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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바울의 가시에 관한 세 가지 질문 (T. L. 오스본의 "믿음으로 질병을 치유하라"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18.11.06|조회수440 목록 댓글 0


  ■ 바울의 가시에 관한 세 가지 질문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후12:7-9)


  신유 사역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종 바울의 가시를 들먹입니다. 사도 바울이 질병으로 고생할 때에 하나님께서 고쳐주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질병을 사용하셔서 바울을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질환을 주시고, 그 질환을 사용하셔서 인간을 훈련시키신다는 이론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의 가시에 관한 것은 참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천만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질병 가운데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경의 말하는 "바울의 가시"라는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바울이 말하는 육체의 가시라는 것이 무엇인가?


  육체의 가시라는 말은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가시는 항상 육체의 질병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육체의 가시"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부연설명으로 확연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 예로 민수기 33:55에 보면,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라는 말이 나오고, 여호수아 23:13에는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위의 두 경우에 육체의 가시는 어떤 인격체 내지는 종족들을 가리킵니다. 바울도 역시 육체의 가시를 부연설명으로 명확하게 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단의 사자", 즉, 사단의 메신저, 사단의 천사, 내지는 사단의 심부름꾼으로, 역시 인격체를 가리킵니다.


  사자(메신저)라는 말은 헬라어 <앙겔로스>를 번역한 말인데, 성경에 188번이 나옵니다. 그 중에 181번은 천사로 번역이 되었고, 7번은 사자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므로 188번의 용례 중에서 100%가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지옥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그리고 바울의 가시는 그 마귀의 사자들 중에 하나였던 것입니다.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은 바울이 말하는 육체의 가시를 눈에 이상이 생긴 안질로부터, 간질병, 심지어는 숨겨둔 내연의 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사단의 사자"라고 명확하게 부연설명하고 있다면, 잡다한 다른 추측은 억측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둘째: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는 목적은?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육체의 가시가 이루려는 목적도 설명해 줍니다. 그 목적은 바울을 "치기 위함"입니다.  


  친다는 말은 "때리고 또 때린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파도가 배를 때리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리는 것과도 같습니다(마26:67, 막14:65, 고전4:11, 벧전2:20).


  고린도후서 12:7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바울이 사단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육체의 질환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사단의 사자는 바울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라고 보내진 놈입니다. 고린도전서 4:11에 나타난 "치다"는 서반아어 성경에는 "하염없이 마구 두들겨 패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질병은 사람을 두들겨 패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학대하는 악마의 사자는 그런 짓을 스스럼없이 행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고난과 역경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사단의 사자가 바울을 학대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수많은 학대와 조롱과 천대와 멸시와 희롱을 당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있지만, 바울이 병에 걸려 쇠약해진 몸 때문에 고생을 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의 회심 후에, 예언자는 바울에게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라는 말로 바울의 고난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이루어졌습니다.


  1. 바울이 회심한 후에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였습니다(행9:23).


  2.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사도 바울과 사귀어주지 않았습니다(행9:26-29).


  3. 바울은 박수 무당으로부터 반대를 받았습니다(행13:6-12).


  4. 바울은 유대인들 무리의 시기를 받았습니다(행13:44-49).


  5. 바울은 핍박을 받고 성밖으로 쫓겨났습니다(행13:50).


  6. 악한 감정으로 달려드는 무리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바울은 돌에 맞아 죽을뻔 하면서 도망가게 되었습니다(행14:1-5).


  7. 유대인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친 후에 죽은 줄 알고 시외로 끌어내쳤습니다(행14:6-19).


  8. 바울은 복음 전파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방을 받았습니다(행19:8).


  9. 사람들은 빌립보에서 바울의 축사를 못마땅히 여겨서 그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친 후에 투옥시켰습니다(행16:12-40).


  10.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추행을 당하고 추방당했습니다(행17:1-10).


  11. 바울은 베뢰아에서 무리의 소동함을 인해 쫓겨났습니다(행17:10-14).


  12. 바울은 고린도에서 유린당했습니다(행18:1-23). 


  13. 바울은 에베소에서 발생한 소요사건의 피해자입니다(행19:23-31)


  14. 바울은 해하려는 무리의 공모로 인하여 곤란을 겪었습니다(행20:3).


  15.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서 능욕을 당하고, 법정에서 5번이나 재판을 받았고,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열거한 핍박 이외에도 고린도후서 6장에도 고난의 목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고후6:4-5)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23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24-27)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4:12-13)


  '사단의 사자' 이외에 바울에게 이 모든 일을 가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몸이 아프다거나 병이 들었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이 언급도 하지 않는 "안질" 이니 "간질"이니 해가면서 억측을 부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바울의 눈은 한번 고침을 받은 적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질병으로 인해 생겼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계시의 밝은 빛을 보고 눈에 잠시 이상이 생겼던 것뿐입니다(행9:18).


