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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3)

작성자사랑해|작성시간23.12.27|조회수36 목록 댓글 0

그의 이름은(3)

이사야9:6

예배일자 : 

[목회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부끄러움 많은 저희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구원하심에 감사드리며 예배합니다.

생명의 말씀으로 새 힘 얻게 하시고, 세상에서 살 담대함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때 예수님의 말과 행실을 본받게 하시고,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도 드러내며 살게 하옵소서.

같이 있지 못하고 … 객지, 외국, 군대에 있는 이들, 형제교회 협력교회 목회자와 성도들

선교지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과 선교지의 성도들 먼 곳에 있어서, 오지에 살아서 교회 올 수 없고

교회 갈 수가 없어서 영상으로 예배드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병들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여 영상으로 예배하는 이들까지 하나님 평안으로 지켜주옵소서.

가나실, 교육실, 농아교회에서 함께 예배하는 성도들에게도 은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전합니다. 꿀보다 더 단 주의 말씀의 맛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연말이 되니 각종 시상식이 열립니다.

관공서나 기업들 뿐 아니라 방송계, 영화계, 스포츠계 … 등 한 해를 정리하고, 결산하며,

내년을 준비하는 행사들이 여기저기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도 ‘시상식’을 한다면 … 여러분은 상을 받을 것 같으신가요?

1년 동안 예배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개근상’, 기도의 자리를 잘 지켜온 ‘기도상’,

섬김과 헌신으로 수고한 ‘봉사상’,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예물을 드린 ‘봉헌상’등등

다양한 이름을 붙여 ‘시상식’을 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섬기며 희생하고,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성도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큰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땅에서 박수받고, 칭찬받고, 상 다 받으면 … 세상에서 다 받은 것이기에 천국에서 받을 상이 없습니다. (마 6:1~5, 16)

 

제가 몰라준다고 … 다른 분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지 마세요.

신앙생활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으로 뭘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기억하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대강절을 보내면서 메시야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 첫째 주는 ‘기묘자, 모사’이신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기묘한 모사’ 즉“Wonderful Counselor”(NIV, NASB) 이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놀라우신 조언자’요, ‘경이로운 지혜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묘한 모사’이신 예수님의 지혜를 구하며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만이 우리를 생명의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 지난주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전했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을“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아기로 세상에 오실 메시야 …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영원히 살아 계신 아버지, 영원히 변치 않고 죽지 않고 살아 계신 아버지를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Eternal’이라고 하는 단어와 ‘Everlasting’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다시 말해 ‘영원히 살아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사전에서 ‘영원(永遠)’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

시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아니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표준대국어사전 참조>

 

그러므로 ‘영원’이란 말은 제한된 삶을 사는 우리는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길어야 백 년 정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영원’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합니다.

‘영원히 지켜줄게요. 영원히 사랑해요. 영원토록 기억할게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참 어이없는 표현입니다.

사실 ‘영원’은 인간의 단어가 아닙니다. 제한된 삶을 사는 인간이 ‘영원’이라는 말을 쓸 수 없습니다.

‘영원’은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 9장 5절에

“…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 (느 9:5) 했고,

시편 90편 2절에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2) 했으며,

베드로후서 3장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신33:27; 시90:2; 렘10:10)’과 ‘그리스도(미5:2)’, ‘성령(히9:14)’만이 영원하십니다.

 

여러분은 몇 년 사셨습니까? 올해 몇 살 이신가요? 앞으로 얼마나 더 살 것 같으신지요?

‘기대수명(Life expectancy at birth)’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지금 태어난 아이가 앞으로 몇 살까지 살 것으로 기대되는가 … 하는 수치를 말합니다.

현재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6년인데 이것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세 번째로 길다고 합니다.

OECD 국가 평균은 80.3년입니다. <2023.07.25. 경향신문 기사 참조>

 

1970년대의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62세 정도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환갑잔치’하는 분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칠순 잔치’를 하는 어른은 정말 ‘잔치’처럼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환갑잔치’를 한다고 하면 핀잔을 듣기 쉽습니다.

시골에서 60세는 청년회장 취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2016년 미국의 앨버트아인슈타인의대 연구팀은 과학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인류의 최대 수명은 115세를 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약 40개국의 생존율과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장수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10세를 기점으로 인구 증가세가 멈춘다’고 합니다.

극단적으로 오래 산 534명을 분석해 봐도 115세 이상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며

인간 수명의 한계가 그즈음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잔 루이즈 칼망(1875~1997)’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돼 있습니다.

