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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무협소설의 역사

작성자양과님사랑해요!|작성시간03.12.27|조회수1,673 목록 댓글 5
중국 무협지의 역사

최초의 무협지는 무엇일까?
삼국지를 꼽는 사람도 있고 무협지의 협자때문에 수호지를 거론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그 환타지성 글때문에 서유기라 하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인데 무협지의 그 애로성땜에 금병매를 꼽을 수는 없을까?

소설이 아닌 '무'와 '협'의 개념은 사마천의 사기중에 <자객열전>, <유협열전>을 통해 존재 했었다.
그보다 소설의 개념의 무협은 당전기때부터 있었는데 <섭음랑>이나 <곤륜조>가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때의 무협개념의 소설은 꽤 있는 편이지만 현재의 무협소설과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난 무협인물이 아니란 말여..
그후 명대의 삼국연의 수호지등이 나왔지만 아무래도 무협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본격적인 무협지는 청말부터 나오는데 사실 이때도 무술, 연애등에 중점을둔 작품등은 많았지만
협의소설정도의 수준이고 무협소설의 레벨의 글은 문강의 <아녀영웅전>과 석옥혼의 <삼협오의>. 달랑 두편 뿐이다.(중국에서는 이작품들은 협의공안소설이라고 부른다.)

위 두작품은 정말 탁월한 레벨의 글로 그 이후 상당 기간동안 중국의 무협지들은 위 두작품의 아류작들뿐이였다. 기껏해야 <칠검십삼혐>, <팽공안>등이나 있을까?

<아녀영웅전>은 여주인공이라는 이채로운 소재로 무공을 닦아 나가고 어쩌구 하는 글인데 [심삼매]라는 제목의 TV시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어서 국내에 들어 오면 좋겠다. <삼협오의>는 아시다시피 후에 [포청천]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TV시리즈가 들어 오기도 했다.
그시절에 교보문고에 갔었는데 <칠협오의>라는 소설과 <소설포청천>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삼협오의>와는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다.
<소설포청천>은 단순히 TV판 포청천의 대본 수준이고 <칠협오의>만이 좀 볼만했지만 그렇게 뛰어난 수준은 아니였다. 알다시피 包靑天(포청천)은 북송때 실존 인물이다.

그후 그냥 그런 작품들만 나오다가 마침내 1931년 확실한 무협지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고야 만다.
오... 그 이름도 거룩하도다.

-이수민의 <촉 산 객>-

이 작품으로 인해 전 중국은 들썩 거렸고 종이의 소모량이 폭증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1986년에 고려원을 통해 <영웅문>이 들어 온것과 비견 하면 되겠다.
이 작품은 상해의 정기서국에서 1931년에서 1948년까지 무려 18년간에 걸쳐 발간했으니 촉산객 51집, 후전 5집으로 구성되어 총 329장 500만자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완결되었다(완결이 안되고 작가가 요절했다는 말도 들었다. 확실한건 모르겠다.)

무려 1000여명의 인물들이 나오는 이 작품은 검선과 비선의 등장, 영금과 괴수의 출현, 산정해매, 신병이기, 기진이보, 천부명역, 그리고 치밀하게 짜여진 정과 사의 쟁투속에 인과응보, 유/불/도 삼가의 사상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며 그 향기를 더해간다...고 하는데 자세한건 안읽어 봐서 모르겠다.

용사팔황을 국내에 번역한 박영창씨의 말로는 자신이 이 촉산객을 번역하려고 했지만 작가가 3부 집필중 아편으로 요절하여 완결이 안됐으며 1931년에 쓰인 소설이 지금도 통할까?
하는 의문때문에 번역을 못했다고 한다.
1931년 중국공산혁명시절의 작품이 현대인의 정서에 맞을지는 의문이다.
그후 또 중국 무협은 한참 촉산객의 아류작으로 흘러 간다.
과연 무협소설속의 미인들이 와호장룡의 장지이 정도로 예쁠까?

그런데 여기서 중국의 식자 층은 의문을 재기 한다.
"무협소설에도 문학작품이라 칭할 만한 것이 있을까?" 바로 이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바로 Yes이다.

