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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왜 어떤 사람은 쓰러지지 않는가? (변승우 목사님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19.04.23|조회수138 목록 댓글 0


  ■ 왜 어떤 사람은 쓰러지지 않는가?


  어떤 사람은 아무리 기도를 받아도 절대 안 쓰러집니다. 그런 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고민을 하면서 저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목사님 왜 저는 기도를 받아도 안 쓰러져요? 왜 저에게는 아무런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 거죠?"


  방금 전에도 저는 저희 교회에 1달 반 동안 출석하며 은혜를 받으려고 미국 뉴저지에서 일부러 온 한 자매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분들이 고민하면서 이렇게 묻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도 아무리 기도를 받아도 안 쓰러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쓰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 뿐만 아닙니다. 존 윔버는 자신의 사역에서는 쓰러지는 역사가 많이 일어났지만 자신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존 아놋트 역시 그랬습니다. 그는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에게 기도를 받았지만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랜디 클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마헤시 챠브다에게 기도를 받았지만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랜디 클락은 쓰러지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 현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보면 명확한 모델이 없다. 이 체럼에 관하여 가르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중심적인 역사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있어서 우선순위가 아니다. 이 체험을 장려하거나 권고하는 성경구절은 없다. 반면에 이 체험을 말리거나 금하는 성경구절도 없다. 성경은 체험을 분류하지만 설명하거나 신학적으로 다루도록 하지 않는다. 성경은 체험의 정확한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는 것에 관하여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이 체험에 관한 모델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필수적인 역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그것은 구원을 받거나 성령 충만과 같은 하나님의 중심적인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주변적인 역사다. 단지 성령님이 역사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이 체험은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성령 역사의 부수 효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왜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받아도 쓰러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아봅시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더 잘 쓰러집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보다 더 감성적입니다. 그러므로 감성적인 사람들이 지성적인 사람들보다 더 잘 쓰러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기도를 받아도 쓰러지지 않는 사람의 경우 지성적인 사람이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또,  성려의 역사에 대해 열린 마음이 있으면 더 잘 쓰러집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받아도 잘 쓰러지지 않는 것은 마음이 닫혀 있고 사모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는데 이런 중성적이거나 부정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프란시스 맥너트는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은 기도할 때 성령의 권능에 압도당하는 체험이 없는데도 주님과 무척 가깡워보였다. 아마도 그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이미 성령의 권능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재하시는 일과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권능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하나님의 권능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외형적인 현상은 감소되고 반면에 기도생활은 더 풍성해졌다고 한다 ... 쓰러지는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영적으로 더 성숙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하심에 더 익숙해져 있으므로 쓰러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부르심" (릭 조이너)이라는 책에서 심지어 예수님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영이 임하면 많은 사람들이 넘어진다. 그러나 이제 그런 때는 지났다. 나의 영이 운행하여도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영이 운행할 때 서 있지 못하면 그가 너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교도들이 내 앞에서 넘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 백성은 내가 그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굳게 서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쓰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열등감을 느끼거나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쓰러지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쓰러져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여러 가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쓰러져야만 이런 일이 일어나고 기도 받고 쓰러지지 않았으면 허탕인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기도 받고 쓰러지지 않았어도 쓰러진 것보다 더 큰 은혜와 능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랜디 클락은 "성령의 권능 아래 넘어짐" 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토론토 공항교회에 왔던 목회자 스탭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네 사람이 11개 라틴국가들을 대표하는 히흐패닉 교회에서 왔습니다. 그들 중 두 명은 기도를 받고 쓰러졌으나 담임 목사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그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의 교회에 성령님께서 어떻게 크게 역사하셨는가를 간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담임목사님이 마치 새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은 권능과 권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은 그가 기도 받을 때 사역자들이 기도해준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그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담임목사님은 기도를 받았을 때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 하에서 넘어짐 없이 기름부음 받은 사람의 또 다른 예는 스리랑카에서 온 복음주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친구 때문에 멜버른 집회에 왔었습니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컬럼비아에 있는 컬럼비아 성령신학대학원에서 훈련받았었고, 스리랑카에 있는 몇 백 명의 목회자들을 감독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들은 오순절이나 은사주의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랜디 클락이 그 목사님을 위해 기도했을 때 실망했다고 그는 친구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랜디 클락은 그를 위해 기도했을 때 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하다고 해서 실제로 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스리랑카에서 온 그 지도자가 집에 돌아갔을 때 그는 완전히 놀라게 되었습니다. 첫 주일날 예배 시간에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스러졌으며 몇 명은 방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방언을 하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수백 명의 다른 목사님들의 지도자이기도 한 그 목사님은 곧 그들 모두를 불러내어 자신의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말하고 그 목사님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때 똑같은 현상들이 일어남으로 그들은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부음이 많은 목사님들의 교회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들은 신체적인 변화는 미미하지만 내적으로 강한 은혜를 체험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쓰러지기는 하지만 내적으로는 별 다른 체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쓰러지고 안 쓰러지고에 지나친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기도를 받고 쓰러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 실제적인 성령의 기름부음과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쓰러지지 않아도 믿음으로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갈 3:2, 5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나아가서, 우리가 이렇게 기름부음과 능력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릭 조이너는 "예언 사역" 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적의 의미" 라는 소주제로 이렇게 썼습니다.


