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적인 전쟁 : 당신은 싸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쉬고 있습니까?
오늘날 영적 전쟁은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방법으로 너무 강조하는 주제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몸에서 영적인 전쟁과 귀신들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있는 것에는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사단과 그 계략을 성경적으로 다루는 것을 알기 위하여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당신이 마귀와 귀신 그리고 악한 영들과 그들의 활동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많은 믿는 자들은 매우 두려워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귀나 악한 영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믿는 자들에게 마귀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성경적으로 잘 가르치지 않는다면 적은 그들의 삶에서 날뛰고 요란한 잔치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경적인 그들의 권세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후 2: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우리는 우리의 적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단의 계획에 무식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항상 있던 그대로이고 항상 사용하던 계략들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우리들에게 마귀의 궤계에 대해 무지하지 말라고 하던 그 마귀들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궤계는 사람들을 극단으로 몰아 영적인 전쟁을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경 주제라도, 그리스도의 몸이 정로 가운데로 행하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많은 믿는 자들이 이쪽 웅덩이로 빠지지 않으면 저쪽 웅덩이로 빠지곤 합니다. 어느 쪽 웅덩이든지 간에 믿는 자들의 하는 일이 효과가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극단과 과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결코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를 도둑질하는 가장 큰 적은 귀신론과 영적 전쟁의 분야에서도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믿음입니다. 그것이 처음에 마귀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전쟁이란 주제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잘못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여금 정로에서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믿음은 결국은 잘못된 행동으로 가게 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의 잘못된 생각과 잘못돈 믿음이 어떤 믿는 자들에게 그들이 마귀와 싸우려고 애쓰고 있으며 도시들과 나라들로부터 견고한 진을 끌어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들은 그러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비추어 이것이 성경적인지 잘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주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게 생각하고 믿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성경에 있는 결과를 볼 것입니다.
물론, 합법적인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영적 전쟁은 성경에 나오는 주제이고 우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모두는 적어도 한번은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에서 우리의 자리를 지켜야 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들에게 대항하여 진을 치고 있는 적이 있다는 사실과 우리들은 주님의 군대라는 사실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그런 진리를 가지고 너무 극단과 과다로 치우칩니다. 그들의 생각은 이런 것 같습니다. '군대들은 적을 패배시키려고 싸우는 것이니까 우리도 마귀와 싸워서 이기자.'
그러나 예수님은 벌써 마귀와 "싸우셨고" 이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occupy)"고 하셨습니다(눅19:13). 우리는 이미 패배된 적에게 말씀에 서서 우리의 자리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군대에 있기는 합니다만 이것은 이미 점령하고 있는 군대(occuping Army)입니다. 점령하고 있는 군대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점령하는 군대는 우리의 총 책임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이겨놓은 승리를 강화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이 전쟁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승리를 강조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 서신서에 나오는 "전쟁"과 "전투"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전쟁을 너무 강조해서 당신은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유일한 주제같이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진정한 영적인 전쟁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하고는 많이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신약을 공부해 보면 특별히 서신서에는, "전쟁" 이나 "전투"라는 말이 몇 번 밖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서신서에서 "전쟁" 이나 "전투" 라는 말이 사용될 때, 한번도 "마귀"나 "사단"이라는 것과 연결되어 사용되어진 적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들에게 쓰여진 서신서에서 사용된 "전쟁" 이나 "전투" 라는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7절에 바울은 이렇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여기서 바울은 마귀와 전쟁하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간단히 사역자들이 적당한 사례를 받아야 된다는 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고린도후서 10장 3-5절은 또 다른 "전쟁"이나 "전투"라는 말이 쓰인 구절입니다.