사망 당시 그녀의 나이는 만 122살이었습니다.

그녀가 태어났을 당시, 프랑스 여성 평균 수명은 45살이었고,

그녀가 태어난 당시, 세계 인구 10억 5천만 명 모두 칼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의학계/과학계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수명을 연장시키는 기술이 개발 중이기에 이론상 150세까지 살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 2018.06.29. 서울경제 & 2023.05.04. 한겨레 기사 참조. >

 

그래도 현실은 100세를 넘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100세만 되어도 대단히 장수했다고 말하지 않던가요.

 

시편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강건해야 80’입니다.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150살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인생은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이 있음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며 생명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래서 안하고 저래서 안할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 나이에서 83세를 빼 보세요. 83세가 기대수명이라는데 83세 넘은 분은 대단한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더 살 것 같습니까?

기대수명인 83세까지도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 아닙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보며 싫다고 안하겠다고 할 시간이 없습니다.

얼마 안남았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이 영생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며(딛1:2; 요일2:24-25),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주신 것입니다. (요10:28; 17:2; 요일5:11)

‘영생’을 얻는 방법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메시야 –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야 영생을 얻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혈우병을 앓던 라이언 웨인 화이트(1971~1990)는

수술을 받던 중 수혈 과정에서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혈우병은 상처가 잘 나고, 상처가 나면 아물지 않고 피가 나기 시작하면 피가 멈추지 않는 병입니다.

 

병원의 부주의로 죽음의 길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지금이야 의술이 발전하여 에이즈에 걸려도 살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라이언은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들에게 에이즈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인도 방심하면 한 순간에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과

그들을 도울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사랑의 마음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염려하는 부모를 위하여 기쁘게 지냈습니다.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레이건 대통령, 마이클 잭슨 등 유명 인사들이 찾아와 위로해 주었습니다.

라이언이 죽기 전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네게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구나. 아빠가 더 아무것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그러자 라이언은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는 가장 놀라운 선물을 주셨어요. 아빠를 통해 예수님을 알았고 영원한 생명도 얻었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요. 저는 조금 일찍 가는 거예요. 그러나 영생이 있기 때문에 저는 천국으로 갈 거예요.”

< 2023.11.07. 국민일보 ‘가정예배 365’기사 참조 >

 

예수님이 허락하신 ‘영생’은 단순히 죽음에서 탈피한 ‘불멸(不滅)’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넘어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

구원, 자유, 기쁨으로 가득 찬 생명을 말합니다.

장차 임할 천국에서의 삶만이 아닌 영생이 아닙니다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 세상 삶을 포함해서 영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립니다.

혹 아직 믿음이 없는 분들도 이 시간 믿음으로 대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하신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여러분 안에 예수님을 모셨습니까?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요일 5:12, 새번역) 했습니다.

 

마음에, 생각에, 삶에, 모든 것에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요14:6)이 있어야 합니다.

영원하신 예수님을 모신 사람 … 이 땅에 제한된 삶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 것을 믿는 사람,

영생을 소망하면서 사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저는 멸망치 않고 영원히 살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시는 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성자 예수님-성령님’은 세 분이시면서 동시에 동일하게 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의 세 위격이 모든 기능을 공유한다는 것을 믿으면

예수님을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하셨습니다.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돌보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아버지 역할도 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윌터브루그만, 『메시아의 이름들』, CLC, p.77~78. 참조 >

 

그래서 골로새서 1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6~17)

 

성경은 만물이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고, 모든 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며,

만물은 예수님 안에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은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고, 낙심한 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

슬픈 자를 위로하시고, 아픈 자를 고치시며 … 고통 속에 있는 자를 건지시고,

죽음 앞에 있는 자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시며,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대강절을 보내면서 …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심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 위로받고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여 넘어진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성탄절에 감사헌금을 드리라고 봉투를 드렸습니다.

절기가 되었으니 의례적으로 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감사의 예물 드리고 동방 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린 정성으로 드리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예수 믿으셔야 합니다’하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라면을 모으는 것도 라면을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라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함께 전하려고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 소망이 있기 때문에 … 영원히 사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 예배의 자리에 계신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멸망치 않고 영원히 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한된 세상 삶,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너 잘했다. 너 참 잘했어. 착하고 충성된 종이구나’ 칭찬받는 자리의 주인공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들, 영원히 살 하늘 백성임을 믿고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삶에 부끄러움 없이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정성으로 예물을 드립니다.

성도들의 정성된 마음을 받으시고 저들의 가정과 일터를 지켜주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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