  "이적과 기사는 장난감이 아니라 도구이다. 물리적인 이적과 같이 영적인 이적도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성령의 나타나심이 교회에 두루 나타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물어야 한다. 교회 역사를 통해서 요즘 흔히 '성령 안에서 죽임을 당한다' (being slain in the Spirit)고 불리는 현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것들은 가짜일지 모르지만, 많은 경우 분명히 꾸민 것이 아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을 바닥에 쓰러뜨리시고 어떤 경우에는 몇 시간 동안 꼼짝할 수 없게 두시면서 실제로 사람 가운데 운행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재미로 사람들을 쓰러뜨리시는 것이(slaying people) 아니다. 그와 같은 성령의 나타나심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단지 변화시키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죽음입니다.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제대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1998년 1월, 하이디 베이커가 토론토 공항교회의 집회에 참석했을 때 마침 랜디 클락이 그곳에서 사도적 기름부음과, 우리의 삶을 내려 놓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불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이디를 지적하면서 하나님께서 "네가 모잠비크를 원하느냐?" 라고 묻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이디는 그때 하나님의 불이 자기 위에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너무 뜨거워서 정말 문자 그대로 타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죽을 것만 같아요!"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좋다. 나는 네가 죽기를 원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이디를 완전히 비움으로 성령을 더 많이 부을 수 있기를 원하셨떤 것입니다. 하이디는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전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영광의 무게가 하이디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하이디의 자아는 죽었고 그러자 사역이 급속도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쓰러지는 현상이 아니라 자아가 죽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쓰러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자아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자아의 죽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정말로 큰 능력과 기름부음을 받고 주님께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한편, 쓰러지는 현상과 관련하여 우리 목회자들이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릭 조이너의 "종교의 영을 몰아내십시오." 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서 릭 조이너는 "성령의 사역의 대체물로서 감정주의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했습니다.


  "감정주의의 이용은 회개의 증거로서 흐느낌(weeping)과 울부짖음(wailing)을 요구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만져주심을 받았다는 증거로서 권능 아래 쓰러짐 같은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 포함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진정한 성령 사역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영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이러한 현상들을 요구할 때입니다. 제1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을 때, 조나단 에드워드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가장 거칠고 가장 반역적이던 몇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서 24시간 동안, 거기 그대로 있었던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상한 성령의 현상들이 대각성 운동의 원료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는 '부흥을 방해하는 원수들보다 이런 현상들을 날조하여 꾸며낸 사람들에 의해서 대각성 운동이 끝나게 되었다!' 고 말했습니다."


  릭 조이너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저는 잠실 롯데호텔에서 초대를 받은 일단의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는 기도 사역을 할 때 사람들을 일부러 쓰러뜨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아주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 전부터 저의 지론이었고 그래서 저는 릭 조이너의 그 말을 즐겼습니다. 우리는 집회를 하거나 기도를 할 때 기도를 받는 사람들이 모두 쓰러지는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성령이 강타하셔서 쓰러지는 사람은 쓰러지게 하십시오. 분위기 때문에 혹은 예의상 어쩔 수 없이 쓰러지는 사람은 없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며 결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기도 사역을 하면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쓰러뜨리려 하는 것은 아직 깨어지지 않은 자만심과 허영심 때문입니다. 프란시스 맥너트는 "성령이 권능으로 오실 때" 라는 책에서 이에 대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목회자들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자만심과 허영심은 목회자들이 다스려야만 하는 유혹이 된다. 캐더린 쿨만이 기도했을 때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내가 처음 보았을 때 나의 반응은 '와!' 라는 감탄사였음을 기억한다. 우리 대부분은 사람들이 우리의 목회에 대해 이런 감탄사를 발하기를 바라고 있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대부분의 우리 목회자들 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군중들 속에서 두드러져 보이고 싶어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위대한 신앙심을 가졌다는 찬사를 받기 위해 큰 거리의 어귀에서 기도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성령의 권능으로 사람들을 죽게 하는 일'은 확실히 목회자들로 하여금 자랑하려는 오만의 시험에 들게 한다. 왜냐하면, 그 현상은 극적이고 가시적이며, 바로 나 '자신'과 직접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도 내 자신의 영 안에서 과시하고 싶은 욕구와 싸우기 위한 작업을 해야 했다. 집회를 갖는 동안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닌지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갖도록 노력해야 했고 그리고 나로선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도록 분명히 참아내야 했다 ...


  성령 안에서 안식하는 현상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어떤 방법도 시도하지 말라. 또 한편으로 자신이 쓰러지기 시작한다면 쓰러지지 않으려고 저항하지 말라. 목회자들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거나 우리 자신의 욕구로부터 초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목회자들의 의도는 단순히 사람들 안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 넘쳐나게 하기 위한 공급의 통로가 되려는 것뿐이다."


