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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한 심층연구! (변승우 목사님의 "당신의 복음은 바울의 복음인가?"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22.07.10|조회수1,098 목록 댓글 0

  ■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한 심층연구!

 

  요한일서 5:16-17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오래도록 수많은 예민한 신자들이 '내가 혹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것이 아닌강?'라는 번민 때문에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존 번연(John Bunyan)이 고민 가운데 자기보다 나이 많은 신자에게 한 다음 고백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하자 그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랬다고 생각한다네.'(Grace Abounding, S 181)."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사망에 이르는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도 해석을 포기하려고 했을 정도로 어려워도 너무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표현만 나오고, 이 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사 내내 이 죄가 무엇인가? 에 대한 많은 견해들과 논의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시간 그것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인지 함께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1. 고의로 범하는 죄(참고. 레4:2, 5:1; 민15:30, 18:22)

 

  민수기 15:27-31 "만일 사람이 부지중에 범죄하면 일 년 된 암염소로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부지중에 범죄한 사람이 부지중에 여호와 앞에 범한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지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 이스라엘 자손 중 본토 소생이든지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든지 누구든 부지중에 범죄한 자에 대한 법이 동일하거니와 본토인이든지 타국인이든지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나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니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의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지리라."

 

  이런 구절들을 근거로, "사망에 이르는 죄"는 고의로 범하는 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고의성이 없고 부지중에 짓는 죄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모세, 다윗, 바울과 같은 인물들도 죄를 지었고, 그들이 지은 죄가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른 견해가 아닙니다. 

 

  2.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라는 가톨릭의 견해 

 

  가톨릭에 의하면, 죄에 두 가지 범주가 있습니다. "가벼운 죄"(용서받을 수 있는 죄)와 "무거운 죄"(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그것입니다. 그들은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는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견해가 옳다면, 모세나 다윗도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에 갔을 것입니다. 그들이 지은 살인이나 간음은 가톨릭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로 분류한 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바른 견해가 아닙니다. 

 

  3. 육체적인 죽음의 징계를 받는 죄

 

  어떤 학자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망"을 육신의 죽음으로 생각하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 죄가 실제로 육체적인 죽음이라는 심판을 가져오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행5:1-11)을 비롯, 고린도전서의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하려고 사탄에게 내어준 부도덕한 사람들과(고전5:5), 성만찬을 범한 죄로 "잠자는 자"에 대한 언급(고전11:30)을 이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합니다. 나름 그럴듯하지요! 그러나 본문의 문맥에서 "사망"과 대조되는 것은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을 육적인 죽음이 아닌 영적인 죽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것도 바른 견해가 아닙니다. 

 

  4. 복음을 고의로 완고하게 거부하는 죄

 

  어떤 이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불신자의 입장에서 설명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신자의 죄, "사망에 이르는 죄"는 불신자들이 짓는 죄로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습니다. 때문에 끝까지 완고하게 복음을 거부하면 결국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곧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것입니다. 캐런 좁스는 이 견해에 동조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크루즈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신자가 범하는 죄다. ... 사망에 이르는 죄는 거의 대부분 비신자가 범하는 죄다'라고 주장했다. 셀러도 이렇게 주장한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신자가 범할 수 있고 또 실제로 신자가 범하는 죄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신자가 범하지 않고 또 신자가 실제로 범할 수 없는 죄다.'"

 

  그러나 스테핀 스말리는 이 견해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몇몇 주석가들은 신자들은 '사망할 죄'를 범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 그러므로 요한은 여기서 오로지 비그리스도인의 행위에 대해서만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나 초대 교회에서 세례식 이후의 죄는 분명 직면할 필요가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히브리서 6:4-6; 10:26-31 등과 같은 본문들에서는 신자들이 전적으로 믿음에서 떨어져나간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지적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에 대한 요한의 경고와 정통적인 믿음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경고(2:24: 요이 8-9절)는 요한이 비록 그의 독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 가운데서 행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1:7: 18-19절) 이단적인 경향을 갖고 있는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몇몇 신자들이 배교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레이몬드 브라운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비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이방인이든지 유대인들이든지, 요한일서의 주제가 아니다. 저자가 그러한 관계없는 주제를 결론에 도입하고 있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이 견해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거짓 교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 영향 때문에 구원받은 신자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잘못된 가정과 기초 위에 세워진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신뢰할 만한 견해가 아닙니다. 

 

  5. 성령을 모독하는 죄 

 

  어떤 학자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성경에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로 명시되어 있는 성령모독죄와 동일시합니다. 

 

  마태복음 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가복음 3:28-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이 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공통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사망에 이르는 죄"가 성령을 모독하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잭맨은 "요한이 이 문맥에서 성령에 관한 한 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견해를 반대합니다. 하지만 죄목만 말하고 그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 죄일 터이고, 그 경우 굳이 그 죄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성령모독죄가 아니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오히려 저는 심사숙고한 끝에 이 죄가 "사망에 이르는 죄" 중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이 죄에 대해 연구하다가 저는 다수의 학자들이 성령모독죄를 진리를 알고도 완고하여 계속 받아들이지 않다가 회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으로 생각함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지나치게 그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어, 존 놀랜드는 성령모독죄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모독적인 언사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명백한 구원을 위한 개입을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다(여기서 성령이라는 표현의 사용은 11:20에서의 '하나님의 손'이라는 표현의 사용과 유사하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행하고 계시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굳게 하는 자는 스스로를 하나님께서 종말론적인 죄 사함을 현재적으로 베푸시는 것에서 배제하도록 만드는 것이 된다."

