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5-29)
왜 요한계시록을 설교하면서 본문이 계시록이 아니고 이곳일까 궁금하시죠?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본래 저는 이 시리즈 설교의 제목을 "이 설교를 들으면 요한계시록이 보인다!"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해석이 거의 완성될 무렵 성령님께서 제목을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로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는 그 진리를 시위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설교의 제목은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서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은 문지 그대로 저의 심금을 울린 구절입니다.
고린도전서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1 때 저는 통합 소속 울산전하교회 학생회장이었습니다. 하루는 학생예배 때 목사님이 설교 중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너무 크게 감동이 되어 마음으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머리가 좋지도,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몸도 약한 데다, 집도 매우 가난했습니다. 제가 정확히 이 구절에 나오는 "미련한 것들, 약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 그리고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학생회 담당 목사님도 저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성경에서 하나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저 같은 자를 택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순간 '이게 바로 내가 목회자로 선택받은 이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한없이 감사하게 느껴져서 심령으로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전 절을 한없이 중요한 계시록 설교의 제목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신 이 제목을 통해 저는 왜 성령님이 계시록 해석을 제게 부으시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계시록 해석이 초자연적으로 부어질 때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왜 내게 계시록 해석을 주시지 ... 나는 적임자가 아닌데 ... 자격이 없는데 ... 왜 이렇게 하시지?'
그런데 제목을 통해 그 답을 알았습니다. 제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자격이 없지만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3:7).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고전15:10). 은혜 받기에 합당한 자격은 주제파악밖에 없습니다. 주제파악하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것, 그리고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높여주실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이것이 은혜 받기에 합당한 유일한 자격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고 의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눈에 띕니다(대하16:9). 그래서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 구절로 넘어가겠습니다. 바울은 연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얼마나 감미로운 말인지요. '아~ 바로 이런 일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이 나같이 천한 것을 택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역전이 가능한 이유는, 25절에 나와 있듯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저의 태생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그래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미련한 나도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그것을 90%나 99%가 아니라 100% 믿었습니다. 어차피 저의 지혜로는 지혜로운 자들을 이길 수도 없고 중간도 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했습니다.
특히, 성경해석에 있어서 그랬습니다! 저는 제 머리나 지식이나 분별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약1:5), 눈을 열어주시고(시119:18), 성령으로 가르쳐 주시고(고전2:13), 말씀을 주시기를(엡6:19) 여러 해 동안 구하고,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제게 지혜와 말씀의 은사를 부어주셨고 세 가지 극적인 확증을 주셨습니다. 그중 하나가 신학교 1학년 때 꾼 꿈입니다.
신학생 시절, 저는 특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학교 앞에 있었던 성문순복음교회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설교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왜 하나님은 나에게 방언통변의 은사를 주시지 않는 걸까?' 평소부터 궁금했던 의문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오랫동안 방언통변의 은사를 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받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나에게 방언통변의 은사를 주시지 않는 것일까요?"
강사 목사님은 잠시 설교를 중단하고 기도를 하시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사님에게 성경을 한 권 보여주셨답니다. 그 성경은 제가 신학생 시절 읽던 것으로 겉장 가죽이 닳아서 세 번이나 갈았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적게 줄 친 곳이 최소한 다섯 번이고, 여기저기 낡고 구멍이 뚫려서 스카치테이프로 보수공사를 해놓은 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경을 보여주셨는데, 저의 눈에도 보였습니다.
