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가장 분노하시는 대상은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II (변승우 목사님의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19.07.16조회수197 목록 댓글 0■ 하나님이 가장 분노하시는 대상은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 애틀랜타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어떤 목사님이 대표 기도하면서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듣고 강대상에서 탄식을 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면 구원의 확신은 저절로 오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마음에 천국이 오고 마음에 천국이 있어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느껴지는데 "아, 내가 죽어서 지옥가면 어떡하지." 이러는 사람은 없습니다. 뭔가 말씀대로 안 살고 죄책감에 짓눌려 있으니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데 '내가 천국 갈까, 지옥 갈까?' 이런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사실에 근거해서 확신을 가지지 않습니까?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확신은 공허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에 근거해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 마음에 천국이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죽어도 천국에 가겠구나.' 이런 종류의 구원의 확신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거짓 선지자들이 즐겨하는 일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심어 준다고 다 거짓 선지자는 아니지만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구원의 확신에 매달려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가볍게 고쳐주며, 속은 곪아 터져 가고 썩어져 가는데 겉에 소독약 발라 주고 끝내는 것입니다.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을 쪼개서 고름을 짜내야 하는데 소독약만 발라 주고 끝냅니다. 수많은 설교자들이 그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그 속에서 죄가 곪아 터져 가고 썩어 들어가는데 진정한 회개를 시키지 않고, 그 삶에 주인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데 정말 주님을 영접하게 하지 않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지도 않고 신앙고백을 따라하게 한 다음에 "당신은 이제 구원받았다. 이제는 죽어도 천국 간다." 라고 합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들이 영혼을 기만하는 수법입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증거는 마음에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도의 성자 썬다 싱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압니까?" "내 마음 속에 있는 이 평화가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왜냐하면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그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는 악인이기 때문에,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주님으로 모셔 들이고 잘못된 삶에서 돌이킨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진정으로 거듭나고 이전 것이 지나간 일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는 말씀대로 평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거짓 선자자들은 구원의 확신을 통해서 이 사람들에게 평강을 심어 주고, 심어 주고, 심어 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평강이 아니라 양심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고, 그 영혼을 각성기키려는 성령의 역사에 대항하는 것이고, 그 영혼을 사망에 이르는 죄의 잠에 깊이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고 사탄이 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목회자들이 서슴없이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기보다는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하셨습니다. "속으로 너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사람들 속에 있는 거짓된 구원의 확신을 세례 요한이 와서 폭로하고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니까 당현히 천국 간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연히 구원 받을 줄 생각하지 마라.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분명하게 보여 주지 않으면서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상상하지 말라고, 그들의 구원의 확신을 깨뜨리고 무너뜨리는 일을 한 것이 세례 요한이고 예수님이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신 일이 있습니다. 삭개오가 진정한 회개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였을 때였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초청하고 진정한 회개를 했습니다. "제가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아 주겠으며, 재산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겠습니다." 원래 삭개오는 돈을 위해서 민족을 배신한 사람이었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돈벌레였습니다. 그런데 네 배로 갚아 주겠다고 했으며 자기 재산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이 집에 오늘 구원이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주님께서 삭개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 그때 구원의 확신을 심어 줘야 합니다.
15절에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이 이 시대를 향한 주님의 엄중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시대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시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부끄러워하지도 않는구나.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죄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동성애자들이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도 목사들이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된 교리에 의해서 양심이 잠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부끄러워하는 것이 없습니다. 부끄러움이 전혀 없으니까 고민도, 갈등도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는사람들이 죄를 짓는다는 것이 아니고 죄를 지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6, 17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우리는 현대의 길을 걸으면 안 됩니다. 치신식의 길을 걸으면 안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강해 설교가 열어 놓은 길을 걸으면 안 됩니다. 제자 훈련이 열어 놓은 길을 걸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옛적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또 존 웨슬리가, 찰스 피니가, 조나단 에드워드가, 청교도들이 제시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옛적 길이 옳은 길입니다. 지금 수많은 설교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길은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지금 설교들이 제시하는 길은 잘못된 길입니다. 옛적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가 언급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청교도들이 제시했던 길, 과거에 강력한 부흥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 그 옛적 길을 탐구해야 합니다.
오늘날 평신도들뿐 아니라 설교자들까지 너무 읽기 좋은 책들만 읽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명한 강해 설교자들이 현학적으로 잘 다듬어 둔 책들만 읽고 여기저기서 꿰어 맞춰 가지고 설교하기를 좋아하는 많은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그러합니다. 그것은 재앙입니다. 그런 책들은 깊이가 없습니다. 그런 책들은 진리를 제대로 꿰뚫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문자적으로 좀 바르게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지식적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 이라고 했는데, 그 깊은 것을 볼 수 있는 과거의 사람들의 책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현대의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고전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 고전을 읽어야 합니다. 존 웨슬리, 찰스 피니, 조나단 에드워드, 에이든 토저의 책을 잃어야 하고, 청교도들의 책을 읽어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의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들의 길이 옳습니다. 옛적 길이 옳습니다.