  미국에서 4,000명 이상 모이는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프레드 울프 목사님은 심지어 "하나님을 구하는 대신 표적(쓰러지는 현상을 지칭함)을 구하는 것은 우상숭배다." 라고 경계하기까지 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쓰러지는 현상을 유발시키고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이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인양 생각합니다. 그리고 굉장한 현상이 일어나면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체험하고 그리고 다른 분들이 사역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알아낸 것은 현상에 초점을 맞추면 현상이 더 빈번하고 요란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속은 없어지고 공허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현상을 성령의 역사의 하나로 존중하고 수용하되 우리는 현상이 아니라 회개와 거룩과 말씀과 예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요란한 현상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사람들이 변화되고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월리스 해플린 2세는 "이제는 예언 사역 시대" 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상투적이지 않고, 꽉 막히지 않았으며, 그동안 해왔던 방법만을 고집하려 들지 않는, 그래서 성령님 안에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으려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정통 보수라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교회들이 안이하게 거기에 머무는 것을 선호한다.


  교회들은 전통적인 것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어떤 교회들은 제직들을 훈련시킬 때 아예 지극히 평범하게 행동하는 사람들과 묵상 기도하는 사람들과만 사귀라고까지 한다. 그리고 강사를 초청할 때도 그런 목사님들만 초청한다. 조금이라도 유별난 사람들을 보면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다양성의 하나님이시고 변화무쌍한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지 탁월한 방식으로 처리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역사하셔서 모든 영광을 당신 홀로 받으신다. 그러므로 새로운 방식을 두려워하지 말라. 독특한 방식을 겁내지 말라. 언제나 같다는 것은 자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모든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은 새 부대이거나 옛 부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만 담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 부대와 같은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 시대를 위한 새 술을 부으시고 새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성령이 임하셔서 역사하실 때 일어나는 현상 중 쓰러지는 현상 하나에 대해서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셔서 강하게 역사하시면 이 외에도 많은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비명을 지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 노출되거나 떠날갈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비명을 지른다고 그 교회가 잘못된 곳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몸을 심하게 떱니다. 이것을 진동이라고 하는데 마치 전기에 감전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임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좋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립니다. 이것은 "거룩한 웃음"이라 하는데 주님이 기쁨을 주실 때 일어나는 현상이며 이때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 받고 각종 억압에서 사람들이 자유케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합니다. 이것은 귀신이 떠나갈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며 특히 구역질은 깊은 회개를 통해 죄를 토설할 때 일어나며 이때 귀신과 더불어 우리 속에 있는 죄성들이 떠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넘어지는 현상과 함께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성령께서 하나님으로서 교회 안에서 마음껏 역사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부흥을 원하면 고정관념을 버리라" 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만일 성경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떤 특이한 현상들이 나타났다면, 단지 그것만 가지고서 한 개인의 체험이나 부흥 운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입증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전혀 새롭고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하실 때, 단지 그 방법이 특이하다고 해서 '교회가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고 말해버릴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그렇게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하신 적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앞으로 그런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하시기를 중단하실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 지을 이유가 전혀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장래에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역사를 이루신다. 물론 성령님은 스스로 성경에 제시해놓으신 원칙들을 결코 어기지 않으신다. 하지만 그 범위 내에서는 우리의 상상과 이해를 초월하는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해서야 되겠는가? ...


  더 나아가 우리는 세상의 종말 직전에 있을 마지막 부흥이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들보다 훨씬 더 엄청날 것이라는 점을 성경을 통해 믿을 수 있다. 그 날에 사람들은 놀란 눈을 하고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구토)을 순산하였도다.' (사66:8)라고 외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장차 그런 예외적인 특별한 일을 행하실 것이 확실하다면, 그분은 분명 매우 예외적이고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그런 일을 행하실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잘 지적한 것처럼 앞에서 제가 언급한 현상뿐 아니라 앞으로 대 부흥과 대 추수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우리가 전에 보거나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증상이나 현상들이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마치 우리가 성령에 대해서 다 알고 있고 성령의 역사를 다 체험하기라도 한 듯 단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새롭다는 이유로 그것을 이상한 것 취급하고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떤 현상이 일어나든 그것을 전부 성령의 역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분별하되 현상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대로 "그 열매를 통해서" 분별해야 합니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이 말씀의 전후 문맥의 근거하여 조나단 에드워즈는 어떤 새로운 현상이 일어날 때 그 현상이 성령의 역사인가 아닌가를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성경적인 5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참되신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이 불타오르는가?


  2. 사탄의 왕국이 공격당하는가?


  3.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더욱더 사모하는가?


  4. 사람들이 어리석음과 미혹에서 해방되어 진리로 인도되는가?


  5.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증대되는가?


  특히 그는 사람들이 그 현상이나 체험의 결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절대로 잘못된 것일 수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저희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안심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저희 교회에서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님과 더 깊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하여 위의 5가지 방법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조심스럽게 분별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지자를 돌로 치는 사람들의 동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는 성령 훼방 죄를 짓고 영원히 지옥의 불 못에 던져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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