분명히 저의 성경인데, 겉장과 속장이 모두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이 덮여 있는데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눈에 다 보였습니다. 또 여백에 성경을 읽으며 깨달은 것을 빽빽하게 적어놓았는데, 그 책의 여백에도 빼곡하게 적혀있었습니다. 그 양이 큰 도서관 하나를 채울 만했습니다. 성경 66권에 대한 전체적이고 정확한 해석이 적혀 있었고 책이 덮여 있는데도 전부 한눈에 다 보였습니다. 이것을 보여주신 후 성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통하구나. 이것을 어찌 방언통변이나 다른 은사들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 은사를 누구에게 줄까? 미국, 영국, 독일 ...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찾다가 너를 발견하고 너에게 이 은사를 주었다. 그런데 이 은사로 인해 내게 한 번이라도 감사한 일이 있느냐? 늘 방언통변이나 신유의 은사를 주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지 않았느냐? 내가 다른 작은 은사들을 주고도 감사기도를 받는데 이런 엄청난 은사를 주고도 불평만 듣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꿈에서 깨어난 후 저는 제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은사들을 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말씀에 착념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이 꿈은 본문 고린도전서 1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성령께서 주신 이 설교의 제목과 완전한 조화를 이룹니다. 왜냐하면 꿈에 이런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은사를 누구에게 줄까? 미국, 영국, 독일 ...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사람을 찾다가 너를 발견하고 너에게 이 은사를 주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에게 역대하 16장 9절을 상기시킵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전심으로 자기를 향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찾으십니다. 그들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그들에게 능력도 주시고 모든 좋은 것들을 주십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어릴 때부터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하나님만 100% 믿고 의지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은혜로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실제로 하나님만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때도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중학교 때도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신학교 때도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목회하면서도 실제로 저는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제가 자주 고백한 것처럼, 저는 어려서부터 여려 해 동안 하나님만 전적으로 바라보고 배고픈 거지가 밥 한 술 구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구하고, 또 구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후에도 저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일례로, 저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후에 수십 년 동안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또 많은 설교들을 했습니다. 115권이나 되는 많은 책들도 썼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릴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설교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책을 씁니다.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설교할 것이 생각이 안 나면 설교할 자료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립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지 않으면 설교를 작성할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내 힘만으로는 좋은 설교를 작성할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이렇게 아룁니다.
"아버지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긍휼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푸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이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무뇌인과 같아서 설교도, 목회도, 사역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처절한 심정으로 매달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을 주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목회를 해왔습니다.
이것은 여러분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 큰 은혜를 받으려면, 자기에 대해 100% 절망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처절한 절망감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으로 전환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눈에 띕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보다 지혜로운 하나님의 미련한 것과 사람보다 강한 하나님의 약한 것을 부어주십니다. 그 결과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고, 있는 것들을 폐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사람이 영광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연이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앞에서 저는 신학생 때 꾼 꿈의 유리처럼 투명한 성경 얘기를 했습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그 꿈을 꾼 지 3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그 꿈을 떠올릴 때마다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하나는, '아닌데! 나는 로마서 9장을 해석할 수가 없는데 ... '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로마서 9장을 해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해석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하나님의 은혜로 드디어 로마서 9장을 해석할 수 있었고 『예정론의 최고난제:토기장이의 비유 풀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또 하나는, 요한계시록이었습니다. 로마서 9장과 마찬가지로 계시록도 거의 2,000년 동안 바르게 해석된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계시록은 로마서 9장보다 더 길고 해석하기도 7배나 더 어렵습니다. 덕담처럼 되어버린 영성운동 진영의 예언처럼, 일곱 인이 떼어졌지만 봉인된 것처럼 아무리 읽어도 알 수가 없는 요한계시록! 온갖 상상들이 난무하고 해석이 소설화되어 버린 요한계시록! 그런데 어찌 제가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해석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제가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 같은 저와 차원이 다른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이 나와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도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정도로 계시록 해석은 저에게 "미션 임파써블" 즉 완전히 불가능한 임무였습니다. 심지어 저는 많은 입신 간증들처럼 계시록도 어쩌면 엉터리 계시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니면 2,000년 동안이나 안 풀릴 이유가 있나? 어쩌면 엉터리인데 우리가 그걸 성경이라고 믿고 해석하기 위해 헛수고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이제 계시록 해석이 제게 얼마나 불가능해 보였는지 아시겠지요!
하나님은 신학생 때 요한계시록 해석까지 환히 보이는 것을 보여주셨고, 샨 볼츠는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계시록을 풀어주실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샨이 계시록 해석이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한 작업인지 몰라서 저런 예언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계시록 해석은 저에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니면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야 할까요? 갑자기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가 제게 임했습니다. 얼마나 경이로웠는지요! 그러나 저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지혜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시록 해석이 부어지면서 계속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해석 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은, 제가 잘나거나 똑똑하거나 훌륭하거나 영성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나오는 그 원리에 의해 못난 제가 하나님의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소위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부어졌기 때문입니다(고전1:25).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 말은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해석을 통해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롭다는 것을 드러내시기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계시록 설교의 서론, 본론, 결론 모두가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것들입니다. 저는 계시록을 연구하는 동안 평생을 다니엘이나 계시록을 연구한 학자나 목회자가 깨달을 수 없었던 부분들을, 관심을 가진 지 30분이나 1시간 안에 완전히 해석되는 것을 상시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가장 늦은 것이 그 다음 날 해석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경이로운 시간들이었는지 모릅니다. 이는 인간의 지혜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수십 년을 연구해도 풀리지 않고, 거의 2.000년간 축적된 지식을 갖고도 풀리지 않던 난제들이 술술 풀리는 것이 어떻게 사람의 지혜로 가능합니까? 그래서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 2,000년 동안 풀지 못한 계시록이 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이 정도면 하나님의 지혜는 어떻겠는가? 또 하나님의 깊은 지혜는 어떻겠는가? 얼마나 더 초월적이고 경이롭겠는가?'