이는 이른바 -신파 무협소설-이라는 1950년대 무협소설로 보여주게 된다.
신파 무협소설이란 1950년대 홍콩, 대만에서 쓰여진 소설로 현재 국내에 들어온 중국무협지는 대부분 신파 무협소설이다.
40년대 이전에 작품을 신파무협소설과 대비하여 구파무협소설이라고 부르는데 국내에 들어온 작품의 거의 없어 아쉽다.

신파무협소설의 대표자는 5명이라 할 수 있다.

1. 우선.. 오.. 그 이름을 거론 하는것 조차 영광 스럽도다. 신파무협소설계의 태산 북두인 김용선생(金龍)(원래 금용이라고 하는게 맞겠지만 편의상 김용이라고 부르더군요. 근데 왜 금성무를 김성무라고 하지 않지? 아마도 처음 김용선생의 작품을 국내로 들여온 고려원에서 김용이라고 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중국어로는 진용이라고 하면 됨니다.)
총 15편의 소설을 썼는데 모든 작품이 국내 그 어떤 작품보다 뛰어나다.

중국인들은 우리나라의 가요시장 이상으로 순위매기기를 좋아한다. 그리하여 문학인들의 순위를 매기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는데 이왕지사 한것이니 재미로 한번 보자

1994년에는 해남출판으로부터 나온 북경대학교수등편 {이십세기중국문학대사문고}시리즈에서 노신, 심종문, 파금에 이어지는 제4위의 서열(노사, 욱달부, 왕몽등의 앞)을 얻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노신은 전세계가 알아주는 대 문호이다.
중국 13억 인구가 자랑하는 소설가중 4위라니 실로 대단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김용의 소설은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앞서 말한 "무협소설에도 문학의 작품이라 칭할 만한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Yes라는 대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2. 신파무협 소설의 창조자이자 전통을 견지하는 양우생
중국어로는 량위셩이라고 하며 중국신무협의 김용과 함께 양대비조라고 한다.
김용과 글 스타일이 상당히 비슷하다.
다만 그의 글이 우리나라와 문화적 격차때문에 김용만큼 인기를 끌고 있지는 못하다.
35편의 작품이 있는데 대표작은 대륙풍, 명황성등이 있다.

3. 신파무협소설의 혁신자이자 '혁명가'인 고룡(古龍), 꾸룡이라고 읽으면 된다.
국내무협소설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고룡류라는 말까지 만들어 냈다.
1985년 그의 소설의 주인공처럼 끝도 없이 술을 마시다가 알콜중독으로 죽었다.(김용선생은 살아 계시다. 만세!!)

고룡소설의 또다른 특징은 <낯선 장면 전개>라고 할 수 있는데 낯선 인물과 낯선 장소 심지어 낯선 표현까지 쓴다고 한다.(이를 전문용어로 <소외의 효과>라고 하는데 얼마전 <단적비연수>에서 이 <소외의 효과>가 시도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근데 재미는 없었다.)
대충 68편의 작품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워낙 고룡의 이름을 도용한 위작들이 많아 정확한 숫자에는 아직도 대만에서 논란이 있다고 한다.

고룡은 소설은 재미있는 작품들도 있지만 재미 없는 작품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른바 10대걸작을 포함한 몇몇작품만 번역된것 같다.
대표작은 <다정검객 무정검>, <유성호접검>, <애마애검>, <육소봉>, <절대쌍교>, <대막영웅기>등등
(여기까지 이 재미 없는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위 작품정도는 다 읽으셨을꺼라고 생각합니다. ^^)

4. 대만 신파 무협창작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와룡생(臥龍生). 사실 이 글은 와룡생때문에 쓴것이라고 할 수까지 있다.
와룡생은 국내 무협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작가로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내의 모든 작품은 와룡생과 고룡의 아류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공산당과 싸운 장개석장군의 정보장교였는데 그로인해 영향을 받았는지 그의 작품세계는 정사간의 구분이 뚜렸하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관은 북한을 주적으로 정의한 국내정서에 딱 들어 맞는다 할 수 있다.