  첫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우리는 바울 자신이 한 대답에서 단서를 잡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바울의 가시였나요? 그건 사단의 사자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자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그건 매를 맞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에, 성경교사들과 신학자들은 바울이 말하는 사단의 가시를 해석함에 있어서, 바울이 주장하는 바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너무 자신들의 생각만 주입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억지로 주입하는 이유는, 병자들에게 참고 견디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바울은 병에 걸렸고 그래서 병의 치유를 위해 기도 드렸으나, 하나님은 병을 치료해주시지 않고 그냥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환자는 육체의 가시인 질병을 견디어내면서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자 함입니다. 이는 환자가 인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주장과 동일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성경의 내용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바울이 큰 질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도 없고, 바울이 자신의 병의 치유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는 내용도 없으며, 하나님이 바울에게 계속 질병 가운데 머물러 있으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정확하게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7)


  하나님은 "바울아, 계속 병든 상태로 머물러 있어라!"고 말씀한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 바울에게 가시가 허락되었나?


  이제 세 번째 질문을 제기해볼 차례입니다.


  질문: 왜 사단의 사자가 사도 바울을 능욕하는 것이 허락되었을까요?


  대답: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의 약한데서 온전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각양각색의 환자들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병들게 한 사람들인가요? 여러 질병을 통해서 오늘날 인류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받고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나요?


  당신이 병든 것과 바울이 사단의 가시를 받은 것이 동일시되려면, 당신도 놀라운 계시를 받은 사람이 되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수 없는 핍박과 박해를 당함으로 육신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당한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단의 사자인 질병을 통해 어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나요?


  바울은 매맞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을 주신 이후로 연속해서 핍박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는 매맞는 것을 자랑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환자들은 자신의 질병을 부끄러워하면서, 의사의 도움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질병을 없애버리려고 하지 않나요? 만약에 암이 은혜에 은혜를 더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면, 왜 사람들은 기를 쓰고 수술을 통해 암 덩어리를 제거하려고 합니까? 이제 '바울의 가시는 질병이다.'라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성경구절들을 한 번 살펴봅시다.


  약한 것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후12:9)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갈4:1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2:3)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고후10:1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후12:9)


  "약한 것" 이라는 단어는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에서 사용된 "연약함"과 동일한 헬라어입니다.


  또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히11:34)에서 사용된 "연약한"과도 동일한 헬라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간으로의 약하심을 나타내는 단어와도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고후13:4)


  바울이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에서 말하는 그 "약함"이 바로 우리가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언어 습관상 이 "약함"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몸의 질병과 연결되어진 적이 없습니다(롬4:19, 8:3, 14:2,21, 고전8:9, 15:43, 고후13:4, 히5:2, 7:28). 바울이 교회 앞에서 자신의 "약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그 근본 의도는 하나님의 성령에 온전히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강함을 대조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였노라(고전2:5)


  유 혹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갈4:14)


  사람들은 종종 바울이 말하는 육체에 있는 시험거리를 질병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4:14에서 사용된 "시험"의 헬라어는 예수님이 광야에서의 시험받으심을 기록한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눅4:13)에서 사용된 "시험"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몸의 질병으로 고통 당하며 시험 당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눅22:40)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 "시험"도 육신의 질환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바울의 큰 글씨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갈6:11)


  혹자는 바울이 큰 글씨로 썼다는 기록을 보고 바울의 눈에 이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많은 이들은 바울이 근시안이었을 것으로 상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 글자라는 것은 글자의 크기가 크다는 뜻이 아니라, 강조체로 그 문체를 썼다는 뜻입니다. 즉, 양적으로 크다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크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자기 손으로 편지를 쓰지 않고, 많은 경우에 대필시킨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눈을 빼어서 바울에게 줌?


  너희의 복이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갈4:15)


  위의 성경구절에서 바울이 눈을 빼어준다는 언급을 읽고, 바울의 눈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안구를 기증하려 했는가 상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은, 단순히 바울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시하고 싶어했다는 것 뿐입니다. 


  수백 명의 벙어리와 귀머거리들이 치유되었고 거의 90명의 장님이 눈을 뜬 한 외국의 집회를 마치면서, 그 지역의 목회자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오스븐 목사님, 우리 지역 사람들은 목사님을 사랑합니다. 이곳까지 방문해 주신 그 정성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오른팔이라도 잘라서 드리고 싶어합니다"


 위와 같은 말투는 물론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위의 말을 근거로 나의 오른팔이 병에 걸린 것으로 추측한다면 그것은 오판입니다. 나는 그 당시 오른 팔이 아프지 않았습니다. 이상으로 성경을 살펴본 결과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의 가시와 육체의 질병 사이에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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