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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로마서 8장 31-39절 VI (변승우 목사님의 "당신의 복음은 바울의 복음인가?"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22.07.01|조회수599 목록 댓글 0

  ■ 로마서 8장 31-39절

 

  ● 이 단락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이 틀렸다는 결정적인 증거!

 

  8장 31-39절에 대해 지금까지 제가 설명해드린 저의 해석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만족할 것입니다. 일부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공감하고 않고와 관계없이, 이 단락은 절대로 칼빈의 견인 교리의 근거가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100%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 단락을 칼빈의 견인 교리의 근거로 착각한 이유는 30절의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를 영화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토머스 슈라이너는 39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기를 선택하여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범위 밖에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해석은 거부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로마서 8장 28-30절은 끊을 수 없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미리 아신 자들은 결국 영화롭게 된다. 의롭다 하심은 입은 자들이 영화롭게 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이처럼 바른 진리를 거절하는 이유로 30절의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를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양자 됨입니다. 그러므로 슈라이너의 말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더글라스 무는 39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까다로운 독자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을 빠뜨렸다고 생각할까 봐, 그는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라는 포괄적인 말로 끝을 맺는다. 그리스도인들 자신의 책임 있는 결정들까지 이 마지막 어구에 포함되는가? 칼뱅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바울이 여기서 믿는 자들의 안전을 분명히 가르친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바울이 신자 자신의 자유롭고 책임 있는 선택사항들의 범위 밖에 있는 것들에만 은연중에 초점을 모으며,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서 그리고 이 종속 문단에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기로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바울의 말을 그가 의도하는 범위 이상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되겠지만, 35절의 폭넓은 '누가'와 여기에 나오는 어구가 보다 자연스럽게 우리를 그리스도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것들의 범위에 신자 자신까지도 들어가게 하리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자신과 자신의 선택도 이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대부분의 신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극소수만 그것이 이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오스본은 이렇게 썼습니다. 

 

  "이 본문은 영생의 확실성에 관한 성경의 가장 중요한 본문 중 하나이며 '아무도 우리를 ...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39절에는 약속에 대한 논쟁요소가 많다. 35, 38-39절에 등장하는 목록들은 모두 외부 요소들인데, 문제는 이 요소들이 성도들의 내적 결정도 포함을 하고 있는가이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자유의지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것도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개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우리 의지로 하나님에게서 돌아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멜랑히톤(Melanchthon 1992: 183-184 - 그 약속은 우리가 믿음을 행사하는 한에서만 적용된다), 벵겔(Bengel 1860: 98-99), 고뎃(Godet 1956: 333), 산데이와 히들람(Sanday and Headlam 1902: 220-221), 마샬(Marshall 1969: 93-94)도 우리와 견해가 같습니다. 

 

  그럼 둘 중에 어느 것이 옳을까요?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 단락을 포함한 8장 후반부는 박해를 다뤘습니다. 또, 그랜트 오스본이 잘 지적한 것처럼 31-39절에 나온 것들은 모두 '외부 요소들'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아무 피조물에 우리와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제외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너무나 확실해서 다른 말을 하는 학자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정도입니다. 그 증거로, "누가"라는 단어에 주목하면서 이 단락을 읽어보십시오. 

 

  로마서 8:31-3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잘 보셨습니까? 자세히 보시면 "누가"라는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그런데 "누가"와 "우리"가 서로 구별됩니다. 

 

  로마서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로마서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명백히 "누가"와 "우리"가 다른 그룹입니다. 즉 "누가"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게임 끝이지요! 그러나 더 확실히 하기 위해 35절을 보십시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구절에서 "누가"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과 병행을 이룹니다. 같은 것을 뜻합니다. 때문에 더글라스 무조차 이것들을 가리켜서 "35절의 폭넓은 '누가'"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37절을 주목하십시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기서 "이 모든 일"은 "누가"와 병행을 이루는 35절의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을 뜻합니다. 틀림없지요! 마지막으로, 이것을 염두에 두고 38-3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기서 다시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 "이 모든 일" 즉 "누가"와 병행을 이룹니다. 온전히 같은 것은 아닐 수 있어도 틀림없이 같은 그룹입니다. 

 

  게다가, 31절에서와 같이 이 구절(39절)에서도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 "우리"와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사 "누가"와 완전한 병행이 아니더라도, 그 안에 우리 즉 자신과 자신의 선택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우리의 선택이 들어가 있다니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억지이고, 칼빈주의는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본래 지금까지 다룬 칼빈의 견인교리의 근거로 오해되는 세 가지 성구에 대해 설명한 후, 다음 세 성구가 칼빈주의자들이 궤변을 늘어놓으며 왜곡한 그런 뜻이 아니라 실제로 구원받은 자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자세히 설명해드릴 계획이었습니다. 

 

  로마서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11:20-22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그러니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칼빈의 견인교리의 근거로 오용되던 세 구절이 모두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에 칼빈의 견인의 교리를 지지하는 성경 구절은 하나도 없고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구들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이 세 구절들은 교리의 안경을 벗고 공정하게 보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그 의미가 매우 분명합니다. 그래서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판된이 되어 생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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