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빈과 웨슬리 중 누가 옳은지 쐐기를 박을 수 있게 해주는 결정적인 논증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저는 칼빈의 예정론이 틀렸고 예지예정론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세 가지 결정적인 논증을 소개하려 합니다. 저는 이것을 통해 이 오래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1) 하나님의 선택은 언제나 조건적이었다.
하나님이 그동안 어떻게 선택해 오셨는가를 살펴봅시다. 먼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살펴보고, 그 다음 이 땅에서 택함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선택을 받았나? 무조건 선택을 받았는가 아니면 이유가 있어서 선택받았는가를 살펴봅시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들 중에도 선택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여기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들은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물론 다음과 같은 윌리암 바운스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은 타락한 천사들과 대비되어 타락하지 않았다(참조. 벧후2:4, 유6). 하지만 버나드가 주장하는 것처럼 단일한 용어인 '천사들'이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을 항상 가리킴으로 '택하심은 받은'의 용법은 추상적일 수 있다. 오히려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로 바울은 하나님이 그의 특별한 일을 행하도록 택함받고(예를 들어 고전4:9, 딤전3:16, 계2:1를 참조하라) 마지막 심판 시에 역할 할 천사들을 의미한다."
가능성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존 스토트는 "타락한 천사들과 대조되게 충성스러운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이라고 했고, 이상근 박사님도 "타락한 천사에 대해 선한 천사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 외 주석들도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후자의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고 설명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방금 설명한 대로,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은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미가엘을 비롯한 선한 천사들을 무조건 선택하시고, 루시퍼와 타락한 천사들은 무조건 유기하셨습니까? 아니지요. 그들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을 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이 무저건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의 선택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선택받은 사람들을 순서대로 알아봅시다.
1) 아브라함
느헤미야 9:7-8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 "
아브라함은 선택의 대명사와 같은 사람입니다. 본인이 선택받았을 뿐 아니라 그 후손들이 선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무조건 선택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창세기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여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한 이유 즉 아브라함의 소명이 나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목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일을 무조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주어 이루게 하셨나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시험하신 것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22:1-2, 12, 15-18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조건 그런 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셨습니다. 이것 자체가 그를 무조건 선택하거나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주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하자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게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장 뒤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26:3-5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는 미래를 현재처럼 아는 예지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아브라함이 독자를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도 그를 택하셨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선택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선택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즉 절대주권에 의한 예정이 아니며 예지예정입니다.
2)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선민, 즉 선택받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 나라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무조건 택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신명기 4:37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신명기 10: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로마서 11:28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스라엘]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이처럼 무조건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조상들로 말미암아'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유가 있어서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한 조상들 때문에 그 후손이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들은 더욱 선택을 받지 않겠습니까? 설마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방적으로 유기하시겠습니까?
3) 레위인
레위인은 선민인 이스라엘 12지파 속에서 다시 선택받은 지파입니다.
신명기 21: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역대상 15:2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왜 택하셨을까요? 성경에는 하나님이 레위인을 왜 선택하셨는지 엿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2:25-29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어떤 분들은 "그러나 이것 때문에 레위인이 선택받았다는 말은 없지 않느냐?"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모세의 축복을 일깨워드리고 싶습니다.
신명기 33:8-11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 구절은 실제로 그 일 때문에 레위인이 선택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례로, WBC 주석에서 두에인 크리스텐센은 이 구절들에 대해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운율 구조면에서, 33:8-11의 레위에 대한 축복의 내용은 다섯 부분으로 정리된다.
A 둠밈과 우림이 맛사에서 시험당한 레위에게 위임되었다. 33:8
B 그(레위)는 자기 형제들로부터 구별되었다. 33:9a
X 이는 그들이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언약을 지켰기 때문이다. 33:9b
B' 그들은 야웨의 토라를 가르치고 의식을 행할 것이다. 33:10
A' 그의 힘은 저주를 받고, 그 손의 일은 받으소서. 33:11
이 구조에서 외부 골격은 '므리바 물'에서 있었던 레위 시험에 대한 역사적 암시(8절)로부터 레위와 시므온의 이야기 중에서 있었던 초창기의 사건들과 세겜 사람들에게 저질렀던 폭행에 대한 또 다른 암시(11절; 참조. 창34:25-31)로 옮겨간다. 이 골격 가운데서 우리는 레위 지파가 야웨의 토라를 준수함(9b절)으로 인한 보상으로써 다른 지파들(그의 형제들, 9a절)로부터 구별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곧 그들이 분향과 희생 제사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 그들이 가진 다른 의무들과 더불어 가르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것이다(10절)."
또한, 두에인 크리스텐센은 9절에 대해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레위에 대해서는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 32:26-29에 있는 금송아지 사건은 최소한 부분적으로 이 본문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레위인들이 자기 자신들의 친지들을 포함하여 금송아지를 섬긴 자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규합했고 제사장직을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무조건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적격이라고 판단하셔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 아닐까요? 여러분이 사람을 쓴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무조건 아무나 선택해서 쓰시겠습니까? 그렇게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의 선택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택은 조건적인 것임이 분명합니다.
4) 다윗 왕
다윗은 평범한 목동이었으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6: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역대하 6:6 "예루살렘을 택하여 내 이름을 거기 두고 또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무조건 왕으로 택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사무엘상 16:1, 6-1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게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 그들의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보십시오. 하나님이 다윗을 무조건 왕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중심을 보고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음 구절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21-22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무조건 버리셨습니까? 아닙니다. 교만해졌고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을 무조건 선택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중심이 바르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절대주권으로 무조건 누구는 선택하고 무조건 누구는 유기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런 생각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5) 사도들
사도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무조건 택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누가복음 6:12-16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택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저는 이렇게 하신 예수님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도 많은 목회자를 선택하여 세웠고 여러 번 낭패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옥경 목사님은 저에게 "정말 사람은 알 수가 없다"고 자주 말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무튼, 주님은 밤새워 기도하시고 최대한 신중하게 사도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나 무조건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사도들을 선택할 때 무엇을 보고 택하셨을까요? 그것이 사도행전에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 1:24-26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 한 사도의 수에 들어 가니라."
이처럼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제비뽑기로 정할 때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라고 기도한 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택할 때 무조건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할 때처럼 사람들의 마음과 그 직임에 적합한 자인가를 보시고 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 성경에 있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개인과 집단을 순서대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반응이나 선택과 상관없이 무조건 태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네 왜 구원할 자는 절대주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택하신다고 생각하지요? 그런 생각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구원받을 자도 위와 같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 선택하신다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제가 거론한 다섯 사람 혹은 집단의 경우, 구원에 대한 선택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을 생각해보십시오. 로마서 9장에서 이삭과 야곱에 대한 선택은 구원에 대한 선택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보다 아브라함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의 선택이 구원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선택도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 하나 생각해볼 점은, 하나님은 이삭과 야곱을 택하기 전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절대주권으로 무조건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역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말씀'(롬9:15)에 관한 제 해석이 옳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즉 그것이 주권이 아니라 은혜를 의미한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야곱의 선택에 대한 답이었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의 선택에 대한 답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주권에 의한 칼빈의 예정론은 절대로 진리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