 

  하지만 성령모독죄에 대한 성구들을 직접 읽어보면, 이 죄가 성령의 역사를 사탄이나 귀신의 역사로 매도하고 비난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도저히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2:22-26, 30-3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가복음 3:22-30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의문의 여지가 없지요! 때문에 학자들 대부분이 이 점을 인정합니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터너는 이렇게 썼습니다. 

 

  "신학자들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를 일반화시키고, 이를 불신앙과 동일시하며 또한 마태복음 12장 31-32절을 요한복음 3장 18절, 16장 9절, 요한일서 5장 16절과 같은 본문들과 연결기키는 경향이 있다(예, Hauerwas 2006: 122). ...

 

  그러나 이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단순한 불신앙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제압하고 있는 바로 그 귀신세력들과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예수님을 비난함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성령의 사역을 비방한다(12:29). 이것이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다. 그런 죄를 오늘날에도 지을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추정되는 오늘날의 예들은 마태복음 12장에 서술된 상황의 핵심을 반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해자들은 이 본문을 일반적으로 불신앙에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일에 주의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지만, 12장 24-32절의 요점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분명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것을 말한다기보다는 이러한 메시아적 증거를 귀신적 증거로 묘사하려는 비방을 강조한다."

 

  또, 그랜트 오스본도 이렇게 썼습니다. 

 

  "모든 죄와 신성모독은 용서를 받는다/ 하지만 성령에 대한 모독은 그렇지 않다. 인자에 대항하여 하는 말은 용서가 된다/ 하지만 성령에 대항하여 하는 말은 그렇지 않다. 결과는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 불러올 참사에 대한 강조다."

 

  또한, 마크 스트라우스는 이렇게 쐐기를 박았습니다. 

 

  "이 본문은 신약에서 대단히 어려운 본분 중 하나다. 사하심을 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고 시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가는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는 말을 덧붙임으로 예수님의 진술을 명료하게 한다. 간단히 말해, 성령(적어도 현재의 문맥에서는)을 모독하는 것은 성령의 일을 사탄과 그의 귀신들의 일로 여기는 것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성령모독죄는 성령의 역사를 마귀나 귀신의 역사로 매도하고 비난하는 죄로 보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모독죄에 대한 성구들에서 주님이 계속 "말"을 강조하셨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가복음 3: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누가복음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모독'이라는 단어도 "말"과 관계가 있지요! 그러므로 성령모독죄는 단순히 복음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범하는 죄입니다. "말"로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역사라고 비난하면서 성령을 상대로 짓는 죄가 바로 성령모독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서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즉 예수님을 거부하고 믿지 않는 자들이 이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다수의 학자들이 이 죄가 불신자들만 지을 수 있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었고 유대교의 종교지도층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당시는 예수님이 오셨지만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강림 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기 전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불신자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이 죄가 오늘날의 믿는 자와 종교지도자들에게도 해당이 된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목회자와 신자들도 이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만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역사로 매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목사나 교수들 중 겁 없이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역사로 매도하고 비난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이단사냥꾼들과 종교적인 목사들을 떠올려보십시오. 그들은 끊임없이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역사로 매도합니다. 게다가, 그들의 거짓됨과 악랄함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대답해보십시오! 여러분, 불신자가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역사로 매도하면 성령모독죄가 되고, 신자가 같은 말을 하면 성령모독죄가 되지 않습니까? 어느 죄든, 불신자가 지으면 죄가 되고 신자가 지으면 죄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죄는 누가 지어도 죄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같은 말과 행동을 하면 그것을 성령모독죄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해드린 것이, 성령모독죄에 대한 저의 오래된 견해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조엘 마커스의 글이 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예민한 그리스도인들이 ... '내가 그 죄를 범한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다. ... 그처럼 고뇌하는 영혼들을 상담하는 목회자들이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지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내담한 자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었다면,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굳건한 성경적인 근거가 있다. 마가복음 문맥을 고려할 때 성령을 거스르는 죄는 예수님에 대해 총체적이고 악의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뜻하며, 이러한 태도는 그가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일체의 증거를 악마가 지폈다는 증거로 왜곡시켜 버렸다(3:22, 30을 보라). 이러한 모독죄를 범한 자는 그것을 범했다고 과도하게 염려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처럼 그는 마가복음의 문맥에 근거해서 성령모독죄의 특징이 "예수님에 대해 총체적이고 악의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라고 지적했습니다. 옳은 지적이지요!

 

  그러나, 이단사냥꾼들과 종교적인 목사들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 후 고민 고민하다가 양쪽 가능성이 다 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설명을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이단사냥꾼이나 종교적인 목사들처럼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역사로 매도하고 비난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이며 자기 영혼을 잃어버리는 무서운 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된다. 

 

  그런데 이것이 꼭 성령모독죄라고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총체적이고 악의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사 그런 죄를 지었더라도 혹 사함받을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런즉, 포기하지 말고 그 죄를 철저히 회개하라. 만약 그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라면 회개해도 영적으로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죄는 죄지만 성령모독죄가 아니라면 하나님이 용서해주시고 영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본인이 직접 경험을 통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행한 일 아닌가?"

 

  양다리지만, 굉장히 합리적이지요!

 

  솔직히, 저는 이 이상 이 죄에 대해 더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해석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의 이런 한계에 대해 부목사님들에게 말할 때 갑자기 빛이 임하면서 감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령모독죄가 어떤 죄인지 정확히 깨달아졌는데,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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