저는 그것을 가늠하기는커녕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바울처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롬11:33)라고 고백하며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서론을 마치고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설교를 듣기 원하는 모든 분에게 정중히 부탁과 경고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제가 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을 들으면 여러분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착각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바울의 설교는 모두 바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대다수가 그 설교를 듣고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마찬가지로 제가 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해도 모두가 다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는 눈과 들을 귀와 깨닫는 마음이 있는 사람만 받아들일 것입니다.
계시록뿐 아니라 모든 설교를 듣는 데 사활적으로 필요한 보는 눈과 들을 귀와 깨닫는 마음은 겸손과 직접적이고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5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복음이나 진리는 그냥 들으면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자에게도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역사해야 하고 듣는 이들 속에서도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역사해야 합니다. 성령에 의해 진리가 드러나고 공명이 돼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깨달아지고 믿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또 그래서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4:5-6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말씀을 들어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교만한 자들에게는 성령에 의해 진리가 드러나고 공명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들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계시록을 이해하고 싶으면 교만한 마음부터 버리시기 바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반 설교를 듣는 것보다 계시록 해석을 듣는 것에는 배나 더 겸손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주석과 강해집들의 저자들에게 다음 성구들과 매우 유사한 일들이 일어난 것을 제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18-20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많은 이들이 자신이 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어리석습니다. 그들은 계시록을 해석하기 위해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여러 가지 꾀를 내었고 어리석게도 자기 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해석 중 대부분을 헛것으로 아십니다.
고린도전서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한,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요한계시록에 대해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섣불리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무엇을 진짜로 알려면 자기가 모른다는 것부터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은 칼빈은 제외하더라도 금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라는 존 스토트가 계시록 2-3장만 강해하고 멈춘 것 아닐까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저 계시록에 관한 책 수십 권을 읽고 머리를 굴린 뒤에 자기가 계시록을 안다고 착각합니다. 그리고 용감하게 계시록 강해설교도 하고, 책도 쓰고, 세미나나 부흥회도 인도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시록을 모릅니다. 그들은 정말로 알게 된 후에 안다고 말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안다고 생가했고 그래서 충분히 연구하거나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과거를 볼 때 주어진 제목으로 자유롭게 그을 쓰는 것처럼 요한계시록을 소재로 해석이랍시고 제각각 소설을 썼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해석을 빙자해 계시록을 난도질했습니다. 그들은 예언서를 역사서나 교회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교만하여 자기가 모른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계시록을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말들을 주의 깊게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명한 학자, 유명한 설교자 그리고 유명 영성운동가의 글들도 읽어보았지만 엉터리였습니다. 저는 특히 요한계시록 주석을 쓴 학자들과 강해집을 낸 목사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계시록을 모릅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느냐고요? 물론 제가 읽은 책들에 한하는 것이지만, 만약 여러분이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해석했다면 제가 겸손히 배웠을 겁니다. 제가 안 읽은 책들의 저자들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정말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해석했다면 그 소문이 퍼졌을 것이고 제가 배우기 위해 그 책을 읽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안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겸손히 백지상태에서 배우십시오!
진실로 요한계시록 해석을 들으려면 해석해가면서, 계시록의 다른 부분과 다른 성경에 있는 많은 성구들과 그에 대한견해들을 사용하여 설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계시록 설교를 끝내기 전에, 적절한 때 그 성구들과 견해에 대해 저의 이해가 옳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해드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다른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 설명을 위해 사용하는 성구와 해석들까지 일일이 다 옳다는 것을 그때마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설명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더라도 일단 자기의 견해를 접고 저의 견해를 신뢰하고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저를 맹신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 설명에 대한 설명을 다룰 때까지 믿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겸손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도에 왜곡된 자기 지식으로 성급히 판단하고 마음을 닫아 버리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시록 해석을 끝까지 들을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끝까지 들으면 다 이해가 되게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바른 해석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백지상태로 듣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꼭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계시록 설교를 통해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깨닫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