이 시대의 비극은 신앙의 선배들을 존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대 강해 설교자들이 너무 자기 지식을 믿고 현학적인 책들만 읽고 있습니다. 지식적인 책, 정보를 주는 책, 감성적인 책, 현학적인 책만 읽었지 신앙의 선배들과 조상들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닦은 길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뒤쳐져 있습니다. 지적으로 발전한 것 같지만 사실은 퇴보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선배들을 존경하지 않고 옛적 길을 닦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옛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그러면 오늘날 수많은 설교자들이 말해 주는 것처럼 그런 거짓된 구원의 확신에 의한 잘못된 평강이 아니고 영혼을 잠재우는 평강이 아니고 참 평강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마음에, 영혼에, 정말로 구원받은 증거로써 평강이 찾아 올 것입니다.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파수꾼은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에게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고 하셨습니다. 나팔 소리는 무엇입니까? "너는 네 목소리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팔 소리처럼 날려서 내 백성의 허물을, 그들의 죄를 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들입니다. 그것이 나팔 소리 입니다. 마치 기상 나팔 소리가 잠자는 군인들을 깨우는 것처럼 죄의 잠에서 깨어서 일어나라고 하는 그런 외침들입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들의 메시지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 교회들 위에 파수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죄의 잠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음악 소리 같은 설교가 아니고 나팔 소리 같은 설교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음악 소리 같은 설교를 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말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 말고 나팔 소리 같은 설교를 통해서 영혼들을 깨워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나팔 소리 같은 메시지를 가지고 나갈 때 몇 사람이나 듣겠습니까? 얼마나 그것을 원하겠습니까? 얼마나 그것을 듣고 깨어나겠습니까?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비관할 것은 아니고, 철저하게 주님의 통로가 되고 부흥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더 크게 부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혼들을 위해서입니다. 옛날보다 지금 제가 말씀을 전하면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훨씬 더 많이 받아들입니다. 옛날에는 80%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50% 정도는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옛날에는 우리 교회에 이삼십 명 정도만 모이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부흥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난하면 여러분의 친척을 전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난하고 불신자 친척들이 여러분보다 잘살면 그들에게 영향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다." 라는 잘못된 생각에 속아 넘어가지 마시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살아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신디 제이콥스가 "유대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비결은 유대인보다 복을 받음으로써 유대인들이 시기 나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불신자들을 구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그들보다 잘 살아야 여러분의 말이 그들에게 통합니다. 그때 그들이 여러분의 말을 들으려 하고 여러분을 존중합니다. 여러분이 못살면 하나님이 멸시를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잘하시고 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잘살게 되시기 바랍니다.
똑같은 원리입니다.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고 부흥이 일어나고, 성령이 임하시고 기적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몰려오고 재정적으로 넉넉하게 되고, 강력한 부흥이 일어날 때 대세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때 똑같은 교회라도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른 교회들에게, 목사들에게, 성도들에게 영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철저하게 죽음으로써 크게 부흥하게 될 때 수많은 목사들이 그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부흥에 수많은 영혼들이 달려 있습니다. 부흥이 일어나면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입니다. 영향력이 도시로, 나라로, 아시아로, 열방으로 증대되는 것입니다. 부흥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이 올 때마다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통해서 도시가 변화된 사건들이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은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지만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면 영향력이 증대되고 수많은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 철저하게 죽고 철저하게 헌신하고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교회가 부흥해야 합니다. 주님의 임재가 더 증대되고 더 은혜로운 말씀이 선포되고 계시가 더 깊어지고 기적과 표적과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고 성도 수가 늘어나야 합니다. 만 명으로 십만 명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사람은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속성을 어느 정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흥해서 강자가 되면 듣습니다. 그러면 딴말했던 사람도 다시 생각하고 마음을 엽니다.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입니다. 그래서 강력한 부흥이 오게 되면 수많은 영혼들을 깨울 수 있고 수많은 목회자들과 수많은 교회들을 깨울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소명입니다. 누가 우리를 오해한다고 속상할 것 없고 누가 우리를 비판한다고 발끈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화를 냅시다. 우리 자신이 죽지 않고 우리 자신이 온전히 주님의 마음을 품지 못하고, 주님을 닮지 못한 것 때문에 화를 내고, 그것을 회개하고 기도하고 나아갑시다. 그래서 우리가 변화되면 하나님께서 비로소 도시와 나라와 열방에 대한 영향력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구름 떼를 이루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입신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를 가리켜서 말씀하시기를 "이 교회는 아브라함의 복음 받은 교회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수를 셀 수 없는 것처럼 이 교회를 통해서 구원받는 자들의 수를 셀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쓰하셨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것은 부흥회를 통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선교 여행을 통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책을 통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부흥이 일어날 때 그 말이 문자 그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