고후 10:3-5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Imagination)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당신이 이 문장을 문맥에서 떼어낸다면 이 구절들로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라도 말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3-5절은 도시와 나라들 위에서 역사하는 마귀와 싸우는 것에 적용하여 널리 쓰여 온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맥으로 보아서 바울이 아주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어떤 지역적인 영역에서 귀신들의 군대와 싸우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믿는 자에게 그들의 생각과 상상을 잘 통제해서 마귀들이 거짓말로서 그들의 마음에 강력한 진을 만들지 못하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문이 열려있지 않은 이상 믿는 자들에게 들어올 수 없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마음과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믿음과 잘못된 말과 마찬가지로 마귀에게 문을 열어 놓는 것과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그들의 삶에 있어 그것이 주된 전쟁터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6:7). 이 구절을 가지고 불신자들에게 그들이 죄로 심는 것의 결과를 추수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약간의 진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믿는 자들에게 이 말을 한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좋은 것을 심든지, 나쁜 것을 심든지 그들이 심은 것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말과 행동과 행위로 좋은 것을 심든지, 나쁜 것을 심든지 그들이 매일 심는 것으로 결국은 추수를 거둘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들의 활동과는 상관없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심은 말들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잠18:21). 잘못된 생각, 잘못된 믿음, 그리고 잘못된 말은 믿는 자들이 알게 모르게 마귀에게 그들의 삶에서 문을 열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자들이 마귀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과 삶에서 견고한 진을 지을 수 있게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10장 3절부터 5절까지는 모든 문맥으로 보면, 이것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는 사단이 우리 마음에 가져와서 우리를 묶어두려고 하는 모든 거짓과 속임수를 극복하기에 충분한 강력한 영적인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전쟁"과 "전투"라는 말에 대하여 또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딤전 1:18-19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떻게 좋은 싸움을 싸우라고 하였습니까? 믿음과 착한 양심을 붙잡으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은 간단히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싸움에 거하여라. 너의 삶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루어 드려라.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인생에서 좋은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마귀는 아예 언급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은 간단히 젊은 목사인 디모데에게 그의 사역을 이루고 그가 앞으로 만날 어떤 반대에도 제지되지 말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른 권고로 디모데후서 2장에서 싸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딤후 2:3-4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전쟁에 임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 구절을 전체 문맥 안에서 읽어볼 때 이것은 마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바울은 간단히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네 인생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우리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훈련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세상의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그리고 세상이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못하게 하도록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그래서 효과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실례를 들어서 상기시키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4장 1, 2절에서 우리는 "전쟁"이나 "전투"라는 단어들이 믿는 자들의 통제되지 못한 육신의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과 관련하여 '싸우다', '논쟁하다', '분쟁하다' 라는 말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약 4:1-2
1 너희 중에 싸움(Wars)이 어디로부터 다툼(Fightings)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War)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여기서 "전쟁"이라는 말은 제한받지 않는 육신의 활동 때문에 일어난 결과를 표현하려고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귀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야고보에 의하면 영적인 전쟁은 우리의 영적인 발전을 소멸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려는 육신의 욕망과 가장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난 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듯이 오늘도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갈5:24). 우리가 우리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그리고 "우리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 (고전9:27)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에 계속 문제가 있을 것을 기대해햐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귀신이 활동하여 일어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서 전쟁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여기 성경 구절에서도 마귀에 대한 어떤 언급도 전혀 없습니다. 야고보가 했던 것처럼 베드로는 "싸운다(War)"라는 말을 육체의 정욕과 혼, 즉 마음과 감정에 대한 싸움을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새로워지지 않은 육신이 마음과 싸우는 것에 대하여 로마서 7장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우리는 서신서에서 "전쟁"이나 "전투"라는 말이 사용된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성경 구절에서 마귀라는 말은 한 번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의 말하는 것을 들으면 당신은 영적인 전쟁이 성경에서 언급되고 있는 단 한가지의 주제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교리적으로 말할 때, 어떤 사람들은 개미가 만들어 놓은 흙더미를 산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을 마귀에게 탓하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신서에는 "전쟁"과 "전투"라는 말이 육신을 순종하게 하는 일과 생각을 통제하는 일과 관련하여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한 것이고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으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은 인생의 승리를 다른 방법으로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영적인 전쟁은 주로 마음이나 육신과 해야 하는 것이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딤전6:12). 전쟁을 잘 싸우는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육체를 잘 점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것 위에 믿음으로 어떻게 잘 서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육체를 잘 순종하게 하고 우리의 생각을 잘 통제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서 넓게 가르쳐지고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육체의 정욕을 그냥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통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짓는 것에 대하여 마귀를 탓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마음이나 육신을 잘 다스렸다면 그들은 절대로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단이 그들을 죄에 빠지게 하였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사실 사단은 열려 있는 문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하여 그들의 삶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잘못된 생각을 하였든지 혹은 그들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던 것입니다.