게임으로 치면 고룡은 웨스트우드이고(듄과 C&C)이고 양우생은 블리자드(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에 비할 수있다.
즉 웨스트우드는 전략시뮬의 시초인 동시에 그 예술성이 뛰어나며 블리자드는 그 보급에 힘을 썼고 국내 전략시뮬 게임의 원조이다.
그 이후 국산게임으로 쥬라기 원시전, 충무공전, 킹덤 언더 파이어등 각종 아류작들이 나왔다.
독창적인 전략시뮬은 전무하다고 할 수있다.

무협지의 사정도 이와 비슷하여 국내 무협지는 와룡생/고룡의 글의 짜집기이며 정보의 가능한의 배열일 뿐이라고 악평할 수도 있다. 그만큼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7,80년대의 중국무협지는 무조건 와룡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 왔으며 그시절 국내 무협지 역시 와룡생이라는 이름으로 출판 됐을 정도이다.
그결과 1988년을 전후해서 국내 무협지 시장이 붕괴된 사태로 연결되기 되었다.
마치 서태지가 1990년대 초에 나타나 국내 가요계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 왔지만 결국 그를 모방한 10대 아류가수들에 의해 90년대 후반 국내 가요시장이 붕괴된것과 같다.

양화가 악화를 가져 온다고 무분별한 창작과 번역은 결국 악화로 이어진다는 예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창작이란 말은 표절한 창작이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하루빨리 한국 가요계는 표절과 도용을 줄이고 마케팅의 승리인 가수가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제대로된 가수가 나왔으면 좋겠다.

상당히 다작한 작가인데 그의 이름을 도용한 작품들이 워낙 많아 정확한 작품의 수는 모르겠다.
대표작으로 <옥차맹>, <비연경룡>, <소수겁>, <천애협려>, <강혈현상>등이 있다.


5. 무협창작의 기재(奇才)로 일컬어질 뿐만 아니라 현재 '초신파무협소설(超新派武俠小說)'의 탐색에 열중해 있는 젊은 작가 원뢰이안(溫瑞安)
내가 무식한건지 그의 작품이 국내에 별로 번역이 안됐는지 이분은 잘 모르겠습니다.잘 모르겠다.
대표작으로는 <사대명포회경사(四大名捕會京師)>이 있다.

이상 5명의 작가를 신파무협소설의 중심으로 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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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중검무봉대교불공 | 작성시간 03.12.27 촉산전은 풍경묘사와 작가가 상상한 요괴나 법보들의 생생한 묘사가 대단하죠...실제로 작가가 어렷을떄 여러 명산주위에 살아서 그 묘사가 실제 눈앞에 두고 보며 말하는 것 같죠.....소설속 요괴,요마들은 독보기로 여러 곤충을 확대시켜 거기다 다른 동물의 팔다리를 붙여서 생각해 요괴,요마의 묘사도 생생하죠
  • 작성자중검무봉대교불공 | 작성시간 03.12.27 어찌 보면 황당무계하나 뛰어난 묘사와 더불어 상상력이 대단하죠...걸작 무협 판타지 소설이죠
  • 작성자수생+적운 | 작성시간 03.12.29 와룡생 작품은 많이는 안봤지만 볼때마다 후회를하게되더라구요. 옛날 우리나라 무협지같은 생각도 많이들고... 투렷한 주제보다는 그때그때의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려하고... 별로. 반면 고룡작은 분명 높게 쳐줄만하다고 봅니다. 구성도 좋고 주제도 어느정도 뚜렷하고...
  • 작성자양과와 소용녀 | 작성시간 04.01.02 근데 정말 김용선생께서 아직 살아계시나요? 어느책에 보면 날짜까지 나오며 별세했다고 써있는 것 같은데. 살아있다면 도대채 나이가? 소설쓰면서 절세의 내공을 익혀서 신선이라도 되신건가?
  • 작성자양과님사랑해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1.03 아직까지 살았있다 들었습니다.최근에 벽혈검 수정들었갔다는 소문도 있고요.와룡생 작품중 비연견룡은 볼만하던데요.쥔공 양몽환이 좋튼데요.왜 나는 양씨를 좋아하는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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