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 본 김용소설
출처; 서문취설낭자의 천고서랑
작자 : 예광
제 1장, 사조영웅전
구지신개 홍칠공
홍칠공은 상상(上上)의 인물이다.
홍칠공은 정직하고 호방하며, 민족과 대의를 무겁게 여기는 사람으로,
강호인들의 존경을 얻었다. 또 의기로써 친구를 대하고 정파인물이라는 강점도 있다.
이러한 장점은 곽정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나, 홍칠공과 곽정은 다르다.
홍칠공은 생동감이 넘치면서 이성이 있는 진인(眞人)이라
곽정처럼 이것저것 다 하려하고 도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아니다.
구지신개 홍칠공이 등장 하는 장면은,
처음 <사조영웅전>을 봤을 때는 물론이고 여덟 번째 봤을때도
박수를 치며 탄성할 수 밖에 없었다.
<수호전>에서 ‘뚱뚱한 중놈이 옷을 벗어던지고 펄쩍뛰며 나오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황약사의 등장은 기이하고 두려운 기분이 들지만,
홍칠공의 등장은 온 몸에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는 기분이 든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갑작스럽게 주먹을 들이미는 것 같아 돌아봤더니
오랜 친구가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먹는 걸 좋아하여 중요한 일을 내던지다
홍칠공은 김용이 만들어낸 생동적인 인물 들 중에서도 가장 친밀감이 드는 캐릭터이다.
괴팍한 성격이라, 곽정에게 ‘강룡십팔장’의 15초를 가르친 후
그가 인사를 하자, 곽정의 혈도를 짚은 후, 네 번 모리를 조아리면서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관둬라. 무공을 가르쳐 준건 저 계집애에게 음식을 얻어먹고 돈을 못줘서 그런 것 뿐이라구.
우리 사이에 무슨 놈의 스승이니 제자니 하는 명분따윈 없다.”
강룡십팔장은 홍칠공의 평생 절학이며, 반은 사부에게 얻었고,
반은 스스로 깨달아 만든 것이라 한다. (홍칠공의 사부란 누구인가?)
첫 번째 화산논검에서 홍칠공이 이 장법을 할 줄 알았더라면,
천하무공제일인자의 칭호를 얻고도 남았으리라 하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렇지만 음식을 좀 얻어먹었다고 그러한 무공을 가르쳐 주다니,
정말이지 먹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홍칠공이 먹는 걸 좋아한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먹는 것 때문에 중요한 일을 망친 적도 있어, 스스로 손가락을 잘랐다.
이는 죄값을 받았다는 표시이지 결코 후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중요한 것이다. 손가락을 자른 후에도, 그는 여전히 먹을 것을 탐했으니까.
그 후에도 맛좋은 음식한 중요한 일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음식을 탐하고 중요한 일은 내던져버렸을 것이다.
그 다음에 다시 손가락 하나를 자른들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기억할 것은, 손가락을 자른다는 것은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동에서 볼때는
별것도 아닌 행동이다. 무협소설의 인물들은 독특한 성격과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다보니,
별것아닌 일로 목을 자르고 다리를 자른다 해도 눈깜짝하지 않는다.
하물며 손가락 하나 쯤이겠는가.
<천룡팔부>에 보면 황미화상이 바둑을 두는 와중에 말한마디 없이
자신의 발가락을 싹둑 잘라버리는 장면이 있다.
이로볼때 손가락하나 자르는 것쯤이야 정말 사소한 일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무협소설 인물들 중 자신의 평생 절학을 아무렇게나 딴 사람에게 전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홍칠공 외에는 누구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무공을 하는 자들은, 무공을 자신의 생며어럼 여기고 있으니
아무렇게나 남에게 전수한다는 것은 생명을 가지고 노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홍칠공은 평생의 절학을 ‘음식값’으로 대신했다. 겨우 황용이 만든 음식값으로!
이렇게 보면 홍칠공이 정말 멍청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만일 그 음식을 해준 사람이 양강이나 구양극 같은 자였다면
홍칠공이 과연 강룡십팔장을 음식값으로 치렀을 것인가?
이는 깊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홍칠공이 처음 곽정과 황용을 만났을때는, 두 사람의 내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곽정과 황용 두 사람의 태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가 들어 주의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것이야 양강이나 구양극 모두 곽정과 황용보다는 더 잘 할 수 있을 일들이다.