은사주의 운동의 가장 큰 실패 중의 하나는 성화되어 가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의 정욕에 물드는 것으로부터 구별되어져야 하는 것에 대하여는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고후6:17; 벧후1:4). 많은 믿는 자들이 마귀를 탓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들이 성화하지 못한 것과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12장 1절과 2절 말씀의 지시를 따라 순종함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별해야 합니다. 만일 믿는 자들이 이 성경 구절에 순종한다면 대부분의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영적 전쟁은 벌써 끝이 났을 것입니다.
나는 마귀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의 생각과 그의 육신을 통제하는 것을 배웠다면 그는 마귀에 대하여 놀라운 승리를 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거의 2000년 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패배하였고, 능력을 빼앗겼고, 무력화 되었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영적 전쟁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무엇에 대하여 대적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우리가 이런 것들에 대하여 바로 선다면 어떻게 될까요? -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위에 또 예수님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사단에게 이긴 승리 위에 똑바로 선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속에 넣고 진리에 바로 선다면 우리의 삶에 상황은 고쳐지고 회복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패배된 적과 싸워서 "패배"를 시켜야만 되는 것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하신 승리를 또 다시 찾아와야만 되는 것같이, 방어하기보다 계속하여 말씀을 전파하는 공격적인 자세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귀신들과 씨름을 해야 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서신서들 "전쟁"이나 "전투"라는 단어들은 육신과 마음 사이에 그리고 육신과 재창조된 영 사이에 갈등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씨름을 하는 것"에 대하여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신약에서 믿는 자들이 귀신들과 씨름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엡 6:10-17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씨름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성경 구절에 의하면 우리는 마귀와 "씨름을 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마귀를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성경 구절을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말하는 문맥에서 읽어보십시오. - 예수님이 사단을 우리를 위하여 패배시키고 우리를 사단의 지배자로부터 구속하였다는 전체적인 성경의 맥락으로 보십시오.
이 성경 구절이 말하는 "씨름을 한다는" 말은 전쟁을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확실히 아닙니다. 전쟁과 씨름을 한다는 말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씨름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면 당신은 씨름을 한다는 것과 전쟁을 한다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W. E 바인즈의 성경 사전을 찾아보면 "씨름을 한다는" 말의 의미 중에 한 가지는 '동요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허락한다면, 그는 우리를 패배시키기 위하여 우리를 대적하고 와서 우리를 동요시켜 믿음에서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과 불신앙으로 가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자리를 지키면 그는 우리를 말씀으로부터 떨어지도록 동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씨름"은 종종 마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믿음을 굳게 잡는 "싸움"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경주"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듯이 에베소서 6장 12절에 "씨름"이란 말은 상징적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 ...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12:1). 성경은 "씨름하다"라는 말을 믿는 자들에게 굉장한 영적인 전투이며 기도할 때 마귀와 씨름하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우리의 인생의 역경들은 영적인 영역에서 오는 것이며 우리는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서서 이미 패배한 적에 대한 승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승리를 받아들이고 모든 상황에서 사단의 패배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음의 싸움에서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인지 또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 또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마귀에 대한 권세를 행사하는 일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사단에게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 위에 역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에베소서 6장을 전체의 문맥을 가지고 읽지 않고 12절에만 집중한다면 당신은 혼란스럽게 되고 패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는 이제 해야 한다! 