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의 말씀의 은사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변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12:7-11).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들을 연구하면서 우리는 이 모든 은사들이 고린도전서 12:11 말씀을 따라 역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12:11).
※ 성령님은 그의 뜻대로 영적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
하나의 교회, 즉 지역 교회의 신자들인 우리는 이런 은사들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도록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그의 뜻대로 누구든지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똑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사용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의 뜻대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들의 나타남을 나누어 주신다고 성경은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은사에 쓰임 받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며, 영적 은사의 영역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대신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기 원하고, 우리 스스로 어떤 것을 하기 원하기 때문에 자주 곤경에 처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도록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2:8이 그 이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12:8).
명백한 것은 모든 은사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런 은사들이 나타나도록 사모하고 성령님이 그의 뜻대로 우리 가운데 그 자신을 나타내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초를 성경 위에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릇된 생각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최선의 것을 방해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을 따릅시다.
※ 지혜의 말씀의 은사
고린도전서 12:8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때때로 이것들을 지혜의 은사 혹은 지식의 은사라고 부르곤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12:8).
그러나 그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은사들을 성경이 부르는 대로 불러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개를 고양이라고 부른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혼동하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개가 고양이가 아니듯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지식의 은사가 아니며,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지혜의 은사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8은 일반적인 의미의 자연적인 지혜와 지식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입니다. 이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들은 초자연적으로 주어졌습니다. 그것들은 자연적인 은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결코 어떤 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아시는 모든 것을 계시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고 계시는 것의 한 말씀 혹은 한 부분 또는 한 조각을 주십니다.
예를 들어, 한 마디의 지식의 말씀은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지식의 단지 한 조각일 뿐입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그것은 지혜의 은사가 아니라, 지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혜와 모든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들 중에 일부만을 그 사람이 알아야 할 그 때에 그 사람에게 계시하십니다.
※ 지혜의 말씀은 일상생활의 지혜가 아니다
지혜의 말씀은 자주 일상생활의 단순한 지혜와 혼동이 됩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단순한 지혜는 영적인 은사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사역을 시작할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의 성공의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여호수아가 일상 문제들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방법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다른 번역본을 봅시다.
"너는 너 자신을 번영하게 만들 것이고, 너는 일상의 문제들에서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앎으로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초자연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솔로몬의 지혜가 이 지혜의 말씀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우리가 야고보서 1:5에서 읽어 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은 이러한 지혜는 그것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한 지혜는 일상의 일들을 다루는 일반적인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일반적인 지혜를 부어 주시지만, 일반적인 지혜는 지혜의 말씀이 초자연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다면,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의 일들을 현명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이 일반적인 지혜는 누구든지 그것을 구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지혜는 일상의 일들을 현명하게 처리하는 지혜이고, 여러분이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의 마음과 목적과 계획을 나타내실 때에는 초자연적인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내십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의 초자연적인 나타남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8에서 말합니다.
" ... 어떤 사람(one)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12:8).
이 구절은 영적인 은사들은 성령의 뜻대로 나누어주신다고 설명하면서, 지혜의 말씀의 나타남은 모든 사람에게가 아니라 어떤 사람(one)에게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다 이러한 나타남들을 가지지는 못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의 차이
나는 지식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사실들, 즉 사람, 장소, 과거나 현재의 어떤 일들에 관한 사실들에 관하여 성령님이 초자연적으로 계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관하여 성령님이 초자연적으로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목적과 계획들에 관한 계시이므로 최고의 은사입니다.
이 두 가지 은사의 차이점은 지식의 말씀이 가져오는 계시는 항상 현제시제이거나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일에 관한 것입니다. 반대로 지혜의 말씀은 항상 미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은 함께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두 가지 은사를 나누어서 따로따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언급했듯이, 영적인 은사들은 자주 함께 작용합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성령의 은사들이 신약과 구약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특히 우리는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함께 나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자자들은 자주 예언의 은사와 함께 이 두 은사로 사역하였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현재에 대해서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지식의 말씀이 작용한 것임)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도 예언했습니다(지혜의 말씀이 작용한 것임). 그리고 그들은 가까운 미래의 일들뿐만 아니라 먼 미래의 일들, 즉 새 언약과 오실 메시야에 관한 일들도 예언했습니다.
※ 예언은 다른 은사들이 흘러나오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선지자 직분에 굳게 서기 위해서는 지혜의 말씀이 그의 사역에서 나타나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미래에 대한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예언의 은사는 미래를 미리 들여다 보는 예측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약의 선지자가 하는 예언은 비록 그것이 예언으로 나왔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지혜의 말씀이 작용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자동차를 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을 자동차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때론 지혜의 말씀이 예언이라는 통로를 통해 전달될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예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혜의 말씀입니다. 달리 말하면, 예언은 지혜의 말씀이 나오는 통로일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4:3에 나열된 단순한 예언의 은사는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이런 단순한 예언의 은사는 미리 말해주는 예언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은 그 안에(미래에 대한) 어떤 계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예언의 은사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래를 미리 말해주는 이들 예언적인 요소가 어떤 사람의 사역에서 나타날 때(특별히 선지자 직분에서) 비록 그 예언이 예언의 은사를 통해서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실제로 지혜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예언이 선지자 직분의 사역자로부터 온다면 이것은 더욱 더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는 지혜의 말씀이 나오는 통로일 뿐입니다.
지혜의 말씀은 성령 충만한 신자들이 개인 기도생활에서 자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자 기도할 때(요16:13,14), 예언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성령님의 뜻대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18장에서 이것에 대해서 더 자세히 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자가 예언을 통한 공적인 사역을 할 때에 지혜의 말씀이 그의 삶에 나타나게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공적인 사역에서 지혜의 말씀과 일부 계시의 은사들은 예언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특히 더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대개 선지자 직분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계시의 은사들은 또한 오중 사역자로 불리는 자들을 통해서 올 수 있지만, 선지자 직분에서 더 자주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단순한 예언의 은사로만 사역하고, 이러한 계시의 은사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가 예언한 것은 단순한 예언의 은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은 계시가 아니라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말씀은 말하는 발성의 은사인 예언이나 방언과 통변을 통해서 올 수 있습니다.
또한 지혜의 말씀은 환상이나 꿈을 통해서도 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 요셉은 꿈을 통해서 지혜의 말씀을 받았는데, 그 꿈은 요셉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그에게 계시해 주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율법을 주실 때 들리는 목소리로 율법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지혜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미래를 예언한 구약의 선지자들은 조만간 성취될 일들까지도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예언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의 사건들을 앞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나타난 것은 지혜의 말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