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떨리는 신비경험, 부으시고 또 부으 시는 하나님 사랑의 경험이 얼마나 귀한 경험이었습니까? 마지막 7절입니다. 기름을 팔아 빚을 갚으라. 너는 종으로 살아갈 존재가 아니니라. 주 안에서 자유자가 되었느니라. 그리고 남 은 기름으로 너와 네 아들이 먹고 생활하라. 잘 살아라. 우리 예수님 마귀에게 끌려 가서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던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너의 모든 죗값을 내 가 감당했다. 네 모든 빚을 내가 감당했다. 자유해라. 세상을 섬기며 세상을 채우며 살아라 말씀하십니다. “어쩌다 사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더라고요. 어쩌다가 저는 6만 한국교회, 8백만 성도를 목회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은 1만 성도 님들 섬기기에도 벅찬 사람이라는 걸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기도를 등에 업고 한국교회를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져 도, 울진 삼척 동해안지역의 산불이 나도 제가 해결해야 될 것만 같은 거룩한 부담 감이 밤잠을 자지 못하게 만듭니다. 여러분들은 기름 떨어진 여인의 입장에서 오늘 말씀을 듣겠지만 저는 기름 채우는 엘리사 입장에서, 어떻게 이 땅에 무너진 신뢰를 텅텅 비어가는 한국교회를 채운담? 이 땅에 상처 난 곳을 어떻게 어루만진담? 산불 은 어떻게 치유한담? 어떻게 한국교회를, 이 사회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인가? 밤낮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불 난 울진지역을 찾아갔습니다. 새까맣게 탄 산을 바라보면서 여기 나무를 심자! 태안반도에 기름이 흘러내릴 때에 손톱이 새카 맣도록 기름을 닦았듯이, 저 산에 한국교회 성도님들이 나무 심자! 기도했는데 나 무 심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아니래요. 산림청이 해야 되는 일이랍니다. 그 래서 수목을 잘 고르라고 조언만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단체로 생활을 하다가 너도나도 코로나에 감염이 되어집니다. 제가 둘러서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집을 지으면 어떨까? 한 교회들마다 한 채씩 짓자! 그냥 편안하게 여러사람이 대화를 했는데 그 다음 날 언론들이 류영모 목사가 집 지어준단다. 보도해 버렸습니다. 한교총 대표회장이, 예 장총회장이 집 지어 준단다. 언론이 보도를 해버렸습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지어주게 생겼습니다. 내일 우리 교역자들과 장로님들이 가서 견본주택겸 1호 주택을 짓게 될 것입니다. 급하게 총회 임원회를 소집해서 우리 총회가 앞장서서 산불난 지역에 사랑의 집을 짓 자. 한교총 회원가입 교단이 35개 대형교단들입니다. 한 교단에 우선 한 채씩 짓자. 성도들의 집 35채가 불탔습니다. 꼭 성도들의 집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상징적으로 한 교단에서 한 채씩 짓자. 그러다 보면 200여채 가까이 되는데 200여채도 지어 지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주여! 나의 빈 그릇을 채워주시옵소서. 이 사회에 빈 희망의 그릇을, 복음의 그릇 을, 상처로 얼룩진 이 땅 능력에 기름을 채우는 한국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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