나는 모든 통치자, 권세 그리고 모든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을 패배시키기 위하여 씨름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우리가 성경의 한 부분만 지나치게 강조하여 문맥의 흐름에서 벗어나면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을 말하게 되는 것은 너무 쉽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구절들은 빼놓고 너무 한 구절만 강조하다보면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의도를 다 알아들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생각을 바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전체적인 의도에 일치된 것을 믿기 시작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12절만 읽는다면 당신은 사람들이 그들이 악한 영들과 싸워서 이겨야 된다고 생각하며 그 생각에 휩싸이게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귀신에 대하여 지나치게 의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다 완성된 십자가의 역사를 인식하는 대신 그들은 적이 이미 패배되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 적과 씨름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에게 자리를 주어서 그들의 마음과 몸과 삶에 역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그것들을 다 이루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한 구절만 너무 강조하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이 믿는 자들을 위하여 이미 하신 일을 강조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마귀에 대하여 승리를 얻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을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사단에게 하신 승리에 이미 다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전체적인 모든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우리가 통치자와 권세와 씨름을 한다고 표현했지만 성경은 다른 구절들에서 우리는 이미 패배한 적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12절을 읽으십시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 항상 마귀에 대항하여 전쟁을 한다는 그 구절 하나만으로 교리를 세우려고 하는 것 보다는 - 이 주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한 성경 구절을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말한 골로새서 2장 15절과 함께 읽으십시오.
그리고 누가복음 10장 19절을 읽으십시오. "내가 너희(그리스도의 몸)에게 뱀과 전갈(마귀와 악한 군대)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이미 그의 죽으심과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로 패배시킨 통치자와 권세들에 대항하여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0장 2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마귀들에게 권세 있음을 인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하여,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었음을 인하여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초점은 패배한 적과의 싸움에 있지 않고, 크고 사랑이 충만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마귀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왜 우리들이 권세의 자리로부터 이미 폐위된 적과 싸워야 합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군복을 입고 와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 예배시간 내내 소리 지르고 음성을 높이며 기도로 마귀와 "전쟁"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디모데후서 2장 3, 4절과 같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자신들이 하는 일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함이라."
사실, 디모데후서 2장 3, 4절이나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바울은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병사", "싸우다" 그리고 "씨름하다"라는 말들을 상징적으로 사용하도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의 로마군대를 예로 들어 사람들이 자신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당시 사람들이 잘 이해하는 개념을 사용하여 그들의 이해를 도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이것이 쓰여진 문맥대로 이 구절들을 읽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딤후 2:3-6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업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사역의 여러 가지 면을 설명하기 위하여 군사적, 운동적, 그리고 농경적인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3절과 4절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기 위하여 요구되는 성품인 단단하고 훈련되고 헌신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병사"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5절에서 말하는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는 말은 운동 경기에서 1등으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농부"라는 말은 농부가 곡식을 추수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들을 문맥과 상관없이 읽는다면, 만일 우리가 다귀와 싸우기 위하여 "군사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면 - 디모데후서 2장 3-6절에 근거해서 보면 우리는 또 "운동선수" 교회가 되어야 하고 모두 운동복을 입고 교회에 와야 하거나 혹은 우리가 "농경적" 교회가 되어서 농부같이 옷을 입고 교회에 와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이상한 말입니까? 우리는 예화를 위해 쓰여진 구절에 근거하여 외적으로 실천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구절들은 다른 면의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일 뿐입니다.
어떤 선하고 의도가 좋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기도회에 와서 마귀와 기도로 싸우려고 합니다. 우리는 마귀와 "전쟁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자리를 잘 지키고 강화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철저히 패배되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마귀와 전투하고 싸우는 것은 성경적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사단에게 승리한 것을 무효화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 때문에 믿는 자들은 이미 다 해놓은 십자가의 역사에 자신들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에 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미 그들을 위하여 하신 일을 믿음으로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