홍칠공이 닭고기를 먹은 후, 금으로 된 표창을 주려하자 곽정이 받지 않는 것도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그것만으로 홍칠공이 상대의 품성이 어떤지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황용이 다시 홍칠공더러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그녀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홍칠공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음식이 탐이 나서 먹고나 보자 한 것 뿐이다.
황용이 ‘옥적수가청낙매(玉笛谁家听落梅)’와 ‘호구탕(好逑汤)’을
만들어다 바치자 홍칠공은 넋이 나갈 정도로 좋아하면서
제 스스로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섰다.
“너희 두 녀석 다 무공을 할 줄 안다는 건 벌써 눈치챘어.
계집애 네가 일부러 이런 음식을 해다 바친건 틀림없이 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내가 너희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줄 수밖에 없게 하려고 말이야.”
이로 볼때 확실한 것은, 음식을 바친 것은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가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이어서 황용이 출수를 하자, 홍칠공은 즉시 그녀의 내력을 파악했다.
그 순간, 홍칠공은 속은 듯한 기분이 들어 냉랭하게 외쳤다.
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요, 그들에게 무공을 가르쳐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 그러나 나중에 다시 황용이 강룡십팔장을 크게 칭찬하자 그녀의 꾀에 넘어가 버렸다.
황용이 몇마디 말로 진정 홍칠공을 속일 수 있었다면,
황용은 그렇다치고 홍칠공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다.
홍칠공이 그렇게 경박한 사람이었다면 어찌 일대 무학종사가 될 수 있었겠는가?
홍칠공이 갑자기 나타나 곽정에게 무공을 가르쳐주겠다고 한 원인은 딱 두가지다.
첫 번째는 역시 황용의 맛좋은 음식을 포기할 수 없어서였을 것이요,
그 다음 이유는 황용의 내력을 알고 있었고,
또 곽정이 ‘바보같기만 한 청년’이요, 성실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공을 전수하기 전, 홍칠공은 곽정의 위인됨을 좀 더 확실히 알게 된다.
그는 과정을 이렇게 평했다.
“바보같은 녀석이지만 마음씨는 곱구만. 말이랑 행동이 똑같단 말이야.”
홍칠공에게 이러한 평가를 얻어내는 것은 절대 쉬운일이 아니다.
해서 홍칠공은 곽정에게 ‘항룡유회’의 초식을 전수했다.
그 1초를 전수한 후, 황용이 또 맛좋은 음식을 해주어 갈수록 가르치는게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이니, 황용의 음식솜씨만 있으면 누구든지 홍칠공의 초식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양강도 좋고 구양극도 좋고, 대악인이라도 착한 척만 잘 하면 쉽게 홍칠공을 속여
무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인즉 누구나 홍칠공의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절대 아니다. 한가지 전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황용같은 음식솜씨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솜씨를 가진다는 것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다.
<사조영웅전>에는 일류의 무공이 수없이 많이 있다.
강룡십팔장을 비롯, 탄지신통, 칠십이로 공명권, 합마공, 일양지 등등...
그러나 그처럼 대단한 음식솜씨를 지닌 사람은 오직 황용 하나뿐이다.
음식솜씨 또한 일종의 예술이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하늘이 내린 재주가 필요하며,
결코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요리의 고수가 요리를 할 때,
다른 사람이 옆에서 하는 걸 모두 지켜본 후, 재료, 품질, 불길, 시간 등
하나도 틀림없이 똑같이 따라한다고 치자. 그러나 그 결과는 다르다.
그것은 훔쳐보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요리를 배우는 것은 절정의 무공을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
황용처럼 하늘이 내린 요리실력을 지닌 사람들 외에는
홍칠공에게 ‘강룡십팔장’을 음식값으로 치르게 할 수 없다!
곽정의 무공은 본디 매우 낮은편이었다.
독사의 보혈을 마셨다고는 해도 다스릴 수 없었다.
그러나 홍칠공을 만난 후에야 마침내 상승의 경지에 들 수 있었다.
황용의 요리솜씨가 곽정의 평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으니
세상에는 이렇게도 희한한 일이 있는 법이다.
곽정이 초원에서 양을 치던 무렵, 만리 밖 작은 섬에서 요리하던 소녀의 음식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될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다행히 홍칠공의 ‘강룡십팔장’은 곽정의 성격에 꼭 맞았다.
만일 황약사를 만나 ‘낙영신검장’을 배웠다고 치자.
다섯 여덟의 허초에 하나의 실초라는 낙영신검장을 곽정에게 가르치려면,
가르치는 사람도 복장 터지고 배우는 사람도 고생만 실컷 하고 얻는 건 없을 것이다.
소탈한 성격에 마음 넓은 협객
자신의 평생 절학을 음식과 교환한 홍칠공은 진정 소탈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홍칠공의 귀여운 점은 바로 여기 있다. 그러나 홍칠공의 소탈함은 아직은 최절정이 아니다.
당년 천하무공제일인자의 칭호를 얻지 못했을 때,
그는 종종 탄식을 했다고 한다. 이는 완전히 탈속한 것이 아니다.
홍칠공은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라 제자를 거둔적이 없다.
평생토록 누구한테 3일 이상 무공을 가르쳐본 적이 없다고 하니
그 자신은 어떻게 연공을 한 것일까? 먹을 게 있으면 일단 먹고 보는 사람이니,
먹는게 먼저요, 연공은 둘째다. 강룡십팔장을 다 익히지 못했던 것이
먹느라 연공이 부족했던 것이라면, 그야 말로 탄식할 수 밖에 없는 문제이리라!
훗날 홍칠공은 결국 곽정을 제자로 거두고 밤낮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이는 곧 그가 곽정의 위인됨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곽정 저 녀석의 사람됨으로 볼때 십팔장을 모두 가르쳐 줘도 괜찮을거야”
곽정을 제자로 거둔 후 그는 또 말했다.
“늙은 거지는 소녀들처럼 끝없이 귀찮게 하지 않아. 패배를 인정했다 치고
너를 제자로 받아주겠다.”
물론 웃자고 한 말이겠지만, 이 또한 홍칠공의 장점 중 하나다.
그의 말투는 황약사처럼 일부러 심오한 듯 하는 말이나, 일등대사의 선문선답과는 다르며,
더욱이 주백통처럼 주저리 주저리하는 것도 아니다.
머리가 깨어있는 사람, 호방한 성품의 협객이 아니라면
봄바람같이 담담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말투는 일부러 꾸미지 않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들도록 한다.
또, 홍칠공이 구양극을 구해주는 대목에서 그의 넓은 포용력을 알 수 있다.
“저녀석의 삼촌과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다.
저 녀석은 이미 내 제자 손에 상처를 입었으니 녀석 삼촌의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지.”
물론 황용이 구양극을 죽일까 걱정한 것이 아니었다.
구양봉이 복수를 하러 온다 해도, 서독의 무공으로는 홍칠공을 당해낼 수 없다.
홍칠공의 수준이면 상대를 대신해 무학의 대종사라는 신분을 이어갈 수도 있다
. 그의 기도는 바다처럼 넓어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이런 기도를 지닌 무공의 고수는 드물다.
나중에 홍칠공은 구양봉에게도 사정을 봐주고 독수를 쓰지 않았으니
참으로 넓은 포용력을 지닌 사람이다. 끝내 구양봉에게 당하면서도
그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의 천성은 이토록 후덕하고 인자한 협객이었으니,
참으로 상상(上上)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홍칠공과 황약사를 비교해보면, 황약사는 지어낸 구석이 많은 반면
홍칠공은 매우 자연스럽다. 황약사는 준비를 철저히 한 후에야
겉으로 드러난 일을 하지만, 홍칠공은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황약사가 모습을 숨기고
구양극과 곽정의 문재를 시험하려 하자, 홍칠공은 직접적으로 그 잘못을 꼬집었다.
“우리 모두 무공을 배운 사람인데, 무공을 겨루지 그럼 밥먹고 똥 싸는 걸 겨루냐?”
통쾌한 말이로다!
홍칠공의 사람됨은 ‘통쾌’라는 두 글자로 집약할 수 있다.
먹는 것도 통쾌하게, 마시는 것도 통쾌하게,
욕하는 것도 통쾌하게, 싸우는 것도 통쾌하게!
세상을 스스로 즐기고 있으니 진정 신선이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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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동사 곽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4.09.21 예...주백통님의 말씀에 처절히 동감 합니다...요리를 무공처럼..갈고 닦아 볼랍니다..저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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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광명좌사ㅿ양소 작성시간 04.09.22 협객이란 칭호가 가장 어울리는 인물. 홍칠공,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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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봉 [ bluelord.net ] 작성시간 04.09.22 홍칠공의 강룡장두 무지 멋지죠~ 굿~굿~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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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혼 작성시간 05.01.16 예광님 글 정말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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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룡노야 천건남 작성시간 05.01.18 유쾌 상쾌 통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